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하라다 마하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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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잠깐, '토막 여행' 어떠셨나요?

정말 여행은 신기하네요.

떠나보면 다양한 것을 발견해요. 새로운 만남이 있어요.

떠나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아무튼 떠나지 않으실래요? 마음의 세탁, 잠깐의 휴식.

<낙원의 캔버스>, <암막의 게르니카>로 만났던 하라다 마하의 소설이다.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감동과 힐링의 드라마라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카에리는 여행을 다니는 방송인이다. 그녀는 한때 아이돌이었지만 7,8년 전부터는 '전직 아이돌 출신 방송인'이라 불렸고, 2,3년 전부터는 '인기 없는 방송인'으로 불렸다.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맡고 있는 방송은 바로 '토막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스탭 몇명과 함께 가족처럼 팀을 꾸려 일본 열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인데,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5년째 폐지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오카에리가 여행 방송 리포터로 방송을 이어가는 덕분에, 그녀가 소속한 회사의 직원 세 명이 어떻게든 먹고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일한 협찬사의 제품명을 경쟁사의 그것으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갑작스럽게 궁핍한 상황에 빠진 오카에리와 소속사 사람들은 옷을 벗는 화보라도 찍어야 되나 어쩌나 하면서 고민을 하는데, 그녀와 사장 모두 고향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난감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를 시작으로 남을 대신해 여행을 떠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은 직접 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과연 여행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여행 그 자체를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는 다소 황당하고 이상한 설정은 이 작품의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가게 될까.

"의미 없는 여행 같은 건 없어요."

타이시 씨는 조용히 말했다.

"이 여관에 있으면 매일같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진 여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목적이 없는 사람도 많아요.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도요. 하지만 그들 모두 뭔가를 꼭 얻고 돌아갑니다."

몸이 불편한 딸을 대신해 가족 여행을 가달라는 어머니부터 각자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절절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의뢰가 이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대리업'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으로 영업을 한다. 의뢰인은 언제, 어디로, 무엇을 하러, 어떤 이유로 오카에리에게 여행을 부탁하고 싶은지를 메일로 써서 보내고, 그 내용을 토대로 일주일에 한 건만 의뢰를 받는 것이다. 사례금은 의뢰인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 상담을 통해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오카에리는 본격적으로 '나그네' 생업을 재개하게 된다. 항상 꿈꿨던 '일상의 중심이 여행이 된 삶, 여행을 축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 일상을 벗어나 잠시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원하는 때에 여행을 떠나기 힘든 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하라다 마하는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여행을 대신 떠나는 인물로 드라마를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선물까지 받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 떠날 수 없었다면,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근질거리던 욕구를 충분히 해소 시켜 주고, 가슴 따뜻한 감동과 힐링도 함께 안겨 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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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추억 - 한가람 대본집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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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그러지 말고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가 좀 불러줘. 내 구 남친들."

해원 : ". 불러서 뭐하게. 뺨이라도 한 대 치게?"

여름 : "고맙습니다."

해원 : ('' 쳐다보면)

여름 :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준 당신. 감사합니다.

JTBC 드라마페스타 [한여름의 추억] 영상 대본집이 출간되었다. 원래 방송된 드라마는 4회 차의 원작을 2부작 방송용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대본집이 더 특별한데, 이 책에는 전반부에 2부작 방송용 대본과 스틸 사진이 실려 있고, 후반부에 총 4회로 구성되었던 원작 대본을 함께 실어 놓았다. 무엇보다 4회 차의 대본에는 방송에는 없었던 '세진'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 대본집을 통해서 원래 방송에서 맛본 그 여운과 함께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 한여름, 12년차 라디오 작가로 서른일곱이다. 그녀도 서른 이전에는 예쁘고 매력 있었던 보통 여자였지만, 지금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녀와 한때 사랑을 했던 여름의 남자들 네 명. 한여름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 박해준, 팝 칼럼니스트로 이성적이고 칼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과거에 여름에게 프로포즈 했지만 능력과 배경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후 사랑을 믿지 않는다. 라디오 PD인 오제훈은 돌싱으로 이 여자 저 여자와 동시다발 썸을 타는데, 작가들 사이에서도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한여름과도 썸을 탔었는데, 애매모호한 걸 딱 질색하는 여름과는 지금도 데면데면하게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과 대학시절 C.C.였던 김지운, 대기업 연구팀 대리로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여름과 연애 시절에 징글징글하게 싸운 기억들 뿐이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한다. 여름이 고3 때 만났던 최현진, 그녀의 첫사랑이다.내숭 떠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소개팅에 나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여자들뿐이다.

 

여름과의 연 후 그들 남자들의 현재 각기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지만, 여름과 보낸 시간들은 여전히 그들의 현재 연애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솔직한 여자가 싫다. 불같은 여자가 싫다. 첫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모두 믿지 않는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겨서 버린 편지 속에

두 갈래로 찢긴 사진 속에

평생 열지 않을 상자 속에

서랍의 끝머리와 삭제된 메일함 속에

고함 한 번 지르고 온 바다 속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여름 또한 그들 네 명의 남자들을 만나 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들 각각이 여름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은 그 연애들을 통해서 달라지고, 배우고, 성장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어릴 때 잠깐 만났던 선배를 통해선 마음을 감추고 내숭만 떨면 누구도 내 진심을 몰라준다는 걸 배웠고, 스무살 즈음 지겹게 싸워댔던 남자친구한테선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한테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상대의 진심을 짓밟으면 벌을 받는 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그 외에도 비 오는 날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 와인은 어떤 게 좋은 건지,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뭔지 등등을 지난 연애에서 배웠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온 서른 일곱의 여름은 지금, 외롭다. 이제 반짝반짝하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고, 남자들은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여름은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너무 거지 같아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그 언젠가의 일들이 전부... 꿈같다고. 분명 내 인생에 어떤 시기에는 내가 엄청 빛났었던 것 같은데 단숨에 초라해져버린 것 같다고. 꼭 누가 불을 끄고 가버린 것처럼. 분명 사방이 빛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죽으면 내 구 남친들이 모두 장례식에 와 줬으면 좋겠다고. 여름과 친한 라디오 작가 선배인 해원은 묻는다. 지나간 남친들을 불러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여름은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거다. 빛나고 아팠지만 모두 당신 덕분이라고.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뭉클함과 안쓰러움과 싱그러움과 설레임이 대본을 읽는 내내 페이지 가득 묻어났다. 무엇보다 서른 일곱이라는 나이에 여름이 느끼는 주변의 시선들이 안타까웠는데, 이 책에만 실려 있는 4회로 구성된 대본에서 현재의 그녀에게 새롭게 나타난 존재가 있어 조금은 충족된 느낌도 들었다. 과거의 연인들과의 추억 만으로 여름의 생을 구성하기에는, 최강희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여름이라는 캐릭터가 아까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이 먹고 초라해진 그녀에게 새롭게 찾아온 사랑이라는 존재가 신선했고, 설레였다. 마치 극중 여름처럼 내가 새로운 존재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한가람 작가는 "내가 죽으면 슬프다고 울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는데 아무도 울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너무 잔인한 설정이 아닌가 싶겠지만, 어쩐지 그게 당연한 현실일 것만 같았다는 거다. 그래서 이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는 조금 슬프고,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감할 부분이 많고, 매 장면이 모두 다 내 얘기 같아서 이해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누구나 한번쯤 쳐다만 봐도 두근 거리고, 잠을 못 이룰 만큼 설레고,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한, 그럼에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면 내 남은 생에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 싶은 그런 감정들을 겪게 된다. 누구나 연애를 하면서 예쁘고 아름다운 순간만 겪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욱하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고, 못될 때도 있고, 지긋지긋할 때도 있다. 그러니 나도 한때 한여름이었고,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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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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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는 언제나 착한 개였잖아. 반찬 투정도 안 하고.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잖아. 거짓말하는 것도 한 번도 못 봤어.

그럼 동동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언제나 착한 동동이는 사람이 되는 거야?

<고양이 낸시>의 엘렌 심 작가가 색다른 설정의 판타지 동물 만화로 돌아 왔다. 이 작품은 <환생동물학교>라는 제목대로 동물들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학교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설정만으로도 뭉클해지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반려 동물과 함께하고 있거나, 언젠가 반려 동물을 떠나 보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만약 정말 '착한 동물들은 죽어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반려 동물들이 사람보다 수명이 많이 짧기에, 언젠가 한 번은 가족 같은 그들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나도 어린 시절 벌써 두 번이나 함께 살던 반려 동물들의 죽음을 견뎌야 했고, 지금 함께 하고 있는 토토 역시 나이가 벌써 열다섯 살이 넘었으니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환생, 윤회라는 의미가 그들에게도 해당이 되어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럼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훨씬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토토 너는 살아 있는 동안 말도 잘 들었고, 큰 사고도 안 쳤고, 우리를 늠름하게 지켜줬고..... 등등의 착한 일을 많이 했으니 다음 생에서는 개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 실컷 누리라고 빌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환생센터 동물 섹션에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해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은 인간으로 환생하려는 동물들이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으로, 동물들은 이곳에서 인간의 삶에 대해 배우며, 동물의 본성을 지워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동물이지만, 이번에 부임하는 선생님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독자들의 입장이 되어 '순수한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들의 세상'과 그 반대의 경우를 함께 보여주는 시점인 셈이다.

 

헤어스타일이 멋진 샴고양이 쯔양, 수줍음이 많은 셰펴드 맷, 반장 처럼 의젓한 리트리버 블랭키, 명랑하고 밝은 시바견 아키, 주인과의 추억때문에 여전히 입마개를 하고 있는 하이에나 비스콧, 시크하고 까칠하지만 똑부러지는 고슴도치 카마라, 매사에 툴툴대는 고양이 머루까지.. 이들과 함께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한 교육이 시작된다.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선 남아 있는 짐승의 본능을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 신발 뜯기, 발로 긁기, 물기 등등 인간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면 즉시 가르쳐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꼬리가 없어지면 환생을 할 준비가 됐다는 증명이다.

 

그.... 그럼 난.... 어차피 잡히지 않는 것을 쫓으며.... 평생을... 허비한 건가....

내... 노력.... 내... 세월...

주인이 나를 가지고 놀았어!!!!!!!!!

세상은 쓰레기야!!!!!!!

 

레이저 포인터를 주술막대라고 부르며 주인과 놀았던 추억을 떠올리다, 레이저가 원래 잡히지 않는 거라는 선생님의 말에 주인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며 충격받는 쯔양, 도구를 잡는 법을 배우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원래 안 다치는 자신의 습성만 생각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만 머루. 사람은 고양이처럼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선생님에게 그럼 대체 사람은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반문하는 모습 등... 동물과 사람의 그 경계에서 이들에게 배움은 매사 이해안되고 어렵기만 하다.

 

 

주인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 물건 때문에 울고 자기가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할 주인 걱정에 곧잘 시무룩해지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에, 나는 과연 반려동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주인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어설픈 초보 선생님이 과연 이들을 무사히 사람으로 환생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과정도 매우 흥미롭지만, 이렇게 동물의 입장에서 보는 주인과의 추억이나 관계, 인간들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뭉클하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나는 이해가 안 돼.

거짓말로 얻은 믿음이나 사랑은 어차피 다 진짜가 아니잖아.

 

입마개를 소중히 간직하는 하이에나 비스콧의 사연은 인간들의 관점에서 본 행동과 동물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그것의 차이가 너무도 달라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다. 상처 치료 때문에 깔때기를 쓰고 와서는 너무 불편해하자, '역사상 그걸 뺀 동물은 아무도 없었다'고 진지하게 충고를 건네는 동물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고, 주인이 화장실 갈 때마다 문 앞에서 지켜줬었는데, 이제 누가 지켜주나.. 혼자 잘하고 있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실제로 가끔 티비 뉴스에서도 보도 되곤 하지 않나.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린 반려 동물들의 뭉클한 사연들 말이다. 만화지만 뭉클한 부분이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공감되는 대목들이 참 많았다. 동물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디로 가게 되는 지에 대한 소재로 이렇게 멋진 작품을 그려낸 작가의 따뜻한 상상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고 말이다. 이들이 과연 환생해서 인간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들의 주인을 만나게 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어서 빨리 이 작품의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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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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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노년까지 살았다. 지극히 난관적으로 살고 있다고 보였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늘 긍정적이며 어떤 어려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인물이 어이없이 꺾여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염세적인 철학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지켜준 것은 아닐까 싶다. 인생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것을 피하려는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랑 받기를 포기하면 배신당해 낙담할 일도 없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서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인생을 살다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하며, 평온한 생활을 갑작스레 빼앗기기도 하고, 슬픔의 수렁에 빠져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과연 삶의 의미를 어떻게 되찾아 다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의문에 대한 철학적인 대답을 건넨다. '철학'이라니, 어쩐지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하거나, 피상적이고 실체 없는 이야기만 난무하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저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책 속에 있는 철학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을 시도하는 정신과 의사 겸 작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가혹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철학을 전공했지만 탁상공론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학문에 한계를 느껴 중퇴하고 다시 의학부에 입학해 정신과 의사가 된 저자의 이력이 평범하지 않다. 그는말뿐인 철학은 쓸모 없다고 하면서 삶이라는 시련의 근저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철학을 추구한다.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의 무늬 같은 것. 어떤 무늬를 짤 것인지는 각자 다르고, 어느 쪽이 좋거나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필립이 자살의 유혹에 시달린 것은 자기 인생이 기대했던 것과 너무 멀어져서 삶에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이 처음부터 무의미했다면 자신이 기대한 인생은 단순한 선입견에 불과하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어떤 삶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필립은 자기 인생을 파멸로부터 구원했다.

실패한 결혼생활로 인해 자신의 아이에게 그 어떤 애정도 주지 않았던 부모, 그로 인해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도 어린 시절 내내 고독했던 아들이 있다. 아들은 자라면서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는 저절로 불쾌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고, 어머니 역시 신경질적인 아들을 무거운 짐처럼 느낀다. 그는 바로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아버지의 자살 이후 어머니와 갈라서는 등 반목을 계속했고, 결국 그의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달과 6펜스>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의 자전적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역시 그가 소년이던 시절 느꼈던 불안한 상황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반영했다. 극중 필립은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고 궁색한 예술가로 살며 재능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주식이 폭락해 돈을 전부 잃고, 불편한 다리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자존심 때문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던 그때 그는 자살을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 결국에는 그를 구원하는 계기가 되고, 이런 필립의 이야기는 작가인 몸 자신이 갖고 있던 그것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여타의 심리학 책들과 다른 부분이 여기에 있다. 대부분 정신과 의사가 이런 류의 책을 낼 때 사례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절망에 빠진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만나게 되며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지만... 그들의 삶 전체를 볼 수는 없기에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는 대부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속 철학자와 문학가의 삶들이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에 대해서 기승전결의 파노라마를 모두 만날 수 있다는 특별함이 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생긴 욕구불만이 결국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 철학자로 만들고, 가출과 자살 기도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냈던 헤르만 헤세가 어떻게 위대한 작가가 되었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토르 프랑클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업적과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삶의 비밀을 엿보면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무언의 용기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삶에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러 인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살아가는 게 너무 힘겨운 이들에게도, 삶의 고통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도, 자신답게 살 수 없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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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과 꼬마 스파이 스토리콜렉터 61
도로시 길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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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저희에게 꼭 필요하긴 하지만 이 임무는 이전 임무들하고는 다르다고 미리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건 택배 일이 아닙니다.”

폴리팩스 부인이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승진된 거로군!”

카스테어스가 껄껄 웃었다. “그런데 연봉은 안 오르고 위험도만 오를 것 같습니다. 폴리팩스 부인, 이 위험천만한 러시안룰렛에 아직도 거부감이 없으신지, 아니면 생각이 바뀌셨는지 궁금하군요."

최고령 CIA 비밀 요원 폴리팩스 부인의 활약상을 그린 이 시리즈가 벌써 네 번째 이야기 모험을 떠난다. 멕스코, 터키, 불가리아에 이어 이번에는 스위스이다. 폴리팩스 부인은 거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고난도 요가 자세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이웃인 하츠혼 여사가 속달 우편물이 왔다며 전달해준다. 이름도 모르는 사위가 그녀를 위해 특별한 병원에서의 요양을 준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카스테어스 부장과 보좌관 비숍의 연락으로 그녀의 이번 임무에 대해 전달받고, 그녀는 스위스로 떠나게 된다. 몽브리종은 의료 시설이면서 전 세계 부자들이 휴식과 요양 목적으로 모여드는 호텔 같은 곳이었다. 특별하고도 위험한 물건을 도둑맞았고, 그것이 몽브리종에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 미리 잠복해 있던 요원은 죽은 상태, 어쩌면 이번 임무는 생각보다 위험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폴리팩스 부인은 망설임 없이 새로운 임무에 도전한다.

 

자연에 둘러싸인 조용한 호텔식 병원에서 휴양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부인의 진짜 목적은 위험한 물건을 찾아내고, 그것을 빼돌린 도둑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었다. 폴리팩스 부인은 특유의 친화력과 관찰력으로 그곳에 투숙하고 있는 사람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깡말랐지만 강단 있어 보이고, 검은 얼굴에서 눈만 엄청나게 커 보이는 소년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자신과 친구하지 않겠느냐며 나타난다. 그런데 점점 소년의 행동에서 뭔가 수상쩍은 기색과 이상함을 감지한 폴리팩스 부인은 아이가 겁에 질려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과연 그녀는 소년을 둘러싼 이상한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베테랑 요원조차 찾아내지 못한 도둑의 실체는 알아낼 수 있을까. 충격적인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고, 냉혈한 살인범에게 쫓기고, 긴박한 납치극과 총격전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한 첩보 드라마 속에서 이번엔 폴리팩스 할머니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바로 그거야, 그래.... 통제 없이."

"그렇지만.... 그건 무서운걸요!" 코트가 외쳤다.

폴리팩스 부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싸우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워. 그리고 삶을 마치 상차림처럼 딱딱 맞게 배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애초에 그건 어차피 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본다는 건 정말이지 퍽 짜릿한 일이야."

처음 우리의 폴리팩스 부인을 만났던 날로 잠깐 돌아가보자. 60대 중반이 된 평범한 할머니, 남편이 먼저 죽은 뒤로 혼자 몸으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온 어느 날,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누구에게나 푹.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허황되어 보이는 꿈을 직접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기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가 지역구 의원을 만나고, 이후 버스에 올라 CIA 신청사가 있는 곳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혹시 스파이 필요없냐고. 당연히 담당자는 황당함에 입을 쩍 벌리고, 설마 진심이냐고 멍하니 중얼거린다. 독자인 나 역시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스파이라는 게 그렇게 무작정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할머니. 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런 기분이랄까. 그런데, 조그만 우연들이 겹치고 마침 그녀가 딱 필요한 임무가 생기고, 폴리팩스 부인은 그녀의 오랜 소원대로 스파이가 되어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황당무계하다고 느껴질 만큼 유쾌 발랄했다.

 

그렇게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그녀의 뛰어난 임기웅변과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넘치는 성격에 나도 모르게 동조해서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무대포로 천진난만하게 이 일에 뛰어 들 때부터 알아봤지만, 공포에 굴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그 특별함이야말로 세월의 무게만큼 나이를 먹은 '할머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순진해서 어수룩해 보이다가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어른이 젊은 사람 앞에서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지'라고 세월만큼의 현명함과 노련함을 보이는 이 특별한 캐릭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도 명랑 발랄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엉뚱한 그녀라서 전형적인 모습의 스파이와는 한참 동떨어져있지만, 바로 그 부분이 이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기발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순간에서도 명랑 발랄하고, 무한 긍정의 마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어제까지 내 곁에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시체가 되어 버리고,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쫓기고,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타국에서 어떤 행동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폴리팩스 부인은 말한다. '어떤 일은 즐겁고 어떤 일은 전혀 즐겁지 않지만, 당연히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다'고 말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할머니로 나이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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