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공식 - 욕하면서 끌리는 마성의 악당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1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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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럴듯한 빌런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클리셰가 묻힌 지뢰밭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위험 지대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게을렀다. 너무 오랫동안 히어로만 사랑하고 주인공에게만 집중한 결과, 빌런은 낡고 낡은 클리셰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한다. 영웅은 엿이나 먹어라. 사악한 여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            p.153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다크 나이트>의 조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피터 팬>의 후크 선장,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등 잘 만든 빌런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주인공보다 빌런이 더 사랑받는 경우도 있고, 역대급 빌런으로 인해 주인공이 빛나는 경우도 많다. 모든 성공한 히어로 뒤에는 완벽한 빌런이 있다는 사실! 게다가 히어로는 멋있지만 대개 예측이 가능한데 비해, 사악한 눈빛을 반짝이는 빌런은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해 더욱 매력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마성의 빌런을 만들 수 있는 작법 13단계를 알려 준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작가들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한 사샤 블랙은 빌런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매력적인 빌런의 성격과 특성, 빌런의 심리와 캐릭터 아크, 빌런의 9가지 유형, 클리셰를 피하는 방법, 갈등과 클라이맥스 등 빌런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단계별로 알려준다. 무엇보다 각종 영화와 소설 등의 친숙한 예시를 동원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어 여타의 딱딱한 작법서에 비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직접 이야기를 쓰는 작가 혹은 지망생이라면 정말 현실적인 팁들이 가득해 도움이 될 것 같고, 단순히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빌런 캐릭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갈등은 모든 소설의 토대다. 갈등이 없는 소설은 저승사자가 와서 끌고 간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그런 소설은 살려낼 수 없다. 심폐 소생술을 하고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아도 살아나기 힘들다. 갈등은 이야기의 산소이므로 갈등이 없는 소설은 꼼짝없이 저승행이다. 히어로 캐릭터를 아끼는 마음에 빌런, 안타고니스트, 갈등으로 히어로를 괴롭히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p.205

 

이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빌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데 필요한 사샤 블랙의 이야기는 예리하고, 공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히어로에게 동기가 필요한 만큼 빌런에게도 동기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히어로의 동기는 거의 비슷하지만, 빌런의 목적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빌런에게 실질적인 동기가 있어야만 줄거리에 현실감이 생기고 갈고리처럼 독자들을 낚아채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빌런은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는 빌런일수록 더 무섭게 마련이다. 이렇듯 사샤 블랙은 정말 현실적이고, 사실처럼 느껴질 수 있는 빌런의 공식에 대해 알려 준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요약, '생각해볼 질문들'과 직접 써 볼 수 있는 연습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부록으로 분석해볼 만한 유명한 빌런들을 포함해 다양한 리스트를 담았다. 소설과 영화 속 빌런 목록, 반영웅 목록, 캐릭터 성격, 특징, 가치, 영혼의 상처를 리스트로 정리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저자인 안젤라 애커만이 극찬한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빌런, 히어로, 사이드 캐릭터 편으로 나뉘어 출간된다. 이번에 <빌런의 공식>과 <히어로의 공식>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사이드 캐릭터의 공식>도 나올 예정이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숨은 동력,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서사와 주인공을 ‘제대로 굴려주는’ 빌런 만드는 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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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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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런 종류의 경쟁이 지난 1만 2,000년에 걸쳐 인간 사회의 규모 확대를 추동했지만, 그 중요성은 우리의 진화사에서 한참 전까지, 그러니까 농경의 기원 이전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아주 오래된 경쟁의 성격과 정도에 관한 풍부한 통찰은 민족지학과 역사학을 통해 알려진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다. 북극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수렵채집인 인구 집단들은 경쟁을 하며 제도외 기술을 가장 잘 결합한 집단이 확장하면서 효과가 떨어지는 문화적 요소를 지닌 집단을 점차 대체하거나 동화해왔다.      p.118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조지프 헨릭은 오래 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심리학과와 경제학과에서 교수를 맡았을 당시, 사회심리학자와 함께 인간 심리 실험에 대한 연구를 모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심리 실험의 결과들이 대부분 서구 사회의 대상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구의 표본은 대체로 한쪽 극단에 고정되어 있으며, 심리학적으로 이상하다(weird)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심리와 행동 실험에서 가장 흔히 활용되는 인구 집단에 'W.E.I.R.D.'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WEIRD(위어드)’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은 위어드(WEIRD)라는 5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진화론을 파헤친다. 최재천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를 잇는 책이라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블룸버그〉 선정 최고의 논픽션, 〈뉴욕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전 세계 출판계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미국인을 비롯한 WEIRD의 인성의 양상과 차원이 인간의 양상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믿음이 틀렸다고 본다. 진화론적 접근에서는 개인과 인구 집단이 생애와 세대에 걸쳐 맞닥뜨리는 사회, 경제, 생태적 환경의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영역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적응시키거나 조정한다고 말한다. 발달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마주치는 세계의 윤곽, 그 세계에서 주어지는 기회, 행동 유도성에 자신의 인성을 적응시킨다고 기대한다.           p.483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진 위어드(WEIRD)라는 집단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이나 관찰, 선호와 상충될 때면 좀처럼 남들에게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내심이 많고 대개 부지런히 일하는 그들은 강한 자기규제를 통해 현재의 불편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 쾌락, 안전 등의) 만족을 미래로 유예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집착적인 성향이 강하면서도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어, 정직하고 공정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는 심리학이라는 영역의 몇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책은 이들이 어떻게 그러한 독특한 심리를 갖게 된 것인지, 그들은 왜 다른 것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따라 간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은 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일처제의 심리학과 사회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 가운데 어느 것도 일부일처혼에 해당하는 비문화적 짝 결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상당히 독특한 제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와 비교해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합법인 일부다처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일부다처제의 수학 문제, 결혼 제도가 남성 호르몬에 미치는 영향과 심리적 변화, 일부일처혼과 범죄율의 상관관계 등 읽을 거리가 많은 챕터였다. 책을 읽다 보니 왜 <총,균,쇠>, <사피엔스> 등에 비견되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해 인류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첨단 연구를 넘나 들며 광대한 범위를 세부적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말이다. 두툼한 두께의 벽돌책이 담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진화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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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다운
피터 메이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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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그래요?" 현장감독은 초조한 듯이 물었다. 구덩이 안에서 남자가 조심스럽게 가방 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뼈예요." 숨죽여 말했지만 모두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람 뼈."
"그게 사람 뼈란 걸 어떻게 알아요?" 사람들 무리 중 누군가가 물었다.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왜냐면, 지금 망할 두개골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거든." 그러면서 이 키 큰 남자는 자기의 두개골을 돌려 위쪽을 올려다보았는데 두개골 사이의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른의 뼈라기엔 너무 작은데. 이건 분명 어린아이의 뼈예요."           p.18

 

수도 전역에 봉쇄령이 떨어진 런던,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사람들 뿐이었다. 시대 곳곳에는 군대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총기를 든 군인들 외에 거리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영국으로 들어오거나 영국을 나가는 것 모두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영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중교통도 운행이 중지되었고, 공항은 무기한 폐쇄되었으며, 런던의 수도권 경제는 급락했다. 응급 의료 서비스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상황, 임시 병원을 짓기 위한 건설 현장에서 사람 뼈가 든 가방이 발견된다.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의 유골이었다.

 

런던 경찰청의 맥닐 형사는 마지막 근무를 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와 별거 중인 그는 여덟 살 아들 션을 위해 충분히 시간을 내지 못했던 지난 날을 만회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션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도 전부 폐쇄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일도 거의 없었고, 불과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도, 어떤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다. 감기처럼 시작된 증상은 순식간에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맥닐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퇴직을 하루 앞둔 형사, 그의 앞에 놓인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 사건, 유골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킬러와 그의 배후, 팬데믹으로 인해 봉쇄되어버린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숨가쁘게 끝을 향해 달려 간다.

 

 

 

맥닐이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 누군가 입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처단하고 있었다. 살인범의 조급한 마음이 맥닐한테까지 느껴졌고, 맥닐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자세한 이유도, 결과도 아무 것도 모르지만 시급을 다투어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아주 미미한 달빛의 흔적만이 구름 사이로 투과되어 나오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정원의 숨을 조르고 있는 죽은 잔디 사이로 바스락거리며 지나갔고, 사람의 손길이 끊겨 제멋대로 자란 관목을 흔들고 지나갔다.       p.261~262

 

배리상을 수상한 <블랙하우스>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피터 메이의 최신작이다. 사실 피터 메이는 조류독감이 팬데믹을 유발한다는 소설을 2005년에 이미 썼지만, 모든 출판사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이 발생하고 나서야 그의 작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편집장들은 런던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적인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실제 <락다운>에 묘사된 상황과 유사한 일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었으니 소름 끼치고,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팬데믹 상황에 대한 예측과 뛰어난 묘사 외에도 이 작품은 스릴러로서의 매력이 충분하다. 보통 유골이 발견이 될 경우 피해자는 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뼈만 남게 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뼈에서 역한 냄새가 날 정도로 최근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날카로운 절단 장비를 써 뼈에서 살가죽을 발라내고, 세척을 해서 매끈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뼈라니, 그 어떤 스릴러 작품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뼈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퍼즐처럼 뼛조각을 맞추고, 전문지식과 상상을 토대로 얼굴을 복원해 내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팬데믹의 배후에 있는 음모 세력이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 또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주고 있다.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루할 틈 없이 달려가는 서스펜스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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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하게 말해요 - 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이금희의 말하기 수업
이금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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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뒤에 물음표가 붙을 상황이라면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맙시다. 괜찮아 뒤에는 느낌표만 붙이면 어떨까요.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말이죠. "괜찮아!"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그야말로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위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 박자 늦추는 것을 제안해봅니다. 당장 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싶겠지만 한 호흡 쉬는 거죠.          p.108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어온 아나운서이자 18년 동안 진행한 아침 토크쇼에서만 23,400명 이상, 그 외 방송을 포함해 약 3만 명 가까운 이들을 인터뷰한 레전드 방송인인 이금희가 지금까지 익혀온 말하기의 태도와 기술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방송과 병행하며 지난 22년간 숙명여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학생들 약 1,500여명과의 일대일 티타임을 통해 그 시간들을 통해 삶과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고민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겸임 교수라 따로 연구실이 없었기에, 커피숍에서 진행하느라 커피값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한 건 별로 없었다고,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고 말하는 그 태도에서 말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경청의 자세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역시나 책을 읽다 보니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라는 대목이 있었다.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제대로 듣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앞서야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말하기란 '내(화자)가 상대(청자,청중)에게 무엇(메시지)을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놓치고 있다. 대부분 자신(화자)만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상대(청자)는 못 알아듣게 되니 관계에 있어서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말을 할 때 꼭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누가 듣느냐, 누구에게 말을 하느냐'만 놓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기본적인 말하기가 가능할 것이다.

 

 

 

말하기에는 화자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화자의 에너지는 곧바로 청자에게 연결됩니다. 몰두와 흥미를 부르죠. 그러다 말하는 사람의 기운과 에너지가 조금씩 떨어지면 듣는 이의 집중과 재미도 조금씩 떨어집니다. 그만큼 말하기에는 크고도 지속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해야 크고도 오래가는 에너지를 전달해 사람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말하기는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요.            p.242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사회를 본 후 뒤풀이에 합류했는데, 앞자리에 앉은 가수의 매니저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 믿고 그렇게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방송이나 공연을 진행하는 걸 여러 번 봤는데 늘 편안하게 얘기하는 것이,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할 거다, 생각하면서 말하는 사람 같았다는 거다. 저자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이후에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기본적으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믿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의심이나 불안 없이, 이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마음과 태도야말로 지금의 그 자리에 서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 역시 그러한 믿음이 자신을 아나운서로 만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말하기'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을 통해 말하기 수업을 받고 내가 편하게 말해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소한 오해로 지금은 멀어져 버린 친구에게, 지난 시간만큼의 다정함을 담아 말을 건네보고 싶다. 이 책이 알려준 대로 '부드럽게, 욕심부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저자가 33년 방송 일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22년 6개월간 겸임 교수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말하기에 관련된 노하우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배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굳게 닫힌 마음과 입을 열게 하는 이금희의 소통법, '어른답게 편하게' 말하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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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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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문학은 인간 상상의 발설 또는 표출입니다. 문학은 생각과 감정의 어둑한 형태들 - 천국, 지옥, 괴물 천사 등등 - 을 밝은 곳에다, 그것들을 훤히 살피면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그 욕구의 한계는 어디인지를 보다 면밀히 이해할 수 있는 곳에다 풀어놓습니다. 상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취미나 의미가 아닙니다. 필요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죠.           p.40

 

이 책은 2004년 중반부터 2021년 중반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62편을 엄선해 한 권으로 엮었다. 작품과 글쓰기를 비롯해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헌신해온 주제들이 다양한 형식(강연, 서평, 논설, 추도사 등)의 글로 수록되어 있어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무색하게 술술 읽힌다. 애트우드는 소설과 단편과 시를 쓰면서도, 서평도 계속 썼고, 기사와 강연으로도 글을 써왔다. 지난 20년간 90퍼센트의 원고 청탁을 거절했음에도 매년 평균 40편씩 에세이를 썼다고 하니 대작가의 성실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시녀 이야기>, <증언들>을 비롯해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은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판타지이자,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으며, 그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만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상상력의 끝을 보여 주었다. 애트우드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타오르는 질문들>은 절대 놓치면 안 되는 보물 같은 책이다. 애트우드의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글을 쓰는 과정,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총망라되어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애정 표현까지 만날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특히나 '미친 아담' 3부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 이 작품을 좋아한다면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책의 1부가 '미친 아담' 3부작의 첫 번째 책 <오릭스와 크레이크>의 홍보차 여행 중인 시점의 글들이고, 2부가 '미친 아담' 3부작의 세 번째 책 <미친 아담> 집필에 매진하고 있던 시기라고 한다. 특히 2부에서 그 작품을 왜 썼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집필하는 과정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저는 제가 때로 번역가들에게 악몽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저의 빌어먹을 책들을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두 배로 감사합니다. 때로는 뺄 게요. 저는 언제나 번역가들에게 악몽입니다. 저는 (번역이 불가능한) 말장난과 (번역하기 난감한) 농담을 즐겨 쓰고, 특히 유전자 조작 생물과 상상의 소비재 영역에서 신조어를 잔뜩 만들어냅니다. 제가 살인에만 역점을 두면서 의젓한 표준영어만 쓴다면 번역가에게 얼마나 좋을까요? 플롯 위주의 책들이 번역하기에는 가장 쉽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역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p.341

 

애트우드가 앨리스 먼로에 대해 쓴 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앨리스 먼로는 체호프와 자주 비교되지만, 어쩌면 세잔과 더 닮았다고 하며 이유는 지독히 익숙한 사물이 낯설어지고 어둠 속에 빛나며 신비로워질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극히 소설가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와 닿아 밑줄 긋고 싶어지는 문장이었다. 어슐러 k. 르 귄의 부음을 듣고 이상한 환영을 본 경험담을 풀어낸 글에서는 뭉클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애트우드가 늘 소설과 연극의 등장인물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 옷에 주목해 깐깐하게 따진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연관해서 풀어내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여러 다른 책들이 실타래처럼 엮여 사유를 확장시켜주는 경험을 좋아하는데, 애트우드의 글들은 여러 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고 싶게끔 하는 부분들이 많아 행복한 시간이었다. 20대 초반에 데뷔한 이래 여러 문학 장르를 아우르며 80대인 지금까지도 활발히 창작을 하고 있는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에세이 인생을 파란만장했다고 말한다. 서평과 서문, 그리고 부고 기사까지 쉬지 않고 썼으며 기후 위기 이슈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과 동시에 해당 주제를 쓰는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세계에 던지는 '타오르는 질문들'은 당대의 이슈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이고도 통찰력있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반려자가 치매 진단을 받고 불안하게 요동하는 노심초사의 시기를 지나, 미국이 절망과 비통의 살얼음판을 걷던 시기를 거치고,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진실과 팩트체크와 공정성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글들을 쓰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북 투어를 이어갔으며, 팬데믹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른 애트우드의 행보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더 많이, 더 오래 글을 써주시기를 바래본다. '타오르는 질문들'은 이 두툼한 책을 덮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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