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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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긴 죽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한 대상은 물론,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이후였다.
"내가 죽어? 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뭐야?"
"그건 나를 위한 착각이야." 나는 다시 한번 내 속에 존재하는 이후에게 말했다.
"착각?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뭐야?" 인공지능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너는 진짜 네가 아니야."          p.117

 

이야기의 배경은 2040년대, 현실과 사이버스페이스가 한데 섞이고 인류가 기계와 어울려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유비쿼터스 월드의 뉴 서울이다. 아내 '이후'를 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고 남겨진 '홀'은 사람과의 연락도 끊고, 일도 손에서 놓은 채 슬픔과 그리움의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이 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부재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불현듯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프리랜서 인터뷰어로 일하던 그는 한 매거진의 편집장에게 연락해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나야."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그에게 도착한다. 스팸 광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홀로그램 메시지로 아내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내의 목소리는 내가 보고 싶지 않냐고, 나를 보러 오려면 이곳으로 찾아 오라고. '홀'은 아내가 죽기 전 자신의 기억 전체를 바이앤바이 서버에 제공해 인공지능 아바타를 준비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사가 도시 곳곳에서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사실 연쇄적인 자살 추정 사건들이지 딱히 의문사라 이를 까닭은 없어 보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현장에 브로핀 헬멧이 있었다는 거다. 브로핀은 가상현실을 이용해서 고통을 통제하는 것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지키며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기술을 이용해 바이앤바이라는 회사에서는 죽은 사람의 마음과 기억 전체를 옮겨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가상공간 '욘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슬픔에 빠져 약해진 사람들, 매일 고인의 아바타를 만나러 가서 거짓 대상과 대화를 하는 이들을 초대한다. 고인의 입을 통해 나와 함께 여기 들어와서 살지 않겠냐는 말을 듣게 된 이들은 고민한다. 죽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꿈꾸며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죽은 아내 '이후'를 다시 만나게 된 '홀' 역시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린 서로를 잃을 수도 있어." 이후가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꾸만 되풀이되는 기억이 아니라 진짜 망각, 진짜 오블리비언일지 몰라. 당신은 여기 자신의 의사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이제는 나의 의사에 의해서 머물고 있는 거야. 내가 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 사랑한 것은 당신에게 넘치던 삶의 활기 때문이었지.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살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미 죽었어. 더 죽을 필요는 없지."            p.351

 

이준익 감독, 신하균, 한지민 주연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의 원작 소설이다. 2010년 일억 원 고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번에 전면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영상화를 기념해 드라마 포스터가 담긴 디자인으로 새롭게 단장했고, 2022년 감각으로 문장과 표현을 다듬고 개정판 작가의 말도 수록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는 남편이 VR을 통해서 아내를 만나는 장면을 봤던 적이 있다. 4년 전 아내를 잃고 다섯 아이와 남겨진 남편은 현재 구현 가능한 기술로 죽은 아내와 애틋한 '단 하루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는 가상의 공간에서 아내와 만나 함께 마주보고 눈을 마주치며 손을 잡고 춤을 추었고, 아내와 자주 찾던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배우의 동작과 표정을 3D 모델에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굿바이, 욘더>는 사랑했던 대상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고 믿고 싶어지도록 하는, 죽은 이의 기억과 성격을 고스란히 지닌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브레인 다운로드를 통해 들어가는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공간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을 초월해서 같이 할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일까? 한번도 불멸의 삶을 꿈꿔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욘더라는 현실을 초월한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육체가 없는 인간, 다운로드된 정신을 통해서 누구나 가장 행복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정말 이런 상상의 공간이 가능하게 될까. '오직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세계, 욘더'가 던지는 질문은 이 작품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올지도 궁금해진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 소설과 드라마가 달라지는 부분도 있다고 하니, 두 작품을 함께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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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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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랫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할머니가 내 뺨에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네 일부란다. 너는 나와 내 이야기를 지니고 새로운 행성으로, 그리고 수백 년 미래로 가는 거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다.”         p.13

 

핼리 혜성의 궤도 이탈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지구, 부유한 사람들과 선택된 이들만 새로운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올라탈 수 있다. 열두 살 소녀 페트라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지구에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과학자인 엄마, 아빠와 동생 하비에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우주선에 탑승한다. 여행을 하며 잠들어 있는 동안 지구에서의 기억은 모두 삭제되고, 각자가 행성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식이 뇌에 직접 주입된다. 그렇게 2061년 7월 28에 지구를 떠난 그들은 2442년 새로운 행성 세이건에 도착한다. 380년 후에 깨어난 페트라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억이 삭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각자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간다. 페트라는 식물학 및 지질학 전문가 제타1을 연기하며 함께 우주선에 올랐던 가족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분 다 기억 삭제에 실패해서 재프로그래밍을 했지만, 그것마저 삭제로 두 분 모두 2277년에 제거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삭제된 것이 페트라의 부모들만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페트라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자신 역시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걸 저들이 눈치 챈다면 사령관이 그녀를 제거하든지 다시 프로그래밍하려 들 것이다. 페트라는 같은 방을 사용하는 제타 대원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과 함께 이곳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쿠엔토가 뭐야?"
내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수마가 물었다.
긴장해 배가 옥죄어 왔다. 이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바라건대, 지구의 이야기가 저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가족이 누구였는지 상기시켜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억한다 해도, 이 방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겠다고 마음먹지 않기를 나는 기도했다. 모두 나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이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p.229~230

 

행성 이주 계획의 주체인 '콜렉티브'는 지구와의 영원한 단절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한다. 갈등, 기아, 전쟁으로 가득 찼던 세계에 대한 기억을 단 하나도 가져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되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들은 지구의 기억들을 모조리 삭제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지구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온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린 채 오로지 임무를 위해서만 움직이며 산다. 과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그 속에서 페트라는 진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 작품은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이다. 1994년에 뉴베리상을 수상한 로이스 라우리의 <기억 전달자>를 잇는 SF 명작이라고 극찬을 받았는데, 과거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기억 전달자'가 된다는 점이 명맥을 같이 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페트라는 이야기꾼 할머니 덕분에 쿠엔토(스페인어로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가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종이로 만든 책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고 있다. 극중 '이야기 없는 세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말처럼, 이야기를 사랑하고, 이야기의 마법 같은 힘을 믿는 다면 가슴 뭉클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머나먼 과거가 된 지구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의 눈부신 여정을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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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만드는 아이주도 영어공부 - 한국에서만 공부하고도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만의 비결!
곽창환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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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려운 교육 환경 속에서도 아이 영어 교육을 잘 시키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언어의 본질은 ‘소리’라서 어릴 때는 듣기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영어 말하기 수업을 해 보면, 어릴 때부터 영어를 많이 듣고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어서 기초를 잘 닦아 놓은 학생들이 언어적으로 발전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어릴 때 영어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보다 집에서 말하기 위주로 공부한 아이들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다시 한번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맞다는 것을 느낍니다.           p.28

 

한국식으로 10년을 공부하고 서울대를 가도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결코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지 않은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이 책은 한국식 영어 교육의 문제를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막막한 한국의 영어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는 직접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나, 교육을 하는 부모에게나 큰 고민이니 말이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초등학생 때부터 속칭 '영포자(영어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런 아이들에게는 공교육 자체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의 중, 고등학생들은 '내신 영어'와 '실제 영어'를 병행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2가지 모두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 6년을 보내고 나면 시험 영어만 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학생들의 국제 학력 평가 수준은 높지만, 사실 그것을 공부한 시간과 비교해 보면 공부 효율은 세계에서도 하위권이라고 한다. 참 열심히 공부하지만,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효율적으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

 

 

 

영어로 리스닝이 되어도, 결국 말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리스닝은 뇌로 입력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반면, 말은 뇌에 있는 단어와 표현을 조합하여 출력을 만드는 것으로 리스닝과는 다른 능력입니다. 뇌과학에서 설명했지만, 말을 하려면 그 언어를 처리하는 루틴이 자동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언어 처리를 위한 자동화 루틴은 말을 많이 해 봐야 완성됩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언어 처리를 위한 자동화 루틴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p.219

 

이 책은 어떻게 어휘력을 높일 수 있는지, 영어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와 중요성, 영어책의 종류, 문법 교재 추천, 렉사일 지수와 AR지수, 라이팅 공부 등 올바른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서 알려 준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과 유대인 교육 등 선진 영어교육에 대해서도 한국 교육계의 문제점과 우리의 영어 교육에 선진 교육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싱가포르 국립대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MBA를 공부한 저자는, 2008년부터 한국의 잘못된 영어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사업을 해 오고 있는데,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호응을 받았던 영어 공부법인 ‘자기주도 영어토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독, 자기주도학습, 플립러닝, 유대인의 하브루타 독서법의 개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토크24의 영어 독서 토론 수업이 흥미로웠다. 책을 읽고 자기 주도로 공부하는 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고 한다. 책을 정독으로 읽고, 모르는 단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주어진 워크시트에 답을 적어보고, 영어 선생님과 학생이 자기 주도로 공부한 내용에 대해 토론 수업을 한 뒤, 수업한 내용과 관련해 라이팅 숙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특별한 공부 비법이 아니라 정직하고 우직하게 연습을 반복하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라 차근차근 따라 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기주도학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어 독서 토론이라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아이를 한국에서 공부시키면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이 궁금하다면, 문법에 매달리지 않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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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의 공식 - 첫눈에 독자를 홀리는 역대급 주인공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2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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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히어로는 작품의 얼굴 그 이상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어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빌런이 이야기의 갈등이라면, 히어로는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곧 ‘변화’다. 아무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것이 무엇이든, 전부 처음과 끝이 다를 것이다(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처음과 끝 사이의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본질이다. 그리고 히어로는 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제대로 그려내기만 한다면, 독자는 히어로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p.16

 

이 책은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저자인 안젤라 애커만이 극찬한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빌런, 히어로, 사이드 캐릭터 편으로 나뉘어 출간이 되는데, 먼저 <빌런의 공식>과 <히어로의 공식>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사이드 캐릭터의 공식>도 나올 예정이다. 첫 번째 책인 <빌런의 공식>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두 번째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작법서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기가 참 쉽지 않은데 말이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작가들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한 사샤 블랙은 정말 맛깔나게 글을 쓴다. 스스로 자신이 수준급의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며, 작법서를 독파하며 유머 감각까지 체득할 수 있다니 일타쌍피가 아니냐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나 작가 역시 오랜 이야기 중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더욱 공감하며 읽게 되는 책이기도 했다. 좋아하던 소설이나 시리즈가 끝났을 때 상실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던가, 소설 속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왜 내가 소설 속에 있을 수 없는 건지 속상하기도 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 중독자들을 구원할 히어로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 정말 지루할 틈이 없는 작법서였다.

 

 

 

왜 히어로를 고문해야 할까? 사실성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소설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유명한 자기계발서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더 자주 목격하는 건 우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를 시험하고 쓰러뜨리고 장애물을 던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작가는 히어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그를 고문할 필요가 있다. 히어로를 괴롭히는 게 괴롭더라도, 주리를 틀고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야 한다. 작가는 때로 무자비할 필요가 있다.         p.136

 

히어로라고 하면 보통 배트맨이나 블랙 위도우 같은 슈퍼히어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는 장르나 캐릭터의 특징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뜻한다. <빌런의 공식>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빌런이 이야기의 갈등이라면, 히어로는 이야기 그 자체'라는 말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사실 히어로는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지점이 많은, 뻔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사샤 블랙은 히어로가 절대 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완벽한 캐릭터에겐 결함이 있다며 불완전함의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캐릭터 아크를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로 '캐릭터가 믿는 거짓'에 대해 알려 주고, MBTI를 이용해 캐릭터의 성격 유형 만드는 것도 해본다. 그 외에도 동기에 디테일을 부여하는 법, 보글러의 이야기 구조 12단계, 캐릭터 아크의 네 가지 원칙, 갈등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 매슬로의 욕구 5단계, 클리셰와 트롭 활용법, 캐릭터 업그레이드하는 법 등 다양한 정보들이 우리를 매력적인 히어로에게로 안내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요약, '생각해볼 질문들'과 직접 써 볼 수 있는 연습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부록으로 캐릭터의 긍정적 특징과 부정적 특징, 영혼의 상처를 비롯해 다양한 목록을 실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직접 이야기를 쓰는 작가 혹은 지망생들에게는 정말 현실적인 팁들이 가득해 도움이 될 것 같고, 그저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작품의 무대를 찢어놓을 히어로를 탄생시키는 비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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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살아 있다 온(on) 시리즈 2
도서관여행자 지음 / 마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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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내가 사서로서 공감하며 읽은 책이 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저자는 책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사서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말을 인용한다.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맡은 모든 책들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 읽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야....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 그렇다. 나는 오직 훌륭한 사서가 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밀지 않았다.        p.30~31

 

어린 시절 크고 웅장한 도서관 안으로 처음 들어갔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로처럼 빼곡한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도 난다.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아이였으므로 원하는 책을 전부 사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에 있는 책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빌려 보거나, 주말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슨 수험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실컷 책을 쌓아두고 보다가 도서관 식당에 내려가서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던 우동을 먹고, 다시 열람실로 올라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도서관에만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낡은 종이 냄새, 오래된 챔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도서관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관련된 책은 무조건 찾아서 읽는 편이다. 이 책은 트위터에서 도서관 애호가이자 비평가로 정평이 난 '도서관여행자'의 첫 책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저자는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 사실 어릴 때는 도서관 사서가 꿈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면 사서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사서는 책과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직접 읽는 것보다 그 외의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반면 고양이 사서는 운이 좋으면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듀이가 대표적인 예다.          p.138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은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는 곳,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고 한다. 건물과 장서 중심의 정적인 도서관보다 시끄럽게 살아 있는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는 우리가 흔히 찾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흘리고 가는지를 이 책에 담았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장서폐기의 괴로움'이란 장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장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해 불필요한 자료를 제거한다고 한다. 장서의 '보존'보다 장서의 '이용'에 무게를 두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입고된 책의 수만큼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책을 아끼는 사서가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버려야 한다니 아이러니 같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계속 새로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폐기 위험에 처한 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서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했다. 한 도서관의 관장은 다른 이름으로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9개월 동안 무려 2361권의 책을 대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1년 이상 대출되지 않아 폐기 위험에 처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당신의 즐겨찾기에 담아야 할 디지털도서관 15곳, 당신의 여행 계획에 넣어야 할 도서관 여행지 48곳 등 알찬 정보들도 수록되어 있고, 후반부에 소개된 도서관여행자의 서재 리스트도 애서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소외된 책들을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도서관, 진짜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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