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를 쫓는 모험
이건우 지음 / 푸른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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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머릿속으로 돈까스를 떠올려보라. 걸쭉한 브라운 소스를 부은 한국식 돈까스, 두꺼운 등심을 바삭하게 튀겨 썰어낸 일본식 돈까스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를 상상하면 된다. 자, 이번에는 돈까스 옆으로 시선을 옮긴다. 돈까스와 함께 나온 샐러드는 무엇인가? 십중팔구 가늘게 채 썬 양배추 샐러드를 떠올렸으리라. 지금까지 먹은 돈까스가 어떤 스타일이었든 그 곁을 지킨 건 대개 양배추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양배추, 그것도 가늘게 채 썬 양배추가 터줏대감처럼 돈까스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p.41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음식이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처음 가족끼리 외식이라는 걸 했던 동네의 경양식 집, 동생은 느끼하다고 했지만 나는 너무 맛있었던 돈까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첫 직장에서 첫번째 월급을 받았을 때, 첫 남자친구와 근사한 데이트를 했을 때 등등... 뭔가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거나,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에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갔었다. 워낙 다양한 맛집이 있고,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먹어 왔지만 그래도 외식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는 항상 돈까스부터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물론 돈까스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고 말이다.

 

나에게는 추억의 음식이자, 여전히 현재를 함께하는 음식은 '돈까스'에 대한 탐방기라고 해서 이 책이 굉장히 궁금했다. '돈까스를 쫓는 모험'이라는 귀여운 제목의 이 책은 돈까스에 진심인 돈까스 애호가이자 일본어 번역가인 저자가 들려주는 돈까스 탐방기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2017년부터 블로그 '돈까스를 쫓는 모험'을 운영하며 서울과 경기 일대의 돈까스 가게 수백여 곳을 탐방하고, 자신이 먹은 돈까스에 대한 품평을 써오고 있다. 블로그에 리뷰를 남긴 돈까스만 200여 개가 훌쩍 넘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돈까스 오덕'이자 '돈까스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방문한 수백 곳의 돈까스집 중에 맛, 접객,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등 어떤 측면에서라도 소개할 만한 요소가 있는 가게들만 추려서 그 중 딱 29곳이 수록되어 있다.

 

 

 

상을 받아드는 순간부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참으로 정갈하고 정성 가득한 한 상이다. 돈까스 경험이 이쯤 쌓이면 조금 과장해서, 척 보면 딱 답이 나오는데, 드레싱이며 소스며 다 직접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생선까스와 새우튀김에 맞춰 타르타르소스까지 따로 냈다. 이런 세심한 점이 초장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문 실수에서 비롯된 찜찜함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다. 어떤 순서로 먹어볼까? 이는 돈까스를 즐길 때 꽤 중요한 요소다.           p.177

 

첫 주자는 1986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한성대 앞의 한아름이다. 얇은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내어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리고 치즈를 얹어 녹여낸 익숙하지만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의 돈까가 일품인 곳이다. 두 번째는 한국식 돈까스를 제대로 선보이는 종로의 김권태 돈까스 백반이다. 이곳은 독특하게도 돈까스에 밥을 곁들이는 형태가 아니라 밥반찬 중 하나로 돈까스가 나오는 돈까스 백반 메뉴가 유명한데,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가게라고 한다. 그외에도 걸쭉한 브라운 소스를 부은 추억의 경양식 돈까스, 두꺼운 등심을 바삭하게 튀겨 썰어낸 일본식 돈까스, 얼큰한 냄새 폴폴 풍기는 돈까스 김치 나베, 카레 돈까스, 짬뽕과 함께 나오는 중식 돈까스,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참치까스 등등 다양한 맛과 조합을 선보이는 돈까스가 소개되어 있다. 이 중에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집도 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숨은 맛집도 있어서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무엇보다 돈까스 맛집을 탐방하고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돈까스라는 음식을 제대로,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저자만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일본어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음식에 얽힌 일본 문화나 역사, 언어와 관련한 해박한 지식들을 함께 풀어내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돈까스 집 사장님과의 대담, 집에서 즐기는 냉동 돈까스 비교, 서울, 경기 지역 돈까스 지도 등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어 정보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어떤 음식은 나의 지나온 한 시절을 기억나게 만들고, 또 어떤 음식은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먹어온 음식만큼,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의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라는 한 사람을 이루게 되는 것일 테고 말이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돈까스를 고를 수 있는 저자의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어온 돈까스와 그 시간들에 얽힌 추억도 함께 떠올랐다. 돈까스라는 크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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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스틱! (15주년 기념판) -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
칩 히스.댄 히스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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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이건 그저 인간의 뇌에 대한 작은 상식일 뿐이지 않은가? 좋다, 우리가 진실로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간결한 메시지는 더 잘 달라붙는다. 하지만 간결함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심오한 내용을 지닌 간결한 메시지다. 그러므로 심오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짧은 메시지 안에 다양한 의미를 압축하여 채워 넣어야 한다. 어떻게? 깃발을 사용하라. 청중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억을 두드려 깨워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p.89

 

출간 후 전 세계 3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비즈니스 3대 명저가 된 <스틱!>이 출간 15주년을 기념해 리커버 기념판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뇌리에 한번 달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 메시지 창조 기법을 담은 이 책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 책은 도시 괴담은 왜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되는 것인지, 어째서 어떤 선생님의 수업은 다른 수업보다 훨씬 오래 기억되는 것인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비슷한 속담이 발견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째서 어떤 정치적 메시지는 널리 퍼져나가는 반면 다른 메시지는 그렇지 못하는 건지에 대해 방대한 연구와 치밀한 분석 끝에 스티커 메시지 창조의 6 원칙(SUCCESs)을 추출해냈다.

 

10년 동안 수백만 명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메시지 안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특성 여섯 개는 다음과 같다. 단순성(Simple), 의외성(Unexpectedness), 구체성(Concreteness), 신뢰성(Credibility), 감성(Emotion), 스토리(Story)가 그것이다. 요약하자면, 성공적인 메시지를 창출하려면 '간단하고 기발하며 구체적이고 진실되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따면 성공이라는 의미의 'SUCCESs'가 된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 원칙은 대부분 비교적 명백하고 상식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탁월한 스티커 메시지들을 손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악당인 '지식의 저주'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식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여섯 가지 원칙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준다.

 

 

 

언어란 종종 추상적이다. 그러나 삶은 추상적일 수 없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전쟁과 동물과 문학작품에 관해 가르친다. 의사는 우리의 위와 등과 심장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한다.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비행기를 건조하고 신문을 발행한다. 자동차 회사는 작년보다 더 빠르고 싸고 예쁜 차들을 제조한다. 심지어 가장 추상적인 비즈니스 전략마저 종국에는 인간의 행동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추상적인 전략보다는 실제 행동이, 인간 정신에 대한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어 유희보다는 포도가 시다고 투정을 부리는 여우를 이해하는 편이 훨씬 쉬운 법이다.           p.163~164

 

신장을 훔쳐가는 장기 밀매 괴담, 콜라가 사람의 뼈와 이를 부식시킨다는 속설, 중국의 만리장성이 우주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것, 인간은 평생 뇌의 1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 이러한 말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이 말들이 사실일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도시 전설, 루머, 속담, 음모 이론, 온갖 농담들은 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것일까.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사회적인 전염 현상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은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평생 기억에 남는 가짜 뉴스나 루머, 사지 않고 못 견디는 광고 카피, 대중의 행동을 바꾼 선거 캐치프레이즈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메시지에 관해 분석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6가지 원칙만 잘 활용하면 천재 카피라이터나 창의성 넘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어도 누구나 착 붙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메시지를 스티커처럼 끈끈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메시지 클리닉'이라는 코너를 수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시지를 보다 잘 달라붙게 만들 수 있는 지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설명해주고 있어 활용도가 높다. 그리고 청중에게 착 달라붙는 프레젠테이션의 다섯 가지 법칙, 경영자부터 신입직원까지 관통하는 전략 소통법, 나쁜 소문을 떼어내는 방법, 학생들에게 착 달라붙는 스티커 교수법 등 실전에서 바로 응용해볼 수 있는 스틱의 기술들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어 비즈니스 바이블이라는 평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 잊히지 않는 불멸의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비즈니스 전 영역은 물론 타인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한 줄 평'을 써본다면 이렇다. 상대를 설득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한 한 문장이 필요하다면 '스틱!'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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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 감옥 안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철학 수업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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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업을 시작한다. 내가 몇 분 동안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 뒤 묻는다. "만약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다워지는 것 같아요." 디타라는 여자가 말한다... "이곳에 오고부터 내가 점점 나다워지는 것처럼요." 그녀가 말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들 중 일부는 노숙자였거나, 열다섯에 부모가 됐거나, 성매매를 하고 포주에게 대금의 10퍼센트를 받았다.              p.215

 

철학이란 것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고, 추상적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편견을 사정없이 부숴주는 책이다. 철학은 애매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는 학문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 강의라니, 너무도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곳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 학교를 못 마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앤디 웨스트는 왜 철학이라는 건 뭐에 써먹는 거냐고, 그걸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붙들고 철학 수업을 하게 된 것일까. 그는 일반 강의실이 아닌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감옥 안 철학 수업에 대한 기록이자, 감옥의 그늘에서 보낸 한 삶에 대한 회고록이다.

 

자유와는 가장 먼 장소인 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누가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이 있는지,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을까? 진실은 항상 옳은 것일까?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지, 용서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감옥 안에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 가해자에게 용서란 개념은 무엇인지,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욕망이란 어떤 것일지... 어떤 질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보다 막다른 벼랑 끝에서 훨씬 더 시급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생각해요, 마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우리 책임일까요?"
내가 물었다.
"아니면 누구 책임인지 모르겠네요." 마틴이 말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적 책임은 가혹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개념이에요." 내가 말했다.
... "누구나 살면서 나쁜 짓을 하잖아요? 우리는 바깥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키트가 말했다.          p.420~421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저자의 아버지, 삼촌, 그리고 형이 모두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덕분에 앤디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는데, 어른이 되어 철학 수업을 하기 위해 감옥에 찾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가족의 운명이 반복될 것을 두려워하며, 머릿속의 사형집행인과 부단히 싸우고 있다. 그렇게 앤디는 과거에서 현재로, 감옥의 방문객에서 감옥의 교사로, 가족들로부터 자신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철학 수업을 이어나간다. 그의 수업을 듣는 재소자들은 (아마도 옷차림 때문에) 그를 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고,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교실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고 너그러웠기 때문에 말이다. 학생들이 그를 게이라고 믿으면서 덜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앤디의 철학 수업과 그의 개인사를 넘나 들면서 교차 진행된다. 서른하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가족들로부터 죄를 물려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보며 그들이 받는 형벌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일상이란 어떤 느낌일지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감시할 사형집행인을 임명했고, 덕분에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얻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그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그 경계를 드나드는 순간들이 이 책에 눈을 뗄 수 없는 서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철학이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이렇게 쉽고 재미날 수가 있다니, 감탄했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한 방에 이해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 웬만한 소설보다도 더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간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철학 수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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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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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십만 년 동안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우주선과 화성의 전쟁 노력은 모두 UWTB, 즉 '무언가가 되려는 우주적 의지Universal Will to Become'로 알려진 현상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았다. UWTB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존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려 하도록 만드는 존재였다.
수많은 지구인들은 지구에 UWTB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p.178

 

커트 보니것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신간 3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의 압도적으로 눈부신 시각적 번역작' 이라는 평을 받은 그래픽노블 버전의 <제5도살장>, 보니것이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 <타임퀘이크>,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의 클래식이자 코믹-SF계의 원조인 보니것의 두번째 장편 <타이탄의 세이렌>, 이렇게 세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2003년에 <타이탄의 미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 이후 세 배가 넘는 가격에 중고 거래가 되었던 <타이탄의 세이렌>이 기대가 되어 먼저 만나보았다.

 

서른한 살의 콘스턴스는 물려받은 재산만 30억 달러나 되는 젊은 부호이다. 사람들은 미국 최고 부자인 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콘스턴스는 이 놀라운 행운의 이유에 대해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보죠."라고 말할 뿐이다. 그는 럼포드 부인의 초대를 받아 오십구 일에 한 번씩 자신의 개와 함께 물질화하는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의 저택에 간다. 럼포트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에서 콘스턴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콘스턴스는 타이탄에 가본 적도,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 사실 럼포드는 특정 시간대의 관점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와 콘스턴스가 화성에서 결혼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화성인들은 인간을 가축 취급하며 교배시킨다고 말이다. 게다가 콘스턴트가 화성과 수성, 지구에 들른 뒤에 목적지인 타이탄에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그가 짊어질 핸디캡이었다.
그는 48파운드를 짊어지고 다녔다. 기꺼이. 더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무게를, 더 약한 사람은 더 적은 무게를 지고 다녔다. 레드와인의 신도 중 힘이 센 사람은 누구나 기꺼이 핸디캡을 받아들이고, 어디에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다.
이제야 가장 나약하고 미약한 자들도 인생이라는 경주가 공정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p.288

 

콘스턴트는 자신이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갈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구에서의 법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화성군 중령직을 제안 받아 화성으로 향하게 된다. 극중 화성에는 군사적이고 산업화된 사회가 자리잡고 있었고, 지구로부터 징집된 사람들과 비행접시를 타고 화성으로 이송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4차원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 뒤,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걸쳐 존재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남자와 전혀 애쓰지 않고도 돈방석에 앉아 운명의 장난인 것만 같은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리고는 행운이 와도 불행이 와도 그저 정해진 운명인 양 받아들이는 남자의 만남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블랙 유머와 풍자의 대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 작가인 커트 보니것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제3차대공황이 닥치기 전 어느 시점의 미래, 신우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개인의 운명과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유쾌하게 노래한다. 워낙 엉뚱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라 다소 정신없지만, 보니것만의 시니컬한 위트를 좋아한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것이 1969년이고,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59년이니 인류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렇게나 '우주적인' 소설을 쓴 보니것의 독창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극중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린 한 남자는 자신이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이라고.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냐는 이야기를 한다.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저 우연의 선택일 뿐이고, 아둥바둥 힘들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만 삶이란 우주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며, 세상에 절대적 진실이란 없다는 보니것식 농담이 여운처럼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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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을 이기는 초등 1문장 입체 독서법
김종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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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책을 너무 읽지 않아요. 읽어도 만화책이나 학습 만화만 읽고, 글자가 많은 책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 대부분의 부모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사실 독서란 매우 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지적 행위다. 그 가치는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해내기는 매우 힘들다. 무엇보다 독서에 전혀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독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21~22

 

집 안 환경을 도서관처럼 꾸며주고, 아이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을 쥐어주고, 부모가 종일 옆에서 책을 읽고 있어도 사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가 참 많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의 말>,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시리즈 등으로 새로운 교육 인사이트를 제공해온 김종원 작가는 “많이, 빨리 읽지 마라. 단 한 줄을 읽어도 천천히, 입체적으로 읽어라”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 20년간 연구해온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이 책은 한 문장 읽기만으로 100권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1문장 입체 독서법’을 제안하는 독서 교육서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열심히 밑줄을 긋고 책장 모서리를 접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글을 다르게 이해하는 걸까. '초기 문해력'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진 요즘, <100권을 이기는 초등 1문장 입체 독서법>은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그저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만으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활동을 끌어내는 입체적 독서 활동이라 문해력 향상에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왜 자꾸만 권수에 집착하는가? 왜 한 권의 책을 백 번 읽지 않고, 백 권의 책을 한 번 읽기에만 집착하는가?
100개의 직업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100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권수에만 집착하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게 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글도 백 번 반복해서 읽으면 누구나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독서하는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            p.93

 

빠르게 책을 다 읽었다는 속도와 결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책을 읽고 느낀 부분을 빠르게 답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지 말고,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진정성을 의심하면 안된다는 대목에서 속이 뜨끔한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느낀 점을 말로는 하지만 글로는 쓰지 못한다고 글쓰기 능력이 없다고 속단하면 안되고, 다른 아이들은 쉽게 읽고 이해하는 책을 우리 아이만 읽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의 독서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대목도 그렇다. 무엇보다 '많이 읽으라'는 것이 많은 책을 읽으라는 것도, 다양한 영역의 책을 읽으라는 말도 아니라는 것, 하나의 책과 하나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라는 뜻이라는 저자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세상 모든 부모들이 궁금해할 '아이들은 왜 책 읽는 것을 싫어할까?'에 대한 솔직한 답이 '책은 원래 읽기 힘든 것이다.'라는 점만 깨닫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거기서부터 내 아이를 위한 제대로 된 독서 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다독과 속독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독서 교육이라는 점과 책의 내용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재미있는 독후 활동이 있다는 점, 그리고 창의력, 융합적 사고력을 함께 키워주는 독서법을 알려주고 있어 문해력 뿐만 아니라 논술 수업에도 대비가 가능할 것 같다. 읽은 것이 그대로 뇌에 새겨지는 '1문장 입체 독서법'의 기적이 궁금하다면, 공부에 필요한 힘인 문해력 코칭 프로그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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