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창작론
미우라 시온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에서는 사소한 계기로 회상 장면이 반복해 끼어들어도, 열다섯 쪽에 걸쳐 주인공이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그러는 동안 작중 시간은 일 초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_, 특별히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시간은 꼭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으며, 소설의 표현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감각에 지배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에 관한 표현이 조금만 어색해도 독자는 '응? 뭔가 이상한데?' 하고 퍼뜩 정신을 차려버립니다. 소설 세계를 지탱하던 시간의 마법이 풀리는 거죠.            p.78

 

<배를 엮다>, <마사&겐>, <사랑 없는 세계>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미우라 시온이 자신의 창작 비결을 집대성한 작법서이다. 십사 년 동안 단편소설 공모전 심사를 해오면서 '소설 쓰는 법'에 대해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 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의 구성은 프렌치 코스 요리의 풀코스 메뉴로 되어 있다. 아뮤즈 부쉬부터 수프, 생선 요리 등을 거쳐 디저트와 식후 술까지 스물네 가지 접시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았다. 퇴고, 구성, 시점, 표현, 취재, 글감, 소설 쓰는 자세, 등장인물, 작가 데뷔 이후까지 소설, 시나리오, 웹소설 등 모든 형식의 창작물에 필요한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쓰기를 위한 소소한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가볍게 시작한 인터넷 연재였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책으로 출간되며 '매너는 필요 없어: 소설 쓰기 강좌'라는 제목이었는데, 국내 버전은 '풀코스 창작론'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았다. 두 제목 모두 이 책의 구성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소설 쓰기는 자유로운 행위이므로 세세한 작법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한 내용들이라 여타의 작법서에서는 볼 수 없는 현실적이고, 속 시원한 이야기 법칙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수없이 살펴 본 공모전 투고작들을 토대로 하는 충고이기에 창작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다른 생각 말고 독자를 위해, 객관성 확보를 위해 퇴고하라, 분량, 즉 매수를 의식하면서 집필에 임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대사나 묘사에 관해서는 스스로 약점을 깨닫고, 해결하기 위해 궁리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대사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법칙을 정해놓는 것도 중요하다 등 미우라 시온이 들려주는 스물네 가지 핵심 전략만 알아도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종종 창작물을 보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이런 말 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들을 때마다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실만 운운할 거면 평생 어떤 창작물도 보지 말고 그냥 먹고 싸고 주무세요!" 라고 폭언까지 내뱉고 싶은 심정입니다. 창작물은 때에 따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당당히 펼쳐 보입니다. 이때다 싶은 지점에서 작렬하는 유치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물만의 재미가 담보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작은 필연적으로 현실의 일부입니다.               p.137

 

소설에서 묘사란 세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재료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읽기는 적극성이 요구되는 행위이고, 독자는 소설의 문장에서 뭔가를 이해해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책을 읽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문장으로 설명하지 말고 독자의 상상력을 믿고 내맡겨보라고 말이다. 충실하게 설명하지 말고 사진이나 영상처럼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좋은 묘사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묘사를 이런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그 와중에 소설 쓰기에 관한 조언이라니 자신에게는 무리라고, 사실 산통 깨는 소리를 하자면 소설 쓰기에 요구되는 것은 딱 하나, 센스라고 하는 대목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센스를 전적으로 재능의 영역이라 단정 짓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이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매 장마다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이었다. 유쾌하고, 위트있고, 빵빵 터지는 유머와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문제들도 가감없이 보여주며 지루할 틈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그 와중에 정말 중요한 부분들은 놓치지 않고 밑줄 좍 그으면서 알려주는 그런 작법 가이드였다.

 

미우라 시온이 문학성을 대표하는 나오키상과 대중성을 대표하는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이력이 있는 작가인데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화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했던 경력이 모두 담긴 작법서라 매우 실용적이고 훌륭한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자필로 쓴 실제 소설 구성안과 작가 지망생과의 일문일답도 수록되어 있어 갈피를 잃은 창작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문장을 쓴다'와 '소설을 쓴다'의 간격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비결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 - 당신을 미소 짓게 할 일상의 순간들 곰돌이 푸 시리즈
캐서린 햅카 지음, 마이크 월 그림, 우혜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 이, 이런! 돌멩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행운의 돌멩이를 어느 세월에 찾지?"
"나도 모르겠어, 피글렛. 그래도 끝까지 잘 찾아 보자."
때로는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그럴 때일수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돼요.            p.34~35

 

200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기곰 곰돌이 푸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곰돌이 푸 시리즈' 신작이다. 곰돌이 푸를 시작으로 앨리스, 미키마우스 등 추억의 디즈니 캐릭터들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었는데, 누구나 알고 모두 좋아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이 전해주는 소소한 행복이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방송인이자 통번역가로 활동 중인 원더걸스 출신 우혜림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마음을 예쁜 언어로 사랑스럽게 그려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곰돌이 푸와 동물 친구들이 행운의 돌멩이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는 로빈에게 남는 꿈을 나눠 달라고 부탁하고, 그러다 로빈의 소중한 돌멩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로빈을 돕기 위해서 더 많은 친구들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푸는 작은 친구 피글렛과 함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 넘치는 티거도 만나고, 래빗의 일도 함께 도와주고, 쏟아지는 비를 피하다가 아울의 집에서 잠시 쉬기도 한다.

 

"지붕 위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게 또 있을까, 푸?"

 

타닥타닥 떨어지는 방울방울 빗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함께 듣는 친구들까지.. 소중하고, 달콤한 순간들이다. 비록 아직 원하던 것을 찾지는 못했고, 여정은 한참이나 남았지만 말이다.

 

 

"저기... 푸!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나도 들었어.
자, 내 손을 잡으면 덜 무서울 거야, 피글렛."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가요.
두려움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잖아요.            p.108

 

이제 비가 그치고, 어느새 다섯 명으로 늘어난 푸와 친구들은 다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아기 캥거루 루와 이요르도 합류하고, 북적북적 친구들은 행운의 돌멩이를 향해 나아간다. 결국 푸와 친구들이 돌멩이를 찾게 될지는 조금더 지켜봐야겠지만, 함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이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함께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를 돕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보다 더 보람찬 일이 있을까?"

 

푸와 친구들은 하루 종일 100에이커 숲 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그것이 괜한 고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들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지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면 디즈니 시리즈들이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들이 고난과 역경을 거치는 과정은 모두 달랐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웠던 그들을 기다리는 건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 모든 일이 마냥 꿈꾸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어질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해피엔딩을 꿈꾸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게다가 너무도 친근한 애니메이션 속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해당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 구입 시 출간 기념으로 '푸 엽서 5종 세트'도 받을 수 있고, 예스 24에서는 귀여운 푸 간식 트레이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이들에게 선물용으로 딱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지금 이 작은 순간들을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몫의 밤 1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오렌지디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사리오가 어둠에 가 있다. 이해는 됐다. 널 따라갈 거라고 몇 번을 약속했던가. 널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며칠 전, 탈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널 위해 무슨 일이든 해줄 수는 없다고. 영원히 함께야, 로사리오는 맹세했었다. 그녀는 후안이 어둠에 속한 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그곳에 가게 될 거란 사실도. 그렇게 그녀는 예상보다 더 일찍 그와 운명을 나누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내 사랑,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너와 내가 아니게 될 거야. 그곳엔 그림자와 굶주림, 뼛조각뿐이야. 죽은 세상이거든.            - 1권, p.143

 

후안은 여섯 살짜리 아들 가스파르를 데리고 비밀리에 여행길을 떠난다. 하지만 날이 잘 벼려진 칼 한 자루와 재로 가득 찬 주머니, 산소 튜브 등 평범한 여행길에 필요한 물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챙겨 넣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후안은 손가락이 저릿했고, 가슴의 부정맥은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으며,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후안의 아내이자 가스파르의 엄마인 로사리오는 삼 개월 전에 지나가던 버스에 치여서 죽었다. 남편과 아들은 여전히 그 죽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후안은 평범한 여느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어둠의 신을 소환하는 능력을 지닌 메디움으로 선천성 심장병을 치료해준다는 명분 아래 기사단에 끌려가 제례와 의식에 이용당해 왔다. 심장병 수술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몸상태가 좋지 않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여행길에서 후안은 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초에 아들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자 실낱같은 희망조차 모두 사라져 버린다. 유전되는 형벌, 그는 자신의 목에 쇠사슬이 매인 듯한 실망감에 목이 메어온다. 어떻게든 가스파르만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해야 했다. 자신처럼 유령을 보거나 소환하고, 다른 세계의 문을 열 수도 있는 능력이 아들의 삶을 어떻게 만들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스파르가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메디움으로서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는 짧고 가혹한 삶을 살다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과연 그는 기사단으로부터 아들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매일 밤마다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랑에 빠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잔잔한 파도 같은 온기를 느낄 뿐이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감기에 걸린 아이를 돌보던 중 갑자기 아이가 숨을 쉬지 않은 적이 있었다. 복도의 어스름한 불빛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이 멈춘 듯해 보였다. 아기 침대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자식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자식의 죽음 이후에는 죽음밖엔 없다는 사실을. 출구 없는 어둠만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 2권, p.191~192

 

라틴아메리카 고딕 리얼리즘의 대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작품은 국내에 소개된 두 편의 소설집을 모두 읽었다.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와 부조리한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호러로 풍자한 작품들이 수록되었던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과 부조리한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공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던 소설집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두 편 모두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둡고, 음울하고, 오싹하지만 이상하게 매혹적인 고딕 호러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라 이번 신작은 정말 기대하며 읽었다. 장편 소설인데다, 두 권 분량이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백 년에 걸쳐 어둠의 신을 숭배해온 기사단과 맞서게 된 한 부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사단의 일원과 가족이 된 남자가 어둠의 신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매 '메디움'이고, 아들이 자신처럼 그들에게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악한 기사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이야기는 기사단의 네 가문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데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속 주술과 영미권의 오컬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상당히 복잡하고, 어둡고, 밀도가 높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책을 읽는 이들의 머리를 쥐고 흔드는 작품이라 뭔가에 홀린 듯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고 나서도 이야기의 잔상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곧 애플 TV에서 드라마화될 예정이니, 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작품이 어떻게 영상으로 펼쳐질 지도 기대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의 힘 - 인생의 무기가 되는 12가지 최소한의 수학도구
올리버 존슨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의 세계란 난제를 풀고 숫자로 재주를 부리는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수학자 겸 코미디언인 매트 파커가 잘하는 일이다). 실제로 수학은 재미있을 수 있고 이런 식의 게임은 사람들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할 멋진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수학이 오늘날 세상을 근본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용적인 도구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싶다. 수식과 그리스어 문자를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수식이 별로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수학은 생각하는 방법이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p.16

 

축구선수의 팀 이적료에 관한 최신 소식, 막대한 정부 지출 내역, 국가부채 규모,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의 거리 등등 우리는 수천, 수백만, 수십억 혹은 그 이상의 엄청나게 큰 수가 나오는 뉴스들을 거의 매일같이 접하며 살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440억 달러(약 57조 원)에 인수했고, 2022년 1월 애플은 기업 가치가 3조 달러(약 3,900조원)를 넘는 첫 번째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뉴스는 보지만 이런 숫자들은 어물쩍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러한 숫자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밀려드는 숫자들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준다.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존슨 교수는 4만 3,000명 팔로어에 이르는 트위터 계정에서 팬데믹 관련 통계를 쉽게 풀이해주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 책에서 교과서적인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제대로 써먹는 12가지 도구를 소개한다. 복잡한 수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대신, 간단한 그림과 표만으로 수학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학이 어려운 문제를 풀 때나 필요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무기가 되어준다니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마지막으로 전할 메시지는 수학이야말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만한 올바른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보이론이 필터 버블과 상관관계에 있는 정보에 관해 무엇을 알려주는지. 어떤 질문이든 수학적 기법들이야말로 감정과 개인적 편향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통찰을 준다. 구조, 무작위성, 정보의 핵심 도구들은 여러분의 사고과정에 위력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도 누구든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 이 세계에 관한 정보들을 대할 때 더욱 똑똑하게 생각할 수 있다.           p.323~324

 

우리가 뉴스에서 그래프를 가장 많이 보았던 시기가 바로 팬데믹 동안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해 각국 정부와 보건 기관이 데이터를 수치로 표현한 그래프를 쏟아냈고, 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것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그래프는 아주 잘 쓰면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기도 하다. 반면 아주 그럴듯해 보이며 맥락 없이 온라인에서 쉽게 공유되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프를 제대로 읽는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프리미어리그의 승부예측, 내가 가진 주식이 언제 오르는지, 환율, 보험료 변동 등 각종 금융 지표를 예측하거나 읽을 수 있으려면 수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AI의 발달 또한 모두 확률을 바탕으로 한 수학 덕분이며 다양한 경쟁 상황 속에서 최상의 전략을 알려주는 이론도 역시 수학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숫자의 정글에서 올바른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많은 영역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내가 이전에 시청한 작품을 토대로 취향이 비슷한 이용자들의 데이터와 비교분석해 추천 작품 목록을 보여주고, 아이폰의 시리에게 말을 걸면 척척 알아듣고 답변을 해주며, 구글번역은 외국어 텍스트를 수준급으로 번역해낸다. 이러한 인공지능 또는 기계학습은 모두 수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고, 발전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자라고 하면 그리스어 문자로 빽빽한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을 들을 칠판에 적고 있는 사람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수학적 사고는 방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상황들을 파악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그러니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숫자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수학의 쓸모를 실용적이고도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이 책을 통해서 12가지 수학도구를 배워보자. 스스로 수포자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학창 시절 이후 수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수학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나는 내 삶이 온통 고통의 가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그 가시가 실패와 절망의 가시로 다시 돋아난다고 해서 크게 원망하지 않는다. 나도 선인장처럼 가시에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좀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가시가 되는 과정이 없다면 선인장이 결코 꽃을 피우지 못하듯이 내 인생이라는 사막에 자라는 선인장도 반드시 가시가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만일 선인장이 늘 비가 알맞게 오는 사막을 원한다면, 늘 맑고 따스한 햇살이 어른거리는 봄과 같은 사막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p.142~143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이번 책은 68편의 시와 산문이 어우러진 '시가 있는 산문집'으로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들을 그 시와 함께 수록했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 이어 두 번째인데 시를 읽으면서, 시를 창작할 당시의 사연을 풀어낸 산문들도 함께 읽을 수 있어 시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군 복무 시절,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 등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20여 컷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그야말로 인생이 시가 되어 맺히는 모든 순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시인은 산문이 시가 될 때가 있고 시가 산문이 될 때가 있다며 시와 산문은 서로 다르면서도 한 몸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시와 산문이 하나로 읽힌다. 워낙 대중적이고 쉽게 읽히는 시이기도 하지만, 함께 엮인 산문들이 단순히 '해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깊이 있게 시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인 정호승’ 너머에 있는 ‘인간 정호승’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책이기도 하다. 심금을 울리는 주옥 같은 시들과 산문들이 시인의 삶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를 모두 담고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시가 되어 맺힌다. 이 책에 수록된 순서대로 시를 먼저 읽고 산문을 읽어도 좋고, 산문을 먼저 읽고 시를 읽어도 된다.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펼쳐서 읽어도 좋다.





실패의 과정 없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성공에 곧장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인행의 유혹인가... 그러나 그런 직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인생은 원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다들 그것을 알면서도 직선의 길을 원하는 것은 헛된 욕심과 허영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한낱 허상일 뿐이다. 인생의 길은 곡선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어떠한 길이든 길은 곡선을 통하여 완성된다. 비록 그 길이 고통과 절망과 분노와 상처의 길이라 할지라도 바로 그것이 곡선의 바탕을 이룬다.            p.316


일생에 단 한 번, 단 한 벌만 입는 망자의 옷인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망자의 옷이기에 무엇을 넣고 갈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그런데 살아서는 왜 그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존을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우리는 뭔가를 구매하고 소유하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시인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분들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쓴 글을 읽으며,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스스로 많이 버리고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남은 식구들을 힘들게 하지 않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죽을 때 이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건데 말이다. 시인은 수의에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수의에 주머니가 있다면, 꼭 넣어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남에게 받은 사랑'이라고 말이다.  살아 있을 때의 사랑과 용서를 지니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수의에 주머니를 꼭 달아야 할 이유가 생길 것도 같다고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 버리고 산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고되고 힘들다는 핑계로 말이다. 사실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소박한데도 말이다. 이 책은 그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해주고,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날들이다. 오늘을 사는 이들 중에 고단하지 않은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를 사는 일이 한 해를 사는 일처럼 힘들고 고단할 때, 이 책을 만나보자.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가 오늘을 버텨내고, 다시 내일을 향할 수 있는 힘을 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4-02-15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책, 엄청 예쁩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댓글 남깁니다.^^

피오나 2024-02-15 18:29   좋아요 0 | URL
ㅎㅎ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