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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는 도쿄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증거 필름을 보기 위해 영국에서 온 20대 여성 그레이가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의 진행은 그레이의 시점과 난징 대학살 당시 스충밍이 쓴 일기의 시점으로 교차되어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부딪히고, 교차되면서 극의 몰입도는 점점 더해지고, 마지막에 가서야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작품은 잊고 있던 과거에 대한 감동적인 역사 소설인 동시에, 굉장히 탄탄하게 잘 쓰여진 스릴러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의 스충밍이 겪은 현장에 대한 기록은 작품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살벌하고, 끔찍한 그 역사의 한 페이지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지난 달에 장예모 감독의 <진링의 13소녀>라는 영화를 보았었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걸작,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를 읽으면서, 나는 마치 내가 역사의 한 순간을 체험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은 영화나 책을 통해서만 그 참상을 겨우 '짐작' 할 뿐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던 그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비명이 멎자 세상은 다시 정적에 파묻혔다. 하지만 내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있다. 창문은 아주 조금 열어두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다. 도시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다.

역사 속의 어떤 사건이 제대로 기록되기까지 수많은 의견대립과 논쟁이 벌어지는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홀로 코스트가 20세기 서양의 대표적 역사논쟁이라면 난징 대학살은 중국과 일본의 지루한 역사전쟁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보다는진실을 중요하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경험을 통해, 상대적인 관점이 아닌 절대적인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는 '진실'말이다. 올해 읽은 세 편의 작품 <유럽의 교육>, <회색세상에서> 그리고 <난징의 악마>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다. 세 작품 모두 과거에 인간이 저질렀던 악마와 같은 행동들에 대해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전혀 다른 색깔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이 작품들은 정서도, 감동도 매우 달라 굉장한 여운을 남겨 준다.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숲속에 숨어 살며 독일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은 열네살 소년 야네크와 독일 군인들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몸을 파는 열 여섯살 소녀 조시아,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대학생 빨치산 대원 도브란스키가 주요 인물이다.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 깊은 숲속에 숨어사는 빨치산들 모두,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다. 열여섯 소녀가 원하는 건 소박하다.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 그런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열네살 소년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와 배고픔, 희망이 사라진 전쟁의 한 가운데서 음악에 마음을 빼앗길 줄 안다. 쇼팽의 폴로네즈를 듣고 감동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래, 결국 예술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 앞에서 순수하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 작은 소년은 무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음악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맹가리의 믿음은 가슴이 울컥해질만큼 멋졌다.

루타 서페티스의 <회색세상에서>는 1941년 리투아니아를 배경으로 스탈린 지배하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비극을 열다섯살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열다섯 소녀 리나는 뭉크의 그림을 좋아하고 장차 화가가 되길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 남동생과 함께 소비에트 비밀경찰에게 끌려간다. 강제로 열차에 태워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고도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그들이 당도한 곳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였다. 리나는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서 기록한다.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연락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매일 밤 모여서 각자의 그리움과 소중한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눈이 내리고, 기온은 계속 곤두박칠쳤고, 배고픔에 위가 아프고 쓰릴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밤에 모여 서로에게 받는 작은 위로로 인해 일도, 추위도 참을 수 있었다. 히틀러나 스탈린, 둘 중 누구 손아귀에 있든 이 전쟁으로 모두가 끝장날거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미움과 원망 대신 희망과 사랑을 가질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는 일본인들이 저질렀던 난징 대학살에 관한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어, 이들 두 작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나치의 유대인 학살, 스탈린의 대 숙청, 그리고 난징 대학살의 한 복판에 서서, 현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상상조치 하지 못할 끔찍한 일이 벌어진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사건 들을 외면하고픈 과거의 과오로만 남겨둘 게 아니라,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환기시켜 준다. 새삼 느껴지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고, 그것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기록'이 아니라 '소설'이니 말이다.

잔인하고 위험한 역사 속의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들!

사실 스충밍 교수가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난징 대학살을 담은 필름을 보여달라고 집요하게, 거의 집착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매달리는 주인공 그레이의 집념은 독자의 입장에서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그레이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감이 가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인물 군상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극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건 작가의 대단한 능력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은 뭐랄까, 굉장히 다크한 포스를 뿜어내는 작품인데, 뭔가에 홀린 듯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할까. 이렇게나 무겁고, 스릴 넘치고, 그리고 불편한 이야기이라 머리가 피곤해지는데도, 그럼에도 페이지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매혹을 선사한다.

그레이는 어린 시절 우연히 주황색 표지에 수북이 쌓인 시체들 사진이 붙어 있던 책을 읽게 된다. 그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징이라는 곳을 들어본 적조차 없던 그녀였지만, 충격적인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문제는 주변 사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녀가 꾸며낸 이야기라며, 그런 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가 전부 상상해낸 거라고 입을 모은다. <세상 어디서도 그런 잔학 행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일본군이 잔혹하고 무자비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입에 담지 못할 고문까지는 절대 자행하지 않았을 거라고> 유일하게 자신이 알게 된 걸 증명할 수 있는 책을 잃어버린 터라, 그녀는 직접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 년 칠 개월 십팔 일만에, 1937년 난징에서 촬영된 필름이 있고, 그걸 직접 목격하고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러, 스충밍 교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제 인생의 절반을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쳤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레이의 심정은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아, 초반 스토리가 진행될 때는 좀 당황스럽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가며 진실규명에 집착하는 것일까. 싶을 만큼 그녀는 무모했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특정 범죄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들이 자행한 만행들 대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살상 게임, 강간. 하지만 전 교수님께서 직접 목격하신 특정 만행을 말씀 드리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아요. 다들 제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스충밍 교수는 그녀에게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을 내건다. 무일푼으로, 무작정 도쿄로 왔던 그녀이기에 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까지 묵을 숙소도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을 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충밍 교수가 제안한 것은, 가끔 클럽에 들르는 도쿄 최대의 야쿠자 조직의 보스인 후유키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래 알아내라는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거의 목숨 걸고, 위험천만한 곳으로 뛰어들게 된다. 꽉 짜인 스토리는 빈틈없이 메워져 있고, 매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미스터리와 숨돌릴 틈 없는 긴장감은 굉장하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레이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이상하리만큼 난징에 집착하는 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지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거 알아요?

파티에서 돌아온 그는 내 방을 찾아와 말했었다.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우리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메워줄 수 있는 관계예요.

자신의 죽은 아기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그레이와 괴물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특이한 취향의 제이슨은 매우 기묘한 관계이다. 서로에게 마치 자석처럼 끌리는 그들의 위험한 사랑.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인 후유키, 무시무시한 오가와 간호사 등 캐릭터들은 하나씩 떼어내어 다른 작품을 쓸 수도 있을 만큼의 아우라와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평범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수 십년 전 난징에서 벌어졌던 바로 그 일 때문이다.

대체 1937, 중국 난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당시 4개월간 벌어진 일본인들의 살육, 강간, 약탈은 일명난징 대학살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만행이 역사로 기록되는 데에만 60년 이상의 논쟁이 필요했다. 감춰졌던 학살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렸던 인물로 중국계 미국 작가인 아이리스 창이 있다. 모 헤이더는 이 작품의 서문에 <이 작품은 용기 있는 지성으로 어둠 속에서 '난징'이라는 이름을 꺼내준 아이리스 창(1968~2004)에 바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창은 <난징의 강간>(1997)을 펴내며 가해자인 일본, 피해자인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의 목격자 시선으로 난징 대학살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출간 이후 일부 역사가들이 책에 실린 사진의 진위와 내용의 부 정확성을 문제 삼아 논쟁이 불거졌고, 일본 우익들의 끊임없는 협박 전화는 그를 심한 우울증을 겪게 했으며,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하고 만다.

"무지와 악이 같지 않다고 하셨죠? 기억하시나요?"

"그래요. 기억해요."

"정말인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지는 악이 아닌가요?"

"물론이죠.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그럼요.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어요. 무지는 악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묻습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난데없이 찾아 든 묘한 기분이 내게 힘을 북돋아주었다. 살짝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니까요."

모 헤이더는 지난 2012 <실종>이라는 작품으로 에드거 상을 수상했다. 워낙 데뷔작부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매 작품마다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을 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데뷔작인 <버드맨>은 국내에 바로 출간이 되었었는데, 2001년 이후 이번 <난징의 악마>가 출간되기까지는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그녀의 데뷔작은 출간 당시 '토마스 해리스의 작품 보다 재미없으면 책값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홍보문구를 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화제였는데 아마 국내에서는 그만큼 호평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난징의 악마>는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인데,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이 남성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졌다면, 이번 작품은 여성 주인공 1인칭으로 그려진다는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모 헤이더의 작품 리스트>

출간년도 원서 제목 국내출간 비고
2000 Birdman 버드맨 2001년 10월 데뷔작
2002 The Treatment 트리트먼트   WH 스미스 썸핑 굿 리드 상 수상/현재 영화로 제작중
2004 The Devil of Nanking 난징의 악마 2013년 10월 엘 매거진 범죄소설 상/SNCF Prix du Polar 상 수상
2006 Pig Island 피그 아일랜드   배리 상 후보/ CWA대거 상 후보
2008 Ritual 의식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 후보/배리 상 후보
2009 Skin 스킨   ITW 스릴러 상 후보
2010 Gone 실종   에드거상 수상/CWA 라이브러리 대거 상 수상

모 헤이더와 비견될만한 작가로, 일본의 기리노 나쓰오가 생각난다. 여성 작가답지 않은 포스를 자랑하는 작품의 분위기도 그렇고, 스케일도 그렇고, 어둡고 다크한 포스를 뿜어내는 마력도 있으니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국내에 꽤 팬이 많은 편인데, 그녀의 작품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모 헤이더의 작품과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에 출간된 <난징의 악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한 소설이지만, 단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까발린다는 것보다 더한 스릴러 소설로서의 재미도 충분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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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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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수십 종의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백겸 시인은 <멸종>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일 년에 백만 종의 영혼이 지구를 떠나고 있다.

매연과 소음과 농약으로 썩어가는 지구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른 별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유전자 설계도와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내가 생태문학으로 접하게 된 책은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과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정도이다. 생태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책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에 관한 비판 내지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주제인데,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3인류>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모든 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이아 이론에 입각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만약 가이아가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이라면, 그건 인간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가이아가 파괴되면 우주 어디에도 생명을 가진 존재가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3인류>의 배경도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니 결국은 환..문제가 이야기의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니 2013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화두는 바로 생태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런 류의 작품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의 미덕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굉장한 위안을 주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녹색고전>은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올해의 네 번째 작품이다.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 그리고 존 스타인백의 <붉은 망아지, 불만의 겨울>에 이어서 역시나 산뜻한 색감의 화사한 표지가 눈길을 잡아 끈다. 저자인 김욱동 교수는 기존에도 생태문학 비평 집을 출간한 이력이 있고 문학을 통한 환경운동에 상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고전'을 통해서 생태문학을 다룬다는 것인데, 아주 특별하고 색다른 고전 읽기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세계의 명작들은 꽤나 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디자인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한국, 동양의 고전들은 그에 비해 홀대 받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나 만나보았을 법한 글들을 이 책을 통해 읽으면서 굉장한 재미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편에 이어 동·서양의 생태문학 고전도 곧 모던 &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인간에게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벌레라고 하더라도 이 우주 안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존재이유가 있을뿐더러 생태계라는 가족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식구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하여 어느 한 생물을 절멸시킨다면 생태계는 그 조화와 균형이 깨뜨려지고 맙니다. 우리가 빅토리아 비단나비 같은 동물이나 금강초롱꽃 같은 식물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귀돌 하나가 집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듯이 작은 생물 종 하나가 생태계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는 마치 그물이나 망 또는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부분이 없어져 버리면 다른 부분은 반드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에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파리의 기차역사 내 커다란 시계탑을 혼자 관리하며 숨어 살고 있는 외로운 열두 살 소년 휴고가 등장한다. 그가 관리하는 시계탑처럼 기계엔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다. 각 부속들이 정확하게 꼭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에 세상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면, 자신도 어떤 필요가 있을 거라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도 꼭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그 어느것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실 우리가 환경 재앙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저질러온 행동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막아 댐을 쌓고, 언덕과 산을 파헤쳐 고속도로를 닦았으며, 광물이나 귀금속을 찾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속을 샅샅이 뒤졌고, 강과 바다에 온갖 쓰레기를 갖다 버렸으니>말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처 해온 인류라는 존재가 말이다. 학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경이 되면 지구상에서 모든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연료들도 모두 바닥이 날 예정이라고 한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 재앙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한영감은 하찮은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으니 군신유의요, 어미와 털의 색깔이 비슷하니 부자유친이요, 한 마리가 짖으면 여러 개가 함께 따라 짖으니 붕우유신이요, 암컷이 새끼를 밴 뒤에는 수컷을 멀리 하니 부부유별이요, 작은 놈이 큰 놈을 대적하지 않으니 장유유서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그럴듯한 설명입니까?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며 다른 생명들을 마음대로 지배했던 인간들에게, 그런 태도가 얼마나 자연을 해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지 설파하는 것이다. 민속극 <강령탈춤>에 등장하는 진한영감의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그는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한테도 오륜이 있다는 진한영감의 말은 마한영감을 놀려주기 위한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딘지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듯한 대목이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판단 하려 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고전을 읽어보면 당시에는 동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고 따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가을이면 까치 밥이라고 하여 나무에 열매를 몇 개 남겨두고, 화롯불에 던져지는 이() 한 마리를 보면서도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하찮은 동물들의 목숨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누며 배려했던 것이다.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삶이었던 그 시대에만 해도, 환경오염이란 단어는 아마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올해 전세계 환경위기시계는 919분으로 작년(923) 대비 4분 감소했고, 한국의 환경위기시계는 931분으로 작년(932)대비 1분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위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위기 시계를 보는 방법은 0~3(양호), 3~6(불안), 6~9(심각), 9~12(위험) 수준을 가리키며, 12시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한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언제쯤 양호한 시간대로 유지될 수 있을 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 까. . 오늘부터 라도 각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빛의 온도, 공기의 무게, 하늘의 색감, 꽃의 싱그러움, 구름의 움직임..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낙엽과 바람의 방향을 관찰해보고, 소소한 일에 초연해 지며,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럼 40년 후의 어느 날 조금 더 아름다운 지구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책 또한 그런 작은 발걸음에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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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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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3인류>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진화'이다. 인류가 어떻게 진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뛰어난 상상력을 만나서 빛을 발한 경우라 하겠다. 베르나르의 작품들이야 워낙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과학적인 정보들이 버무려진 걸로 유명하다. 제일 처음 만났던 그의 작품인 <개미>때부터 어쩜 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신작은 그의 전작들과 많이 엮여 있다. <개미>에서 주인공의 증손자 다비드 웰즈가 이 작품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가 저술했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인용한다.모든 작품들은 상호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개미』, 『타나토노트』, 『나무』, 『뇌』 등 제 작품은 각자 다른 주제를 논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다 보면 어떤 키워드가 뚜렷하게 잡힐 겁니다."라는 베르나르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기존의 전작들을 이미 읽었던 이들이라면 더욱 반가울 만한 작품이다. 물론 베르나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키워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과학 소설이라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언급이 되는데, 페이지를 멈추고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간다거나, 주석을 읽어봐야 이해가 된다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점이 베르나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성이 인류의 미래라는 것은 남성을 결정짓는 생식 세포들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건 피할 수 없는 경향이에요. 모든 종들이 저항력과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화하고 있어요. 인간이 개미처럼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죠. 개미 사회는 95퍼센트의 암컷과 비 생식 개미, 그리고 수명이 아주 짧은 5퍼센트의 수컷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이야기는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의 탐사대가 남극의 빙하 아래에서 8천 년 전에 소멸한 거인들에 대한 기록을 발굴하면서 시작한다. 우리의 첫 번째 인류는 키가 무려 17미터에 달하는 초 거인들이었으며, 그들만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중대한 발굴 현장은 의문의 사고와 함께 그대로 묻히고 만다. 나중에 수색대가 그들을 찾아냈을 때는 높이가 2미터쯤 되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그대로 갇힌 채로 발견이 된다. 그 샤를 웰즈의 아들이 <3인류>의 주인공 생물학자 다비드 웰즈이다. 그는 <진화에 관한 학술 경연 대회>에 참가하지만 최종 선발되지는 못한다. 다비드가 연구한 것은 바로 '피그미, 소형화를 통한 진화'라는 부문인데 콩고에 가서 피그미들을 탐방해 그들이 문명인보다 면역성이 강한 이유를 밝혀보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미개한 과거의 종족인지, 아니면 오히려 미래의 인류에 속하는 사람들인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성화가 인류의 미래라고 믿는 내분비학자 오로르 카메러를 만난다. 그리고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이었던 나탈리를 통해 대통령 직속 비밀 기관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이 황폐한 환경과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신종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초소형 인간인 에마슈이다.

 

제가 지지하는 두 결선 진출 자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회성 곤충들은 꿀벌이든 개미든 1 2천만 년 전부터 지상에 존재해 왔고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꿀벌과 개미는 완벽하게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어 냈고 전염병과 기아를 이겨 내면서 온 대륙에 도시들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은 크기를 줄이고 암컷의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지상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개미와 꿀벌을 볼 수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베르나르는 이 작품에서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 즉 가이아 이론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킨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가 인간처럼 살아 있다고 보는 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가이아는 독백의 형태로만 등장하며,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전체 소설에서 가이아의 대목만 1인칭 서술로 독립되어 흐른다.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대전염병, 야만적 자본주의, 종교적 광신 등 인류가 끝없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작품의 배경이므로, 지금처럼 지구 행성을 소모하는 자기 파괴적 생활 방식을 계속한다면 종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인류는 자신을 탈바꿈시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다. 인간들의 행동에 분노한 가이아는 바이러스나 기상 이변 등을 통해서 인간을 심판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보고 다비드와 오로르는 이게 바로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지력과 사고력이 도달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우리 부모들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들에 앞서 우리 조부모님들도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런 실수를 이어 간다는 거라고. 우리는 새로운 인류, 새로운 규칙을 가진 신 인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이다.

 

신체의 크기를 줄여서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8천 년 전에 거인들이 사용한 방법인데, 저들이 그런 해결책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사실 인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인간들은 나의 모든 표면을 침범해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의 크기가 줄어들면 내게는 그들이 훨씬 덜 성가실 것이다. 크기가 0분의 1로 줄어들면, 그만큼 천연자원과 식량의 소비도 감소할 것이고, 수명도 짧아질 것이다. 요컨대 나를 침해하는 일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3인류>에서는 17cm 초소형 인간에마슈가 등장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에마들은 숫자로 구분이 된다. ‘에마 1’은 제 1대 여왕으로 에마슈들을 다스렸고. ‘에마 666’은 반란을 일으켜에마 1’을 살해했고, 처벌을 받은 뒤 사제로서 활동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에마 109’는 다음 편에서 전개될 이야기에서 어떤 활약을 할 거라는 예고를 한다. <개미>를 읽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 작품과 연결된 부분들을 캐치했을 테고, 그럼 다음에 이어질 <3인류>이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에마슈를 보는 가이아의 멘트가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에 대한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거인들은 미니 인간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 책은 더 고약한 문제를 낳았다. 미니 인간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그들은 저희를 창조한 주인들을 배신했다.’ 라고 하니 말이다. 베르나르는 아직도 이 작품을 집필 중에 있고, 현재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앞으로 프랑스에서는 4, 한국에서는 8권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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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분의 1의 우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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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야간에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2톤 탑차 트럭이 넘어지고, 뒤따르던 승용차가 추돌해 불타고, 이어 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은 중형 승용차. 그 뒤를 추돌한 라이트 밴에 이어 다섯 번째 추돌 차량은 2톤짜리 트럭이다. 그 트럭은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지만 때마침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중용 승용차와 부딪쳐 모두 대파되고 만다. 무려 6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엄청난 대형 참사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교통사고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마침 근방에 있던 아마추어 사진가가 그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게 된다. 그리고 <격돌>이라 이름 붙은 그 사진은 신문사 공모에 출품되고  ‘10만 분의 1의 우연이 만들어 낸 사진이라며 격찬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건 보도 사진은 사고가 발생 한 후 시간이 흐른 뒤, 차량의 잔해나 현장 검증을 하는 모습이나, 멀리서 구경하는 군중을 찍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사고가 발생하는 그 순간의 섬뜩함을 담아 냈다는 것이다. 세 대의 차량에서 화염이 솟구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 불길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을 생각해보자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이다. 신문사에서는 이 생생한 사진을 통해 운전자들의 경계심을 다잡고 교통사고가 감소하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히며, 이 사진에 연간 최고상을 수여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친다. 사진 찍을 시간에 사람을 구했어야 하지 않냐. 아무리 보도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끔찍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더라도 지나가다 누군가의 다툼을 목격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야마가 처럼 사진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참혹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이라던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스마트 폰을 꺼내 든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도 이러니 야마가 처럼 카메라를 수시로 들고 다니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생일대의 순간이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어떻하겠는가.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영원히 포착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타인을 돕기 위해 다 내팽개치고 달려갈 것인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답게 마쓰모토 세이초는 보도와 인명 중에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보도사진은 완전히 우연성에 지배되기 때문에 작품의 우열에도 우연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것은 아니죠. 때문에 공모하는 측은 일반인으로부터 좋은 보도사진 작품이 많이 모이지 않아 고민입니다.

 

실제로 참혹한 보도 사진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일이 몇 건 있었기 때문에, 보도와 인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걸로 끝냈다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그냥 사회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야마가는 정말 1만 분의 1 아니, 10만 분의 1의 기막힌 기회를 단지 운이 좋게 만난 것일까.

 

헌데 야마가 씨, 셔터 찬스라는 건 그저 기다려야 하는 거군요.

이렇게 야마가 씨가 카메라를 준비해 놓은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만 분의 1, 0만 분의 1의 우연도 결국 기다리다가 만나는 것이라고요.

 

그 우연이라는 것이 예상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우연, 즉 결국은 필연이었다면 어떨까. 진짜 우연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사진인데,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아무 상관없는 여섯 명의 무고한 죽음이 단지 공모전 수상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였다면? 내가 피해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 그런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그럼 대체 그에게 어떻게 죄를 고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대놓고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의문의 추돌사고로 약혼녀를 잃은 남자의 분노. 엄청난 참사가 사고가 아니라 연출된 거였다면 그것은 무려 '살인'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는 차근차근 야마가에게 접근해 그의 범행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제대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극중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복수를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힘없고 무력한 이들은 피해자이면서도 아무런 위로도 대가도 받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적당한 처벌을 받고 나서 오히려 법적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다시는 사건이 벌어진 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너무도 쉽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것이 사회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가 도덕적인 기준에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에 눈감아주고 싶은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계획된 필연이냐의 문제의 문제로 진행된다. 스토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고 술술 읽히는데,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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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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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라는 뭉클한 제목을 가진 이번 작품집은 먼로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작품 집이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 마지막 작품집인 <디어 라이프> 보았는데, 겨우 권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수는 없겠지만 가지 분명한 것은 묘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작가라는 점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속한 공간의 사물들, 나와 가장 가까운 세계에 대해 이보다 꼼꼼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한 그림 같은 묘사가 돋보인다. 보통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의 경우 커다란 이야기 줄기가 있고, 그것에 맞추어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플롯이 생성되고, 반전과 묘사로 세밀한 부분들이 채색되어 그려진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주변 상황에서부터 마치 카메라처럼 정교한 묘사를 통해서 점점 인물에 다가가는 듯하다. 그러니까 성급하게 먼저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찬찬히 보여준 다음에 그제야 말을 꺼내려는 사람 같다고 할까. 그래서 우리는 먼로의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어떤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의 작품에는 길이와 상관없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장면들이, 작품마다 색채를 달리하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밀도를 가지고 있는 아닐까 싶다. 사실 사는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간단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하나 다르고,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으니 말이다. 먼로는 바로 그런 이야기에 집중한다.

 

" 떠납니다." 옆에 앉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남자 앨리스터가 말한다." "우리는 떠날 겁니다."

우리. 그가 우리라고 말했다. 잠시 나는 단어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 안에 내가 들어갈 마지막.

중요한 것은 '우리' 아니다. 내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진실은 그가 트럭 운전사에게 말할 때의 남자 남자의 어투, 침착하고 이성적인 사과다.

<아문센> 중에서

 

작품 주인공은 시간(time) 기억(memory)이다. 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문센> 여자는 결혼하기로 남자에게 버림을 받지만, 그래서 날을 평생 기억하며 산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와 다시 마주치고,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린다. 시간이란 것이 기억을 아무리 마모시켜 닳게 만들더라도, 끝내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남게 마련인 것이다. <자갈> 주인공은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사건에 대한 기억에 평생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난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삶에 주어진 선물로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죄책감과 후회, 연민은 모두 같은 종류의 감정들이다. 결코 기억에서 떼어내 버릴 수도, 모른 수도 없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 죄책감은 회한으로, 연민은 미움으로 연결된다. 모두가 바로 후회하고,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악순환이다. <호수가 보이는 풍경> 에서 의사의 처방전을 받으러 여인은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쩡해 보이기도 한다. 노년의 기억이란 그렇게도 힘이 없고, 유약하게 마련이어서 그녀가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남편이 아직 살아있던 시절로의 꿈을 꾸고 나서이다.

 

이번 작품을 읽고 나서 먼로의 작품집에 실렸던 번째 작품 <작업실> 주인공이 문득 떠올랐다. 평범하게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치다꺼리를 하며 살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작가였던 그녀가 어느 큰마음 먹고 작업실을 얻어야겠다고 남편에게 말을 꺼낸다. 동안 너무 가정에만 얽매여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자아를 찾아보려고 하던 그녀는 그렇게 구한 작업실에서 사회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혔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고 악의적인 사무실 주인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족의 안에서만 살던 주부가 느끼기에는 사회의 부정적인 쓰디 단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마지막 작품집에서 만난 주부 혹은 여성 주인공들은 <작업실>에서의 순진하고, 세상을 모르던 인물에서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랄까. 세상의 풍파를 많이 겪고, 많이 닳고 약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삶을 관조할 있는 시선을 가진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삶에서나 비극은 있으니까. 피할 없다면 정면으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오히려 마음만은 편해질 있다.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같은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서 느껴졌다.

 

"중요한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있어. 하다 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를 거야. 모든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있게 ."

<자갈> 중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소설을 읽을 눈으로 글을 읽지만, 좋은 작품은 실제로 소리와 리듬이 되어 귀로 들리게 만들어준다. 유려하고 단단한 문장들은 생생하고, 아름답게 가슴으로, 머리로, 귀로 삶을 체감하게 한다. 단편을 쓰는 작가들에게 가장 필수적이고 우아한 도구는 '' '쉼표'라고 생각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생의 이면을 엿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빽빽한 이야기로는 절대 전달할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무언가가 바로 삶에 대한 관조와 여유가 아닐까. 먼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들인데도, 문장마다, 낱말마다 마법처럼 많은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자존심>에서 먼로는 세상의 모든 나쁘고 불행한 이들에게 말한다.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좋게 만들 있다'라고. 고통을 겪을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맞서 싸우려고 것이고, 누군가는 웅크리고 회피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려고 것이다. 엎친 덮친 격으로 좋지 않은 일만 연속적으로 생기더라도, 그게 그들의 탓은 아니다.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볼 없는 세상이니까.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없다. 물론 대체적으로 어제 혹은 오늘과 같은 삶이 이어진다. 특별히 불행한 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어느 , 자신의 의지와 노력의 범위를 벗어나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교통사고처럼 재수를 탓하는 외에 달리 있는 별로 없는 그런 일들.

 

나와 가장 가까운 20 지기 친구는 유학 중에 외국인과 결혼을 했는데, 뉴욕, 뉴질랜드를 거쳐 현재 밴쿠버에 살고 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한번 놀러 오라고 말을 건네는데, 그러면서도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기는 일반적인 외국 관광지의 풍경을 생각하면 된다고. 도심이 아니고 광활한 자연 풍경이 대부분이라 한국에서 놀러 이들은 지루해하거나 심심해한다고. 하지만 동안 살아본 결과 나는 풍경이 여유롭고 넉넉해서 좋다고. 그러니 너도 번은 놀러 와야 한다고 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밴쿠버에 유독 오래 살고 있는 보면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가끔 그녀의 페이스 북을 통해서 사진들도 보고 얘기도 듣고 해서 나에게도 친숙한 나라가 되어 버렸는데, 그래서인지 먼로의 작품 배경들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먼로의 작품들은 모두 캐나다의 작은 타운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보통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일상적이라 하루하루가 판으로 찍은 같아 보이는 그런 나날들 속에서 먼로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삶의 결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누구든 겪게 되는 일상이기에 공감을 밖에 없는 그런 슬픔과 기쁨, 분노와 안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같아. 내가 비극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가 아니라 비극을 밖으로 꺼내놓았으니까. 그건 그저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실수에 불과해. 내가 안타까워할 몰라서 웃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해. 나는 정말로 안타까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말은 해야겠어. 어쨌거나 지금 행복하다는 말도."

<기차> 중에서

 

<기차>에서 남자는 사람들이 책을 쓰고 읽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수많은 책들이 있는데, 지금도 자리에 앉아 다른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먼로의 작품 남자들이 거의 대부분 어딘가 결함을 가지고 있거나, 결핍된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해보자면 이건 그녀 나름의 유머 일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위로 받고 성장할 있는 것이고, 바로 이유 때문에 새로운 책이 계속 쓰여 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언젠가 배우 브래드 피트가 내한했을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나이 드는 좋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지혜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지혜다." 라고.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 지는 것은 비단 외국의 미남 배우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작가들이야말로 진정,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깊어지며, 섬세하게 빛나는 존재들이 아닐까.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심장을 쿡쿡 찌르는 문장들을 읽어가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곪아터진 상처와 흉터, 여인이면서 사람이기도 하나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우리의 머릿속에서 매일 같이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이지만 번도 제대로 밖으로 표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집어 글로 새겨놓은 문장들. 먼로의 작품이 가진 힘은 바로 그런 아닐까. 가슴을 후벼 파는 같은 절절한 클라이막스나, 독자들의 심장을 움켜쥐는 반전과 거대한 서사는 아니지만, 그저 잔잔하게 독자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행간의 여백들 말이다.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상처, 관계와 회한에 대한 것들은 무엇 하나 같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 이번 작품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편은 먼로의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녀가 처음 죽음을 접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성에 대해 눈뜨게 되는 순간이 그려져 있고, 어린 시절 가졌던 최초의 나쁜 마음에 대한 기억도 만나볼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의미 없는 충동으로 나쁜 마음을 가질 수도, 누군가에 대한 지독한 증오가 악의로 이어질 수도, 불쾌한 일을 겪어 그것이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생각의 옳고 그름보다, 도저히 멈출 없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과연 어떻게 대처 하느냐. 아닐까 싶다. <>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의 목을 조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린 그녀에게, 아버지는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덕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질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것은 아버지가 어떤 경멸이나 놀라움도 내비치지 않은 덕분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생각이 <거기, 마음에 걸려 있어> 꺼내버릴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오롯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너무도 고단하고, 내일 당장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이어진다. 때로는 삶이 보여 지는 것처럼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럼 조금 견디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하고 싶은 , 해야 일들을 미루지 말고,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럼 순간이 생애 가장 특별한 시간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지 말고, 현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가올 내일을 설레 이며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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