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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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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악질적인 장난에라도 휘말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악몽인 것만 같았다. 절대 깨지 않는 악몽.
나와 우미에의 하나뿐인 딸, 저 홍갈색 눈동자. 가여운 요리코, 죽은 우리 딸. 누구보다 사랑했던 딸이 죽어서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관 속에 누워 꼼작도 하지 않는다.

요리코 내 딸, 내가 알았던 요리코, 내가 몰랐던 요리코.

관 속의 싸늘한 몸은 대체 어느 쪽 요리코지?


14년전 교통사고로 아내는 하반신의 모든 기능을 영원히 잃고, 배속에 있던 아들도 잃어버린다. 이제 니시무라 부부에게는 외동딸 노리코만이 행복의 전부이다. 그런데, 17살짜리 딸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살해당했다고 한다. 자, 당신이 니시무라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엄청난 불행을 겪으면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일은 없겠지..싶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작품의 시작은 딸을 잃어버리고 분노에 차서 범인에게 복수하는 아버지의 수기로 진행된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물론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고, 피해자의 부모가 복수를 하는 게 옳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만큼의 상황에 공감은 되었다는 얘기다. 실패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던 그의 완벽한 계획, 스스로 '페일 세이프' 작전이라 부르는 그 작전은, 만에 하나 실수fail가 있더라도, 다시 안전safe해진다는 의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복수 후에 자살하려던 그는 살아남고, 수기를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된다.

 

재조사가 진행이 될 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보여지는 것 이면의 숨겨진 진실들이다. 완벽해 보이는 '페일 세이프' 작전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고, 남겨진 수기에서 감춰진 비밀이 밝혀진다. 이야기는 촘촘하고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마지막 반전은 쿵.하는 울림을 남긴다.

 

"니시무라씨는 어떤 분인가요?"
"아내를 끔찍히 위하는 남편이에요." 다에코가 현재형 어미에 힘을 주어 말했다. "마치 아내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는 듯 헌신을 다하는 분이라, 그런 사랑을 받는 부인은 행복한 분이에요."
"요리코에게는 어땠나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죠."
"그게 끝입니까?"
다에코가 순간 실눈을 떴다.
"왜요?"
"니시무라 씨 수기와는 반대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버지.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그랬거든요."


이야기가 아직 중반이 넘지 않았을 때, 무심코 스쳐갔던 다에코와 린타로의 대화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문득 이 대목이 다시 떠올랐다. 단순히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니시무라에 대한 대화일 수도 있지만, 읽는 순간 뭔가 이질감이 들었던 대목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대화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는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에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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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 사이코
스티븐 레벨로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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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2013년 개봉한 앤서니 홉킨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히치콕〉의 원작이다. 히치콕의 명성이야 다들 알겠지만 그 중에 <사이코〉는 영화사상 최고의 스릴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이코>에 대한 제작과정이 궁금했다면 매우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다만 히치콕에게도 관심이 없고, 영화 <사이코>도 보지 못했다면, 내용 파악하기가 다소 어려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히치콕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사이코>의 제작비화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이다.

 

1957년, 전대미문의 살인마 에드 긴 구속

1959년, 에드 긴 사건을 모티브로 보러트 블록의 소설 <사이코> 출간

1960년, 히치콕,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예산으로 촬영을 시작하다.

 

 

이 책은 '미치광이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전대미문의 살인마 에드 긴 구속되는 걸로 시작한다. 영화 <사이코>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영화보다 실제가 훨씬 더 끔찍스럽다. 그리고 얼마 뒤, 마흔 살의 작가 로버트 블록이 에드 긴 사건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일게 되고, 날것 그대로의 사실들에 매료된 블록이 소설로 구상하게 된다. 바로 위대한 작품 <사이코>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남자주인공의 시점과 여주인공의 시점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와서 이 모텔에 묵는 여주인공을 만들어 냈습니다. 소설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을 취하고 싶었죠. 여주인공을 설정하고, 문젯거리를 부여하고, 독자들이 그녀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호감 가는 인물로 만든 다음, 이야기가 3분의 1 정도 진행됐을 때 그녀를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맙소사, 이제 어떻해? 그녀가 죽었잖아."

 

살인 에드 긴에 대해 수집한 몇 안되는 사실을 가지고, 블록은 중심 인물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상심리를 파헤치기 좋아했던 블록은 엽기적인 주인공의 선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수단과 동기를 구상한다. 그리고 특히나 블록은 여주인공이 죽는 타이밍뿐만 아니라 방법에까지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모두에게 유명한 샤워 살인장면이다. 사람이 샤워할 때만큼 무방비한 상태도 없다는 생각에 그 장면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블록. 히치콕이 이 작품을 영화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바로 이 샤워실 장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히치콕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는데는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책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불쾌하고, 스릴러 팬들에게조차 충격적일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독창적이라는데는 이견을 달 수 없지만, 영화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영화계의 평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은 작품의 영화화를 추진했고, 계약, 시나리오부터 제작준비, 촬영, 후반작업과 홍보에 이르기까지 개봉 전 영화의 제작 단계가 모두 이 책의 구성이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에 대한 리포트가 될 수도 있겠고, <사이코>가 만들어진 배경에 이런게 있었겠구나. 하는 단순 흥미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것.

 

"나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싫어합니다. "히치콕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내 소신을 굽히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일을 할 때 선을 정확히 긋습니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질색이에요. 그건 사기 행위니까요......난 그런 사람들은 잘라내 버립니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고 칭송되어지만 히치콕 감독의 소신, 작업 스타일을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사이코>에서 샤워 살해장면은 겨우 3분도 채 되지 않지만, 무려 77번의 다른 앵글이 담기고, 이 씬을 찍는데에만 무려 11일이 걸렸다고 한다. 전체 촬영기간이 겨우 82일이라는 걸 본다면 얼마나 이 장면을 중요하게 촬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 탄생하게 된 걸테고 말이다. 앤서니 홉킨스가 분한 히치콕 감독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가 되는 것 또한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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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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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해둬라. 세상 일을 안다고 해서 인생이 편해지는 건 없어. 아니, 십중팔구는 인생을 더 어렵게 만들지."
"상관없어요. 저는 알고 싶어요."


언젠가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하는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고서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였는데, 당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더라. 그로부터 무려 10여년 이나 지난 지금, 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단 한 권의 소설!이라는 카피를 걸고 나온 책이 있다. 바로 '마르첼로 시모니'의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이다. 감히 '장미의 이름'에 견줄만한 책이 있을까 싶지만, 고딕풍 지적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오랜만에 머리가 즐거워지는 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비슷한 장르의 책들이 한참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지만, '지적 스릴러'라는 장르는 말처럼 쉬운 종류는 아니다. 작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엄청난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자료조사가 밑받침되어어만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꼼꼼한 고증이 없다면,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각주들을 참고 해가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허구의 세계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잘만하면 독자들이 깜빡 속아넘어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특정한 한 시기에 대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이므로, 가상의 이야기지만 정말 '진짜'같은 리얼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우리는 태생적으로 수수께기에 매혹되는 독자들이다.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각 장소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책에 대한 수수께끼는 프로방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으로 나타나는데, 꼼꼼한 주석들을 참고해야 하지만 인물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만한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멋지다.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 책임감과 위기를 불러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에 대한 욕망을 포기 할 수 없다면, 바로 이 책에 도전해야한다.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냐시오는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덩달아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테르 벤토룸>에 대한 집착이 그를 유혹과 두려움에 무감각한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우테르 벤토룸>이라는 희귀도서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을 가지고 있던 비비엔 신부가 가면을 쓴 한 무리의 기사들에게 쫓기다 골짜기로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스토리는 그로부터 13년 후, 비비엔의 친구이자 유골상인인 이냐시오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데,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비비엔 신부의 이름이 언급되고, 귀족 가문 출신의 백작이 희귀도서를 찾아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하면서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냐시오와 함께 모험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 윌라름과 우베르토의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다. 두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고, 가지고 있는 사연이 흥미로워 캐릭터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만 윌라름과 우베르토에 대한 캐릭터성은 명확한데 비해, 정작 주인공인 이냐시오라는 인물은 정확히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않고,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이 될 뿐 구체적이지 않다. 정의로운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것 같고,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와 반대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가 왜 그랬는지는 모험의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다. 아하, 이런게 바로 반전의 묘미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는 정말 엄청나다. 치밀하게 구성된 거대한 음모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이 책은 마르첼로 시모니가 구상중인 지적 스릴러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3부작의 두 번째 소설인 『연금술사의 잃어버린 도서관』이 얼마전에 현지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두번째 작품도 어서 빨리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냐시오와 그의 일행들이 펼치는 또 다른 모험의 여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빨리 두번째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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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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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다보면, 시놉만 읽어도 아, 이 작품이 어떻게 진행되겠구나. 대충 감이 오는 지경에 이르른다. 그래서 더 새로운 이야기, 더 색다른 캐릭터, 상상치 못한 반전을 기다리며 더 많은 이야기를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한달에 수십권을 읽어도 어딘가 부족한, 마치 중독된 것처럼 책을 탐닉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가지의 이야기들은 어쩔수 없이 두 손가락에 꼽히는 플롯으로 정리가 된다. 이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서사는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일종의 변주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인화 작가의 신작인 이 작품을 내심 기대하면서 구입했다. 바로 작가가 직접 개발했다고 하는 저작 지원 프로그램이라는‘스토리헬퍼'라는 스토리텔링 저작도구 때문이다. 내년에 일반일들에게도 공개된다고 하는 '스토리헬퍼'는 머릿속에 든 온갖 분절된 아이디어를 이용해 장르·인물·상황·행동 등에 관한 29가지 객관식 질문에 답을 입력하면 A4지 한장 분량의 일관된 줄거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쓰고자 하는 글의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기존 작품들과의 유사성을 백분율로 알려준다고 하니, 이거 정말 엄청난 거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작가는 이번 작품인 '지옥설계도'가 세상의 어떤 이야기와도 유사성이 55% 이하라고 밝혔다. 신선하고, 독창정일거란 얘기다.


오호.. 자, 이쯤되면 작가가 8년만에 내놓은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뭉실뭉실 피어 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서사의 패턴은 한정되어 있는데, 세상의 어떤 이야기와도 유사성이 낮다고 하니... 얼마나 독특한 이야기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카마엘은 인위적으로 천재들을 만들어 1년 안에 새로운 세계 1위 기술 백 개를 얻는다는 걔획을 새웠어요. 신기술을 적용한 공장 천개를 동시에 세우고 고임금을 견딜 수 있는 일자리 백만 개를 창출하자는 계획이죠."

"그래서 성과를 얻었나요?"

"사람이 많이 죽었죠. 강화 약물의 임상실험 대상이 되어서. 사형수들, 장기수들, 창녀들, 정치범들... 자오얼이 첫 번째 성공 사례였어요. 카마엘은 감격해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겠죠."

"자오얼은 머리에 복사기가 있는 사람 같았어요. 온갖 책들을 엄청난 속도로 읽어치웠고 모든 내용을 소화했어요. 수학적 추론, 논리적 추론, 언어 능력, 공간 시각화 능력이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죠. 외교, 경제, 사회, 산업 각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모든 전문가들이 놀랄 만큼 굉장한 보고소들을 잇달아 내놓았어요."

 

그러나 강화인간들은 스스로 부작용이 더 적은 약을 개발해, 새로운 강화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강화인간들의 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족함이 눈에 뻔히 보였으니까. 높은 지능으로 이 세상이라는 무대의 뒤를 본 존재들이 과연 인간들의 아래에서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는게 애초에 말이 안되지 않나.. 현실에서의 살인사건과 가상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에서의 이야기가 병렬 배치되어있는 이 작품은, 어딘가 애매모호하다. 다양한 장치와 세계관을 늘어놓기는 하는데, 그것이 이야기속에 잘 녹아들어있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게임마니아들이라면 또 다를지 모르지만, 특히 인페르노 나인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내가 너무 기대를 한 걸까.. 보통사람보다 10배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은 어딘가 '제노사이드'를 떠올리게 하고, 최면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은 어쩔 수 없이 '인셉션'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어딘가 낯익은 설정의 유사성만이 문제인 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독창성'에만 신경을 쓴건지, 새로움은 있지만 '감동'이 없다. 잘 빠진 몸체는 멋진데, 심장이 없는 로봇같다는 느낌....ㅡㅡ;; 작가는 후기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밖에 없다고 말한다. 황당무계하고 졸렬한, 대중이 좋아하는 새빨간 거짓말만 씌어 있는 나쁜 소설과 어떤 사회 속에서 부대끼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 인간의 진실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그렇다면 이 작품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글쎄... 작가의 치열한 고민은 보이지만, 진심이 담겨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일생에 사랑이 몇 번 찾아올까.
열 번? 백 번?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여든 살, 아흔 살까지 살아버린다. 내일은 무한히 다양하고 극적이고 경이로울 것이며, 아마도 또 사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화인간은 이런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눈을 뜨면 행복이 꿈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는 아침. 내가 진실로 그 사람의 사랑이었고 그 사람의 일부였고 그 사람의 존재가 줄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다 받았다는 느낌이 이어지는 아침. 천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아침. 그럼 아침은 일생에 한 번만 온다.


나도 일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그런 새로운 작품을 언젠가는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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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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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엔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증명'이라니. 증명이라는 단어의 뜻이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히는 거라고 하면,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는 얘기가 될까. 무슨 증거를 대야 우리가 인감임이 증명되느냔 말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갑답게 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성이란 어느 정도인지,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현장을 지나가던 교양 있어 보이는 노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부인은 괜히 참견했다가 험한 꼴을 본다면서 남편의 소매를 잡아끌어 도망쳤습니다. 목을 졸린 것보다 그 광경에서 미국의 진정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상관없는 사람이 죽든 살든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삶만 편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존재는 철저하게 기피한다. 정의를 위한 싸움은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고 나서 한다. 상식적인 사회 구성원이 범죄를 보고도 못 본 척하게 된 것도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거대해진 기계 문명으로 인해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기가 두렵게,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는 살인도 있겠지만, 무차별적으로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해치는 사건도 일어난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라는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세상이 무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을 지키며 살때, 좀 더 살기좋은, 따듯한,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24살의 한 흑인 청년이 고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다 죽고, 그 수사과정에서 밀짚모자가 단서로 발견된다. 그리고 사건 해결을 위해 형사 무네스에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몸이 아픈 남편을 위해 밤일을 시작한 미모의 아내를 의심하던 남편은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실종된 걸 깨닫는다. 그리고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쫒는 과정이다.

 

아내의 불륜남과 함께 아내를 찾는 남편은 아내가 실종된 곳에서 낡은 곰 인형을 발견한다. 그 인형은 사회적 지위에만 연연하는 부모에게 지쳐 점점 더 어두운 범죄의 그늘로 빠져드는 미치코의 것이다. 그는 우발적인 사고를 저지른 미치코는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도망을 간 상태이다. 그리고 한국 경찰의 협조 요청으로 살해된 조니에 대해 조사하는 뉴욕의 경찰 켄이 있다. 그는 슬럼가 출신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과거 일본에서 군 복무 중에 한 남자에게 분풀이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일본인 옆에서 군인들을 노려보던 어린 아이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무네스에이다.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야스키 교코라는 한 여성에게로 집중된다. 매스컴의 명성을 얻고 있는 가정문제 평론가이자, 미치코의 가식적인 부모.. 그리고 살해된 흑인 청년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의 인물이다.

 

"야스키 교코에게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는지 한번 모험을 해보죠."
"인간의 마음을 시험한다고?"
나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일 그 여자에게 인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자백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겁니다."
"자백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합니다. 야스기 쿄코의 인간성에 호소해 자백을 받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인상적인 인물은 무네스에 형사이다. 사회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동물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풀어내기 위해서 형사가 되었고, 한 인간이 법률이라는 대의명분 아래에서 인간을 쫒을 수 있는 직업은 경찰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겐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가 적이었고, 형사는 국가 권력이을 짊어지고 모든 인간에게 보복하고자 형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매한 도덕가, 성숙하고 덕망 있는 성인의 가면을 쓰고 우정이나 자기희생을 역살하는 자라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기 보신의 주판을 튕기고 있다는데에 물론 동의한다. 인간이란 동물을 파체혀보면 누구다 깊은 바닥에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간을 미워하고, 믿지 않고, 불신하면서 살기란 어쩌면 더 힘들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발뻗고 자지 못한다는 말처럼,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혹사시켜야 그런 수준에 이를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런 동기를 만들어준 어린 시절의 끔찍한 광경이란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해서,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그가 작품의 후반에 이런 얘기를 한다. 야스키 교코의 인간성에 호소해서 자백을 받아 보자고.

 

그녀 곁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네스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도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야스기 쿄코는 아직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놓은 것이다. 무네스에는 교코가 자백한 뒤, 자신의 마음에 숨어 있던 모순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 없이 교코와 대치했을 때, 그는 그녀가 인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믿고 모험을 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역시 인간을 믿고 있던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무섭고, 슬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인간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마음에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차피 그녀에게도 자신의 어머니가 사준 '밀짚모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의 대부분은 어머니와 연계되어 있다. 자신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나의 어린 시절을 형성하고, 그 것이 어른이 된 나의 가치관을 만들어주고, 외롭거나 힘이 들때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감싸주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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