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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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리기는 마법의 명약이 아니다. 나는 이제 달리기로 인생이 주는 진정한 슬픔에 면역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내가 다시 일어설 수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날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덕에 내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했고,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경험, 진정한 사랑을 향해 전진했고, 내가 불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나는 무조건 위험과 두려움부터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기가 나를 불행에서 해방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p.46~47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달리기를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전 세계 100만 부가 판매되며 영국 전역에 ‘러닝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수의 매체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던 저자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맞이한 파경을 겪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불안장애가 악화되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마비된 것만 같았고,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고, 인생이 완전히 박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달리기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힘든 일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잠잠해졌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으며,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종아리는 불에 덴 것만 같았고 심장이 너무 뛰는 바람에 숨 쉬기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무력하게 울기만 하던 자신이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달린다.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달리기라는 행위로 발현된 것이다. 처음부터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기에, 낡은 레깅스와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9초 거리에 있는 어둑한 골목길이 시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야 하고 한적해서 자신을 비웃을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3분 정도 달린 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달리는 게 재매있지도, 기분이 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뭔가가 온갖 핑계를 짓눌렀고, 이틀날도, 그다음 날도 느릿느릿 몇 초 달리다가 멈춰서 쉬기를 반복했다.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었고, 나아질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2주 동안 그 어두운 골목을 터덜터덜 달리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은 본래 만만치가 않아서 끊임없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우리를 비틀거리게 한다. 내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러너로 산다고 항상 인생에 햇살이 비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명언이 난무하진 않았다(그런 명언 따위는 불쏘시개나 되라지).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때도 있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내게 희망이 생겼고, 걱정, 공황, 불길한 예감, 우울증이 항상 내 삶을 쥐락펴락하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가슴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서 지그시 압박을 가하지만 않아도 우리는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p.357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렇듯 체육 시간을 싫어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등산이라도 가지 않는 한 딱히 일상에서 운동 비슷한 거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일상에 치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을 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제 나이를 좀 더 먹었고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전히 달리는 것도 땀 흘리는 것도 싫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달리기의 기쁨이라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화끈거리고, 덥고,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을 질끈 묶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왜 안 돼? 달린다고 손해 볼 거 있어?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질구질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우울에 맞서고자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누구나 살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고, 그때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달리기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그 행복이란 것이 단순히 달릴 때 생기는 몰입, 쾌감, 기운을 통해서만 얻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달리기를 통해 겁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힘껏 지면을 디디면서 뇌를 지치게 하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공포증과 두려움이 서서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자, 지금 삶이 힘들고 막막하다면, 걱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중이라면, 달리기를 통해 삶이 바뀌고 공황과 불행에서 해방된 이 이야기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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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만에 프리토킹 - 시원스쿨 NEW 왕초보탈출
송연수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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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 공부는 기초가 정말 중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익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 영문법부터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학창 시절 내내 달달 외웠던 문법들이 실제 해외에 가서나, 외국인과 대화할 때 도움이 되어 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어, 영어 공부에 관련된 책은 손에서 놓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관심있게 챙겨보고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은 '100일 만에 프리토킹'이라는 제목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프리토킹이라니... 영어로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누구나 꿈꾸던 상황일 것이다. 100일 이라는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되든 안되는 일단 100일 정도만 투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보면 이 책을 집필한 엘바 선생님의 강의를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는 쿠폰이 있다. 그래서 시원스쿨에 회원 가입을 하고 무료 강의부터 들어보았다. 수강기간 5일 동안 이것저것 강의를 골라서 들어 봤는데, 정말 쏙쏙 귀에 들어오는 강의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눈동이 학습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잘한 문법은 신경 쓰지 말고, 우선 어순에 맞게 키워드를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어 연결을 하면서 의미에 맞게 문법을 다듬어 주면 되니, 우선은 눈덩이를 굴려 점점 크게 만드는 것이 시작이다. 누가-어쩐다(주어-동사)라는 뼈대(핵심 정보)를 기본으로 거기에 조금씩 살(주변 정보)을 덧붙이면 된다. 




영어는 화자가 말하는 순서에 따라 청자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 정보가 하나씩 이어져 점점 그림이 완성되는 순서로 말한다. 이 책은 한국어 문장을 하나하나 번역해서 말하기보단, 한국어를 그림(상황)으로 치환하고, 그 그림을 영어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저는 주중에는 7시에 일어나요>라는 문장으로 눈덩이 굴리듯 문장 말하기 훈련을 하면 이렇다. I get up (저는 일어나요) -> I get up at 7 (저는 7시에 일어나요) -> I get up at 7 on weekdays (저는 주중에는 7시에 일어나요) 이렇게 그림의 번호 순서대로 이미지를 연상해 보고 단어를 하나씩 추가해서 문장을 확장시키면 된다. 100일 동안 우리말을 이미지로 연상하며, 필요한 단어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 매일의 문장에 컬러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실생활에서 쓸법한 문장들을 끊어 읽기로 영어 리듬감을 익히고, 대화를 통해 실전 감각을 기를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왕초보에게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서 실제로 자주 쓸법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영어 회화 책이지만, 말하기에 필요한 필수 문법과 표현 또한 쉽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영어 앞에서 매번 자신감을 잃곤 했다면, 영어 공부는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게다가 실전 대화 핸디북과 연계 강의, 원어민 MP3 음원도 제공이 되고, 스스로 문장 훈련을 할 수 있는 미션노트와 학습 단어가 총정리된 핵심 단어 500도 시원스쿨 홈페이지를 통해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기초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영어를 어렵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어순'에 있다. 영어는 '핵심 정보에서 주변 정보의 순서로' 정보를 쌓아가는 언어이고, 한국어는 반대로 '주변 정보에서 핵심 정보의 순서'로 말한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이유는 영어가 '청자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하려는 목적은 '소통'에 있다. 상대방의 말을 내가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 즉시 영어로 뱉을 수만 있으면 되는데, 이 책과 함께라면 100일 뒤에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험 공부하듯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술술 영어 문장을 말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엘바쌤과 함께 눈덩이 학습법으로 공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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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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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트는 이런 태도에 익숙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상관없는 존재,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그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 것에도 나름대로 이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p.109


대프니는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과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15년 동안 아파트 밖으로 거의 나온 적이 없다. 그리고 일흔 살 생일에, 자신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자식이나 손주도 없었으니 자신을 사랑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제 세상과 교류하고, 친구를 사귈 때가 온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까칠하고 호탕한 성격의 70세 할머니 대프니가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75세 할아버지인 아트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이다. 여전히 활력 넘치고,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불러 주는 곳이 거의 없다. 에이전시의 대표는 그의 전화를 피하고만 있었고,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밤새도록 페이스북에 접속해 딸 케리를 몰래 추적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아트는 거리에서 광고지를 하나 발견한다.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고 싶은가요? 

만델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에 가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무료로 식사와 음료를 먹을수도, 따뜻한 복지관에서 몇 시간 보내는 것도 난방비를 아끼게 해주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랜 친구인 윌리엄을 설득해 함께 복지관으로 향한다. 19살인 지기는 혼자 딸을 키우게 된 미혼부 고등학생이다. 2학년 무도회때 여자친구와 관계로 아이가 생겼고, 지기의 엄마가 아기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새출발을 위해 전학을 가고, 지기만 홀로 남겨졌다. 요즘은 만델 복지관의 유아원에 카일리를 보내는 동안 몇 시간이라도 자유 시간이 생긴 참이다.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아기를 돌보며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가 않다. 리디아는 젊을 때 잘나가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였으나 결혼, 출산과 함께 경력이 단절된 53세 전업 주부 중년 여성이다. 딸들이 둘다 대학에 가고 난 후, 텅빈 집에서 다른 여자가 생긴 듯한 남편과 함께 산다. 그리고 오랜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아니게 된 것이 바로 복지관에서 노인 사교 클럽을 운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모임 첫날 복지관의 천장 일부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수십 년 만에 구한 첫 유급 일자리를 잃어 버릴 위기에 처한다. 




"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동네 노인들과 불 시합을 하다가 죽는 걸까요, 아니면 파차 클럽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죽는 걸까요? 우린 시인 딜런 토머스의 말을 기억해야 해요."

"뭐라고 했는데요?" 아트가 물었다.

"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날이 저물 무렵에 노년은 불타고 날뛰어야 한다."                p.480


나이를 먹고 가장 서글픈 일중 하나는 겉모습은 늙었지만, 마음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 여기 꺼져가는 불빛에 분노하는, 무력하고 어두운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기대기보다 상황을 주도하고, 신기술에 능숙하고, 누구보다 삶에 자유롭다.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까칠하고 호탕한 대프니,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뜨개질로 동네 곳곳을 뒤덮어 ‘제2의 뱅크시’라는 뉴스를 몰고 다니는 루비, 가죽 바이커 재킷 차림에 머리를 연보라색으로 물들이고 거리의 무법자처럼 이동 보조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애나, 늘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려 그들을 도와주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 아트, 아트의 70년 지기 친구이자 전직 파파라치였던 윌리엄... 이들은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운영되는 노인 사교 클럽에서 만난다. 


"당신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이런, 당신은 내가 의심한 대로 무례하군요."


노후된 시설로 인해 복지관을 보수하는 대신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노인 사교 클럽이 해체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고령의 노인들이 유쾌하고, 통쾌한 인생 반란극을 보여준다. 어느새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이 곧 철거해도 이상하지 않은 낡고 허름한 주민센터를 지키기 위해 사수하기 위해 한바탕 대소동을 벌인다. 사실 주민센터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 노인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19세 미혼부, 말을 하지 못하는 5세 어린이, 이민자, 경력 단절 중년 여성 등 삶이라는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이 등장해 불완전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결국 구원하는 서사는 뭉클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비호감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기세 넘치는 노인들의 끝내주는 인생 노하우는 덤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단하게 부셔버린, 스웩넘치는 노인들의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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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모노 에디션)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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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웅크리고 앉은 하얀 석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순간 나는 내 여행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 우박 장막이 완전히 걷히면 무엇이 나타날까?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잔인성이 평범한 감정이 되었다면 어떡하지? 그사이에 인류가 인간다움을 잃고 냉혹하고 몰인정하고 엄청나게 힘센 동물로 진화했다면 어떡하지? 그들에게는 내가 구세계의 야수처럼 보일지도 몰라.                  - '타임머신' 중에서, p.44


<시간 여행자>는 심리학자, 의사, 저널리스트 등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사차원 기하학을 연구한 결과 시간도 일종의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정말로 공간의 네 번째 차원이라면, 왜 시간 속에서는 돌아다닐 수 없는 걸까 의문을 품었고 결국 공간과 시간 속을 어떤 방향으로든 이동하는 기계를 만들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시대였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고, 절대로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 여행자는 만드는 데 수년이 걸린 기계장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직접 미래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들려준다. 그가 도착한 세계는 무려 802701년의 미래였다. 


시간 여행자가 미래에서 만난 생명체들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난쟁이들이었다. 엘로이라는 종족은 부드러운 친절함과 어린애 같은 태평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우 연약해 보이기도 했다. 도자기 인형처럼 예쁘장한 그들은 시간 여행자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낯선 생명체와 의사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를 둘러싸고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자기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미래라고 하면 발전된 과학 기술과 지식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해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수준 높은 윤리나 놀라운 진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류는 현대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모습은 이들 인류가 전부가 아니었고, 시간 여행자는 곧 다른 종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과연 그는 이 아득한 미래에서 어던 경험을 하게 될까. 




저게 뭐지? 그는 넋을 잃을 만큼 놀라서 그 유령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의심하고, 눈을 깜박거리고,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고, 믿었다. 그것은 고체의 실물이었고, 그림자가 딸려 있었고, 두 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그 안에는 대낮의 햇빛 속에서 백열광을 내는 마그네슘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금속과 햇빛을 빨아들이는 흑단 막대기, 문질러 닦은 상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부속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무질서한 꿈의 기계처럼 확정적이 아니라 암시적이었다.                 - '<크로닉 아르고> 호' 중에서, p.181~182


사실상 웰스가 그린 이 미래는 이 작품이 쓰일 당시의 19세기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고 있는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운 아득하게 먼 세상이다. 그래서 그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만날 수 있는데, 웰스의 독창적인 상상력은 과학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189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최초로 과학적인 수단으로 가능한 시간 여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웰스는 문학사상 최초로 과학적 가설을 원용한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옛날부터 있어 왔던 미래 여행의 성격을 꿈과 마법에서 '있을 법한' 현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책에는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그 원류격인 작품 「<크로닉 아르고>호」를 비롯하여, 웰스의 기막힌 상상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수정 알」과 「맹인들의 나라」 등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웰스는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거 생물학자 헉슬리로부터 과학을 배웠고, 이후 과학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학과 과학,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을 정도로 다양한 일들을 해온 다재다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타임머신>은 발표와 동시에 평판을 얻었고, 옛날부터 있었던 미래 여행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인류 사회를 미래나 과거의 시점에 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그야말로 SF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웰스 이전에도 시간 여행을 다룬 소설은 있었지만, 꿈 속에서 경험하는 방식으로 시간 여행을 하거나, 긴 수면 후 다른 시대에서 깨어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과학적인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시간 여행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웰스가 처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웰스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는 굉장히 먼 미래이기 때문에, 우리 인류에 대한 전망과 우주적 차원의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도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극중 시간 여행자가 미래 사회에 도착해서 그들에 대해 알아내고자 나름의 논리와 사고를 펼치는 과정 조차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웰스 이후로 시간 여행을 다루는 SF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고, 나 역시 다수의 작품들을 읽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오래 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고전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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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깨달은 것들
악셀 하케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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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잊을 수 없는 냄새가 또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매주 새로운 책을 찾아 시립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먼지 냄새, 독서에 빠진 사람들의 냄새가 있다. 아, 언젠가 내 차가운 몸이 무덤에 들어갈 때, 내 기억의 거대한 건물도 가져갈 수 있도록 갓 깎은 잔디와 갓 볶은 커피, 시가 한 대, 그리고 책들도 같이 넣어주기를! 하지만... 해골에는 코가 없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다른 감각과 구별되는 후각만의 특징, 즉 코에서 뇌로 가는 직통 경로에 대해 얘기해보자.                  p.187


<삶은 당신의 표정을 닮아간다>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악셀 하케의 신간이다. 전작에서 철학, 심리학, 예술,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유쾌함'에 대해 탐구했던 그는 이번 책에서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시간, 세월, 그리고 이 시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순 여덟 살인 그는 노화로 인해 웃지 못할 사건들을 겪었고, 그 덕분에 평생의 동행자인 '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피부, 뼈, 검지, 치아, 폐, 무릎, 뇌 등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중년 남자의 시선으로 나이든 몸과 노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흉터, 주름, 생채기 등의 개인적인 경험은 보통 몸에 새겨진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키가 줄어들고, 주름이 선명해지며, 크고 작은 부상과 질병의 흔적들을 갖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은 매일 거울 앞에서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특별하지 않다고 잊어 버리기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간다. 악셀 하케는 지극히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기억들을 몸이라는 '작은 우주'를 통해 읽어 낸다. 재채기로 인해 갈비뼈가 골절된다거나, 주머니칼로 멋을 내려다 손가락 부상으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었을 정도로 아찔한 사고를 겪기도 하고, 톨스토이 때문에 왼쪽 무릎 연골이 영구적으로 손상되기도 하며, 살면서 원하는 만큼 날씬해 본 적이 없었던 식습관을 돌아보고, 유독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생긴 아찔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사진첩 속 아기 시절부터 68세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노화, 크고 작은 부상과 질병, 그리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준다. 




세상의 진부함과 아름다움, 역겨움과 온갖 현상은 오로지 몸으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 없이 어떻게 하겠는가? 몸은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인생은 아름다우면서도 역겹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몸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몸이 적절히 기능하도록 살 수 있으며, 몸의 기계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몸을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몸이 상호작용하고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어떤 세계의 일부로 이해한다면 어떨까?                   p.247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칫 견디기 어렵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과 수치심, 두려움 조차 유머러스하게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도 유쾌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악셀 하케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을 넘어 긍정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내용 자체는 매우 유쾌하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성찰은 결코 가볍지 않아서 더 가슴 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몸의 변화와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며 유머로 승화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늙어가는 몸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흉터 하나, 주름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모든 흔적들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증명해주는 기록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개인적으로는 냄새와 후각을 다룬 장을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냄새는 일반적인 외부 자극과는 달리 비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뇌에 도달하기 때문에 시상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후각은 뇌의 아주 오래된 영역이자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에 속하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장 오래된 감각이기도 하다. 냄새는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유명한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목을 소개하기도 한다. 추억의 냄새와 특별한 의미가 있어 잊을 수 없는 냄새에 대한 부분도 인상깊게 읽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가져온 변화와 점점 더 흐려지는 개인의 기억력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나이 든 신체란 볼품없어 지게 마련이지만, '나'의 모든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안에 축적된 시간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을 통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보고,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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