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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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서 우리는 ‘가진 자’잖아요. 우리는 이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발자국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내디뎌야 해요. 곰도 막 걸어 다니는데, 인간이 걸어 다니는 것까지 시비 걸면 어떡하나, 하실 수도 있어요. 시비 걸어야 마땅하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인간은 이미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노력을 해야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97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25년 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고, 해마다 100회 이상 강연을 해왔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강연 녹취록과 편집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회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부터,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시기의 에피소드와 거의 알려진 바 없던 ‘민벌레’를 최초로 연구하며 그 분야의 1인자가 된 비결, 다윈의 성선택 이론부터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며 전 생명의 진화사를 살펴본다.

 

그는 이 책이 '그동안 관찰한 호모 사피엔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보고서'라고 말한다. 자연계에서 호모 사피엔스보다 탁월한 두뇌를 가진 동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지만, 사실 인간은 제 꾀에 넘어가는 아주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진짜 현명했으면, 이렇게 미세먼지 만들어놓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겠냐고, 모든 물을 다 더럽혀놓고 개울에서 물도 제대로 떠먹지 못하면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자연계의 다른 생물과 공생하겠다는 뜻에서 '호모 심비우스symbious'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연을 곁에 두고 배우며 그들로부터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곤충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생태적 전환'이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전환은 생태적 전환밖에 없습니다. 기술의 전환도 아니고, 정보의 전환도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던지고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p.279

 

곤충이 너무 많아 방제를 걱정하던 시절을 거쳐 이제는 모든 사람이 곤충이 사라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꽃을 피우는 식물은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자연계에서 무게로 가장 성공한 존재이고, 곤충은 숫자로 가장 성공한 존재인데, 이 둘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식물 생태계가 지금 이상기후 때문에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다. 식물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맨 밑바닥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 결과 식물계 바로 위에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곤충계부터 엄청난 붕괴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정말 6차 대멸종이 머지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기존 다섯 번의 대멸종이 전부 천재지변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면, 곧 맞이하게 될 6차 대멸종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류의 동물로 인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최대 규모일 거라고 예측되는 대멸종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최재천 교수는 개미와 민벌레 등 곤충에서 시작해 거미, 민물고기, 개구리를 거쳐 까치, 조랑말, 돌고래, 그리고 영장류까지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오며 그 속에서 자연스레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개미에 대한 부분들이 특히나 흥미로웠다. 인간과 가장 닮았으나 인간보다 기꺼이 희생하며 자가 조직 사회를 꾸리는 일개미들의 사례와 다른 듯 닮은 흰개미와 꿀벌의 진사회성에 대한 부분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들의 삶을 가져와서 열심히 베끼고 연구하라고 말한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들은 수천만 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이미 다 거쳤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뭘 갖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걸 가져다가, 그냥 주워다가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보라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생명과 이 지구를 공유하는 공생인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다. '지구의 동식물 절반이 사라질 때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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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약 금지 -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의 변화하는 한국을 읽는 N가지 방법
콜린 마샬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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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국어의 ‘마이너’한 지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영어에 의존하는 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왔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행사에서 한국어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듣는 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일일까? 서구권 사람들이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존중하는 듯한 모습은 또 어떨까?            p.118

 

작가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마크 맨슨이 최근 한국 여행 영상을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고 해서 화제였다. 그는 국내에서도 <신경끄기의 기술> 등의 책으로 꽤 사랑받은 작가인데, 이번 발언 덕분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살률 1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그의 분석이 전부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겨우 며칠 여행하고 평가한 그의 시각으로 한국을 규정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마침 그에 대한 반박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진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

 

서울에 3650일째 거주하며 <뉴요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콜린 마샬의 <한국 요약 금지>이다. 그는 겉핥기식 관찰과 단정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는 한국이 아니라, 매순간 변화하고 달라지는 한국의 모습을 직접 겪어 보고, 살아 보며 탐사한 것이다. 김치의 나라, 삼성의 나라, 자살의 나라, BTS의 나라 한국. 이런 단어들 속에 진실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말들은 실제 한국의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인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은 한국인들 대다수가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것들과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제까지 깨닫지 못했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처럼 한국은 한두 마디의 말로 요약할 수 없는 나라라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이방인의 입장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대답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회를 보면 모든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매일 들리고 보이는 표현이나 광고와 같이 사소한 것들도 그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쉬운 예로 한국이든 해외든 오늘날의 히트곡들이 나에게는 단조롭거나 유치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21세기의 K-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21세기의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가장 뚜렷한 지표가 된다.              p.198

 

커피숍 테이블 위에 개인 물품을 내려놓음으로써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심지어 그 물건은 비싼 것들이다, 동네에 한두 개 이상의 스타벅스가 들어와도 소규모 체인 커피점이나 작은 커피숍이 밀려나지 않는다, 고등교육기관과 병원을 포함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주류가 가득 찬 냉장고를 경비원도 잠금장치도 없이 외부에 두는 편의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회계급의 차이를 특별히 느낀 적이 없다. 아무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유로 커피숍 유리창을 깨지 않는다, 그리고 포장마차, 떡튀순, 서울 우유 등등... 이는 저자인 콜린 마샬이 '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43가지 이유'로 꼽은 것들의 일부이다. 그는 스타필드 라이브러리가 개관한 이후 그곳을 여러 번 방문했고, 겨울서점 유튜브를 즐겨 보며, 한국어 공부를 위해 이동진의 빨간 책방 공개 방송이 진행되는 카페에 가기도 했다. <우리말 겨루기>와 <한국기행> 방송을 즐겨보며, 홍상수의 영화를 주목한다.

 

'당신이 알던 K는 여기 없어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주는 위안’, ‘<강남스타일>이 열어젖힌 문’이라는 글을 기고하며 한국을 향한 전 세계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해줬던 그는 '한국 전문가'보다는 '한국 코노셔'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코노셔(connoisseur)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데 집중하기보다 관심과 흥미를 꾸준히 유지해 더 잘 감상하려는 사람을 의미한다. "K-팝과 성형수술, 북한의 위협처럼 외신이 주로 다루는 소재 정도로만 한국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내가 관찰하고 만난 한국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인스럽게 한국에 대해 배우고, 즐기고 있다. 외부의 기준과 평가를 너무 의식하는 한국인들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알고 있던 한국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국을 섣부르게 요약하려는 시도는 의미없다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다른 오늘을 발견하고 새로운 내일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한국의 오늘을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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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X위글위글 일본어 진짜학습지 첫걸음 - 하루 10분! 일본어가 저절로 외워지는 새로운 공부 습관 시원스쿨X위글위글 일본어 진짜학습지
시원스쿨 일본어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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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참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던 일본어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 되어서 히라가나부터 다시 봐야 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아는 단어들이 들리면 미뤄뒀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늘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이번 책은 학습지 형태로 되어 있어 부담 없이 하루하루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10분, 딱 1장 분량의 내용으로 할 수 있어 무엇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을 것 같았고 말이다.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시작하는 구성이라 초보자를 위해서도, 다시 시작하는 학습자를 위해서도 딱 좋다. 전체 60일 분량이라 하루에 하나씩 해 나가면 두달 안에 기초를 쌓을 수 있다. 히라가나, 가타카나에 이어 탁음, 반탁음, 요음, 촉음, 발음, 장음까지 하는데 9일이면 된다. 이후 10일부터는 인사말, 소개, 질문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회화 표현을 기준으로 핵심표현들을 배울 수 있다. 일상 생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입과 귀가 트여 실제 회화에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수 문형과 어휘를 학습하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간단히 그날 배운 내용을 점검해 볼 수 있는 문제를 풀며 복습을 하면 하루치 분량이 끝난다. QR코드로 접속이 되는 '리얼 단어 카드'에서 해당 분량에 맞는 일본어 발음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학습지 60장 외에도 별도로 구성된 부가자료 세 권이 포함되어 있다. 정답지가 있고, JLPT N5 모의테스트와 히라가나/가타카나 쓰기 노트가 수록되어 있어 활용도가 높다. 쓰기 노트는 꽤나 두툼해서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외우기에 딱 좋고, 두 달 분량의 학습이 끝난 뒤, 실제 JLPT 시험에 도전해볼 수 있도록 최신 기출 유형을 반영한 JLPT N5 모의테스트도 해볼 수 있어 좋다.

 

원어민 강사의 해설 강의는 시원스쿨닷컴에서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강의 영상은 시원스쿨 진짜학습지 홈페이지(daily.siwonschool.com) > 수강신청 탭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학습지원 > 공부 자료실 탭에서 무료로 MP3파일도 제공하고 있으니 원어민의 생생한 음성을 들으며 학습할 수 있다.

 

 

영어든 일본어든 그리 쉽게 시작해지지가 않는 것이 또 외국어 공부인데, 어렵게 시작한다고 해도 꾸준히 지속하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일본어는 한국어와 기본 어순이 같아서 쉽게 느껴지지만, 한자를 외워야 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 나 역시 계속 다시 시작하기를 미뤄왔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일본어 진짜학습지는 낱장으로 된 학습지를 매일 하기만 하면 되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에 십 분만 내면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점심 시간에 잠깐 하는 식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외국어 책들은 책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버거웠거나, 지루하고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래 지속적으로, 꾸준히 뭔가를 공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단기간에 일본어 기초를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양만 많고 정작 실속은 없는 여타의 학습지에서 벗어나,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는 빠르고 체계적인 학습지이니 말이다.

 

시원스쿨과 위글위글이 함께하는 스페셜 에디션 일본어 진짜학습지는 히라가나부터 JLPT N5까지 할 수 있는 '첫걸음'과 초급부터 JLPT N3까지 도전해볼 수 있는 '스텝업'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 권 모두 각각 DAY 60으로 되어 있으니, 딱 두 달씩이면 끝낼 수 있다. 나도 어서 첫걸음 편을 끝내고, 스텝업까지 이어서 해볼 예정이다. 위글위글 캐릭터도 좋아하는데, 학습지를 담을 수 있는 터버를 위글위글 캐릭터로 가득 채우고 있어 들고 다니면서 학습하기에도 아주 예쁜 책이다. 이 책과 함께 몇 달만 투자하면, 다음 번 일본 여행에서는 조금 더 알아듣는 일본어가 많아지고, 몇 마디라도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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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좋아지는 스탠퍼드 마인드셋 - 숨겨진 수학머리를 깨우는 진짜 수학 공부
조 볼러 지음, 송명진.박종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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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네 뇌가 자라는 거야. 네가 정답을 맞혔을 때는 네 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자라지 않는 거지.” 학생들이 틀린 답을 내놓았을 때, 교사는 이런 식으로 학생 개개인에게 일대일로 대응해야 한다. 딸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아이가 이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딸은 완전히 달라졌다. 실수를 포용하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수학이나 다른 과목을 더 많이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성장 마인드셋을 갖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p.58~59

 

어째서 그렇게 많은 학생이 수학을 끔찍이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일까. 수학 수업에서 학생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부분 학생은 문제를 올바르게 푸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깊은 질문을 던지고, 수학 과목을 구성하는 다양한 연결을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학생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학 교육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실제 수학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수학교육학과 교수인 조 볼러는 전 세계 많은 학생이 왜 그렇게 수학을 싫어하고 쉽게 포기하는지 깊이 연구해왔다. 수학교육계의 퀴리 부인으로 불리는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만연한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수학의 잠재력과 자신감을 올리는 명확한 방법을 알려준다. 영국과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수학 교사였으며 대학에서 학부생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학을 대하는 ‘마인드셋’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학 두뇌' 또는 '수학적 재능'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수학은 똑똑한 사람만의 능력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그 핵심 비결은 성장 마인드셋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 마인드셋을 지닐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매우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수학은 아이디어와 연결을 통해 모든 학생에게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과목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성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과목으로 가르쳐지면서, 수학 유전자를 가진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수학은 성과주의와 엘리트주의 문화에 빠져있다... 한편으로 수학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놀라운 렌즈다. 젊은이들은 수학을 통해 자신의 직업과 삶에 대해 정량적으로 사고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수학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든 학생이 누구나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다.          p.179

 

왜 수학은 이토록 어려울까? '수포자'라는 말이 쉽게 와닿는 이유는 그만큼 흔하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된 것일까. 우리는 학창 시절에 문제 풀이와 공식 암기가 전부인 양 공부해 왔고,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영재'는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메시지로 격려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수학적 경험을 한다면, 누구나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수학에 대한 잘못된 신념과 수학을 어려워하고 멀리하게 만든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실제 교실과 가정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교육법, 학습법, 수학 과제들을 수록하고 있다. 책 전체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실천 방법들은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와 연구진이 직접 초중고 교실에서 실행하고 학생들의 변화를 통해 확인한 성장 마인드셋 전략이기도 하다. 해당 과제들은 후반부에 부록으로 따로 정리가 되어 있어 문제만 여러번 반복해서 시도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폭넓고 시각적이며 창의적인 수학을 통해서 누구나 수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수학을 다른 과목처럼 즐겁게 배우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수학은 단순히 계산하는 학문이 아니며,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제를 빨리 푸는 것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타고난 수학 천재 같은 건 없으며, 실수야말로 두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질문을 통해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고, 깊이가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수학은 창의력과 이해력, 그리고 연결과 소통에 관한 과목이라는 것이 바로 수학이 좋아지는 '성장 마인드셋' 규칙이다. '진짜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면, 수학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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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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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한다고?"
"파업이요!"
노인 뱃사공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요상한 바람이 들어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는 거야?"
"언제까지 죽지 못해서 이 짓을 할 거예요? 벌써 수십 개월째 강행군이라고요. 대체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살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만들자는 거예요. 저승에 우리 의견을 내어 협상하는 거죠. 월급 인상과 적정 인원 투입으로 이뤄지는 적정 근로 시간 및 안전한 근무 환경!"               - 배명은,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 중에서, p.48~49

 

책과 서점에 관한 SF, 팬데믹 시대의 로맨스, 귀신날 호러, 고전 SF오마주, 판소리 SF 등 다양한 장르소설 앤솔러지를 선보이고 있는 구픽의 앤솔러지 신작이다. 이번에는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으로 다섯 명의 장르 소설 작가들이 현대 사회의 노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죽은 자들이 도착하는 삼도천 뱃사공들이 과도한 업무와 부당한 임금으로 인해 파업을 시작하고, 월급과 생계를 위해 소처럼 말없이 일했지만 제빵 회사의 착취와 인간적이지 못한 처우로 인해 어린 시절 꿈은 냉장고 속에만 넣어 두는 것이 현실이고, 어느 날 갑자기 읽고 있던 웹소설 속 산업혁명기의 하층 계급 노동자로 빙의되어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할 예정인 여주인공을 투쟁하는 혁명의 주인공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번듯한 직장 없이 세상에 불만만 많은 딸인 줄 알았는데, 밖에서는 용기 있는 투사이자 헌신적인 활동가로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사고로 죽은 뒤에야 알게 되는 엄마가 있고,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외국인 노동자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골의 파출소장도 있다. 노조 탄압, 외국인 노동자 처우, 하청 노동, 중대재해 등 지금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는 도덕이 뭔데? 애쉴리, 너는 우리를 사람 같지도 않게 대하는 작업반장한테도 지금처럼 덤빌 수 있어?"
애쉴리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진짜 사람답게 사는 거지. 이미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우리가 뭘 어떡하냐고. 어제 메리가 말했듯이..."
클레어의 눈에서 명백한 경멸을 읽었다.
"사람마다 참을성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야."           - 이서영,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 중에서, p.138

 

배명은 작가는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고사한 망자를 통해 이승이든, 저승이든 벌어질 수 있는 노동력 착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일하는 시간과 무게만큼의 임금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노동자들은 그렇게 당연한 권리 조차 보장받지 못해 목소리를 높여 투쟁해야 하는 것일까. 남겨진 가족들이 걱정되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러운 남자는 죽은 지 이레째 되는 망자들이 도달하는 삼도천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다. 살아가고 일하는 것이 저승이라고 뭐 다른 거냐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죽어서도 죽어라 일해야 하냐고 말이다.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던 삼도천의 뱃사공들은 '부당하다면 모두가 일어나야 한다'는 그의 말에 힘입어 파업을 선언한다. 저승에 가서도 정당한 일할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박수 쳐줄 만한 일이다.

 

이서영 작가의 로맨스 판타지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다. 웹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회귀물의 일종인데, 실제 작가가 M노총 산하의 모 산별에서 조직 담당자로 3년간 일해 왔기에 노동조합이 곧잘 악역이 되곤 한다는 것을 작품으로 잘 풀어낸 것 같다. 로맨스 서사의 기본이 남주가 여주를 발견해 내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여주가 자기 스스로를 발견해내면서 로맨스를 무너뜨리는 서사로 그려지고 있어 더 재미있었다. 갑작스럽게 웹소설 속 세계로 빠져 들어간 '나'가 해당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래 자신이 하던 일을 해 나가며 버텨낸다는 것, 그것이 아주 이상한 방식의 악녀가 되는 일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로 도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공장을 운영하는 힘있는 자들이 아니라 그 공장이 돌아가게 만드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폄하하는 세상 속에서, 투쟁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진 않지만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는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들이었다. 너무도 현실과 맞닿아 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이지만,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부당한 세상에 맞서 싸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이 작품을 읽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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