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찰랑 사랑 하나 파란 이야기 16
황선미 지음, 김정은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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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구할 거야. 할머니가 그랬어. 나쁜 생각은 행운을 갉아먹는다고. 궁지에 몰려도 최선을 생각하라고. 궁지가 뭐냐고? 글쎄. 아마도 나쁜 일 중에 최악이 아닐까. 아무튼, 애들이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건 내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니 윤봄인답게 당당해도 돼. 혹시라도 누가 그 얘기 꺼내면 “그게 뭐?” 해야지.            p.50

 

황선미 작가의 <찰랑찰랑 비밀 하나>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겼던 봄인이에게 봄바람처럼 설레이는 감정이 찾아온다. <찰랑찰랑 사랑 하나>라는 제목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첫사랑 이야기이다.

 

봄인이의 엄마와 아빠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이다. 덕분에 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랑 둘이 살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치매가 온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게 되면서, 봄인이는 백수 삼촌과 함께 지내게 된다. 백수 삼촌은 할머니랑도 사이가 나빴고, 봄인이랑도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낡은 공동 주택에서 삼촌과 함께 살게 된 것이 봄인이는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성격의 봄인이는 도무지 책임감 없는 어른들에게 언젠가는 다 갚아 주겠다고, 아주아주 멋지게 자라서 당당하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주어진 환경을 헤쳐 나가는 것이 전작의 이야기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뛰기를 잘해서 붙은 별명 '찰랑이'가 이름보다 더 익숙한 봄인이는 생일인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속상하다. 늦게까지 만화책 작업을 한 삼촌은 쿨쿨 자고 있고, 하나뿐인 손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직접 만들어 주셨던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작년 생일에 원피스를 보내주셨던 엄마도 소식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키즈 카페에서 놀기로 했다. 재원이가 친구들까지 초대해 자신을 위해 번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봄인이는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친구들인 모인 자리를 보자마자 봄인이는 깨닫는다. 이건 자신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재원이가 크림색 드레스에 공주처럼 왕관을 쓰고 있었던 거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봄인이는 친구들의 깜짝 파티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세상 모두한테 버려진 기분이 든다.

 

 

"찰랑. 좋은 일 있구나! 남재민이랑 연락된 거야?"
아, 현기증 나.
좋은 일이라니. 죽을 지경인데.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더라고. 용기가 필요할 때 나는 가끔 이래. 저번에 영모한테 사귀지 않겠다고 할 때도 그랬어. 지금도 그런 때야. 솔직해져야 할 때.            p.101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그대로 나와 버린 봄인이는 눈물을 쏟으며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집에는 가기 싫고, 전화할 사람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 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만남을 하게 된다. 어쩌다 보니 인기 절정의 아역 배우 남재민과 얽히게 된 봄인이는 늘 곁에 있었던 친구 영모에게 고백까지 받아 당황스럽기만 하다. 누구를 사랑하는 게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지만, 영모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남재민 생각에 가슴이 막 두근거리니, 설레는 건지 어떤 건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자, 봄인이에게 찾아온 마법과도 같은 첫사랑의 순간은 어떻게 될까. 싱그럽게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누구나 살면서 설레는 감정이 찾아오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고,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반짝이는 순간은 계속되지 않는다.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란 없으니 말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랑은 살면서 꼭 필요한 마법과도 같은 감정이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든, 어떤 대상을 좋아하든,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한 존재는 성숙해지고, 앞으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기도 하고 말이다.

 

당차고 똑 부러진,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봄인이와 철없는 삼촌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하니, 다정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이들의 좌충우돌 일상이 어떻게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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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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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들에 비할 때 작가는 상대적으로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직업이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작가가 된다. 자유와 독립이 글쓰기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 되는 까닭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고 써야 하는 글을 쓸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 싫으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행복한 작가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작가와는 무관한 얘기다. 작가 역시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 할 때가 있다.              p.55~56

 

소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중에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원래 작가가 생각한 제목이 '광화문 그 사내'였는데 출판사에서 너무 장난스럽다며 난색을 표하자 '칼과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이번에는 너무 무겁다는 의견이 있어서 편집자가 내놓은 절충안 '칼의 노래'로 낙찰이 되었다는 사실. 김영하의 경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살 안내인'이라는 기괴한 직업을 지닌 이를 화자로 등장시켰는데, 제목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은 제목들도 많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폭풍우'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음과 광란>은 '맥베스'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아테네의 타이먼에 영향을 받았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어판 제목 '지나간 일들의 기억' 역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일부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제목에 얽힌 재미있는 배경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의 비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인 퇴고 과정 등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에는 작가와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파트 1,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단 문제를 다룬 파트 2, 고전과 현대문학을 잇는 각각의 주제를 다룬 파트 3와 작품 안팎으로 문학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트 4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문학을 탐독해온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광활한 세계가 네 가지 파트로 구분되어 담겨 있다.

 

 

 

작중인물이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례는 뜻밖에도 드물지 않다. 문학이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더 공감하는 예술 장르인 까닭일까. 작가들은 종종 강자인 작가 자신보다는 약자라 할 작중인물을 역성드는 작품을 내놓고는 한다.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자 연습 중인 연출가와 배우들을 '등장인물' 여섯 사람이 찾아온다. 이들은 어느 극작가가 자신들을 탄생시키고서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며, 연출가와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그들 앞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극을 '공연'하기까지 한다.              p.216

 

30년 동안 한겨레신문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해온 저자가 지금껏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기록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최재봉의 탐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개고하고 미공개 원고를 추가하여 엮었다. 제목과 문장, 작가의 생활과 작업실, 마감과 퇴고 등 작가들의 속사정을 살펴보고 독법, 문단, 해설, 문학상, 표절 등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 문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첫사랑, 모험, 복수, 팬데믹 등 고전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짚어보고, 작중인물, 부캐, 독자, 편집자 등 문학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맛본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탐닉'의 의미라면 문학의 이면과 비밀을 파고든 글들이 '탐구'의 의미로 '탐문'이라는 큰 제목 아래 함께 묶였다.

 

일주일이면 수십 권에서 백 권에 가까운 문학 도서가 책상 위에 쌓이는, 문학 담당 기자의 삶이란 어떤 걸까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신간들 속에서 읽고 소개해야 할 책들을 골라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해온 저자의 탄탄한 내공이 이 책 여기저기에 포진되어 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과 독자로서의 애정이 모두 담겨 있는 글들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문학 전문 기자의 날카롭고 집요한 30년 탐독을 아우르는 대장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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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엑스 마키나 - 인류의 종말인가, 진화의 확장인가
베른트 클라이네궁크.슈테판 로렌츠 조르크너 지음, 박제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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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아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러나 머스크가 자칭 트랜스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한 사람이 인공지능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화성 식민지화 계획을 세우며, 뇌와 컴퓨터 간의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있는 걸까? 기본 세계관을 알면 답은 간단하다. 머스크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 주제들이다. 다른 사람은 이 주제를 사색하지만 머스크는 실행한다. 그는 크랜스휴머니즘 의제를 구체적인 기업 정책으로 만들었다.           p.71~72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아이들의 친구로 인공지능 로봇이 생산되는 디스토피아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AI 제조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해 사회가 이 과학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계급 시스템을 재구성한 근미래는 어쩌면 우리의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에는 인간 복제를 통한 영생을 제안하는 종교 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복제된 주인공의 클론이 나온다. 우엘벡이나 이시구로는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말을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두 작품 모두 트랜스휴머니즘을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공상과학 분야 외에도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예술 작품들이 많아진 이유는 이것이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세 안팎이지만, 한때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있었을 정도로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그런데 10년이나 15년 더 사는 문제가 아니라, 기대 수명이 250년, 500년 이상 늘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바로 철학과 기술적 유토피아의 혼합인 트랜스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첨단 과학기술 운동을 말한다. 이 책은 의사이자 항노화 전문가와 트랜스휴머니즘 철학자가 만나 현재 및 미래의 기회와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인 ‘호모 엑스 마키나(Homo ex Machina)’는 ‘기계가 된 인간’이란 뜻으로 나노 기술, 유전공학 기술, 마인드 업로딩 등으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물론이고 정신적 능력까지 향상된 상태를 뜻한다. 그야말로 새로운 ‘진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것이 현 인류의 ‘종말’을 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과연 어느 쪽일까?

 

 

 

마인드 업로딩을 바라보는 이런 생각은, 인간의 성격을 디지털 매체로 옮기는 데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각 변형 단계에는 지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고 얼토당토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단계를 거쳐 초지능이 등장한다면, 이는 초지능의 개념뿐만 아니라 지능 폭발의 개념을 발전시킨 어빙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어빙은 초지능이란 주제를 훌륭하게 묘사한 영화 중 하나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언급한다.             p.360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80년 정도로 한정되는 인간의 수명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은 단연 트랜스휴머니스트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어왔고, 150년 만에 평균 기대 수명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렇게 평균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120세가 사실상 종착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0세가 충분하지 않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기대 수명을 250년 내지 500년, 심지어 1,000년까지 늘리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불멸을 향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하게 나이 들어야 하고, 유전자를 최적화해 생물학적 능력을 최적화하게 되고, 급기야 인간을 생물학적 신체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마인드 업로딩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의 시신을 냉동 보관하고 200~300년 후에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2억이라면 과연 할 만할까? 죽고 부활하거나 영원히 사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아이가 걸릴 수 있는 질병을 사전에 차단한다거나, 뇌의 어느 부분에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수학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어떨까. 또는 아이의 유전자를 변형해 수명을 30년 늘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나의 시신을 냉동 보존하고, 내 아이의 유전자를 진단해 편집하는 등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매우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아직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니 말이다. 나노봇이 혈관을 돌아다니며 몸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를 감시하고 암세포를 추적하며, 개인의 기억이나 정보가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다른 사람이나 기기와 융합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술로 최적화된 인간은, 기계 장치로 몸과 마음이 대체된 인간은 인류의 종말일까, 인류 진화의 확장인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나노공학, 유전자 조작, 인공 기술을 기반으로 한 트랜스휴머니즘이 가져올 미래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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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일생 - 오늘이 소중한 이야기 (양장본), 2024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최종후보작 오늘을 산다 1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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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인생론과 행복론이 담긴 두 권의 책이 '오늘을 산다' 시리즈로 함께 출간되었다. <누구나의 일생>은 30대 일러스트레이터 쓰유쿠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40대 싱글 직장인 히토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라 따로 읽어도 상관없지만, 같은 판형으로 디자인되어 함께 읽으면 더 특별할 것 같다. 두 권 중에 먼저 만난 것은 <누구나의 일생>이다.

 

쓰유쿠사 나쓰코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언니는 결혼해서 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만 한 집에 살고 있다.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화과자 가게의 하루코'라는 만화를 그린다. 주로 그날 도넛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라든가, 아빠와의 대화, 길을 걷다 마주한 풍경 속에서 힌트를 얻어 그리는 일상 만화이다. 시간적 배경은 ‘코로나 시기’로, 만 2년 동안이나 지겹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시절이다. 오미크론 변이가 어쩌고 하면서 팬데믹이 장기화되던 시점, 대체 이놈의 코로나가 끝이 나긴 할지 슬슬 짜증나기 시작하던 그 시기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많은 일상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고, 도시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으며,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달라진 일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을 하지 못하거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 사람들이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끼며 코로나 블루를 호소했던 것도 어느새 꽤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것도 어느샌가 끝이 나 버린다. 우리의 일상도, 우리의 삶도 그렇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허무한 날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 속에 따뜻함도, 뭉클함도, 서글픔도, 쓸쓸함도 다 포함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극중 쓰유쿠사의 아빠가 한 말처럼 인생은 제비뽑기 같은 구석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다면 당첨인 거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보다 죽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 분하고 허무하고 슬프다고, 쓰유쿠사는 자신의 일기에 쓴다.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산다는 건 가만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복선이라도 된 듯, 그녀의 일생은 어느 순간 막이 내리고 말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녀와의 추억으로, 그녀가 남긴 만화 작품을 통해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일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기대도, 절망도 없이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각자의 매일매일이 쌓여 자신만의 일생을 완성시켜나간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평생 죽을 때까지 자기만의 것'이라는 대사가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만의 삶,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일생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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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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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눈다면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은 후기의 은허 시대일 것이다. 은허에서는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동기와 대규모 인신공양제사 장소가 발굴되었다. 그런데 사실 초기 상나라의 기이한 흔적은 더 많다. 그들이 200년 전후의 기간에 창조한 성취는 그 후 1000여 년 동안에도 재현되기 어려웠다. 이것은 거의 진, 한 대통일 왕조의 기상에 접근할 정도였다... 초기 청동기, 말하자면 초기 상나라는 가히 '현대화'라는 기적을 이룬 시대였다.          p.169

 

1959년 어느 날, 상나라 백성의 거주지로 알려진 곳에서 기괴한 '무덤' 하나가 발굴된다. 정상적인 상나라 때의 무덤과는 아주 다르게 직사각형이 아니라 우물처럼 둥근 모양이고, 구덩이 안에는 그저 25구의 해골만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 후 1960년에 고고학 작업자들은 제1차 발굴에서 드러난 바닥 밑으로 50센티미터 깊이의 토층 아래에 모두 29구나 되는 제2층의 유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 1977년 제3차 발굴에서 19구를 더 발굴하고, 이 무덤이 총 3층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73구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굴자들인 응당 이것이 무덤이 아니라 인신공양 제사갱이라고 여겼다. 제사의 전체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재현하고, 세부 절차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 제사 현장에서 발생했던 장면을 복원하는 걸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의 묘사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다. 발굴된 시체를 통해 머리와 몸뚱이가 온전한 것은 얼마 되지 않고, 모두 시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시체의 얼굴이 위를 향하지 못하도록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꽤 긴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무덤의 평면도와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수천 년 전 그 날로 데려간다.  게다가 끝내는 제사를 바치는 이들과 요리한 이들이 시신을 나누어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입을 틀어막게 된다. 역사서에서 상나라 주왕은 잔악하고 포악하며 살육을 즐긴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러한 제사갱의 잔인한 행위가 기록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이 없었다면, 후세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책은 상나라의 잔혹한 종교문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원부터 제국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다스쿵촌의 발굴 보고서는 상나라 인신공양제사의 피비린내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인간 희생을 도륙하고 가죽을 벗기는 행위는 당연히 제사하는 이가 신에게 바칠 음식물을 가공하는 과정이지만, 제사를 바치는 이는 인간 희생이 사지가 잘려 나간 뒤에 몸부림치고 절망하며 항쟁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즐겼던 듯하다. 제사 지내는 것은 일종의 공공 의식이자 전례였는데, 이런 피비린내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은 칼과 도끼를 휘두른 사람뿐만 아니라 다스쿵촌의 귀족에서 평민에 이르는 많은 관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p.630

 

중국 상고시대 문명의 기원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시작해 상주 교체기 즉, 은주혁명까지 1000여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의 이 책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사람을 죽여서 귀신에게 바치는 제사인 상고시대의 인신공양제사에 대한 잔인하고 피비린내 묘사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제사에 관련해서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풍속에 대한 기억을 진즉 잊었고, 역사서에는 어떤 기록도 보존되어 있지 않기에, 고고학의 발견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런 상고시대의 잔혹함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저자는 '상나라'가 인신공양제사가 종교적 수준에까지 이른 광적인 카니발리즘 국가였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신석기시대부터 부족국가와 초기 국가 단계를 거쳐 하•상•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 초기 문명에 대해 완전히 다시 써내려간다.

 

한국 출판역사상, 중국 고대사에 대하여 이만큼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은 나온 적이 없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나라 주왕, 주나라 문왕과 무왕, 강태공, 주공 단, 공자는 조작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육과 인신공양제사, 식인 카니발리즘을 떠받친 거대 제국에 대한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 못지 않게 스펙터클하고 드라마틱하게 읽힌다. 천 년이나 지난 유골들의 사진과 발굴 스케치, 짧은 글에 드러난 묘사만을 근거로 당시의 시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마치 시체로 가득 덮인 황야를 홀러 걸어 지나는 공포의 여행과도 같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 궁금하다면, 3000년 동안 공백으로 덮여있던 역사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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