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캡슐 - 1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윤수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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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는 비닐 봉투에 들어있었다. 비닐에는 유성 펜으로 '포스트 캡슐'이라고 써졌고, 그 밑에는 '이 편지는 15년 전, 15년 뒤의 당신에게 배달하기 위해서 포스트 캡슐에 넣어진 겁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느껴보세요'라고 손 글씨로 적혀있었다. 고토 나쓰미는 위화감부터 들었다. 포스트 캡슐의 존재는 알고 있다. 아마 우체국인가, 아니면 다른 어디선가 기획한 것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몇 년이 지난 뒤 상대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빠 앞으로 온 편지는 그 포스트 캡슐에 들어있던 모양이다.            - '인사 편지' 중에서, p.112


도시코는 아들 시로가 다섯 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웠다. 생명보험 설계사 일을 하며 집을 자주 비워 아들에게 좀 소홀했지만 그만큼 더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기도 했다. 아들은 취직하고 3년 뒤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게 소식이 끊기고 15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아들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니, 남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가정 폭력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해 남자를 죽이고 자살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신문을 뒤져 보았지만 관련된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남자에게 찾아가 미리 경고라도 하기 위해 그 집을 찾아가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나쓰미는 비닐 봉투에 담겨진 편지를 받는다. 아빠에게 도착한 거였는데, 나쓰미의 아빠는 15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정이 있어서 회사를 떠난 부하 직원이 새 회사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사 편지인데, 대체 왜 15년 뒤에 도착하는 포스트 캡슐을 통해 보낸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왜 이런 편지를 보냈는지 답장을 보내 그를 만나보지만 의문점은 해결되지 않는다. 나쓰미는 15년 전 아빠의 사고에 대해서 엄마에게 물어보고, 그 죽음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알아본다. 당시에는 어려서 사고 경황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회식 후 집에 돌아오다가 급행전철에 치여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당시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나쓰미는 석연치 않은 뭔가를 밝혀 내기 위해 관계자들을 찾아가 만나기 시작한다. 과연 15년 전에 일어난 사고의 진상과 포스트 캡슐로 도착한 편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터무니없이 크다. 그사이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행복이나 불행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조용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15년 전의 과거가 집 안에 흙발로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받은 사람은 시공간의 틈새가 억지로 벌어져 불행했을 수도 있는 과거로 되돌려진다.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상자가 찢기고 지난날의 끈적한 고름이 배어난다. 행복한 과거면 괜찮지만 행복한 현재의 생활에 불행한 과거가 쏟아져 들어오면 당연히 불행해진다... 행복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불행해지고, 불행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한층 더 불행해진다.             - '마지막 편지' 중에서, p.353


‘도착 시리즈’, ‘○○자 시리즈’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오리하라 이치의 신작이다. <그랜드맨션>이라는 작품 이후로 신작은 거의 9년 만에 나온 거라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오리하라 이치하면 '서술 트릭'의 대표 작가로 유명하다. 서술트릭이란 글자 그대로 작가가 독특한 서술방식을 이용해서 독자를 속이는 기법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편향된 서술방식을 이용해서 독자들의 판단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계속 독자들을 속여오다가 마지막에 진상을 밝히는 형식이다.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 한 인물의 정체를 바꾸어 버리는 방식이 가장 보편화되어 있다. 인물의 성별, 나이, 직업 등을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시간과 공간을 애매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다수의 인물이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시간에 있다거나 다른 곳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예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걸려들 수밖에 없지만,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구성하지 않으면 치사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인데,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들은 제대로 된 서술트릭의 묘미를 보여주는 걸로 평가받아왔다. 이번 작품 역시 작가 특유의 서술 트릭이 빛을 발하는데, 연작 소설 형식으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종국에는 서로 이어지면서 숨겨진 묵직한 비밀이 드러난다. '15년 뒤에 배달되는 편지'라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중요한 것은 발신인이 포스트 캡슐을 통해 직접 편지를 보낼 생각을 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15년이 흐르는 동안 편지를 부친 사실 자체를 잊어 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과거로부터 나타난 편지 수취인의 반응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지를 받는 쪽도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로부터 도착한 편지가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서로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부딪치는 결말은 묻혀있던 지난 범죄를 드러내거나, 현재의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놀라운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오리하라 이치가 구축한 정교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잘 모아서 마지막 판을 맞추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자, 작가 생활 30년의 정수가 담긴 오리하라 이치표 서스펜스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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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고양이 클로드 3 - 우주 개의 방문 외계 고양이 클로드 3
조니 마르시아노.에밀리 체노웨스 지음, 롭 모마르츠 그림, 장혜란 옮김 / 북스그라운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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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행성에서 추방된 사악한 외계 고양이 황제와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이사를 와서 심난한 소년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외계 고양이 클로드>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1권에서 잔악무도하기로 이름난 고양이 클로드는 배신자의 반역으로 육식 거인인 '인간' 종족이 사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쫓겨나는 신세로 등장했다. 2권에서는 클로드가 다시 행성으로 돌아갈 날을 대비해 지구의 고양이들을 데려와 가르치며 고양이 특공대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실패했다. 우주적 재미로 무장한 3권에서는 우주 개가 등장해 클로드와 마주하게 된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개와 고양이는 크리트알 행성에서 함께 살았다. '황금기'라고 알려진 평화로운 시대를 지나 두 종족 간의 전쟁이 벌어졌고, 크리트알 행성은 지독히도 황폐한 곳으로 몰락한다. 이후 휴전 협정에서 고양이들에게는 리티르복스라는 행성이 영토로 주어졌고, 개들은 '개 성단'으로 알려진 자신들만의 태양계를 얻는다. 이렇게 개는 고양들이 가장 경멸하는 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클로드는 불청객 개를 두 마리나 마주하게 된다. 우선 소년 인간 라지의 부모가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집에 오게 된 할머니가 와플스라는 개를 데리고 등장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우주에서 온 개로 클로드처럼 인간 말을 할 줄 아는 존재였다. 게다가 자신을 우주 경비대 왈크스라고 신분을 밝힌 그 개는 클로드가 날려 버린 행성 '럼프즈'에 한 짓에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지구에 왔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긴커녕 개 성단으로 끌려가게 생긴 것이다. 




어리버리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소년 라지는 과연 고양이와 개 중 누구의 편에 서게 될까. 사실 라지는 왈크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을 홀딱 빼앗긴다. 떠돌이 개라고 생각해 집에 잠시 데리고 있기로 하는데, 공 물어 오기 놀이를 한 시간씩 함께 할 정도로 왈크스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클로드는 끊임없이 은하계 통신기를 통해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와중에 와플스와 왈크스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한편, 할머니는 라지의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냄새 강한 인도 음식을 잔뜩 준비한다. 안그래도 할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으로 인해 학교에서 난감했던 라지는 걱정이 많은데, 무사히 생일 파티를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라지는 왈크스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처음에는 외계 고양이더니 이제는 말하는 우주 개?'라고 당황하지만, 왈크스가 왜 지구에 왔는지 듣고는 고민하게 된다. 클로드가 우주에서는 사약한 황제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내 고양이'였으니 말이다. 과연 왈크스는 클로드를 체포할 수 있을까. 클로드는 개 성단이 아니라 자신의 행성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매번 스펙터클하고 요란한 재미를 선사하는 시리즈라 이번 작품도 흥미진진했다. 이 시리즈는 고양이 클로드와 인간 라지의 시점이 교차 구성되며 전개되는데,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어떻게 오해하고, 또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게다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영원한 고양이의 앙숙인 개가 등장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클로드는 고양이답게 인간을 자기 부하로 여기면서 부릴 생각이나 하는데, 왈크스는 개답게 인간을 주인처럼 섬기며 그의 말을 잘 따른다.  클로드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더 많은데, 왈크스는 주인인 라지에게 더 관심이 많다. 이러한 성향은 실제 개와 고양이의 성격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가 어떻게 우정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완전히 극과 극에 있는 다른 두 존재가 어떻게 어울리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점점 더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지구 어린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너무 유쾌하고, 웃기고, 재미있는 SF 동화! 외계 고양이 클로드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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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경계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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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나서 그랬다.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범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와다의 대답을 듣자 온몸에 열이 확 솟구쳤다.

"아카리 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죽을 뻔했다니. 게다가 아카리를 구하려다가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아카리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까지 안겨 준 셈이었다.         p.59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가득한 거리는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엄청난 인파로 가득했다. 20대 직장인 아카리는 생일을 맞이해 유명 레스토랑에서 남자 친구 코헤이와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취소 당한 참이다. 아카리는 속상한 마음에 그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가까운 케이크 가게에 가 보기로 한다. 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수많은 인파가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문득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그렇게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그날 약속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그냥 집에 바로 가기만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해치는 범죄가 벌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끔찍하고 무서워졌다. 그날 이후 아카리의 세상은 색을 잃어 버린다.  


그 사건으로 한 남자가 죽고, 두 여자가 중상을 입게 된다. 아카리는 여러 군데 깊은 상처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일주일 만에 겨우 깨어난다. 마지막 순간에 범인을 막아선 한 남자 덕분에 아카리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아카리를 구한 남자는 “약속은 지켰다고… 전해 줘….”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만다. 마지막에 남긴 그 한마디는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이 작품은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가 생명의 은인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미스터리를 풀어 가는 과정과 가해자의 배경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기자의 시점을 교차로 진행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특히나 자식을 낳아놓고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개인의 잘잘못을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한 행동만 보자면 부모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사정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난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범인한테 공격당해서 크게 다쳤잖아. 아키히로 씨는 목숨을 잃었고.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보면 세상에 나랑 상관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싶더라."

"그야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일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 아카리 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으면 좋겠어."

아카리 역시 그런 무서운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p.308~309


사회파 추리의 강자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다. 매번 묵직한 미스터리를 그려내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묻지마 범죄를 시작으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짚어 내고, 사건의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이 겪게 되는 것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여전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어 버리거나, 살 곳을 잃고 길거리에서 방황하거나,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절망할 수도 있다. 이 작품 속에서는 그렇게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삶이 의미없어지고, 바닥까지 절망한 상태라는 점은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모두 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을 비관하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누구나 크든 작든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도,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도, 좋은 직업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더라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교육도 없이 주위와 단절된 환경에서 학대 당하면서 살았다면,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그러한 환경이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죄의 경계를 넘지는 말아야 한다. 이 작품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시점에서 각각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죄의 경계'에 대해서 담담하게 질문을 던진다.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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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Special 오타니 쇼헤이 Who? Special
스토리랩 지음, 리버앤드스타 스튜디오 그림, 김양희 감수 / 다산어린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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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만화 캐릭터 같은 존재가 바로 오타니 쇼헤이아닐까. 그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선수', '다른 세계에서 온 피조물' 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계 유일의 투타 겸업 메이저리거, 한 시즌에 홈런 44개를 쳐서 리그 홈런왕이 되었고 투수로는 선발 10승을 세워 상징적인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한 오타니 쇼헤이. 게다가 웬만한 만화 주인공보다 더 잘생긴 외모에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험난한 프로스포츠계에서도 인성 좋기로 유명하다. 


지난 WBC를 통해서 국내팬들도 오타니 쇼헤이의 경기를 처음 보았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본의 WBC 우승 또한 오타니 쇼헤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오타니 쇼헤이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어린 시절부터 점차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만화로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했는지,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냈는지, 메이저 리그에 가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스토리가 쉽고, 재미있게 펼쳐진다. 


특히나 야구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들이 담겨 있어, 아직 야구를 잘 모르는 어린이들도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야구의 역사, 기본적인 야구 용어, 야구 선수에게 필요한 능력, 그리고 일본 프로 야구 NPB 리그와 메이저 리그 MLB에 관한 정보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오타니 쇼헤이하면 또 유명한 것이 바로 만다라트 계획표가 아닐까 싶다. 만다라트 계획표는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마쓰무라 야스오가 개발하고 디자이너 이마이즈미 히로아키가 발전시킨 사고 기법이다. 표의 중앙에 핵심 목표를 적고, 그 주변에 세부적인 목표를 적어, 활짝 핀 연꽃 모양처럼 아이디어가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다라트(mandalart)는 '목표를 달성하다(manda+la)'와 '기술(art)'을 결합한 단어로,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에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의 많은 것들을 실제로 이뤄 냈다. 


이 책을 구매하면 꿈을 이루어 주는 만다라트 계획표를 특별 부록으로 받을 수 있다. 오타니가 고등학생 시절 세운 뚜렷한 목표와 계획을 꾸준히 실천한 것처럼 직접 자신의 목표와 미래 계획에 대해 만다라트 계획표를 채워 보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오타니가 세웠던 만다라트 계획표도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살펴보면서 참고해 보자. 




오타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한결같음'이다. 이름이 알려지고,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운동장에서는 열심히 달리고, 밖에서는 바르고 선한 사람인 채로 매일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걸 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중요한 것은 과정,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재능은 단 하나뿐이라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말한다. 오타니가 말하는 그 '재능'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자신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재능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도 각자 자신만의 그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오타니 같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 어린이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오타니가 걸어간 길을 이 책과 함께 따라 가보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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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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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가, 하원의원으로 산다는 것의 이면. 염산 테러에 대비해 책상에 물을 챙겨놓는 것. 지역구민들을 만나기 전에 칼을 소지한 사람은 없는지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것, 손이 닿는 범위 내에 항상 비상 버튼을 두는 것, 현관에 추가 잠금장치가 필요한 것, 자전거로 퇴근할 때면 내 몸에 퍼지는 두려움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 미행당할까 봐 늘 겁에 질려 있는 것... 이 모든 것 중에 정상적인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p.108


전편에서 엠마는 자신의 지하 주방에 한 남성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은 의식이 없었고, 가파른 계단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였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그 남성은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스톡스로 평소 엠마와 잘 아는 사이였고, 신뢰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사실 마이크는 '우리 집에서 만나요. 4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엠마로부터 받았는데, 엠마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의 문자였다. 누군가 그녀인 척 가장해서 문자를 보낸 것이 분명한데, 상황은 점점 엠마에게 불리해져가고 있었고, 결국 그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엠마가 쌓아온 명예는 산산조각 나버린다. 찰나의 부주의로, 누가 슬쩍 한번 쿡 찌른 것으로. 엠마는 일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인기와 성공을 모두 거머쥔 여자였고, 늘 청중의 박스갈채와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명예가 산산조각 나는 게 어떤 것인지 배우는 중이다. 여러 신문에서 재판 시작 소식을 대문짝만하게 알렸고, 헤드라인들은 잔인했다. '하원의원이 연인을 밀어 사망에 이르게 하다, 하원의원이 999에 신고 못 해, 하원의원이 연인의 죽음을 두고 거짓 진술.' 등등 자극적인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직 교사이자 4년차 하원의원, 남편과 이혼 후 10대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일주일에 6일을 열여섯 시간씩 일했던 엠마는 대체 뭘 잘못한 걸까. 그녀는 명예라는 것이 가장 위태로운 무언가라는 것, 오랜 시간 쌓아도 단 몇 초 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과 명예를 절실하게 지키고 싶었다. 이 작품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엠마 웹스터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여성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기 때문이었고,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여성이 살인 혐의를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공황 상태였던 피고인이, 일어난 일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살인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p.235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내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을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한 두가지쯤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사랑이고, 재산과 건강, 정의, 도덕, 행복일 것이고, 우리의 주인공 엠마에게는 그것이 '명예'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술술 잘 읽히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반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이지만, 후반부의 반전 또한 백미이니 말이다.



넷플릭스 TV 시리즈 전 세계 1위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로 유명한 세라 본은 세라 본은 11년간 정치부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과 특권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써 왔다. 이번 신작은 실제로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온, 오프라인에서 많은 위협을 당하고 있어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고 밝힌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수많은 협박과 극단적 혐오 표현에 노출된 삶을 사는 그들은 집 현관에 잠금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테러에 대비한 패닉룸(대피소)를 마련하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그녀가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경험이 권력의 불균형과 공인의 자격, 대중과의 역학 관계 등에 대해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 주었다. 다양한 인물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입체적이고, 속도감있고 다채로운 스토리 또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법정 미스터리로도, 정치 드라마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니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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