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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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이 하는 일이 뭔지는 모두가 안다. 우리는 죽는다. 계속해서 죽는다. 덕분에 당신들이 죽을 필요가 없다. 아마 여러분은 사람들이 그 점을 고맙게 여기리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본인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건물 밖 인도에 서 있으면서 누군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럴 때 생기는 건 죄책감이다. 죄책감을 느껴서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은 익스펜더블이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여기게 된다.             p.51~52


봉준호 감독의 2024년 SF 기대작 「미키17」의 원작소설로 주목받은 SF 장편소설 <미키 7>의 후속작이 나왔다. 죽더라도 끊임없이 전임자의 기억을 갖고 복제인간으로 되살아나게 되는 미키의 일곱 번째 삶을 소재로 SF의 재미와 철학적 주제를 잘 담아냈던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궁금증을 자아냈던 니플하임의 토착 생명체인 크리퍼의 실체를 전면에 내세우고, 전작에서 채 마무리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완성한다. 


만약 내가 오늘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대신 살게 된다면 어떨까. 그 존재는 내가 가졌던 희망, 꿈, 두려움 등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외모 또한 똑같이 생겼다. 그는 자신이 나라고 생각하고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완벽하게 복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전날부터 계속 존재했던 내가 아니며, 겨우 하루동안 존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를 나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전 우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려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한 꾸린 탐사대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본질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준다. 익스펜더블은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존재로, 죽더라도 자신의 예전 기억을 갖고 복제인간으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 반스가 미키 1이 되고, 미키 2가 되고, 미키 7이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온 우주가 작정하고 당신을 엿 먹이는 게 틀림없다고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는 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샤가 나를 쳐다보았다. 호흡기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죽일 것 같은' 표정이라는 데에 일주일 치 배급을 걸겠다.

"너희는 폭탄을 안 가지고 있는 거네." 나샤의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웠다.             p.170


전편에서 겨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던 미키 7은 은퇴 후 농업부에서 일하며 여자 친구인 나샤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자신의 복제본을 보게 되는데, 미키 9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을 무렵 사령관 마샬로부터 호출이 온다. 미키가 2년 전에 숨겨 두었던 반물질 폭탄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미키는 반물질을 찾기 위해 니플하임의 토착 생명체인 크리퍼들에게 간다. 인류는 현재 48개의 행성을 점령하고 대략 60광년에 걸친 광활한 우주로 널리 뻗어 나가고 있었지만, 외계 지성과 상호 작용한 역사는 여전히 빈약했다. 그러므로 인류를 위협하는 지적 생명체와 소통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크리퍼라는 존재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와의 갈등으로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든다. 미키를 끊임없이 압박하는 사령관 마샬과의 반전 결말도 재미를 더해준다. 과연 미키는 사령관의 엄포대로 부활 없이 죽게 될 것인가, 혹은 니플하임의 지적 생명체 크리퍼와의 교섭에 성공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 


기억을 업로드하고, 몸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죽은 뒤에 다시 깨어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기억을 모두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방식이라고 해도, 매번 죽을 때마다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죽음을 무릅쓰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오늘 죽더라도 내일 다시 깨어나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어쩐지 삶 자체가 공허해질 것만 같다. 게다가 다시 깨어날 때마다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으로 일어나 자신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 외에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를 영혼 없는 괴물이거나 영생을 누리는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그렇게 여섯 번 죽고, 일곱 번째 생을 살고 있는 미키7이 미키8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던 첫 번째 이야기와 익스펜더블의 삶에서 벗어난 미키 7의 모험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 모두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게다가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도 너무 기대가 되는데, 로버트 패틴슨,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가 출연을 확정한 것도, 영화에서는 무려 미키 17이라는 점도 궁금증을 더해준다. 영화 <미키17>은 워너브라더스사에 의해 2024년 상반기 중 전 세계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영화가 궁금하다면 그 전에 원작을 먼저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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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대문을 열면
허은미 지음,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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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파란 대문이 보인다. 그 파란 대문을 와락 열고 들어서서 "다녀왔습니다" 인사 후 다락방으로 쪼르르 올라간다.  좁은 다락방에서 동생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장난감 놀이도 하고, 혼자서 책도 읽고, 작은 창문으로 동네 구경도 한다.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래들, 뒤노는 아이들, 아랫집 친구가 마당에서 목욕하는 모습까지 다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대문에 노란 종이가 붙는다. 큰길을 내고, 상가를 짓고, 아파트를 지어야 하니 집을 비우라는 통보였다. 그렇게 동네 친구들과도 작별하고, 뛰어 놀던 골목길과도 인사를 하고, 이사를 간다. 이제 파란 대문 우리 집은 어디로 갔을까? 




하얀색의 텅 빈 화면에 대충 연필로 쓱쓱 그려 넣은 듯한 심플한 계단, 그리고 신나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이미지가 산뜻하다. 하나, 둘, 셋, 넷,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뭐가 나타날까?


마당이 있는 집에는 봄이 되면 나팔꽃을 심는다. 버려진 화분마다 꽃씨를 심고, 햇볕 잘 받으라고 파란 대문 앞에 내다 놓으면, 곳 파랗고 여린 싹이 얼굴을 내민다. 꽃들이 하나, 둘, 셋, 앞을 다투며 피어나면, 나팔꽃 덕분에 골목이 다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옆집에 한 접시 가져다 주고, 속속들이 가족의 사정도 다 알고, 아이들과 친구이면 부모들끼리도 알고 지내게 되는 풍경은 지금은 보기 힘든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도시는 점점 더 삭막해진다. 




다락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동사니들, 마당 뒤쪽엔 장독대들이 놓여 있고, 빨래줄에는 빨래들이 널려 있으며, 한 켠에는 과일도 주렁주렁 열려 있다. 종을 울려 주는 커다란 벽시계, 다이얼을 돌리는 유선 전화기, 발을 굴려서 드르륵 박는 커다란 수동 재봉틀, 꽃무늬 커튼... 지금은 다 잊어 버렸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풍경들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작가가 살던 서울의 한 동네의 풍경과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많은 공감을 자아낼 것 같다. 


이 작품 속 아이처럼 대부분 태어나 자란 곳에서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을, 다시 한번 현재로 소환시켜준다. 




이 그림책은 7,80년대 서울의 동네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개발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아이의 시선으로 '집'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그려내는 작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터라 극중 아이처럼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 같은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그 시절 살던 집과 현재 살고 있는 동네의 분위기는 꽤나 다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고, 뛰어 다니다 각자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해졌지만 그 시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집은 그대로 있을까?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감 있는 드로잉과 하얀 페이지 곳곳을 물들이는 색감들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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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극 킴 스톤 시리즈 4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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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이 관심을 가진 건 밥의 손이 사라졌다는 수수께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무도 평범한 사람을 위해 싸워 주지 않는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미제 사건은 주기적으로 재검토되었지만 밥이 잔의 맨 윗부분에 크림처럼 떠오를 가능성은 낮았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무도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사건들이 언제나 우선순위에 오를 터였다. 밥은 '신원미상 남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검시관의 소유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134


너무 애정하는 킴 스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 나왔다. 올해 표지 디자인이 바뀌고, 제목도 원제에 맞게 달라져 1,2,3권이 재출간되었는데, 벌써 신작을 만날 수 있다니 부지런한 출판사의 열일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좋아하는 시리즈를 계속 번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늘 궁금했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 원서를 구매하곤 했던 터라, 이렇게 신작이 나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부디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킴 스톤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좋을 것 같다. 


앤절라 마슨즈의 <킴 스톤 시리즈>는 기존에 <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어>, <상처, 비디오, 싸이코 게임>이라고 번역되어 먼저 나왔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시리즈의 통일성을 주변서 시작되는 시리즈에서는 제목이 원문에 가까운 <소리없는 비명>과 <악마의 게임>으로 바뀌었고, 이북으로만 나왔었던 3권 <사라진 소녀들>도 함께 출간되면서 본격적인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시리즈가 무려 20권까지 출간이 된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19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시리즈 통산 누적판매 부수가 1300만 권이나 된다. 이 시리즈는 독보적인 캐릭터의 힘과 탄탄한 플롯과 전개로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데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을 번역한 강동혁 역자는 오직 이 시리즈를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을 정도인데,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첫번째 작품인 <소리 없는 비명>에서는 옛 보육원 부지의 유물 발굴사업을 배경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넘나드는 연쇄살인을 다루었다. 두 번째 작품 <악마의 게임>에서는 성범죄자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타인의 심리를 조정하는 소시오패스가 등장해 흡입력있는 스릴을 선사했었다.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소시오 패스라는 캐릭터가 킴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점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했던 작품인데, 이 두 사람의 대결 덕분에 킴의 끔찍한 어린 시절과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 조금씩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 <사라진 소녀들>에서는 희대의 납치극이 벌어졌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부모들의 절망과 공포를 통해 모성애와 부성애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밑바닥을 그리고 있어 더 묵직하고, 깊이 있는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부모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던 킴의 과거와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마 대니얼은 킴이 다시는 자신을 그토록 많이 내줄 수 없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킴이 가진 모든 것을 일에 바치는 까닭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킴에게는 이것이 안전하게 지내는 방법이었다. 그 무엇도 킴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킴은 눈물을 닦고 종잇조각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후회는 없었다.

세상에는 킴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p.333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죽음의 연극>에서는 킴 스톤과 팀원들이 '웨스털리 시체 농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법의인류학 및 그와 연관된 분야에 특화된 연구 시설로 시체의 부패 단계와 곤충에 대한 움직임을 연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킴은 연구 목적으로 기증되지 않은 새로운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옷을 완전히 갖춰 입은 여성이 뭉개진 얼굴을 한 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 속이 흙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여성에게 구타 당한 얼굴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킴과 팀원들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이어서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왜 굳이 이곳에 시체를 유기하는 것일까. 그들은 사건을 수사하며 이번 살인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심하게 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은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과거 회상과 현재의 수사 과정이 교차 진행되며 '죽음의 연극'을 향해 점차 다가간다.




냉소적이고 매사에 뾰족하며, 사회성이 떨어지고, 예절 혹은 사교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지만, 업무적으로 매우 유능한 킴 스톤이라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정신 병원에 있는 엄마, 어린 시절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는 죽은 동생, 그리고 수차례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던 기억 등 어두운 과거가 현재의 그녀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시리즈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수시로 드러나며 킴 스톤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배경이 된다. 이번 신작 <죽음의 연극>은 특히나 시리즈 중에서도 높은 작품성으로 이탈리아에서 반카렐라 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CWA 대거상 후보에도 올랐던 작품이다. 


사교술이니 외교력 같은 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발명한 거라고 생각하는 킴이 시리즈를 거듭해 나가며 한 걸음씩 나아지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고,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 상실, 학대 등 잔인함의 온갖 형태를 경험하며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에 굴복 당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추진력으로 삼아 정의 구현을 위해 나서는 모습도 너무 멋지다. 무표정하게 툭툭 내뱉는 말투에서 묻어나는 깨알 같은 유머도,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매번 복잡한 메뉴에 도전하는 무모함(?)도 어쩐지 사랑스럽다. 겉보기에는 무례하고 퉁명스럽고 뻣뻣해 보일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캐릭터 킴 스톤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독보적인 캐릭터의 힘과 탄탄한 플롯과 전개로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킴 스톤 시리즈! 아직까지 만나보지 않았다면, 이번 신작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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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카페 멋집 - 머물고 싶은 공간 훔치고 싶은 디테일
공상찻집 도라노코쿠 지음, 김슬기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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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한 이유만으로 가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카페 투어가 하나의 취미에서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 워낙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고 즐기기도 하지만, 친구와 만나 하루에 카페만 연속으로 두세 곳을 가본 적도 있고, 카페 투어를 위해서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 마신 적도 있다. 물론 여행을 가도 현지의 맛과 멋을 살린 카페는 필수 코스이다.  워낙 카페가 많기 때문에 인테리어나 분위기, 디저트의 퀄리티와 커피의 맛, 고유한 감성과 멋까지 선택을 위해 필요한 요소도 많다. 이번에 만난 책은 카페 덕후들을 위해 탄생한 ‘도쿄 카페 버킷리스트'를 담고 있다. 




카페를 찾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혹은 약속 시간이 남아서 기다리기 위해, 혼자 휴식 시간을 가지기 위해, 또는 작은 기분 전환을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서 방문하게 되는 현지의 카페는 어떨까.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아픈 다리를 쉬기 위해, 혹은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다르더라도 꼭 한 두 번쯤은 카페를 이용하게 된다. 기왕이면 그 도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에 가면 여행이 더욱 기억에 남지 않을까. 이 책은 도쿄의 곳곳에 있는 카페들을 통해 도쿄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말 종류가 많은 다양한 크림 소다 메뉴도 볼 수 있었고, 커피와 빵, 간단한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아침 세트 메뉴를 만날 수 있는 카페들도 있다. 단단하고 진한, 직접 만든 푸딩도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네 가지 수제 잼을 곁들인 잼 세트 토스트도 궁금해졌다. 오무라이스나 카레, 스파게티 등의 식사 메뉴를 함께 할 수 있는 카페들도 많았는데, 여행을 가면 크림소다와 함께 꼭 먹곤 해서 반가웠다. 다음에 도쿄에 가게 되면 이 책에 수록된 카페들부터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카페 투어를 위해서라면 하루에 커피를 세 잔 이상 마실 수 있다. 친구와 만나 하루에 카페만 연속으로 두 곳 이상 가본 적이 있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보는 데 30분 이상 써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찍기 좋은 카페도 있고, 시그니처 메뉴가 유명한 카페도 있고, 디저트가 정말 근사하게 플레이팅되어 나오는 카페도 있다. 이국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곳도 있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만으로 힐링을 안겨주는 곳도 있다. 카페를 간다는 것은 빡빡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나만의 작은 사치이자 소소한 행복이니 어디를 갈지 조금 더 고민해 볼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이 책에는 마치 동화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편안한 비일상을 약속하는 동화 속 카페, 유럽 어느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앤티크 카페, 달콤한 위로를 주는 아지트 같은 작은 카페, 유일무이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찻집,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클래식 찻집,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레트로 카페 등 오랜 시간 현지인에게 사랑받은 찐 카페 멋집과 맛집 75곳이 수록되어 있다. 


19만 카페 전문 인플루언서인 '공상찻집 도라노코쿠'가 정성껏 엄선한 리스트라 여행자들에게, 그리고 카페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물같은 책이 되어줄 것 같다. 카페에 관한 작은 에세이와 상세한 운영 정보, 커피와 곁들이면 환상적인 디저트 메뉴 추천, 그리고 저자가 정성껏 찍은 수백 컷의 ‘멋스럽고’, ‘맛스러운’ 사진들 덕분에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카페를 사랑하는 덕후라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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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마음
임이랑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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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괴로운 것들이 너무 쉽게 좋은 것을 집어삼키고 평안을 지운다. 수없이 많은 밤을 쌓아 올린 평안도 순간의 불안 앞에선 불구덩이 안에 던져진 종잇조각처럼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다. 정신이 망상과 싸우는 동안 몸이 백기를 흔들고 만다. '몸이 정신에게 지는 건 이렇게 초라한 마음이 되는 거구나'하며 슬퍼진다. 나약한 내가 강인하려는 나를 훼방 놓는다... 털어 버리고 싶다. 좋은 사람들의 눈빛만 남기고 쓸모없는 부스러기는 모두 사라져라.           p.42


식물을 가꾸고, 노래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 디어클라우드 임이랑의 신작이다. <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모두 너무 잘 읽었고, 팟캐스트 식물수다의 오랜 팬이기도 해서 임이랑 작가의 신작은 언제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챙겨보게 된다. 머리가 복잡한 날엔 자꾸만 식물의 세계로 도망치게 된다. 유해한 것들로 넘쳐 나는 세상 속에서, 식물만큼 무해한 존재가 또 있을까. 푸릇푸릇한 식물이 주는 그 에너지가 또 매일을 살아갈 힘을 준다. 임이랑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바로 '식물'때문이다. <아무튼, 식물>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는 지금도 가끔 펼쳐 보는 책이고, 팟캐스트 식물 수다를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야말로 힐링이 되는 목소리와 글이라 위로가 필요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항상 찾게 된다. 


이번 신간은 식물 이야기 대신, 개인적이고 내밀한 단상들을 담은 비밀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20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임이랑 작가가 지나 보낸 시간과 감정을 엮어 만들었다. 그녀는 2004년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개인 홈페이지 <감정공작소>에 솔직하게 기록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글들에는 뮤지션, 베이시스트, 작가, DJ, 식집사… 그녀의 다양한 직업 세계와 취향, 삶의 흔적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식물을 가꾸고, 노래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불안, 일상과 감정들이 담겨 있어 짧은 글들이지만, 그 무게와 깊이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임이랑 작가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식물들을 향해 쓴 글과 말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이면에 있는 많은 생각들과 배경을 알게 되어 더 공감되고, 더 친근해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요란하지 않게, 잔잔하게, 자극에서 가장 먼 방식으로 나를 입히고 먹이고 도닥인다. '그럭저럭 사는 시기가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당분간은 이대로 괜찮겠지' 생각하며.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싶은 내가 툭 튀어나와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를 때려 눕히고 일상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곤란해지기 전가지는 그럭저럭 살아 내기로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은 슬픔과 애통함을 건너 씩씩하게 살아갈 날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비슷하게 생긴 인생의 모퉁이를 이미 나는 몇 번이고 돌아 이 자리에 있다.             p.242~243


이 책에는 단정한 일상의 루틴, 생활을 리듬화하는 버릇, 물속에서 느끼는 고요한 감각, 18년 차에 접어드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살아가는 이유, 생각을 멈추는 연습, 일과 쉼의 밸런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 뮤지션과 작가로서 갖는 고민과 불안감 등 20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임이랑 작가가 지나 보낸 시간과 감정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고 있던 것들을 세심하게 붙잡아 반짝반짝 빛나게 보여주는 글들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가드너로 사느라 분주하고, 해가 지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는 임이랑 작가의 일상이 궁금했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순간의 결정들이 모여 행동의 패턴을 만들어 가고, 그 새로운 패턴이 나를 조금씩 달라지게 만든다. 그러니 변화한 모습이란 각자의 책임이라는 거다. 내가 먹는 음식과 자세, 듣는 음악과 걷는 시간, 읽는 책과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니 말이다. 좋은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멀리까지 가게 된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런데 그 '좋은' 결정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시라는 형식을 제외하고는 짧은 글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임이랑 작가의 글들은 툭툭 던져놓은 단어에도, 단상 같은 글에도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어 좋았다. 짧아서 술술 페이지가 넘어 가지만, 밑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보고 싶은 그런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는 '지금이 아닌 순간을 갈망하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지금에 만족하고 여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렇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야 나만의 방식으로, 오롯하게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뒤척이는 어느 날 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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