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세요, 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김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쨌든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 절대로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운이 극적으로 바뀌는 순간, 인생에는 그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우리 모두에게는 그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어요. 안테나의 감도는 기분이 좋은 때 가장 정확해집니다. 반대로 기분이 나쁘면 안테나는 작동하지 않아요.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는 바람에 대운을 놓친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바로 어제의 오카다 씨처럼 말이죠.” 

"기분이 나쁘면 운을 놓친다...?"             p.62~63


누구나 살다 보면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싶은 순간이 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슈이치 역시 지금 딱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보험회사에서 영업직인 슈이치는 최근 자신이 담당했던 곳으로부터 무더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내가 실망할 여행 취소에 딸의 등교 거부, 홀로 외로이 계신 어머니와 본가 처리 문제까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심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을 때, 다가오는 택시를 보고는 무심코 타게 된다. 그런데 택시를 세운 목적 조차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택시 기사는 슈이치가 가야 할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의아한 슈이치의 질문에 온화한 미소의 택시 기사는 손님의 운을 바꾸는 게 자신의 일이라며, 슈이치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장소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다. 혹시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속마음은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일 거라 믿고 싶어졌다. 그만큼 슈이치는 절박한 상태였던 것이다.


운전기사가 데려다 준 것은 등교 거부중인 아이의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학교였다. 아내에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가겠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십 분 거리를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담임과의 면담 내용은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전화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왜 바쁜 사람들을 오라 가라 했는지 슈이치는 화가 난다. 자신은 이런 식으로 한가하게 수다나 떨고 있을 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내에게 언성을 높이고는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 다음날 출근하고는 역시나 해지된 계약 건에 대한 부담 때문에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밖으로 나오고, 전날의 그 택시를 또 만나게 된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전날 면담 후에 선생님이 보험을 가입하게 되고, 이후 다른 선생님들이 줄줄이 보험을 가입하게 될 거였는데 슈이치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얘기였다. 운이 극적으로 바뀌는 순간이 와도, 화가 나 있거나 기분이 나쁘다면 인생을 뒤바꿀 만한 운이 찾아와도 깨닫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슈이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는 법은 없다고, 행운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만큼 운을 적립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데, 과연 슈이치에게도 운이 찾아오게 될까?



"아냐, 그게 아니지. 당신은 언제 운명을 역전할 기회가 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평생 코 꿰어서 일만 죽어라 하다가 끝내 좋은 구경 한 번 못 하고 눈을 감는 인생이 더 많다니까. 그런데도 언제인지도 모를 그날만 생각하며 버티라는 거요?"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죠. 그러나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그때까지 모아둔 운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              p.145


슈이치는 당신은 운이 좋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자신의 인생은 운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재수 없는 일들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매사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표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태도도 부정적이 되고,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마카세 택시(맡겨주세요, 택시)’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택시의 운전기사는 그렇게 되면 당장 기분 나쁜 자리를 벗어날 생각만 하기 때문에, 인생을 뒤바꿀 만한 운이 찾아온 순간을 알 수가 없고,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란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사용한다, 적립한다, 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저 사람 참 운이 좋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미리 적립해놓은 운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알게 된다면, 누구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운을 차곡차곡 적립할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안 좋은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오고, 되는 일 없는 슈이치의 삶이 과연 수상한 택시로 인해 달라질 수 있을지 기대하며 읽게 되는 작품이었다.


세상에는 늘 불만과 화로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거리를 다닐 때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사람은 곳곳에 떨어져 있는 행복의 씨앗을 눈치챌 수 없다는 것, 그들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그거 하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살다 보면 한번쯤 힘든 일을 겪게 마련이고, 그럴 때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그때까지 모아둔 운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고 싶어졌다. 자기계발서, 청소년 문학, 소설 등 여러 저서를 발표해온 기타가와 야스시의 이 작품은 일본 아마존, 독서미터, 북로그 등 독자 서평만 20,000건이 넘는 기록을 세우며 그 입소문으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치고, 막막하고 버티기 힘들 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는 작품이라, 지금 같은 시기에 읽기 딱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하신 말씀이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비행기가 사라질 수가 있어요?"

"그의 비행기가......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요."

그의 말은 마치 벽돌처럼 나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나는 어두운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충격 속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p.28


딘은 마이애미를 왕복하는 프라이빗 제트기 조종사고, 올리비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고 영화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제작하지 못한 상태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딘과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올리비아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현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리비아는 아이를 갖고 싶었고, 두 사람은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한 상태였다. 그날 아침, 딘의 상사인 리처드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고,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마이크 미첼의 비행 스케줄이 잡히고 만다. 올리비아의 가족들과 오랜 만에 갖는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지만, 딘은 일을 더 하고 싶었고, 올리비아는 마지못해 허락한다. 아기를 애타게 갖고 싶었던 올리비아는 그가 밤늦게 돌아올 것 같아 더 실망한 상태였다.


그리고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딘의 상사 리처드였다. 딘의 비행기가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일을 마치고 혼자 돌아오던 딘의 비행기가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거였다. 수색이 시작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비행기가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올리비아는 공포에 질린다. 날씨도 끝내주게 좋았고, 비행도 안정적이었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터라, 사람들은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비행기가 사라진 것이 처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제만 해도 딘과 요트 위에서 가족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지금쯤이면 그는 집에 있어야 했는데, 올리비아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아뜩해졌다. 딘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비행기 파편조차 남지 않은 남편의 실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올리비아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딘과 함께였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를 깊게, 열렬하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삶이었다. 지금의 나는 수년 전 그를 만났을 당시의 그 여자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가벼웠고 걱정거리가 없었다.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휩쓸렸었다. 그때의 나는 슬픔을 경험한 적도, 불신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런 감정들은, 그런 경험들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나서야, 딘이 사라진 후에야 생겨났다. 그게 바로 내가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이유다.            p.423~424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종과 남겨진 아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상당히 독득한 전개 방식을 선택했다. 남편의 실종 사건이 벌어진 1990년 마이애미의 현재 시점과 1986년 뉴욕의 이야기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뉴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멜라니라는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그녀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받게 된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교수가 추천해준 로빈슨 박사와 심리 상담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점점 그에게 개인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환자와 의사라는 관계를 넘어서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로빈슨 박사가 바로 '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 시점에서 제트기 조종사인 딘이 4년 전에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치료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심리치료사였던 딘이 올리비아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까지 과거의 스토리가 보여진 뒤, 이야기는 딘의 실종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으로 점프한다.


남편의 실종 이후 알게 된 임신 소식, 그리고 현재 올리비아는 3살이 된 딸 로즈를 홀로 키우고 있다. 더 시간이 흘러 전남친인 가브리엘과 두 번째 결혼을 해 다시 행복을 되찾게 된 올리비아에게 어느 날, 경찰이 찾아온다. 공원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1986년에 실종된 멜라니였다. 그녀가 당시 딘의 환자였고, 여러모로 미심쩍은 정황이 있어 그의 집을 찾아온 거였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남편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자, 올리비아의 완벽한 세계는 또 다시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수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드러나는 사실들은 점점 충격적인 진실을 보여주며, 사랑을 의심치 않았던 딘의 실체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이 작품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줄리안 맥클린의 작품이다. 서른 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린 로맨스 작가로 유명한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로맨스와 미스터리 장르를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게 만드는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겹겹이 쌓인 반전들을 드러내며 차곡차곡 서사를 만들고,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미스터리로맨스 장르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가 카드 게임의 고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세를 끝까지 밀고 나갈줄 아니 말이다.

“나는 시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일세.”

“당연하죠. 선생님은 미국 분이시잖습니까.”

“그럼 자네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포 군?”

“저는 예술가죠. 그러니까 무국적이라는 말씀입니다.”          p.108


1830년 10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젊은 생도가 밧줄에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날 새벽, 누군가가 시신을 옮겼고, 시신의 심장이 사라진 채로 발견된다. 신생 육군사관학교의 명예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비밀스럽고 신중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뉴욕에서 명성을 떨쳤던 은퇴 경찰 거스 랜도가 소환된다. 학교를 대신해 예민한 성격의 수사를 수행할 수 있는, 관련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일반 시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군 당국에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내용이 학교 밖으로 절대 유출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30년도 안 되는 신설 기관이었기에 어마어마한 반대파가 생긴 참이었고, 학교의 존재 자체에 반감을 품고 완전히 무너뜨릴 핑계를 찾고 있는 측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환된 랜도는 누가 젊은 생도를 교수형에 처한 것인지, 그리고 시신에서 심장을 가져간 사람은 누구인지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시신의 손에서 누르스름하고 물에 젖어 너덜너덜한 종이 쪼가리가 발견되는데, 그 속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수사를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랜도는 1학년 생도인 포를 만나게 되는데,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포는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르고 어딘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포는 "선생님이 찾는 사람은 시인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마침 생도들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해 제약이 많았던 랜도는 기민한 관찰력을 지닌 포를 자신의 조수로 쓰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일탈과 궤변을 질기는 독특한 성격의 포와 은퇴 경찰 랜도가 탐정과 조수가 되어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 





또 한 가지 내 눈에 뛴 부분이 있었으니 권두에 실은 인용구였다. 라로슈푸코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말했다는 Tout le monde a raison 이었다. 매티가 예전에 쓰던 프랑스어 사전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해석 자체는 식은 죽 먹기였다.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렇게 근사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끔찍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곱씹으면 씹을수록 나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어도.               p.655


이야기는 '거스 랜도의 기록'이라는 형식으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랜도와 포가 함께 수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암소와 양이 목을 베여 도살당한 끔찍한 상태로 발견된다. 게다가 사체가 잔인하게 난도질 당했고, 심장이 제거된 상태였다. 가축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고, 사관학교에서 벌어진 사건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사에 더 긴장감을 부여해주는 계기가 된다. 포는 시신의 손에서 발견된 쪽지에 써 있던 암호 같은 문구들을 해석해내고, 그것이 일종의 초대장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 밖에 그들은 죽은 리로이 프라이는 옆에서 말을 시키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말수가 없었고, 그러다 '질이 안 좋은 무리'와 어울렸다가 나중에는 종교에서 위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수사는 천천히 느리게 진행된다. 


실제로 에드거 앨런 포가 미육군사관학교에서 6개월간 복무했던 이력에서 착안한 이 이야기는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을 설득력있게 재탄생시키며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탐정과 조수로 만난 랜도와 포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독특한 우정을 보여주는데,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철저하게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관계였다. 수수께끼 같은 단서, 암호와 흑마술 등 포의 실제 이력과 작품 요소를 치밀하게 쌓으며 직조되는 이야기는 6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야 빛을 발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속도감에 익숙한 요즘의 추리, 스릴러 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를 느끼려면 느긋한 마음으로 작품을 즐겨야 할 것이다. 촘촘한 복선과 후반부의 반전 또한 백미인 이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영화사상 최고가 판권 계약으로 화제를 모으며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원작과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과거를 직접 목격한 것처럼 표현하는, 역사소설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루이스 베이어드의 이 놀라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나에게는 이것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그 자유를 확인받기 위해 책을 읽고, 나처럼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한편으론 좋아하는 마음을 말할 수 없어 다른 것으로 빗대어 말하고, 말할 수 없다며 숨어버린 시간들이 내가 소설을 읽고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펼치고 싶다. 그리 대단한 취향이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해나가고 싶다.               p.39~41


김희선 작가의 <밤의 약국>, 송승언 작가의 <덕후일기>에 이은 핀에세이 세 번째 작품이다. <제 꿈 꾸세요>, <없는 층의 하이쎈스> 등의 작품을 발표했던 김멜라 작가의 첫 에세이로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과 미발표된 원고를 묶었다. '열심히 읽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로 에세이 연재를 시작했다는 작가의 글은 굉장히 솔직하고, 내밀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에세이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거라면 자신은 그런 쪽으로 영 소질이 없다고, 그래서 자신은 에세이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서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에세이라는 그 어려운 산을 향해 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해준 건 곁에 있는 오랜 연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유년 시절부터 가장 원하는 유일한 하나에 모든 힘을 쏟았다는 작가에게 유일한 하나는 엄마였다가 친구였다가 지금은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랜 연인 안온과의 일상 이야기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 보면 안온이라는 사려 깊고, 다정한 인물이 마치 소설 속 캐릭터인 것처럼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소중한 대상을 대하는 서로의 태도에 담긴 마음이 와 닿았고, 충만한 행복과 따스한 안도같은 감정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글을 읽어 주고, 그 글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매우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든든한 지원군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와 연인의 관계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떤 기대나 포부를 담는 대신 그런 기대를 내려놓는 가벼움으로, 명사보다는 동사로, 문지르고 비비는 접촉으로, 긴장이 풀린 휴식, 몸과 몸이 닿았을 때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내가 뿌리내릴 수 있는 땅과 뻗어가고 싶은 하늘을 이름에 담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충만한 순간을 글로 쓸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세상에 내어 보일 수 있는 내 안의 사랑이니까. 내가 받은 선물이니까. 괜찮아, 멜라져도 돼. 그렇게 편한 얼굴로 말하고 싶었다. 부디 그 이름이 세상에서 마음껏 멜라지기를 바라며.                 p.305


젊은 작가상, 문지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서른둘 겨울에 처음 소설을 발표한 이후 6년 동안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미발표 원고까지 긁어모아 겨우 첫 소설집을 냈지만, 인터넷 서점 판매 지수가 도무지 오르지 않아 초조하고, 서글퍼하던 불면의 밤이 있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그 시간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는 지금은, 지난 6년간 발표한 소설을 합하고 곱한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다. 좋았어, 잘했어, 잘하고 있어,와 같은 말이 더 나아갈 힘을 얻게 한다. 작가 역시 좋아요, 라는 말을 직접 하는 건 잘못하지만, 그런 말들로 용기를 얻고,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삶에서도, 글에서도 안정을 찾은 작가의 일상을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면 환상이나 신비감이 사라진다고도 하지만, 작가는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마음을 되새기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마땅히 좋아할 만하다'라고 말하며 그 마음을 지지해주고 싶다는 말이 참 예쁘고도, 사랑스러웠다. 이 책 속에는 그렇게 작가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고백과 기록들이 가득하다. 비, 수박, 클래식 협주고, 남산도서관 4층 자연과학실, 그리고 온점. 그렇게 쓰인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어떤 정서와 반짝거리는 감정들로부터 보편성을 뛰어 넘는 진실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핀 에세이> 시리즈는 텀이 긴 편이라, 더 기다리며 읽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마법사
해도연 지음 / 구픽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나가 마법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다. 어떻게 마법이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에 대한 얘기도 많이 보고 들었다. 15년 전, 폭발의 중심지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폭심지에 그 시체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처음엔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시체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전신을 덮은 망토 같은 로브는 멀쩡했고, 시체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가 쥐여 있었다. 누가 처음 그 시체를 '마법사'라고 불렀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소문 속 모습을 생각하면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세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시체는 사라졌다.            p.32


2008년 서울, 크리스마스 저녁에 세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광화문 광장을 걷는 중이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골목마다 캐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봤던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 참이다. 세나는 이보다 더 완벽한 크리스마스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고, 크리스마스는 재앙이 된다. 폭발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도시의 지형 또한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15년 뒤, 2023년의 크리스마스 세나는 한 카페에서 기사를 작성하다 범죄 현장을 목격한다. 목격자들이 아무도 보지 못한 붉은 빛을 보았다는 이유로 ‘재난후대책위원회’ 요원들은 세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 구도심에서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이 마법사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는 거였다. 


사실 마법은 15년 전 의문의 폭발 사건 이후에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당시 폭발의 중심지에서 발견된 마법사의 시체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상당 부분이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거나 유실이 되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시체를 먹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말을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건물의 벽과 바닥이 갈라지게 하고, 칼과 총알을 막는다거나, 무엇이든 부술 수 있는 능력 등을 사람들은 '마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신체가 얼마나 많이 퍼져 있고, 얼마나 많은 마법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점차 마법사의 신체가 범죄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수습을 위해 재난대책위원회가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 받아 활동하게 된 것이다. 세나는 그들과 함께 범인을 쫓으며 15년 전 서울의 중심에 추락하며 모두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 충격적인 ‘그것’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다. 





"네. 며칠 뒤 용이 알에서 깨어났고, 말을 했어요."

"웃기지 마요.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그런 주둥이와 구강 구조로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어요. 영화를 볼 때마다 얼마나 웃기던지."

세나는 웃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용과는 달라요. 그리고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도 없고."

페이가 통로 벽을 두드리자 벽이 갈라지더니 양옆으로 움직였다. 통로는 곧 넓은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용이 있었다.               p.118~119


범인은 마법사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죽여서 마법사의 몸을 회수하고 있는 것이죠. 범인도 역시 마법을 사용하고 있기에, 그를 쫓는 쪽에서도 마법사의 신체를 활용해야 했다. 세나는 마법사의 각막을 이식해, 마법사의 눈을 가지게 된다. 마법사의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 마법을 볼 수 있고, 마법을 사용한 사람과 사용된 곳에 남겨진 흔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추적 능력을 사용해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수만 명이 밀집해 있는 종교 시설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무사히 빠져 나오게 되지만 또 다시 벌어진 참사의 용의자가 되어 버리고, 그 와중에 만난 대형 버스 크기 정도의 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용에 의해 마법사와 용의 대결에 대해, 15년 전 발생했던 폭발에 대해 듣게 된다. 용은 마법사의 부활을 막고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데, 과연 마법사를 부활시키려는 세력과 맞서 이길 수 있을지 이야기는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 작품은 용과 마법사가 뒤엉킨 도시라는 판타지 세계를 그리고 있는 해도연 작가의 신작이다. 마법사와 용의 처절한 사투라는 비현실적인 배경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 담백하면서도 따스하게 그려져 있다. 단 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던 주인공에게 모두를 구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자, 이 세계의 처음이자 마지막 마법사를 만나러 가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