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퀸의 대각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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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통과하며 벌어지는 두 천재 여성 캐릭터의 스파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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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 하드SF 단편선
위래 외 지음 / 구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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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어에 뛰어들자마자 하랑과 포니아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우주의 진짜 모습이었다. 토야와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과 물질을 경험했다. 작은 것과 큰 것, 가까운 것과 먼 것,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하나의 특이점 속으로 섞여 버릴 것만 같은 감각이 몸을 휘감았다. 하랑과 모니아는 우주복 너머로 전해지는 서로의 감각에 의존해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았다. 입은 있었지만 소리는 지르지 못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경이와 경외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걸 기억 속에 담았다.             - 해도연, '거대한 화구' 중에서, p.151


책과 서점에 관한 SF, 팬데믹 시대의 로맨스, 귀신날 호러, 고전 SF오마주, 판소리 SF 등 다양한 장르소설 앤솔러지를 선보이고 있는 구픽의 앤솔러지 신작이다. 이번에는 '하드SF 단편선'으로 여섯 명의 장르 소설 작가들이 각자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하드 SF'라 하면 과학 이론이나 개념 자체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르이지만, 이 책은 그러한 편견을 가뿐하게 넘어 선다. 하드 SF 장르를 그리 어렵게만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현실에 기반한 소프트 SF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의 추세와는 정반대로 과학적 개연성이 우선시되거나, 과학 기술에 대한 내용이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니 굉장히 신선했고, 읽는 내내 지적 자극으로 머리를 쓰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이야기들이었다.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무게를 두고, 탄탄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다루고 있는 정보의 양이 많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에티올? 조금만 더 가면 엔딩이에요."

그 손을 꼭 붙잡자 세상이 세피아 빛으로 물들었다. 살아생전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렇구나, 이 뒤의 일은 분명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야.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이야기야. 끝난 게임의 후속작을 위해 억지로 급조된 이야기가 아니라, 마땅히 그리 되어야 할 이야기야. 그 당연한 미래를 상상하며 나는 작게 입을 열어, 앞서 나아가는 프리베에게만 간신히 들리도록, 속삭였다.

"고마웠어, 프리베. 끝까지."        

"저야말로 고마웠어요, 에티올!"              - 이산화, '마법사 에티올의 트루 엔딩 퀘스트' 중에서, p.377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남세오 작가의 <벨의 고리>였다.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 중에 분량은 가장 짧은 데 비해 과학적 정보의 양은 가장 많았는데, 그럼에도 아주 흥미진진했다. 노벨상 시상식 도중에 일어난 작은 소동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날 노벨물리학상은 양자역학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그 수상자들을 정면으로 공격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시위 피켓을 들고 누군가 나타난 것이다. 그 문장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의 대표적인 말이었다. 시상식을 영상으로 지켜보던 입자 물리 연구소에서 일하는 길상우는 그 문구 아래 적혀 있던 숫자와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상상도 못했던 위험한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양자 얽힘 현상이니, 양자적 특성이 어쩌니 하는 물리학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지만 예상외로 술술 잘 읽혔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웬만한 스릴러 못지 않게 긴장감까지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위래 작가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해도연 작가의 <거대한 화구>, 이하진 작가의 <지오의 의지>, 최의택 작가의 <아니디우스 레푼도>, 이산화 작가의 <마법사 에티올의 트루 엔딩 퀘스트>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수 세기 후 우주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도 있고, 현재 시점으로 스위스 입자물리연구소를 배경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으며, 떠돌이 행성인들이 2만 년 동안 얼음 속에 묻혀 있던 우주선을 발견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있다. 제3차 대전 이후 지구를 말살하려는 달 지배 시스템도 등장하며, 인간의 두려움 속에 탄생한 기후조절 생명체와 게임 속 등장인물에게도 생물학적 원리가 작동한다는 흥미로운 가설도 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매력을 선보이는 작품들이라 어느 작품을 골라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하면서도 재미있는 SF 소설'이 궁금하다면, 하드 SF의 현대적 부활을 꿈꾸는 여섯 작가의 도전을 함께 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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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튜버
하마구치 린타로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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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미가 깔깔 웃으면서 대답하자 호카가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한테는 죄송하지만 중년이 유튜브를 시작해서 인기를 얻는 건 어렵지 않을까?"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이었다.

아빠 같은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게 늘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그 창피함이 폭발할 만큼 부풀어 올랐다.          p.63


아름다운 에메랄드그린색의 바다로 유명한 미야코섬, 열두 살 소녀 우미카는 이곳에서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아빠 유고와 살고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은 게스트 하우스를 우미카의 아빠가 이어받아 운영 중인데, 장기 숙박객인 겐키와 잇큐가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우미카는 언젠가 도쿄의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이 있다. 유고는 돈을 벌기 위해 개미핥기 하우스를 만들면 어떠겠냐는 식의 아이디어를 내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유튜버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고는, 갑작스레 유튜버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각종 엉뚱한 일을 벌이게 된다. 


화려한 파란색 슈트를 입고 첫 번째 영상을 올렸지만, 고대했던 조회수는 고작 5였다. 10만 조회수는 거뜬하다고 실컷 큰소리쳐 놓고 결과는 5회였던 것이다. 마치 암컷에게 차인 침팬지 같은 얼굴로 아연실색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 유고를 앞에 두고 모두 웃음을 참는다. 하지만 그 영상은 편집도 전혀 하지 않은 데다, 자막이나 효과음도 없었고, 섬네일도 없는데다 대체 무슨 동영상인지 알 수 없는 컨셉이었다. 금세 포기할 것 같았던 유고가 유튜버가 된 지 세 달이 지났고, 편집 기술도 꽤 향상되었다. 우미카가 학교에서 쓴 시를 촬영 중에 읽다가 들켜 아빠가 딸에게 뺨을 맞는 영상이 업로드 되고 나서 그게 반응이 좋아져 점점 우스꽝스러운 컨셉으로 영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끌게 되자 유고는 점점 위험천만한 일들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그는 대체 왜 유튜버로 유명해지려고 하는 걸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돈을 펑펑 쓰고, 아슬아슬한 컨셉으로 촬영을 하는 등 우미카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난 더 유명해질 수 있어."라며 멈추지 않는다. 극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독자들 역시 유고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려워보이는데, 대체 그는 왜 그러는 걸까.





그런데 마사키가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 그리고 유고한테 한 가지 사과할 일이 있어."

그 가라앉은 모습을 보고 유고는 흠칫했다. 아무래도 큰일인 모양이다.

"마사키 씨, 죄송한데...... 그건 제가 사서 냉동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몰래 드신 수준인가요?"

"그런 수준이 아니야. 상당히 중요한 일이야......"          p.259


이야기는 유튜버로 성공하겠다는 유고의 현재(LIVE)와 12년 전, 도쿄에서 무명 코미디언으로 지내던 유고의 과거(REC)가 교차 진행된다. 또한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과 섬 주민들의 일상 풍경이 어우러지며 잔잔하고, 유쾌한 웃음을 보여준다. 크고 작은 파도, 에메랄드그린색의 바다에서 흰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색의 변화, 수평선에서 뒤섞이는 파란 하늘의 농담... 우미카가 매일 그리는 바다의 풍경처럼 이곳 미야코섬은 아름다운 곳이다. 실제로 일본에 존재하는 섬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고향으로 삼고 싶어질 만한 곳이라고 하니 궁금해졌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미야코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섬의 풍경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극중 유튜브 홍보를 위해 전단을 뿌리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했느냐는 질문에 겐키가 호카에게 그 이유를 말했던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의미가 없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 실패하더라도 실패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입으로는 간단히 할 수 있는 말도,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실패해도 되니 도전하는 습관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겐키는 말한다. 실패해도 되는 게 어린이들의 최대 특권이라고 말이다. 해도 소용없다는 말은 안 해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 사실 무모해 보이는 것일수록 일단 저질러보자는 유고의 행동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을 온전히 납득하기란 어려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과거와 교차 진행되면서 점차 그의 행동에 대한 진짜 동기가 서서히 드러난다. 후반부에 이르러 유고가 그토록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밝혀지면서 반전 드라마가 펼쳐지며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이 작품의 백미이기도 하다.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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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구원 - 부서진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난 희망에 관하여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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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날은 다시 단순해진다. 나는 머물기에 더 나은 곳을 찾는 일을 그만둔다. 바탕에 깔린 애도의 소음 위로, 돌과 흙의 침묵이 나를 달랜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런 일과로 채워지고, 이 속에서 우리는 자란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손이 갈라져도 우리는 계속 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밤에 잠이 든다.         p.103


언젠가 잎이 다 말라 버려서 줄기만 남은 식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냥 버리자니 마음에 걸려 작은 분에 삽목을 해둔 적이 있다. 누가 보면 왜 막대기 같은 걸 화분에 꽂아 두었냐고 할만큼 볼품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도 확신이 없긴 했다. 하지만 몇 주 뒤에 그 작은 줄기 틈새로 초록빛깔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줄기가 올라오고 거짓말처럼 새 잎이 펼쳐졌다. 식물이 보여주는 생명력이란 이렇게 사람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는 기적을 보여주곤 한다. 이번에 만난 이 책 또한 자연의 생명력이 주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야생 정원을 가꾸며 씨앗과 열매를 얻고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 치유 받았던 10년의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난방비를 대지 못할 정도의 가난밖에 없었고,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갖게 되지만, 출산을 석 달 앞둔 어느 날, 아이를 함께 기다려주었던 언니가 강에서 카약을 타다가 익사했다는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깊은 상실감은 몇 년째 이어졌고, 아들은 겨우 세 살에 제1형 당뇨를 진단받는다. 이는 아이가 평생 인슐린을 맞으며 섭식을 제어하고, 온갖 치명적인 합병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그야말로 슬픔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모든 불행을 이겨내고자 새집으로 이사를 가 아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무엇을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씨앗과 묘목을 충분히 사올 수도 없었지만,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야생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황량한 땅에서 작은 초록 싹들이 땅을 뚫고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그들 가족을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 조금씩 데려간다. 




"왜 울어, 엄마?" 아들이 묻는다. 나는 죽은 식물과 버거운 기분을, 내 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 없음'의 이상한 형태를 설명하려고 한다. 아이는 우리가 기른 정원을 바라보면서 잠시 서 있는다.

"엄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해. 들어가자." 아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나는 아이를 따라간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랄 것이다.             p.403


분홍바늘꽃은 항바이러스, 수렴 효과가 있어 감염된 상처나 종기에 발라 독을 뽑아낼 수 있다. 큰갈퀴덩굴은 백돔 치료에 썼고, 화장수로 만들어 피부를 맑게 하기도 한다. 가시자두나무는 기관지 감염, 불면증 치료에 쓰고, 로즈메리는 베개 밑에 두고 자면 꿈을 기억하고 악몽을 쫓아준다고 한다. 마녀, 달, 여성 주술사의 마법과 연된된 잔쑥은 체내외의 다양한 통증 치료에 쓰이고, 개양귀비는 고통으로부터의 휴식과 위안을 준다. 서양민들레는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예지몽을 꾸도록 돕거나 마녀 퇴치 효과가 있다고도 여겨졌다. 붉은토끼풀은 항암 치료제로 쓰였고, 숲과 음지 등 어둠에서 가장 잘 자라는 도그바이올렛을 지니면 악령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여러 들풀들의 쓰임새와 그 유래에 대해 마치 사전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물론 약초학 전문 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각각 들풀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통해 실제로 섭취하는 것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면 과장일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잡초가 야생의 약초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삶은 늘 공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희망을 키워나간 이에게 구원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90가지 들풀의 쓰임새와 이미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아무 때고 다시 펼쳐서 정원을 거니는 듯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한줄기 희망이 필요한 당신에게, 야생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깊은 위안같은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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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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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노우라 사람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의 좁은 길을 일찍이 '망자길'이라고 불렀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온다. 망자는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 망자는 망자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마을 안 골목으로 들어가서 다음 희생자를 찾는다.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망자였다. 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해서 살아 있는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다. 따라서 멋모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할 우려가 있었다. 죽, 씔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p.52


도쇼 아이는 여름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집에 머물곤 했다. 열 살 적 여름, 해질 무렵 가져온 책을 다 읽어 책을 빌리러 다녀오는 길에 꺼림칙한 일을 체험하게 된다. 주변이 점차 어스름해지고 있어 집에 빨리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인 '망자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검은 형체가 앞쪽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점차 다가오면서 으스스한 불안감이 쌓이더니 믿을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죽었지만 살아 있다..... 살아 있지만 죽었다... 그런 모순된 존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망자와 마주쳤을 때는 망자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모른 척 스쳐 지나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과연 아이는 무사히 망자길을 지나갈 수 있을까. 


안노 가즈히라는 고교 입시를 앞둔 중학교 3학년 가을, 존 딕슨 카의 작풍에 매료된다. 사실 가즈히라는 겁쟁이였는데, 골치 아프게도 불가능 범죄를 좋아했다.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은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 것이 많아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하지만 신간은커녕 헌책방에 가더라도 다달이 받는 용돈만으로는 부족해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을 읽는 남학생 다케루를 발견하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되어 그가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를 하게 된다. 그는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고, 집도 상당히 부유했던 데다, 할아버지가 남겨준 장서 중에 탐정소설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가즈히라는 다케루의 집을 드나들며 존 딕슨카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케루의 가문은 십삼 년 전에 있었던 머리 없는 살인 사건과 깊이 관련된 가문의 먼 친척에 해당되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러다 머리 없는 여자 유령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즈히라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이윽고 깊은 숲에서 쑥 빠져나왔어. 할아버지 말로는 느닷없이 평평한 풀밭에 서 있었다나. 마치 또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것처럼...... 그리고 눈앞에 참으로 희한한 집이 있었어. 나무를 짜 맞춰서 만든 산막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양풍 가옥이었고 집 왼편 부분에는 2층까지 있었지. 그때 할아버지가 본 건 그 집의 측면이었어. 다만 그러한 집의 외관과는 다른 부분에서 아무래도 묘한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집 전체가 눈에 딱 들어온 순간, 이 집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나 봐. 하지만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는군. 왜 위화감을 느끼는지 이해하는데도, 뇌가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으스스함을 맛봤대.               p.186


이 작품은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새로운 시리즈로 명탐정 도조 겐야를 비롯해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생 도쇼 아이가 도조 겐야의 '괴이 민속학 연구실(괴민연)'을 찾아 그의 제자에게 괴담을 들려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이 논리적인 해결을 위해 괴담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괴민연'은 아이가 다니는 대학교의 도서관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조 겐야는 탐정소설과 괴기환상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전국을 돌며 민속 탐방을 하는 괴이담 수집가이며, 아마추어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특강을 하는 강사인데, 장서 보관용으로 연구실을 만든 것이다. 도조 겐야 본인은 거의 연구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학원생인 덴큐가 주로 자리를 지켰다. 괴민연에 불길한 뭔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아 이제는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이는 외할머니를 통해 도조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괴민연에 와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괴담을 비롯해 부탁받은 괴담을 들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덴큐가 겁이 굉장히 많아 무서운 이야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걸 은근히 즐기면서 덴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괴담을 무서워하는 조수와 괴담을 들고 연구실을 찾아온 여대생,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기에 '안락 의자 탐정물'처럼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렇게 혼령이 되어 나타나는 망자, 머리 없는 여자, 어린이 연속 괴사 사건, 정기적으로 작게 줄어드는 산속의 집, 강령술로 소환되는 목을 조르는 귀신 등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거듭 읽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싹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불길한 존재,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미쓰다 신조 특유의 상황 묘사들이 극한의 공포와 오싹함을 불러온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매혹적인 마성의 세계 '미쓰다 월드'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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