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의 신간이 나왔다. 모비딕에서 출간되었던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듬은 을유문화사의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이다. 역자는 동일하다. 단편선 〈주머니 이야기〉의 반만 수록했는데,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목차를 비교해보니 이 책이 맞다. 나머지 단편선,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도 을유에서 나왔으면 좋겠는데. 최근 차페크에 대해 떠올리곤 하던 차라 반가웠다. 정확히 말하면 카렐 차페크 읽기 계획을 세우다 말아버린 것이지만... 




한동안 카렐 차페크 하면 홍차가게를 떠올리곤 했다. 나는 줄리아 하트 덕분에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2집 《영원의 단면》 앨범명을 그의 작품 『평범한 인생』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정바비가 국문학 전공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노문학 전공이란 글을 읽었다. 제2전공이 국문학인가? 중요한 건 아니래도 생각해보니 가사라던가 많은 부분에서 그가 노문학도였음은 금세 알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싸이월드 시절에 미니홈피에 마광수 교수님 연구실을 찍어 올린 사진을 보았던 기억 때문인 모양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옆을 보니 그 분의 연구실이었다던가 하는 그런 글이었는데... 




2013년 재녹음 발매된 《영원의 단면》보다 초판본이 더 좋은 건 그 노래를 듣던 당시의 나를 추억하고픈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초판과 재녹음반의 차이는 ‘날카로운 첫 키이―쓰’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차이... 좀 더 부드럽고 노련하고... 조금 슬프고...




사인반이었던 것 같아 찾아봤다. 비슷한 시기에 구입한 《빗방울보들》과 《Miss Chocolate》도 어딘가에 있을 거다.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아니지만 이 노래를 링크한 것은 틴에이지 팬클럽의 프란시스 맥도널드가 피쳐링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엔 차페크를 읽고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다시 그의 이름을 본 것은 『로봇』이었나, 평전 출간 관련한 메일에서였나... 아무튼 광고를 보고였는데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문득 줄리아 하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뮤지션이 보았던 『평범한 인생』은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철학소설 3부작을 이룬다.




이 책들은 절판되었다. 이후 지만지에서 나왔지만 『평범한 인생』이 없다. 그래서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룡뇽과의 전쟁』을 읽을까 하다 관두었다. 도서관에는 있던데 찾으러 가기엔, 그런 열의까지는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도 좀 처지네... 잠시 반성... 그러다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을 읽게 되었고, 작가의 팬이 되었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튀는 것 같지만 차페크 덕분에 ‘로봇’이란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고, 구병모의 소설에는 로봇 소년이 나오니까 뭐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뭐... 그렇다는 거다. 뮤지션이 쓴 글에 대해서는, 이번 밥 딜런의 책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석원이든 정대욱이든 그냥 노래만 듣는 걸로... 가사도 시니까 가사만 읽는 걸로...


조금 더 기운을 돋우기 위해 제인 오스틴 이야기를 해보자.




시공사에서 〈제인 오스틴 전집〉이 나왔다. 나는 캐스 키드슨 특유의 플라워 패턴을 좋아하지 않는다. 열심히 표지를 선정한 출판사 직원들께 미안하지만... 비슷한 예로 이전에 키이스와 합작했던 민음사의 특별판도 별로였다. 그래도 전집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역자를 살펴보니 남몰래 좋아하던 분도 계시고 아마도 『레이디 수전 외』, 『맨스필드 파크』 정도를 사지 않을까 한다.




링크한 트레일러는 11월 24일 개봉 예정인 《러브 앤 프렌드쉽》이다. 제인 오스틴이 10대 시절에 쓴 단편 『레이디 수전』을 스크린으로 옮겼는데, 제목은 오스틴의 작품 『사랑과 우정』에서 가져 온 것이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레이디 수전이 딸과 자기 자신의 결혼상대를 찾으려는 내용인데 재밌는 게 딸보다 자기 자신이 우선이란 거다. 재산이 좀 부족할 뿐, 신분과 외모를 갖춘 레이디 수전의 남자관계도 복잡하다. 여튼 특이한 작품, 재기발랄함에 비하여 출판된 작품과 비교해 노련함과 마무리가 부족한 것이 흠. 영화 《엠마》에서 귀여운 중매쟁이, 민폐왕 엠마를 연기했던 케이트 베킨세일이 ‘레이디 수전’을 연기하며, 그의 절친 알리시아 역은 클로에 셰비니가 맡았다.




다음으로 살펴볼만한 책으로는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소설 『여름의 끝』이 있다. 트레버의 책을 출간일 순으로 배열해 보았다. 나머지 두 권도 집에 있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신간을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왜 이런 표지일까. 원제가 『사랑과 여름』이라서 그런가? 무슨 타르트 레시피북 인 줄 알았다. 『비 온 뒤』 표지도 무슨 하이틴 소설 같아서 지나칠 뻔 했었는데. 아무튼 이 작품은 윌리엄 트레버가 81세에 발표한 ‘장편’이다. 책소개를 살피는데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고통”(273쪽), 우리는 그런 고통을 자주 목격한다. 너무 자주...




로버트 해리스의 『유령 작가』 개정판으로 나왔고, 안드레이 마킨의 『프랑스 유언』과 교유서가에서 나온 『파시즘』은 추천. 동서문화사에서 세계문학 전집 표지를 갈음하여 다시 찍었나 보다. 그 중에서 『고요한 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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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1-1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이디 수전 외]는 저 전집으로 살까...싶어요. 저는 제인 오스틴을 막 좋아하진 않아서요. 그런데 레이디 수전은 궁금해요. [비온 뒤]는 계속 보관함에만 있고 막상 장바구니로는 안오는데, [여름의 끝]은.... 표지 때문에 사고 싶어요. 저는 저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안그래도 레이디 수전 제가 오늘 처음 알게 되어서 책 소개 보는데 저 트레일러가 딸려있더라고요. 덩달아 보고 왔네요.
아...살 책은 많고 읽는 속도는 한참 뒤쳐지고....어떡하죠? ㅜㅜ

유부만두 2016-11-14 18:09   좋아요 0 | URL
비온뒤 ...전 별루라 첫 몇십쪽 읽다 팔아버렸어요. 내용 기억도 안남요;;;

유부만두 2016-11-14 16:30   좋아요 0 | URL
또 댓...전쟁과 평화...우와아... 스럽게 대작 걸작!!!! 강추! (뜬금;;)

에이바 2016-11-14 18:2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 레이디 수전 책은 살 예정인데 소설이 기대된다기 보다는 역자 선생님들 성함을 보고 결심했고요. 사실 작품 자체엔 큰 매력이 없어요. 서간을 주고받은 형식이고 급하게 결말을 짓고... 영화도 크게 기대는 안 되더라고요. 저는 제인 오스틴의 팬이지만 습작은 습작으로... 여름의 끝 표지를 좋아하시는군요. 사실 이 글을 지난 주부터 몇 번을 썼다 지우고 고쳤는데요. 표지 관련해서 저는 신체의 일부가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단 결론을 내렸어요. 얼굴이나 상체는 괜찮은데 다리라거나 팔이라거나... 요즘 정말 책 안 읽히죠. 독서 뿐만이 아닌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힘든 시간들입니다. 저는 그동안 좀 아팠어서... ㅠㅠ

에이바 2016-11-14 18:26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비 온 뒤가 별로셨어요? 어쩌죠 전 아직도 안 읽었는데... 아일랜드 문학이라 더 애틋하게 느껴져요. 전쟁과 평화! 전 아직도 못 읽었답니다. 댓글 보고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사도 읽는게 쉽지 않네요. ㅠㅠ

2016-11-14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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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4 1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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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11-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도 제인오스틴 전집도 모두 갖고 싶고, 읽고 싶어요.
저는 <오만과 편견>를 2권 갖고 있지만, 꽃무늬를, 이런 형식의 잔꽃무늬를 엄청 좋아해서요.
오스틴 책 중에서는 <맨스필드 파크>가 제일 먼저 읽고 싶어요.
아니면, <러브 랜 프렌드쉽>의 <레이디 수전>을 먼저 읽게 될까요..
에이바님 방에 와서 장바구니는 엄청 무거워졌지만.... 아... 기대됩니다^^


에이바 2016-11-30 19:34   좋아요 0 | URL
레이디 수전 사 놨는데 읽을 길이 요원하네요. 요즘 책 안 읽혀요... 프랑스 유언, 남자들을 사랑해야 한다 등도 사 두기만 하고 아 읽히네요. 괜히 장르소설 쪽만 기웃거려요. 단발머리님은 잔꽃무늬를 좋아하시는군요. ㅎㅎ 레이디 수전 영화는 별로였어요.
 


안드레이 마킨의 『프랑스 유언』은 1995년 「메디치상」, 「공쿠르상」,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 3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안드레이 마킨의 개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1987년,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한 마킨은 2년 후, 첫 소설을 완성한다. 그런데 문제는 안드레이 마킨이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다는 걸 출판사에서 믿질 못하는 것... 아니 소련 사람이 불란서 말을 이렇게 잘 한단 말이야? 원고가 거절되길 여러 번, 소설가는 묘안을 낸다. 자기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것! 애초에 프랑스어로 사고하며 글을 썼기에 러시아어에 대응하는 단어나 표현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유령 번역가를 내세워 출판에 성공한다. 바로 『어느 소련 영웅의 딸La Fille d`un héros de l`Union soviétique』이다.

마킨이 택한 번역가 이름은 알베르 르모니에로, 프랑스인 조부모의 성을 가져왔다고 한다. 안드레이 마킨은 프랑스인이었던 할머니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웠기에 그에게 프랑스어는 마더 텅이 아니라 그랜드마더 텅이란다. 이런 자전적 요소는 『프랑스 유언』에서 찾을 수 있다. 안드레이 마킨은 1996년 프랑스 국적을 획득했으며 올해 3월에는 아시아 제바르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5번석)이 되었다. 시앙스-포와 국립행정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듯.

기사를 첨부한다. 안드레이 마킨이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합류하였다는 것, 짧은 인터뷰와 소개인데 유령 번역가 얘기가 나오는 것을 골라 왔다. 르피가로 기사는 마킨의 작품들 중 추천작 다섯 개를 꼽고 있다. 『프랑스 유언』을 시작으로 나머지 작품들도 우리말로 소개되기를 바란다.

http://bibliobs.nouvelobs.com/actualites/20160302.OBS5728/andrei-makine-un-ecrivain-russe-a-l-academie-francaise.html

http://www.lemonde.fr/culture/article/2016/03/03/andrei-makine-elu-a-l-academie-francaise_4876177_3246.html

http://www.lefigaro.fr/livres/2016/03/03/03005-20160303ARTFIG00261-andrei-makine-a-l-academie-ses-cinq-livres-indispensables.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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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Stitt feat. Hank Jones
- 「The Good Life」 Sonny Stitt & Hank Jones Trio (1980)

http://youtu.be/SR3mWWtDV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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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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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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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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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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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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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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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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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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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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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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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출간된 쉼보르스카 유고시집 『충분하다』 이후 『끝과 시작』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 출간일은 10월 11일. 알라딘에는 개정판 표시 및 소개글이 없어 출판사 도서 소개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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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쉼보르스카 시의 정수를 담은 『끝과 시작』 개정판

폴란드 현대시는 “단절되고 오염된 언어의 정화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범하면서도 순수한 시의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폴란드 현대시인에게 두 번이나(체스와프 미워시, 1980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 노벨문학상을 선사함으로써 이에 대한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그중 2007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이 번역을 다듬어 다시 출간되었다. 옮긴이는 2016년,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정규 시집 『여기』(2009)와 유고시집 『충분하다』(2012)를 엮어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끝과 시작』을 다시 검토하였고,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숙성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장을 매만져 개정판을 내놓았다.

쉼보르스카는 1945년 데뷔 이래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존 철학과 접목한 시를 꾸준히 발표하면서 대시인의 반열에 올랐으며, 1996년 여성으로서는 아홉번째, 여성 시인으로서는 세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나 미학 담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우주적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 중심적 논리와 인과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양 철학의 패러다임으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관계론적 · 상생적 사유가 엿보인다. ‘혼돈’과 ‘해체’ 속에서 사유의 조화로운 동참을 권유하는 미의식은 쉼보르스카의 시학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성과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서구의 비평가들은 쉼보르스카의 시를 낯설고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흔히 쉼보르스카의 시를 논할 때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이 인용되곤 한다. 그만큼 쉼보르스카는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동원하여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쉼보르스카의 시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총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선집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自選) 시집Wiersze wybrane』(2000)과 『순간Chwila』(2002), 『콜론Dwukropek』(2005)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옮긴이가 엄선한 주요 시 170편을 수록하고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에서부터 『끝과 시작』(1993)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시집과 기타 미공개 작품들 가운데서 시인이 직접 선별한 184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수록된 책이다. 평생을 시 창작에만 바쳐온 시인이 자신의 외길 인생을 정리하듯 손수 작품을 고르고 다듬어 집대성한 자선 시집을 토대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출간한 『순간』과 『콜론』의 시들을 함께 엮은 시선집 『끝과 시작』은 1945년 등단작부터 2005년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쉼보르스카 문학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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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작 『가시내』로 알게 된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었다. 꼬박 2년만인데, 2013년 「메디치 상」과 프랑스 8대 문학상 중 최고를 뽑는 「문학상의 상」을 받은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이다. 제목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물질적인 삶』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영화화하려는 카메룬 남자를 사랑하는 프랑스 여자의 이야기로, 두 사람 다 배우이고 배경은 헐리우드에서 프랑스로, 콩고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Il faut beaucoup aimer les hommes. Beaucoup, beaucoup. Beaucoup les aimer pour les aimer. Sans cela ce n'est pas possible, on ne peut pas les supporter. ―Marguerite Duras, 《La Vie matérielle》(1987)

남자를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그들을 열심히 사랑해야 그들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사랑할 수가 없으니까. 그들을 참아 낼 수가 없으니까.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 9쪽

『어둠의 심연』은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스크린에 옮겨진 적이 있다. 감독판으로 봤는데 나도 점점 미쳐가는 기분... 지금 막 다 읽은 『한 톨의 밀알』도 콘래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를 상호텍스트로 활용한 작품이라 한다. 나는 해설을 읽고서야 조지프 콘래드가 폴란드 출신인 것을 알았다.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줄곧 소스라치곤 했는데, 마틴 쉰의 젊을 적 미모가 정신을 붙들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때 마틴 쉰과 데이빗 테넌트가 좀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의 제목 자체가 어쩐지 좀 비극을 예고하는 느낌이다. 『가시내』의 주인공의 이름도 솔랑주인데, 시간을 헤아려 보니 동일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시내』가 70~8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솔랑주가 10살이었으니, 2008년이면 서른 일곱 정도? 사랑에 자신을 던지기에 충분한 나이다. 『가시내』의 솔랑주는 마리 다리외세크 본인의 일부도 들어 있으니 작가의 나이를 감안해도 비슷한 연령일 듯 하다. 같은 인물이든 아니든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에서 자란 여성일테니. 아직 작품을 읽지 않아 짐작만 해 본다.

조지 클루니, 기네스 팰트로, 앤 해서웨이... 왠지 헐리우드 밉상들을 꼽은 것 같지만 이 배우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책소개를 보니 오프라 윈프리도 나오고, 솔랑주는 장-뤽 고다르와도 작업을 한 모양이다. 『가시내』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순수하고 잔인하고 과감하고 고통스러우며 치기어린 사춘기, 자극적인 키워드로 여과없이 그려낸 아주 대단한 작품이다. 원제가 『Clèves』인데, 『가시내』의 주인공은 라 파예트의 『클레브 공작 부인La Princesse de Clèves』과 정반대의 여성이다. 두 작품 모두 좋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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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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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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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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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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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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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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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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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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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톨의 밀알》이라면 응국이가 쓴 소설을 말하는 거죠? 처음 알게 된 정보입니다. 향후 몇 년 안에 응국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것 같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어제 에이바님이 소개한 브레히트의 시가 보이지 않군요. ^^;;

에이바 2016-10-29 20:47   좋아요 0 | URL
응구기 와 티옹오 작품 중에서도 수작이라고 해요. 읽어보니까 서양 고전같은 느낌이에요. 막상 읽어보니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그 글은 삭제했습니다.

2016-10-29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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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0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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