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 : 사랑 사랑 뱅뱅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안나 드 노아이유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1913년의 안나 드 노아이유, 자신의 살롱에서〉
루마니아의 보야르 가문 출신인 안나 드 노아이유 백작부인은 1876년 11월 15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에는 안나-엘리자베스 비베스코 바사라바 드 브랑코방 공녀였다. 19살이 되던 1897년, 노아이유 7대 공작의 넷째 아들인 마티유 드 노아이유 백작과 결혼하였고, 백작위를 이어받은 아들은 안느-쥘 드 노아이유이다.
안나는 가정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했고 예술- 특히 음악과 시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다. 지성인이자 문인으로서 3편의 소설과 자서전, 많은 시 작품을 남겼으며 파리의 예술가들이 모이던 살롱 주인이었다. 주변인으로는 폴 클로델, 피에르 로티, 앙드레 지드, 마르셀 프루스트, 장 콕토, 폴 발레리, 프랑시스 잠, 오귀스트 로댕 그리고 콜레트 등이 있다. 1904년 12월, 안나는 다른 여성문인들과 함께 당시 발간되던 잡지의 이름을 딴 〈행복한 삶〉이라는 문학상을 만든다. 이는 여성문인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는데, 1회 〈공쿠르 상〉의 최종 후보에 올라간 안나가 탈락한 이유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은 1922년 〈페미나 상〉으로 계승되어, 그 해 프랑스어로 쓰인 산문과 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한다. 수상자의 성(性)과 국적은 상관이 없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은 수상작품 중 하나이다.
사교활동과 위스망스의 교류로 유명했던 뮈니에 신부는 그녀에 대해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마티유 드 노아이유 부인(Mme. Mathieu de Noailles)은 찬양을 좋아한다. 그녀는 십자가, 개선문, 나폴레옹이 되기를 원한다. 내게는 과했다. 감정의 분출 그 자체인 그녀는 지금이 아닌, 헬레니즘, 비잔틴시대에 태어나야 했다.〉 안나의 열정적인 특징은 다른 지인들의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장 로스탕은 《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집》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짓궂었다. 이 시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심리적 통찰력, 미르보의 신랄함, 쥘 르나르의 엄격한 명확성을 가졌다.〉 반면 옥타브 미르보는 그의 저서 《La 628-E8》에서 그녀를, 여사제에게 둘러싸여 〈살롱의 앵무새로서의 역할을 즐기는〉 우상이라며 비꼬았다.
안나 드 노아이유의 작품은 깊은 서정과 관능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과 열정, 낭만과 상실, 고독과 죽음들은 새로운 시각- 즉 여성의 시각에서 제공된다. 대중들이 열광했으며, 디오니소스적이라 불리는 그녀의 시는 찬양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살롱 주인이며 백작부인이라는 지위가 아니었다면 찬사와 인정을 받지 못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작품을 소비하는 독자층이 그 이유였다. 시인의 사후 인기는 사그러들었지만 작품에 대한 인정은 옳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안나 드 노아이유의 작품과 활동내용에 대한 인정은 다음과 같다: 벨기에 왕립 불문학 아카데미의 첫 여성 회원(33번석: 이후 콜레트와 장 콕토가 계승), 첫 여성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3급 훈장), 192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그랑 프리 수상 등.
그러나 따르는 비판처럼, 안나 드 노아이유는 사교계의 중심에서 문인 혹은 예술가들의 〈뮤즈〉 역할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복잡한 관계도에서 중요한 인물은 단연, 모리스 바레스이다. 1903년, 안나의 살롱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으로 보인다. 모리스 바레스는 안나의 지성과 우아한 화술에 마음을 빼앗긴다. 사랑에 빠진 바레스는 아내와 함께 앙피온에 있는 백작 부부의 빌라에 초대되어 함께 휴가를 보낸다. 몇 달 후, 바레스 부부는 백작 부부의 이탈리아 여행에 우연인 척 합류하는데, 이 때 백작은 이 관계를 알아차린다. 두 사람의 우정에서 안나는 정신적인 교류와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정신과 육체의 합일에 대한 바레스의 열망이 더해진다. 그는 안나의 살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1906년 바레스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이 되는데 1907년, 전통적으로 전임자를 칭찬해야 할 취임연설에서 안나에 대한 감정과 우정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한다. 세 달 후, 안나의 시집 《눈부심》이 출간되고 《스파르타 여행기》를 쓰기 위해 여행 중이던 바레스는 시집의 헌정사를 쓰기 위해 비용을 들여 파리로 돌아온다. 백작은 그의 헌정사에 반대하고, 아내를 압박해 요청을 거절하게 만든다. 이를 핑계라 생각한 바레스는 화를 내며 이별을 고한다. 이별 후 안나의 비통한 심정을 담은 시는 1913년에 발표한 《산 자와 죽은 자》에 실린다. (두 사람의 육체적 관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나는 살롱에서 공통의 친구들로 이어진 바레스의 조카- 샤를 드멍주와 가까워진다. 다른 이들과 같이 드멍주의 숭배는 보답받지 못한다. 1909년, 그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권총 자살을 하고 바레스는 모든 책임을 안나에게 돌린다. 1912년, 백작 부부는 우호적으로 이혼하고, 1913년 안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바레스에게 보낸다. 두 사람은 1917년에야 서신을 주고받게 된다. 바레스 55세, 안나 41세였다. 1923년 그가 사망하자 깊은 절망에 빠진 안나는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쓰고 이는 《고통의 명예》에 실린다. 1933년, 안나는 전 남편인 마티유 드 노아이유 백작 앞에서 숨을 거두고, 파리의 페르 라 셰즈에 묻혔다. (스캔들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서신을 참고)
XX
그것은 있었지만 영원 속으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에
상실과 갈망의 우주인 나는
나에게 지친다
너의 부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는 헛되이
망각, 희망, 무의식을 추구한다.
79쪽
1927년 출간된 《고통의 명예》 중
바레스와의 스캔들은 죽음의 이미지를 다룬, 《고통의 명예》에 실린 시들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 시들을 단순히 사랑의 이별에 대한 고통이라고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안나의 나이 10살, 아버지를 잃고 그녀는 〈죽음〉을 알게 된다. 안나는 빅토르 위고가 익사한 딸에게 바친 작품을 읽고, 예술을 통해 죽음의 극복과 투영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사랑 사랑 뱅뱅》에는 사랑에 대한 시 또한 많이 실려있다. 안나의 작품은 솔직한 감정의 발산을 통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번역노트에 소개된 〈이미지〉를 참고하길 바라며, 함께 실린 〈아리아드네의 비탄〉를 소개한다.

〈낙소스 섬에서 아리아드네를 발견한 디오니소스〉, 1635년 경 르냉 형제. 오를레앙 보자르.
아리아드네의 비탄
자두와 초록색 배를 떨어뜨리는
바람
달을 뒤흔드는 바람
바다를 휘모는 바람
부수고 파괴하는 바람
차가운 바람
바람아 불어라
혼란스러운 내 가슴을 휘몰고 가라
투명한 바람아
풀잎 사이에
내 가슴에 불어라
쓴 수액과 함께 내 가슴을 뽑아라
아! 어서 성큼성큼
폭풍우가 왔으면
머릿속에서 맴도는
고통을 앗아갔으면
아! 어서 바람이 불어와 떠날 때
그 속에 퍼덕이는 문처럼
육중한 내 가슴을 실어갔으면!
바람아, 내 가슴을 실어가
달과 숲과 짐승
하늘과 어둠과 바다에
그 파편들을 집어던져라
내가 사랑했던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다시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도록
100-101쪽
1902년 출간된《세월의 그림자》중

〈미노타우르스에 대적하는 테세우스〉, 1826년 쥘 라메이, 파리 튈를리 공원.
아리아드네는 크레타 미노스 왕의 장녀로,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되어 그가 미노타우루스의 궁에 들어갈 때 실타래를 건네준 인물이다. 괴물을 처치하고 나온 테세우스는 그녀를 낙소스 섬에 버려두고 간다. 남겨진 공주는 연인이 돌아오길 기도한다. 그녀의 정성에 감동한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아내로 삼고 권능을 부여한다는게 신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노아이유의 아리아드네는 시 제목인 〈아리아드네의 비탄〉과 달리 슬퍼하지 않는다. 연인이 돌아오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자연의 강력한 힘(바람, 폭풍우)에 호소하여 마음의 고통, 파편을 제거하길 바란다. 〈혼란스러운 내 가슴〉, 〈고통〉, 〈내가 사랑했던〉 과거를 떨쳐내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현재 삶을 인정함으로써 새롭게 시작하는, 주체적인 삶을 의미한다.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영민하게 구혼자를 물리친 페넬로페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상적인 아내로 그려진다. 이와 비교하면, 수동성을 탈피하려는 아리아드네는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시각의 전복은 다른 시 〈이미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감정에 솔직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은 기존의 가치를 고수하던 이들에겐 도발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작품이 실린 《사랑 사랑 뱅뱅》은 안나 드 노아이유의 작품을 처음으로 번역한 것이다. 프루스트를 비롯한 문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의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은 안나 드 노아이유를 만나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