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왜 끝없이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일까? 레어티즈처럼 복수하겠다며 무대포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포틴브래스처럼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타입도 아니다. 아마도 햄릿이 현대적 인물이라 일컬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 햄릿은 덴마크의 위대한 지배자 햄릿 왕의 외아들이다. 용맹하고 존경받는 왕과 아름다운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덴마크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서른 살 왕자는 정치적 세력이 전무한 학자 타입으로 보인다. 극 초반에서 그가 여태 대학에 있었다 하며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를 뒷받침한다.


작고한 햄릿 왕은 왕비 거트루드를 깊이 사랑한다. 그 생전에 이미 동생 클로디어스와 간통해왔던, 부도덕한 아내를 여전히 아낀다. 어머니에게 ‘숙덕이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하십시오’ 일갈하는 아들에게 나타나 아비의 복수를 하되, 어미를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아 재혼한 무정한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러겠냐는 말이다. 햄릿은 선왕의 깊은 사랑을 봐 왔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어찌 장례식 후 너무도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 크나큰 배신감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편을 사별한 아내는 재가를 하면 안 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햄릿은 자신의 부재중 일어난 급격한 변화에 휩쓸린다. 게다가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라니! 이 근친상간적이며 왕위찬탈을 연상시키는 결합이라니. 클로디어스에 아부하는 신하들, 연회를 벌이며 즐거워하는 모습들……. 덴마크는 썩었다는 햄릿의 자조에는 클로디어스라는 좀, 병증이 있다. 보라, 어머니에 대한 혐오를. 상(喪) 중인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엘시노 궁을. 햄릿은 염세를 느끼고 자살 충동에 이른다.


금빛 갑옷을 입고 나타난 유령은 햄릿에게만 말을 건넨다. 유령의 말은 햄릿에게만 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선왕의 이야기, 그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고자 하는 ‘관심’을 가진 이는 왕자 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햄릿은 정치적 세력이 없는, 대학에서 공부만 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의 지성은 현 상황에 대한 회의를 낳는다. 유령의 말이 진실인가? 진실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아, 나는 겁쟁이로구나. 살해당한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신세타령만 할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구나.


그것이 바로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햄릿은 죽음에 집착하고 있다. 생에 대한 혐오로 염세와 우울이 깊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에 대한 혐의를 확증한 이후에도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는 것- 그것은 결국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데 있다. 클로디어스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부패는 그를 죽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능력 밖 일이기 때문에, 고민하다보면 자꾸 분별심이 끼어들어 핑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신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려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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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3장, ‘무대에 올린 셰익스피어’에서는 『오셀로』와 『뜻대로 하세요』를 통해 인종, 젠더와 성별 문제를 탐구한다. 영화 『폭풍우』에서는 종래 비평적 관심사였던 식민주의가 아닌, 감독들이 창조자로서 비전을 실현하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2부에서는 코미디, 사극, 비극, 로맨스라는 장르적 분류를 통해 극을 분석하는 비평들을 소개한다. 매커보이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그 시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문서, 시대적 산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에서, 여성에게 강조되는 미덕은 침묵과 인내의 복종이다. 초서의 그리젤다는 미덕을 시험당하며 남편이 주는 모욕과 고통을 온순하게 받아들인다. 로마 전설과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루크레티아는 강간을 당하였으나 가족의 명예를 위해 남편과 아버지 앞에 자결한다. 이런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권력은 물리적 힘에 기인한다. 군사적, 법적 권력은 온전히 남성의 손에 있었다. 여성에게는 이에 맞설 수단이 없었으나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었다. 즉 여성의 말하기는 요구와 소망을 드러낼 유일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의 말하기는 통제될 필요가 있었고, 통제되지 않은 여성들의 말은 잔소리와 불평으로 여겨진다. 남성들은 여성의 본성을 무절제하다고 여겼고, 성적으로 난잡한 것과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았다. 이는 여성의 성이 그들에게 강력한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정절을 확신할 수 없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자녀를 의심하게 되고 이는 적장자 상속 체계를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남성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핵심적 부위인 여성의 입과 질은 반드시 억제되어야 했다. (『겨울 이야기』의 레온테스는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란 의심한다.)

이념Ideology이 아무리 강력하고 지배적일지라도 그것은 규칙이 아니며, 모든 계층이나 사람들에 걸쳐 적용되는 엄격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이념은 사회의 통상적 행동을 보여주는 ‘규범’의 신화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만약 가부장제가 강력했다면- 잔소리꾼, 극 중에서 권력과 권위를 가진 강력한 여성 파울리나가 등장하는 『겨울 이야기』가 대중 앞에서 공연될 수 있었을까?

『폭풍우』에서 식민지를 건설할 땅과 여성의 신체가 연계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 여성의 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리처드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후기 극에서 남성은 여성에 의해 주관되어 왔던 수태, 임신, 출산을 통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지배는 신비스럽지만 필수적인 ‘타자’인 여성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에 바탕한다. 이 지배는 당시 사회에 작동하던 계급, 문화, 인종에 의한 지배의 견본- 불안정한 지배였다.

복수를 정당화하는 셰익스피어의 일부 대사들은 태생, 인종,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일반적인 육체적 특성을 지녔으며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행위도 정당화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샤일록은 자신이 기독교인과 다를 것이 없으며, 그들과 똑같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한다. 『리어 왕』에서 에드먼드는 서출인 자신의 인성과 적장자인 에드가의 인성에 별반 차이가 없으며, 자신 역시 아버지의 상속 재산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오셀로』의 에밀리아는 샤일록과 에드먼드처럼 인간의 공통된 신체 특징을 내세워, 여성도 결혼에서 평등한 욕구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혼은 동등한 두 사람의 계약이며 계약의 위반에는 제재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에밀리아는 남편의 부정은 ‘오락’으로 여겨지나 아내의 부정은 죽어 마땅하다 여겨지는 근본적인 불공평을 지적한다. 이는 작품의 핵심이고 오셀로의 사고방식이다. 키어난 라이언은 에밀리아의 이 대사가 놀라운 추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사고방식에 따르면, 데스데모나가 실제로 카시오와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오셀로의 아내 살해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데스데모나는 부정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정말로 외도하는 아내들이 있느냐 묻는다. 이에 에밀리아는 외도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의 복수를 정당화하며 여성의 평등과 관리를 주장한다. 이러한 인물의 등장은 셰익스피어가 ‘당시에는 급진적이던 생각’에 동조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복수는 사회의 부당한 서열에 정의와 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에 대한 배경 설명과 세대별로 달라지는 비평은 좀 더 깊이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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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 나오다니? 그것도 민음세계문학으로?! 너무 반가워 책 소개글을 읽는데 사실 4부작이라 한다. 그동안 3부작으로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나온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표지 덕분에 그 순서로 3부작이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되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듯 하다. 이제야 알게 됐지만 당시는 독일어 중역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헝가리어를 한국어로 옮겼다! 2016년 3월 타계한 임레 케르테스(헝가리식으로 읽으면 케르테스 임레, 우리나라처럼 성이 이름 앞에 온다) 는 유대계 헝가리인이다. 그는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거친 자신의 체험을 글로 옮겨 그 실상을 고발했다. 그가 끌려간 나이는 열네살, 소설에서 그를 반영하는 캐릭터 역시 열네살 소년 죄르지이다.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십년도 전에 읽은 글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처음 읽은 수용소 문학이었기 때문에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온몸이 덜덜 떨려서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랬다. 『좌절』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기도』까지 모두 번역될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정말 좋은 작품이니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





민음사 세계시인선이 리뉴얼된다. 열다섯권이 나와 예약을 받는 중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 찰스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그리고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를 담아두었다. 번역가의 이름을 살펴보니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에도 눈길이 간다. 순서대로 강은교, 김화영, 황소연, 김준현, 김경주이다. 시인이자 작가이자 번역가인 분들... 기대 중이다.





또 기대하는 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올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다. 문동판 『안나 카레니나』의 번역가 박형규 교수님 역이다. 총 4권이래서 더 기대된다. 준비하는 마음으로 연초에 방영한 BBC 드라마도 보았다.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를 연기한 폴 다노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나온다. 일단 캐스팅되었다고 밝혀진 배우들이 대단한데 그 중에서도 폴 다노의 연기가 아주 기대된다. 폴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은 역할들을 맡아 왔다. 배역들만 보면 도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쟁과 평화》의 피에르는 선함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원작이나 다른 영화도 보지 않아 캐릭터 해석을 잘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연기는 잘 한다...


폴의 영국식 악센트가 우아하게 스미는 게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예로 《스윗 프랑세즈》의 미셸 윌리엄스에게 놀라기도 했는데, 일단 이 드라마의 다른 미국인으로는 《X-파일》에서 스컬리 요원으로 알려진 질리언 앤더슨이 있고, 질리언은 어릴 때 영국에서 살기도 했지만 영국인으로 출연한 작품들이 꽤 있다는데서 폴과 차이가 있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은 세 명- 피에르, 안드레이, 나타샤이다. 물론 엄청 멋진 캐릭터 안드레이가 영국인이긴 한데, 톨스토이가 이야기하는 선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미국인에게 맡긴다? 드라마를 제작하겠노라 발표한 것이 2013년인데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봤을 테고... 새삼 폴 다노가 대단하다 느낀다.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을유출판사에서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셰익스피어를 ‘극’으로 읽은 적이 없었다! 셰익스피어 다큐멘터리, 비평, 영화와 연극, 소설은 보고 읽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극은 일부 발췌를 제외하면 전혀 ‘읽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무대에 올릴 극을 썼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은 연극을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배우의 해석과 다른(혹은 다를) 나의 해석을 위해 읽어야 한다. 『맥베스』를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을유세계문학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사 버렸다.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해서 죽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공부하고 읽는 중이라 운문과 산문이 달라지는 부분들이 재밌다. 대체로 운문은 고상한 언어, 그러니까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를테면 귀족)이 쓰고 산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노동자, 하인 등)이 쓴다. 산문은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므로, 집중할 수 있는 특별한 효과를 자아낸다. 마침 EBS 셰익스피어 기행 다큐도 봐서 집중이 잘 된다. 의외로 다큐는 그냥 그랬다. 본방 못봐서 결제해서 봤는데... 근데 줄리엣이 이제 열세살이다... 로미오도 한 열다섯살 쯤 되나...? 로미오가 열여덟이라 하면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 그나마 또래로 상상하는 중이긴 한데 아직 나이가 제대로 안 나와서...


그렇다... 나는 지금 사백년 전 꼬꼬마들 사랑 이야기를 주석 찾아가며 읽는 중이다... 번역은 아주 좋다. 주석도 상세하고, 조금 공부하고 읽으니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파스테르나크 책도 같이 샀는데 시간이 없어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스크랴빈 이야기 읽고 싶은데... 그리고 아티초크에서 나온 월트 휘트먼 시집을 보고 있다. 말 그대로 보고만 있다. 변태같이 냄새도 맡으면서... 표지가 너무 이쁘다. 내가 받은 책 표지는 A인데 B, C 모두 너무 너무 예쁘고 감각적이다. 이때까지 나온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표지 중에 제일 예쁘다. 넘나 최고인 것... 브레히트 시집도 띄엄띄엄 보는 중인데 리뷰 쓸 시간이 없다. 아니 읽고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페이퍼를 쓰고 있나 보다... 흑...




오늘의 비지엠은 틴에이지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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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5-11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6-05-11 21: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저녁 되세요^^

단발머리 2016-05-11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냄새 맡는 변태(?ㅎㅎ)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저도 변태~~ 흠흠~~
에이바님 페이퍼 보면서 느끼는건데 책 찾고 번역 확인하고 다큐도 찾아보고 하시는 모습이 딱 정석같아요~ 나도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은 없지만요~~ *^^*
잘 읽고 가요, 아티초크 표지때문에 설레이는 마음은 여기에 놓구요~ㅎ

에이바 2016-05-11 21:4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도 책냄새 맡으시는군요! 은근히 중독되지 않나요?ㅋㅋ 전 뭐랄까... 책 읽기 싫어서 자꾸 미루나 그런 생각도 좀 했어요. 알고싶다는 욕구보다는요. 근데 재밌으니까 자꾸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ㅎㅎ

바스티안 2016-05-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다노가 캐릭터 해석을 잘 했어요. 1956년 오드리 헵번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 버전의 헨리 폰다는 나이도 너무 많았고(피에르는 원작에서 20대인데 헨리 폰다는 당시 50대였죠.), 본인 스타 이미지가 더 커서 피에르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었어요. 1967년 러시아 영화 버전에서는 당시 40대 후반이었었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직접 피에르를 맡았었는데, 원작 피에르의 곰 같고 우직하고 사색적인 느낌은 잘 살렸어요. 그런데 연기가 좀 뻣뻣하고 이분도 피에르 캐릭터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쉬웠구요. 1972년 BBC 드라마에서는 앤서니 홉킨스가 매사에 서툴고 이상주의자인 면을 섬세하게 잘 살려냈어요. 기골이 장대하다는 피에르의 캐릭터 설정에 비하면 체구가 작았지만요. 2007년 합작 드라마의 알렉산더 베이어는 피에르다운 어설프고 서툰 면을 잘 못 살리고 너무 당당해 보여서 아쉬웠어요. 폴 다노는 다른 피에르 역 배우들보다 피에르의 어리고 마음 여린 면을 많이 부각시켰는데, 연기가 섬세해서 좋더라구요. 어설프고 서투른 면, 진지하고 이상주의적인 면도 잘 살리고 짝사랑하면서 마음앓이하는 연기까지 잘하고. 나이도 원작 피에르(20~28세 정도)랑 제일 가깝구요.(촬영 당시 31세)

에이바 2016-05-11 21:50   좋아요 0 | URL
먼저 댓글로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원작을 읽지 않아 피에르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어요. 말씀하신대로 다른 매체에서 그려진 피에르를 다소 연령대가 있는 배우들이 맡았기 때문에 막연하게, 피에르가 30대 후반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폴 다노 나이가 좀 어리지 않나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네요. 저도 폴 다노의 연기가 섬세하단 말씀에 공감합니다. 분위기를 장악할 줄 아는 배우죠. 피에르도 마냥 섬세하지만은 않고 가끔 폭발적인 모습도 보여주기도 하고 전 좋았어요. 이토록 전쟁과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께 인정받는 해석이라니... 저는 원작이 출간되면 읽고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영화를 볼까했는데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어지는 댓글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Hypatia 2016-05-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에이바님! 에이바님 글을 읽었더니 독서욕구가 마구 샘솟는 바람에 댓글 남기고 가요:-) 여기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글을 쓰셨네요. 특히나 <운명>은 빠른 시일 내에 읽어봐야 겠어요. 중학교 때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안네의 일기>를 읽고 상당히 오랫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봐요. 좋은 글 감사드려요.

에이바 2016-05-11 22:1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히파티아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운명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좋은 작품이에요. 이때까지 이 소설이 제가 읽은 첫번째 수용소 문학이라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문득 안네의 일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착각이었나?!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일기는 수용소 가기 전까지만 있잖아요... 갑자기 좀 울컥하네요. 케르테스 작품 읽어보시고 좀 더 관심이 생기셨다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 콜리마 이야기도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Hypatia 2016-05-11 22:28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드려요. <안네의 일기>를 썼을 때 안네의 나이와 당시에 제 나이가 비슷해서 더 마음이 아프고 여운이 오래 남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참에 이 책도 다시 읽어야겠어요. 좋은 책들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에이바 2016-05-11 22:4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댓글 쓰다 좀 울컥했어요.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 가면 실제로 가족들이 생활했던 다락을 재현한 계단을 오를 수 있는데 정말 좁고 어둡고 그래요... 의외로 눈물이 나거나 감정이 격해지진 않는데 일층으로 내려와서 안네 아버지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진짜 눈물을 펑펑 쏟아요.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ㅜㅜ 히파티아님께도 케르테스의 작품이 인상적이길 바랍니다..

Hypatia 2016-05-11 22:58   좋아요 0 | URL
직접 다녀오셨다니 부러워요ㅠㅠ 저는 <안녕, 헤이즐>이라는 영화에서나마 간접적으로 보았거든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2016-05-11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스티안 2016-05-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버전 피에르들을 먼저 봤던 분들이 피에르라기엔 폴 다노가 너무 어리지 않냐고들 했는데, 사실 원작에서 피에르가 20대 청년이니 폴 다노가 원작 캐릭터 나이에 가까웠죠. 폴 다노는 마이너한 작품들에 많이 나왔는데 메이저한 작품 주연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걸 전쟁과 평화에서 증명했어요. 결투 신청 장면에서 ˝결투를 신청한다!˝고 외치는 연기나 아나톨리를 응징하는 연기는 박력 있고 압도적이었구요.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방탕한 모습이나 찌질하고 소심한 연기도 과감하게 해내서 좋았어요. 멜로 연기는 다섯 버전 피에르들 중에서 제일 좋았구요. 나타샤 역 배우와 나이 차이도 적고(다른 버전에서는 피에르 역 배우와 나타샤 역 배우의 나이가 많게는 20살 이상, 적게는 9살까지 차이가 났거든요.) 다른 피에르 역 배우들에 비해 젊고 곱상하고 멜로 연기도 잘해서 피에르와 나타샤가 잘 되길 응원하게 되더라구요.ㅎㅎ
다섯 가지 버전은 각자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데, 개인적인 순위는 2016년, 러시아, 1972년, 2007년, 1956년 순서예요. 2016년 버전은 전쟁이랑 시대적 배경 묘사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재미와 감동, 원작의 메시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은 거 같아요. 배우들의 연기력과 원작 캐릭터과의 싱크로율, 영상미와 스케일도 대단했구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옛날 버전, 고전이 더 낫다는 인식이 있고 러시아 버전의 무게감이 커서 좀 과소평가되는 부분도 없지 않나 싶어요.

에이바 2016-05-11 22:59   좋아요 0 | URL
폴 다노 본인도 메이저한 영화보다 작품성 있는 영화를 지향하는 듯 해요. 저도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처음 본 뒤로 필모를 챙겨본 편인데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서도 역에 함몰되지 않고 섬세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죠. 그래서 전쟁과 평화에 출연했다는게 좀 놀랍기도 했어요. BBC 홈피에서 폴의 인터뷰를 봤는데 피에르를 연기하는데 부담이 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피에르의 구도적 자세, 삶의 의미와 사랑을 찾는 모습 그런 걸 잘 표현하려니 그랬다 하더라고요. 말씀하신 장면들이랑 나중에 구출된 후 첫 식사에서 플라톤의 가르침대로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는, 감사하는 인생을 맞이하는 모습을 정말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BBC 버전이 제일 좋으셨다니 저도 소설 읽고 한 번 더 봐야겠어요.ㅎㅎ 나중에 알려주신 순서대로 영화도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러시아 버전의 무게감이 아마 제가 찾는 부분일 듯 해요. 아무래도 영국식으로 각색이 된 터라 다소 절제되었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어요. 러시아 문학에서 느껴지는 어떤 순수하고도 맹목적인 (어떤 면에서 촌스럽게도 느껴지는) 열정과 충성 그런게 굉장히 세련되게 표현했다 느껴져요. 에피소드가 여섯개가 아니라 여덟개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좀 했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CREBBP 2016-05-1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셰익스피어 읽는데 햄릿이랑 멕베드 읽다가 왜서인지 아마 뭔가를 조사하다가 그럴 만한 이유를 찾았을텐데 어쨌든 초서를 먼저 읽고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를 막 끝냈어요. 멕베드랑 4대 비극 읽으면서 민음사에서 나온 윌인더월드(세계를 향한 의지) 같이 읽으려구요. 템페스트도 꺼내놨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집에 없는 것 같아서 일단 있는것부타 찾아 읽고 희극도 읽고 싶어요. 딴책 자꾸 새치기해서 장말 진도 안나가요. 희곡 읽을 때 librivox. org에서 오디오북 다운잗아 참조하세요. 연극하듯 감정 살려 읽어줘서 대략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돼요. 아 톨스토이는 언제나 맛보나..
참 오늘 영어 독소토론수업 시간에 포 갈가마귀 했어요. 그 전에 Lottery 라는 단편 했고요. 오싹 ~ 포 단편도 하나씩 읽어보려구요. 에이바님은 예전부터 문학을 많이 읽으셔서 저축하듯 쌓인게 많으신 것 같아 부러워요. 전 벼락독서하듯 최근 몇년에 몰아서 이것저것 보려니 용량이 안따라간다능

에이바 2016-05-11 23:09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보니까 오셀로 관련해서 당시 여성관에 대해 초서의 그리젤다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맥베스랑 오셀로 읽고, 베니스의 상인이랑 폭풍우 읽으려고 해요. 원래는 비극을 먼저 읽고 역사극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역사극 좀 머리 아플 것 같아서... 오디오북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이것저것 읽고는 있는데 리뷰로 쓰는게 힘들어요. 카뮈 이방인도 몇 번을 읽었는데 리뷰 쓸 걸 생각하면 굉장히 막막해지네요. 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읽으려 펼쳤다 덮고... 읽고 소화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요. 그래도 전쟁과 평화는 서사성이 강하니만큼 잘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 추구하는 모든 게 들어있으니까요ㅎㅎ 다만 소화해내느냐가 문제겠죠... 코너스톤 포 전집 10년 대여 이북으로 싸게 나왔더라고요. 그걸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에요... 그리고 전 그냥 잡다한 이야기들을 좀 아는 것 같아요... 편향된 독서를 하고요...ㅋㅋㅋ

blanca 2016-05-1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너무 기대되는데 이 것 한 권만 주문하기가 그래서 참고 있네요.

에이바 2016-05-13 09:28   좋아요 0 | URL
저도 전쟁과 평화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고 같이 살지 일단 이 책부터 살지 고민이에요. ㅠㅠ

다락방 2016-05-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가... 네 권짜리라고요? 하아- 저는 두 권쯤 될것이다 생각했는데, 네 권이라니.. 음.. 어쨌든 반가운 소식 고맙습니다. 에이바님 페이퍼는 진짜 고퀄이에요!

에이바 2016-05-13 23:22   좋아요 0 | URL
네 권이래요. 그렇잖아도 박형규 교수님이 뿌쉬킨하우스에서 전집 내신다 해서 기다렸는데 문동에서 나오게 됐네요ㅎㅎ 표지도 궁금하고 기다려져요~~ㅠㅠ

에이바 2016-05-19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의하니 전쟁과 평화는 6월 중으로 출간이 미뤄졌대요. 양이 방대하여 그렇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6-05-19 11:06   좋아요 0 | URL
네, 잘 알겠습니다!!
 

책의 날 10개의 질문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저녁에, 조금 피곤할 때 쯤이요. 다음날이 걱정되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는, 노곤함을 이겨내는 독서가 좋아요.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선호합니다. 책의 무게감, 책장을 팔랑이며 넘길 때 퍼지는 책 내음,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전자책이 줄 수 없는 것들이죠. 밑줄긋기도 인덱스도 잘 안하는 편이에요. 독서 흐름이 끊겨서요.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침대에선 책을 읽지 않습니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를 보니, 작가별로 혹은 시대별로 배열해두더라고요. 저는 출판사나 책 높이에 맞춰 배열해둬요. 몇 년 전에 책장을 정리한 후론 적당한 규모로 유지하려는 편이에요.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책장에 숨겨둔 일기장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딱히 떠오르는 작가는 없는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면 한 마디도 못할게 뻔하기 때문에... 뜬금없이 떠오른 보이니치 필사본의 원작가를 만나고 싶어요. 이 문서를 쓴 이유와 독해법을 알려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보이니치 필사본(클릭)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휴가지가 아니라 조난지라는 가정 하에 트렁크를 열었는데 세 권이 이 책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쓰고보니 이거 무인도에 가져가기엔 위험한 책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성경』: 차라투스트라 때문에 가져가야겠다 싶군요... 그리고 남은 책은

『마션』: 첫 문장만 계속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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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23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

5번, 5번, 5번!!!!

너무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갑구만~~~ ㅎㅎㅎ

에이바 2016-04-23 09:2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민음사 제인에어 좋아하시죠..? 샬럿 브론테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민음사 제인 에어 합본 한정판이 나왔는데 교보에만 파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제인과 에드워드를 완벽히 옮겨놓은 건 을유 조애리 교수님 역이라서 지름신을 눌렀습니당ㅎㅎ

단발머리 2016-04-23 09:32   좋아요 0 | URL
우하하핫!
좋은 정보 감사해요~~~
교보문고 가봐야겠어요. 살 거예요~ ㅋㅋ

CREBBP 2016-04-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도 썼다가 하나만 골라야해서 지웠어요. 통과의례인가봐요 제인에어 키다리아저씨 ㅋㅋ
<존재의 세가지>를 읽다 놓을 수도 있군요. 전 네번 정도 읽었을거에요. 두번정도는 앞에서 뒤로 나머지는 여기저기 뒤적뒤적하다면서 앞뒤 없이 읽고또 읽고.. 이게 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자나요. 자꾸 들여다보게 되더라구요.

마션은 머그컵에 i am fucked 써있어서 늘 커피머시면서 그 첫문장을 매일 읽죠 ㅋㅋㅁ

에이바 2016-04-28 13:38   좋아요 0 | URL
그쵸 존재의 세가지는 생각을 많이 해야해서 읽다가 덮었어요 ㅜㅜ 책 읽다 덮는 일이 많아지네요 마션 진짜 첫문장 장난 아니죠 im pretty much fucked ㅋㅋㅋ

cyrus 2016-04-23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는 6번 질문의 답변에 ‘앨범’이라고 써야겠어요. 흑역사의 실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무시무시한 책이니까요. ^^

초딩 2016-04-23 12:00   좋아요 0 | URL
흑역사 ㅎㅎㅎ
좋은 날 되세요~

에이바 2016-04-28 13:38   좋아요 0 | URL
인정하십시오... 당신의 과거를! ㅎㅎㅎ

맥거핀 2016-04-2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 질문의 답을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 단호함!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반가운 책이네요. 저도 어렸을 때 거의 처음으로 읽은 본격문학이라고 할만한 책입니다. 나중에 영화도 봤는데, 어렸을 때의 그 느낌이 도무지 살아나지를 않더군요.

에이바 2016-04-28 13:42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읽어서 제인이 갇혔던 붉은 방이 상당히 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영화는 여럿 있지만 다 별로였고(특히 가장 최근에 개봉한 영화) 저한텐 bbc에서 만든 드라마가 최고였어요. 정말 소설을 그대로 옮겼는데 흠이 있다면 로체스터가 너무 잘생겼고 제인이 키가 좀 크다는 것...

한수철 2016-04-2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하지만,

활동 띄엄띄엄...입니까?

에이바 2016-04-28 13:40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좀 바쁘네요... ㅠㅠ
 


무엇을? 요즘 나의 관심사를! 신간평가단 책을 다 읽었는데 리뷰를 쓰기 싫어 페이퍼를 쓴다. 4월, 나는 요즘 오스카 와일드에 빠져 있다. 사실 야심차게 알베르 카뮈 읽기 계획을 세우고 몇 권을 사 읽었다. 그 중 『시지프 신화』를 읽다가 집중도 안 되고, 잘 모르겠어서 머리도 식힐 겸 인터넷 창을 켰다. 그런데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온댄다... 민음 북클럽에 가입하면 세계문학 3권이랑 출간예정작 3권을 준다길래 목록을 보았더니 눈이 뜨인다. 알베르 카뮈! 오스카 와일드! 루이스 스티븐슨!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결제하고서 민음사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을 손에 넣었다. 은행나무에서 나온 『거짓의 쇠락』이 너무 좋아서, 조금 늦게 『심연으로부터』를 구입하였는데 여기서도 조금 뻘짓을 벌였다. 글항아리에서 나온 앙드레 지드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도 같이 샀는데 여러분, 이 원고는 『심연으로부터』에 부록으로 실려있습니다. 네...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 『지상의 양식』도 샀다. 좋은 리뷰를 읽었기도 하지만 결심이 구매로 이어진건 순전히 오스카 와일드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은 지드의 자서전이기도 하고 쇼팽이랑 와일드 얘기도 나오고 또 지드 월드를 구성하려면 사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을 샀느냐. 카사노바 자서전인 『불멸의 유혹』을 샀다. 안 그래도 이 책 역시 고민중이었는데 오스카 와일드 글에 나오길래 일단 구매. 또 무엇을 샀느냐. '오스카 와일드'를 전도해주신 박명숙 번역가의 『전진하는 진실』을 샀다. 『거짓의 쇠락』, 『심연으로부터』를 번역한 분이다. 알고보면 에밀 졸라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계신데 『목로주점』, 『제르미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등이 있다. 근데 오스카 와일드 글을 읽으면 에밀 졸라를 엄청 디스한다. 유미주의와 자연주의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다른 것. 그런데 어떻게 오스카 와일드를 번역하게 되었느냐, 하면 이것도 운명이라 할 수 밖에... 번역 후기에서 확인하시길...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박명숙 선생님 역으로 읽고 싶은데... 민음사에서 여름쯤 『오스카 와일드 명문선』이 나올 예정이기도 하고, 다른 번역가 분의 작업으로라도 출간예정에 없나 문의를 넣었는데 없다고 한다. (민음사, 문학동네) 그래도 와일드의 명문선집이랑 다른 타이틀로 나올 수도 있대서 기대중. 그렇게 오스카 와일드 핑계로 구매한 책만 벌써... 일단 민음사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에는 희곡 「살로메」가 실려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희곡은 원래 불어로 썼다가 와일드가 직접 영어로 옮겼는데 나중에 그 아들이 다시 번역하고 그랬던가.. 갑자기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또 볼 만한 책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켄터빌의 유령』과 열린책들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아홉가지 이야기』가 있다. 세 권에 실린 작품들이 겹치는데 또 열린책들 역자는 또 눈에 익은 분이라 고민중. 막 새 책이 나왔을 때 사두지 않으면 꼭 이런 고민을 하게된다. 결국 살 거면서, 그 때 사뒀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잖아 같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찾아보니 옛날에 나온 금성출판사 역이 정확하다는데 그 책은 사기 힘든 것 같고, 열린책들과 펭귄클래식으로 좁혀졌다. (새번역도 안 나온다고 하고, 황금가지판은 전자책이라 제외) 아마 펭귄을 살 것 같다. 표지 싫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영화 무지 재밌어요. 예전에 콜린 퍼스 나온대서 봤습니다. 영화 보면 콜린이 싫어질 수 있지만 팬이라면 괜찮아요.


또 무엇을 샀느냐 하면 『돈키호테를 읽다』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을 샀다. 매년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책의 날'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두 문호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고... 올해는 서거 400주기이기에 뜻깊은 행사가 많다. 각 출판사에서도 준비하는 책이 꽤 많고, 영국문화원에서는 연초부터 셰익스피어 관련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그렇잖아도 출간예정 목록에서 〈셰익스피어 자서전〉이 나온다길래 알림문자를 신청하고, 출판사에도 정말 4월에 나오는지 물어보고 그랬는데 이젠 주문이 된다! 주문하면 3일 후 출고예상 이러더니, 문제는 책장에 공간도 부족하고 최근에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이 책을 지금 주문하나, 딴책이랑 모아두었다 사나 이러고 있다. (이외에도 전자책도 몇 권 더 질렀다.) 원래 계획은 『저항의 미학』을 사는 거였는데 평가단 도서로 선정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 뭐 그렇게 되었다. 또 구매예정인 책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인데 원래 구매하려고도 했지만 오스카 와일드 글에서 또... 


뻘글로 벌써 이만큼 채우다니. 역시... 뻘글 최고. 신간도 보고 있는데 페이퍼 쓰는 김에 한꺼번에 정리해야겠다.






『여신의 언어』. 1989년에 나온 책이다. 저자 마리야 김부타스는 당시 하버드 내 유일한 여성학자로서,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문명 이전에 돌봄과 배려, 평등한 사회를 가진 여신 전통의 문명이 존재했으며 이것이 진정한 유럽 문명의 뿌리임을 밝혀낸다.


"그간 여신을 남신의 어머니나 남신의 딸로 호출하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온전한 여신의 이미지를 찾아가게 된 것은 김부타스의 업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 평전으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특별 서문을 포함하여 얼마 전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가격대가 좀 있긴 한데...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이랑 같이 읽으면 될 듯 하다. 후자는 약간 추리소설 느낌으로 쓰여졌다. 역자의 단독 첫 번역일까? 난 왜 이런 게 궁금하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북클럽 메일이 왔는데, 네이버 포스트에서 연재중이고 댓글 달면 선물도 준다고 하니 한번 방문해보시길... 황금가지 네이버 포스트(클릭) 이 책은 영미소설로 분류되는데 카피가 이렇다.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부코스키의 유년기~청소년기를 담은 『호밀빵 햄 샌드위치』이다. 부코스키에 이렇게 딱 맞는 한국어로 작업하시는 박현주 번역가이다. 『우체국』, 『여자들』, 『팩토텀』에서 열연했던 헨리 치나스키가 출연한다. 예상도 못했는데 오늘 신간목록에서 발견했다.


『가족어 사전』은 무솔리니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계 가정의 이야기인데, 역사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요즘 유대계 작가가 쓴, 이 시기의 책들이 많이 보이는 느낌이다. 이 외에도 신간을 봐둔게 몇 권 더 있고, 위에 쓴 책들도 정리하려고 했는데 힘이 빠져서 그만... 언급한 책들을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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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4-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에이바 님이 쓴 글 같지 않네요. (단순히, 약간 과도하게 여겨지는 `ㅋㅋㅋ` 때문일는지요? ㅎㅎ)


아무려나- 호밀빵 햄 샌드위치 담아 가여...^^


에이바 2016-04-19 22:56   좋아요 0 | URL
그래요? 너무 업된 상태에서 써서 글이 중구난방 같긴 해요 `ㅋㅋㅋ` 앞뒤만 지워봤어요 ㅎㅎㅎㅎ 부코스키 너무 반갑죠. 그 탓일지도 몰라요.

한수철 2016-04-20 00:23   좋아요 0 | URL
고백하건대

나도 알라딘에 리뷰를 쓰고 싶어서- 그러니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에이바 님의 글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어연.

제 생각엔 리뷰 쓰기는 에이바 님이 가장 뭔가 틀림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연.

....이상이에연.

ㅎㅎㅎㅎㅎㅎ

잘게요.^^

(좋은 글에 공연한 시비를 붙인 게 아닌가 하는 공연한 생각에 글 남겼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에이바 2016-04-21 16:33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좀 그래서 수정할까 했는데 전체적 어조가 별로라 수정이 불가능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ㅎㅎ 그건 그렇고 한수철님... 감사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16-04-2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햐~~ 지름신을 부르는 이 아름다운 페이퍼^^

요즘 오스카 와일드에 빠지셨군요. 멋져요, 멋져~~
저는 위의 무수한 책 리스트 중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판이 집에 있다는 것, 읽은 게 아니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책을 구입할려고 해도 알아야 되는게 많네요. 번역자도 꼼꼼히 봐야하고...
저는 무조건 최근에 나온 번역판을 선호하는 편이예요.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민음사는 좀 믿음이 가고, 문동은 감각이 있고. ㅎㅎ

셰익스피어 400주기만 알고 있었는데, 셰익스피어랑 세르반테스가 같은 날 사망했다니, 우연 아닌 우연이군요.
천재들은 서로 통하는가....
셰익스피어 <소네트집>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반가운 건지, 미운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참,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한국 치킨의 역사를 잘 정리했더라구요. 맛있는 얘기, 계속 치킨얘기만 나오니까요.
왜 후라이드가 정석인가. 염지닭이란 무엇인가. 프랜차이즈, 피할 수 없는가. 뭐 이런 식이요.ㅎㅎㅎ

에이바 2016-04-21 16:4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고전은 어떤 버전으로 접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출판사마다 편집 스타일이 다르고 그러니까요... ㅎㅎ 그거 아세요? 문동에서 5월에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나온대요. 박형규 교수님 역으로 말이죠. 안 그래도 절판이고 그래서 어떡하나 했는데... 예습 차원에서 BBC 드라마를 볼 때입니다. 단발머리님.

요즘 EBS에서 세계테마기행 셰익스피어 편을 방영해주고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주말에 재방도 해주니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가 사랑하는 제인도 비판할게 많잖아요. 셰익스피어 포기하지 마세요!!! 단발머리님!!!

치킨책도 꼭 보려고요. 표지부터 너무 재밌지 않아요? 대한민국 치킨전은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데 진짜 치킨의 역사군요. 최근에 삼대천왕 치킨편을 봤는데 역시 치킨의 세계란... 심오(?)하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