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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BL] 파빌리온 1 [BL] 파빌리온 1
배나루 / 비엘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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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버스 이야기를 처음 읽어 보았습니다. 저한테는 주인공들의 업무 현장과 더불어 신선한 요소였어요. 잔잔하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글이에요. 작가님 다음 작도 기대됩니다. 도장깨기를 위해 신간 알리미 신청을 할게요. 어서 신작을 들고 돌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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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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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정육점. 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맨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어라?’하는 얼럴한 느낌을 줄만큼 이질적인 두 단어가 한 데 모여 시선을 끌었다. 표지부터 시작해 책날개와 매 페이지에 있는 글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 내리는 버릇 탓에 본 소설을 읽기 전에도 이미 이 책이 성장 소설이라는 것을,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오히려 더 큰 기대감만을 안겨주었다. 
  

 이슬람교도 터키인인 하산 아저씨는 한국 산동네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 항상 인상을 쓰는 듯, 어딘가 한 곳을 쏘아보는 듯 한 인상으로 한국에선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피하게 되는 그가 한 아이를 입양해 온다. 상처 많은 아이가 살게 된 산동네엔 안나 아주머니를 비롯해, 허름한 골목길 구석구석 여러 인생이 있다. 그 속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는 사이, 아이는 상처를 치유 받게 된다. 이렇게 몇 문장으로 그 내용을 추려볼 수는 있지만 이 몇 개의 문장이 출판사에서 추려놓은 몇 마디의 문장과 다를 게 무엇이고, 무엇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 아이의 상처를 어느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지, 어떻게 표현해 내었는지, 입양 후 아이의 성장을 어떤 서술로 보여주는지... 내내 품고 있던 물음에 답을 찾아가며 문장하나 하나를 꼭꼭 씹어 삼키듯이 책을 읽어보았다.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말문을 열기 시작한 책의 첫마디였다. 강렬한 인상이었지만 책을 막 펼친 그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해 아이가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게 되기까지 내면의 변화를 무엇 하나 알지 못했기에 섯불리 이해할 수 없었다.
 초반 부에 아이는 자신의 고아원 시절을 이야기 한다. 사람이 사람을 배우는 것은 타인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을 통해서라고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아이는 고통밖에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배고픔과 잠을 참는 것으로 제 몸에 고통을 주고, 내면의 고통에 비하면 몸의 고통 따윈 고통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란 생각으로 그것들을 고통의 목록에서 추방시켰다는 식의 자해적인 의식으로 상처를 더욱 깊이 파고들기만 했다. 그런 아이를, 아무도 입양하려들지 않는 아이를 하산 아저씨가 입양해 온다. 아이가 살게 된 산동네에는 따뜻한 마음씨의 안나 아주머니의, 하산 아저씨의 품이 있고, 유정이, 야모스 아저씨, 맹랑한 녀석, 신부님... 아이가 마주하게 되는 여러 인생이 뒤섞여 있다. 어느 누구의 인생이 평범할 수 있겠냐 만은 그 곳 산동네 판자 지붕 집 골목들 사이에서 마주하는 인생들엔 깊은 상처하나 없는 인생이 없고, 터키인에 이슬람교도이면서 한국 땅에 정육점을 꾸리고 있는 하산아저씨의 그 인생처럼 정형화된 눈으론 절대 볼 수 없는 인생들뿐이다. 아이의 내면의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없듯이 그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는 과정도 눈으로 좇을 수 없지만 아이가 부딪히고 마주하는 일상 이야기는 봄날의 햇살을 관조하는 기분을 갖게 했다. 결국 타인(하산 아저씨)을 향해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 라는 말을 건넬 수 있게 될 때까지. 하산 아저씨와 영원이 될 이별을 하고서도 하산 아저씨가 자신을 입양 했듯이 자신은 세계를 입양 할 것이라고 다짐하게 되기까지. 이 책의 맨 마지막 문장으로 다시 한 번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라는 문장을 이 때에서야 이해한다고 조심스레 말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흉터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아이는 제 몸에 난 무수한 상처가 타인에 의한 것인지, 부모에 의한 것인지, 스스로의 탓인지 모르지만 제 탓으로 돌리며 끌어안았었다. 누구에게 이해를 시키려고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로. 처음 산동네로 오던 날 안나 아주머니의 손길에 흉터 가득한 몸이 씻겨 지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흉터 너머의 상처가 더 깊게 패여 나가길 멈추고 아물기 시작한 것은. 산동네에서 아이는 다른 이의 흉터를 보고, 그 너머의 상처를 보고 점차 생각한다. 타인과 진정으로 교감하게 되는 것은 상처와 상처를 통해서라고. 저마다의 가장 깊은 고통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해 배우는 것을 이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일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성장소설로 상처 많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점에서 볼 때, 상처 가득한 아이의 시선과 몇 십 년 뒤의 어른이 된 아이가 이야기 하는 듯 한 날카로운 표현력이 한 데 만난 느낌이 인상 깊었단 것이다. 중학생 또래의 화자는 물론 제 안에 아직 치유중인 상처 때문에라도 그런 날카로운, 특이할 만한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표현해 내는 언어는 아직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데, 실제 책 속의 언어선택과 서술은 너무나 잘 갈무리된 어른의 회상하는 어조와 같아서 깜짝 놀랐다. 책 내용과는 벗어나지만 비단 이 책의 화자를 제쳐두고도 아이 그리고 청소년의 시각은 때로 어른의 그것과 너무 다르고 경탄할 만한, 특이한 통찰력을 가지기도 하지만 아직 언어로선 능숙히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 몇 십 년 후 어른이 된 후에는 능숙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어도 그 시절의 시각은 이미 많은 부분 부옇게 흐릿해져 잡아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의 시각 대에 가장 안타까운 두 사실이 만난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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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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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참 노골적이다’ 고 생각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과 표지의 일러스트가 ‘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라고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듯해서 이 소설이 과연 내게 이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될까하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소매치기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소매치기범의 능숙한 행위를 한참을 따라가며 그의 시각에서 본, 행위 중에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참 상세하고 분방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확실히 흥미롭고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은 두통이 몰려왔다. 그것은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긴박감이나 암울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호흡을 맞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더 큰 원인은 단순히 반복되며 비춰지는 소매치기 행위 자체에 그리고 잠깐씩 끼어들듯 서술되어 있는 주인공의 과거 편린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내 자신에게 있었다. 단순한 스릴러 장르 문학이 아님을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더더욱 묘하게도 곧 튀어 나올듯 한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된 좀 더 클법한 사건을 기다리고, 또 어느 곳에 접점하나 없는듯 한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문장 사이의 단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 사건의 긴박감이나 어두운 분위기가 감지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골치 아픈 버릇인 것 같다. 
 

 기다리던 사건은 성급하지도 그렇다고 지루함을 주지도 않을 속도로 전개된다. 과거의 주인공은 가늠할 수 없는 흑막속의 사람인 ‘기자키’의 지시 아래에 당시 소매치기를 하며 따르던 ‘이시카와’와 거대한 범죄의 말단 부분으로서 강도행위를 하게 된다. 범행 후 함께 달아나기로 했던 ‘이시카와’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현재의 주인공에게 다시 ‘기자키’, 그가 찾아오면서 위험한 냄새가 가득한 일을 맡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주목한 점은 단 세 가지 사실이었다. 첫 번째는 소매치기 현장, 범죄의 한가운데 혹은 골목 어귀 어느 곳에서든 불쑥 서술되는 문장들. 안개에 가려져 윤곽만 떠오르는 백일몽 같은 탑. 이와 마찬가지로 첨탑, 높다란 빌딩들, 안테나의 끝, 전신주... 너무나 자주 서술되는 그것들은 전부 높은 곳을 향해 뻗어있는 존재들이었다. 때로는 주인공을 내려 보기도, 그저 절대 가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마음속에 그 탑은 항상 자신의 눈이 닿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 말미쯤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처음 물건을 훔치면서 보게 된 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탑은 안개에 쌓인 듯 윤곽만이 보일 뿐, 절대 닿을 수 없을 듯하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지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은 채로 항상 아름다운 형상으로 뻗어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탑이 무의식중에 주인공에게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것들로 대체 되었고 그것은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노골적이면서도 몇 개 안되는 단서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뻗어있는 탑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있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그 탑에 닿을 필요도 없고, 닿아서도 안 된다. 훔치는 행위 속에서도 주인공에게 수치심을 준 것은 세상 사람들의 엉터리 같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시선일 뿐이고 그것이 주인공을 고립시키지만 아래로 추락하는 동안은 그 탑은 아무 말도 없이 아름다운 채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기자키’라는 인물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지상의 모든 쾌락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신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인생을 기분 껏 조종해 보는 것이란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사카와’와 주인공이 이 자의 손에 조종되고 그 최후가 결정된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라면서. 나와 같이 감정을 느끼고 어찌 보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기력하게 운명이라던가, 인생이란 것의 조종을 받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종해 본다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말 그대로 무기력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세 번째는 좀처럼 세상과의 접점이 없는 주인공을 그 접점의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소매치기 일을 하며 따랐던 ‘이시카와’ 그리고 옛 여자인 ‘사에키’, 우연히 관여하게 된 몸을 파는 여자의 아들. 먼저 ‘이시카와’와 ‘사에키’는 추락하는 인물이고 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두려워하기도 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현재의 주인공과 겹쳐지고, 몸을 파는 여자의 아들은 주인공의 과거의 모습이면서 또한 소매치기라는 행위가 스스로를 고립시킴을 알면서도 어딘가에 접점을 찾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참 전하려는 바가 분명하고, 서술적인 기교와 분위기의 완급조절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이토록 노골적이고 대담한 소설이기에 더더욱 서평이 어려웠다고도 생각한다. 첫머리를 읽던 그 때와는 다르게 그저 이야기가 이끄는 데로 복잡한 생각 없이 푹 빠져서 읽었어도 좋았겠단 생각도 해본다. 
 

마지막으로 소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소매치기란 행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소매치기 범도, 무기력하게 당하게 되는 사람도, 항상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다 끝없이 서로를 고립시킨 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운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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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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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 장을 넘기면서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가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에 필독도서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빌려봤던 때가. (아마 틀림없이 요즘 중학생 아이들의 필독서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참은 어리고 또 그만큼 서툴고 미숙했었다 싶지만 한편으론 그 당시의 나는 문학작품이라면, 특히 소설이라면 무서우리만치 맹목적인 구석이 있어서 이 책에 푹 빠져들었고, 생각하고 느낀 만큼 글이 안 써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열심히 독후감을 써봤던 기억도 있다. 아마 지금 다시 읽어 본다면 부끄러울 만한 글솜씨에 손발이 오그라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시 한 번 넘겨볼 그 글도 언젠가 잃어버리고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만이 아쉽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절의 나도 이 책속의 무수한 문장들 속에서 발견한 어떤 것에, 어떤 메시지에 분명 느낀 바가 있었다는 사실이고, 한 번 한권의 책에 의해 감정이 흔들렸던 자리는 아마도 평생을 갈 것이란 사실이다. 그 시절의 나는 아니지만, 그때보단 조금 더 넓게 보고 성장했을 거라 믿는 ‘지금의 나는 이 책에서 새롭게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과 중학생 시절의 향수가 불러일으킨 그리움이 뒤섞여 범벅이 된 속에서 첫머리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고 있는 체로키 인디언 노부부와 그들의 어린 손자이자 화자인,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또한 그들의 시선에 비춰진 체로키 인디언들의 역사와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인디언들의 역사와 그들이 고수했던 삶의 방식은 이제까지 많은 매체들과 이야기와, 유행의 흐름 속에서 한 때는 왜곡되기도 암묵적으로 묻히기도, 또 다시 주목 받으며 재인식되기도 했다. 이제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나온 역사를 알고 있고 그들이 고수해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있으며 또 전해갈 것이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알고, 인정하며, 때로는 입을 모아 말하는 마치 지침과 같은 말들.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생활. 그들의 삶을 단지 일면이라도 지켜보는 것으로도 배우게 되는 여러 값진 교훈들.

이 소설도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철학적이기까지 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타의 기록물이나 매체들 속에서 이 책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전하려는 메시지와 하나가 되어 더함없는 진실성이 그 분위기와 어조와 함께 작품 전체를 관류하면서 더욱 가까이 체감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탓일까. ‘할머니’ 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나는 ‘작은나무’ 옆에 앉아 ‘할아버지’의 삐거덕 거리는 의자소리를 들으며 함께 귀기울이는 것 같고, 여우몰이의 한가운데에서 교활한 여우와 놀랄만한 블루보이의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보는 것 같다. 개척촌으로 내려가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길, ‘작은나무’의 종종걸음까지. 자연스럽게 문장과 문장을 쫓다보면 이야기의 경계가 희미해 지는 것이  모든게 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인양 생생한 감정이 아련하게 흐른다. 그것은 평소라면 보통보다 조금 느리다 싶은 박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사소한 문제들로 어지러운 마음을 가장한채로 이야기를 쫓지만 금새 스스로가 부끄러워 질만큼 이야기의 흐름처럼 조금 느리고 평화로운 박자로 마음의 고동소리가 맞춰진다. 그리고 조잡하게 뒤엉킨 내 마음속의 문제들이 조금씩 걸러져 정화된다. 이것은 인디언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그곳엔 이와 비슷한 모습뿐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인간 본래의 삶의 자세가 이와 같은 게 아닐까. 단지 우리는, 혹은 나는 지켜내지 못한 것을 그들은 보존해 왔다. 그리고 저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남아있는 생 동안 함께 보존하고 전수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척도가 되는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토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참 오랜만에 다시 읽은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고전으로서 사랑받기란 참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문학작품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고전으로서의 제 자리매김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은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의 감정(感)을 움직일(動)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단순히 감동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짜여진 언어구조 속에 공감을 일깨우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게다가 ‘문학작품으로서의 고전’이라면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몇 십 년, 몇 세기가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공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이고 짤막한 관점에서 볼 때에도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 다시없을 훌륭한 고전이고 내 손으로 마지막장을 넘기고 서평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후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대도,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으며 사랑받을 책 임이 분명하다고 감히 자신해 본다.

 덧 붙여서 특별히 이 책의 장점을 꼽아보자면 손대지 않은 원문 그대로를 함께 싣고 있단 점을 들고 싶다. 우리말로 훌륭하게 가다듬어 번역된 것도 좋지만 작가의 언어가 담긴 원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특유의 어투, 그 속의 방언들과 우리말에선 표현해 낼 수 없는 때때로의 특유의 분위기, 정겨운 감정들을 전부 배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부록 CD까지 있는 걸 보니, 학생이라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될 듯 싶다. 간만에 참 알차고, 마무리가 잘 된 책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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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좀 이상하다
오치 쓰키코 지음, 한나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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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하고 적나라하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가졌던 생각이다. 먼저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오늘 나는 좀 이상하다’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11명의 여자들의 일상을 조명하고 있는 소설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아래, 덩달아 어떤 사람들 이길래? 무슨 일 난거야? 라는 평범한 호기심이 뒤따른다. 다행히(?) 그들을 한 범주로 묶을 수 있다.  ‘40대 전후 미혼의 그녀들’이라고. 소설 속 ‘그녀들’은 일, 가족관계, 또는 애정전선에 있어 결핍의식이나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의 평범하지만, 한편으론 절대 평범하달 수 없는 일상의 단편들이 여기에 그려져 있다. 
 

 일, 가족들과의 관계, 애정문제와 결혼문제 등에서 오는 위기감이나 문제의식은 ‘여자’라 불려지는 거의 모든 이들이 하나쯤은 끌어안고 사는 고민거리들이다. 하지만 대상을 조금 더 좁혀 나이 40 전후의 미혼인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그녀들이 느끼는 고민의 무게감과 시선의 방향은 개개인에게 있어 많이 달라지 게 된다. 모든 고민을 앞서 그녀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따라붙는 40대 미혼 여성이란 꼬리표 때문에. 소설 속에서 그것은 모두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여자로서 쇠퇴해가고 있다는 느낌, 애정 전선의 문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 남녀관계보다 앞선,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 등등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변해가는 가족관계라든가 그 변화를 의식하는 ‘그녀들’의 시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적나라하기에 흥미롭고 섬세하기에 친근함이 먼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녀들의 감춰진 속내를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내 모습이 있기도 하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40전후 미혼 여성들의 일상의 단편들이 섬세하게 또는 소소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맛이자 특징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묘하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한 켠에서 비집고 들어온다. 과연 ‘그녀들’만 일까.

 중세도 근대도 아닌 현대, 21세기를 살아가는 내 귀에는 요즘 듣도 보도 못한(듣보잡) 신조어들이 많이 들려온다. 건어물녀, 초식남... 이 소설위에 오버랩 되어, 40대 미혼 여성의 모습을 혼자라도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라 이름 붙여준 채, 위와 같은 고민을 향해 일단은 열심히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20대 여성들의 무서운 영상이 오싹한 느낌과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것, 그냥 그 자체로도 좋지 않을까. 나이가 차곡차곡 불어가도 고민하는 ‘나’는 아직 젊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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