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엔 외국 문학작품을 주로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입시지옥이라는 것 때문에 실컷 책을 읽지 못했기도 했고, 틈틈히 짬을 내어 읽던 책엔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또한 국어 과목을 배우면서 그 당시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나라 문학작품들이 대부분 딱딱하고 재미가 덜 하다는 것도 대학 진학 후 문학작품을 선택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지요.
어느 새 20년 넘게 흐른 지금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참 재미있는 문학작품이 많구나 싶고, 또 내가 배웠던 그 시절과 동일한 문학작품 역시 지금 읽으니 철없는 10대와 다른 눈으로 보게 되네요. 아무래도 시간이 흘러 보다 성숙해지고 다양한 경험이 쌓인 지금 책을 읽는 느낌이 다른가봅니다.
한참동안 외국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30대가 되어서 서서히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다시 즐겨보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점차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그만큼 제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다수의 작가들이 많아진 것도 제가 읽는 책 선책의 폭을 넓혀주었지요.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 어느 나라의 뛰어난 문인들의 작품과 견주어도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을 만큼 멋진 작품이 많다는 것에 저 역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요.
또한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답니다. 공지영 작가님의 작품들 역시 국어교과서를 통해 만날 수 있지요. 더 이상 국어 교과서의 작품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시대에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쟁쟁한 문인들의 작품이기에 더욱 좋고, 그런 멋진 작품으로 국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이 부럽다는 생각도 드네요.
공지영 작가님의 작품 중 가장 좋은 한 권의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작품 속에서 에세이집인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와 인터넷 연재와 함께 이슈가 되었던 소설 [도가니] 두 권으로 압축시켰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문학작품의 백미는 소설이라는 생각에 [도가니]에 조금 손을 더 올려주었습니다. 소설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상상, 허구, 픽션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데 [도가니] 작품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문제들이 자꾸만 눈앞에 보이게 됩니다. 물론 작품이 실제 일어난 장애인 학교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서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지요.
비단 장애인 문제 뿐 아니라 나날이 개방되는 성문화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점점 문제는 심각해질 것입니다. 청소년 인권과 더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의 인권, 보다 바람직한 성문화와 범죄에 대한 예방과 단호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이들도 안전지대가 아닌 놀이터와 학교 등하교 시 골목길 등 생각만 해도 슬픈 현실이 자꾸만 눈앞에 발생하고 있네요.
성폭력. 이 소설의 바탕이 된 실제 사건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줄지 않고 늘어가는 성폭력의 실태에 정말 가슴이 아파옵니다. 비단 성폭력 뿐 아니라 점점 흉악해지는 범죄와 청소년 폭력.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른들의 자성이 더욱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회적 강자에 대한 한없는 너그러움. 아직도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우월한 남성의 지위. 진실은 분명히 언젠가는 꼭 밝혀지지만, 그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한없는 용기를 내야하는지 우리들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인 강인호가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로 내려가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더욱 크겠지요.
책 속에서 만나는 강인호 선생님. 내가 과연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거대한 빙산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전 선뜻 강인호 선생님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네요. 그런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용기를 내어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 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지영 작가님이 우리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