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의 2월의 도서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다. 이 책 제목은 영문명으로 봐도 알 수 있듯 경제학 용어중 가장유명한 용어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를 패러디했다. 

2월초에 이 책을 읽는 초반만 하더라도 '돌봄경제학이라.... 금방 읽겠다'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건만 시험공부에 잠시(?) 몰두하느라 도중에 읽다가 손을 놓기도 알라딘에도 거의 접속하지도 않은채 시험치고 왕창 읽어야지했는데 예상치못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바람에 시험도 미뤄지고 2월 마지막주를 맞이 했다. 겨우내 다읽고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2월 마지막날...;;; 사실 글도 자주 썼어야했는데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이제 하나 쓰고 있다. 


주류경제학을 한창 배울때 뭐가 보이지 않는 손이지? 수요-공급 그래프를 그리거나 문제로 접한 경제학은 뭔가 그럴듯하게 보였으면서도 뉴스기사 사회면에서 접하는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게 다가 아닌거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진짜 자유시장이라는 환경은 실현되기는 하는걸까?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경쟁 시장에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힘을 뜻한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사랑, 의무. 호혜 같은 가족 가치를 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성취에 관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가슴은 돌봄에 관한 것이다. 손과 가슴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지만 서로 갈등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p. 29)


저자인 낸시 폴브레교수는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먼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경제활동이 돌아간다는 믿음은 각자의 가정의 돌봄의 영역을 '누가' 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트리클 다운' 이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여 만인을 이롭게 할 것이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자.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 아내나 어머니들이다. 아내나 어머니들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스미스가 이 생각을 떠올렸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이기심은 오직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세상에만 적당한 개념이다. 그가 믿는 도덕 감정은 가족과 가정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스미스는 타인에게 제공하는 어떤 서비스 노동이건 (분명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산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p. 38~39)


나도 위 문장을 경제학 원론에서 본적이 똑똑히 기억이 나지만 안타깝게도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 당연하게도 '여성'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나 아내가 이기적인 행동으로 식탁을 차릴까? 이러한 이유로 볼때 이기심으로만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당연히! 가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가정과 돌봄을 책임진다고 가정했던가. 앞서 읽었던 여러 여성주의 책에서도 보았듯이성의 변증법』은 생식의 독재의 관점에서『반사회적 가족』은 모성의 독재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부여당했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어느 때든 비용과 이득을 고려하기 마련이고, 선택의 결과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득을 누리는가에 맞물려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이 양육 전문가가 될수록 여성은 남성에게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은 대체로 가족을 돌보는 데 따르는 책임과 더불어 권력을 획득한다.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노동 분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한 통제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 손을 들어준다.

(p. 34)


경제학 특히 주류경제학은 특화를 통한 효율성을 엄청 좋아한다. 

다 할 필요없이 잘하는 것만 집중해서 그것만 하자. 그리고 혹시 다른 것이 필요하다면 교환을 통하면 된다.

성 역할도 마찬가지 였다. 산업화가 이뤄진 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자본주의 하에서도 보다 더 남성은 노동만 여성은 가정만의 형태가 고착화되었다. 고전경제학의 논리인 특화를 통한 효율성이 가정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화를 통한 효율적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일견 합리적인것 처럼 보이지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부여했을 따름이며 전혀 수평적인 구조가 아니고  남성지배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성이 생물학적인 이유로 출산을 독점한다고 하더라도 모성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던가 육아를 잘하게 태어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후 여권운동의 흐름 속에 겨우 여성들도 가정을 벗어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회가 그렇게 쉽게 기득권을 포기했을까? 여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은 기존 사회에서 부여한 성역할의 범위 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간호나 돌봄시장이라할지 청소라 할지 가정에서 해왔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분야였다. 그러면서 노동분업이 일어났다. 남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과 여성이 다수 속해있는 노동시장으로 나눠진것이다. 이는 성별 임금격차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부분이라고 봐도 좋다. 


'분리 영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역사적 사명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먀셜은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지닌 효율성을 찬양했다. 그는 노동 시장에서 여성에게 높은 임금을 주면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에 소홀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분명히 경고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학위 과정에 여성을 입학시키기를 거부하기도 한 그는, 여자들이 아이들보다도 자신들의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더 몰두할까 봐 염려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출산율 감소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고 "여성이 남성을 닮아가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여성을 탓했다. 

 분리 영역이라는 독트린은 여러 이유로 경제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더. 분리 영역을 상정하면, 도덕성의 원칙을 강변하면서 사랑과 이타심을 분석할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가정이라는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경제적 측면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더 편리한 것은 분리 영역은 여성은 이타적이어야 하는데 남성들은 왜 이기적이어도 되는가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남성들에게는 양쪽 세계에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편한 방법이었다.

(p. 42~43)


자신들이 기득권을 쥐고있으면서도 출산율 하락만큼은 무섭게 다가오나보다. 하지만 더더욱 여성 탓만 했지만 말이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보이는 것은...ㅜㅜ)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왜 남성에게만 더 해당이 되는지는 이해가 안간다. 남성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거고 여성은 모성의 신화로서 가정적인.. 이타심을 가진 생물인데 남자를 닮아가면 안되지라며 훈계하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가부장제는 단순히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가부장제는 돌봄 노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여성에게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타주의를 주입함으로써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수의 논리를 최소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p. 52)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교육, 보건, 보육 등을 맡겨놨더니 경쟁적인 흐름이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동안 가부정적인 질서 하에 반강제적으로 '여성'에 의해 싸게 공급되었던 돌봄노동의 특징으로 인해 그 효과를 경제성장으로 다같이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학에서도 무한한 성장만 바라볼 것이 아닌 유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앞으로 이 돌봄노동을 '여성'만이 전담해서도 안되고 각각 가정차원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결국은 이 영역을 사회전체 혹은 국가에서 같이 고민하고 부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강제적(?)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도 어느한쪽을 희생양삼아 성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경제학계에서도 반성을 해야하고.. 나도 지난 경제학도(?)로서 반성을 하며 사회의 모순이 없어질 때까지 여성주의도.. 여러가지 책들도 열심히 읽고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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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0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 지난 경제학도의 글 잘 읽었습니다. 경제학도의 글이라서인지 같은 책을 읽고 풀어내는 게 확실히 저랑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딱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겟타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학과 관련 지어 얘기를 하시네요. 이래서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또 좋은건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성학 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을요. 사실 저는 보이지 않는 가슴 읽으면서 성의 변증법을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겟타님은 성의 변증법을 똭- 가져오시네요. 후훗.

읽느라 수고하셨고 글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3월 도서로 만납시다! 3월 도서는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죠? 내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휴...

블랙겟타 2020-03-02 18:21   좋아요 1 | URL
경제학도(?) 치곤 경제학을 싫어하는 사람이지요..(응?)
네. 쓰다보니 경제학에 좀 더 집중이된 듯한..
저도 한 권으로 같이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2월엔 글을 많이 쓰지 못해..좀 그런게 있긴 한데요.. 하하 안그래도 3월 책 샀어요!

공쟝쟝 2020-03-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류 경제학의 완전 승리 = 돌봄 사라짐 & 출산 거부 = 인류 멸망
ㅋㅋㅋ 반쪽짜리 보이지 않는 손의 최후 ㅋㅋㅋ

블랙겟타 2020-03-02 18:25   좋아요 1 | URL
주류 경제학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가사노동&육아 문제를 시대가 바뀌면서 억지로 논하다보니 제대로 될리가요..하하..
 















말도 많았던 서문, 1장을 지나 2장, 3장으로 오니 아.아. 조금은 이해가 된다. 4장 5장으로 넘어가면 술술읽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이 책을 연휴에도 부여잡기로 했다. 


2장에선 1장에서 살펴본 '노동윤리'의 역사와 전통적으로 투쟁하고 저항했던 마르크스진영으로 들어가본다.

노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마르크스주의아니던가. 2장을 보면 알듯이 마르크스주의 진영안에서도 여러 갈래가 존재한다.


'더 많은 일'

처음 살펴볼 사례는 저자가 '사회주의적 근대화'라고 일컷는 쪽이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쪽으로 '노동윤리'와 투쟁하고는 있지만 지향하는 것은 '더 많은 일'이다. 그'자본주의'는 노동이 가진 잠재적인 성장을 완벽하게 이끌어내지 못하고 우리가 공산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발전한)생산력을 자본주의에서보다 생산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기에 여기에선 노동자의 '자기희생'과 '인내심'을 강조하였으며 무쇠같은 노동규율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레닌은 미국의 '테일러주의'를 칭송하였다. 레닌시기의 소련을 생각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떠올려 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의 문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문제삼아 대립각을 세웠을 뿐, 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노동윤리'를 여기서는 지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더 나은 일'

두번째 사례는 1969년대 영미권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엇던 쪽이다. 에리 프롬의 <마르크스의 인간관>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라고 칭하고 있다. 프롬은 자본주의에 대항해 내놓은 것은 앞서 레닌이 주창했던 '더 많은 일'이 아닌 ' 더 나은 일'이다. 프롬은 마르크스가 소외되고 의미없는 노동을 생산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적으로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진정한 자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을 '더 나은일'로 변경함으로써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은 최근의 포스트-포드주의의 노동조건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아닌 노동에 뭔가 감정적인, 감성적인 자아실현을 주문하고 있는 요즘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것은 앞서 레닌이 표방한 '더 많은 일'보다는 나아갔지만 아직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노동윤리' 거부와는 뭔가 다르다.


















'더 적은 일'

고로 자율주의 전통은 근대화 모델과는 달리 자본주의 아래서의 노동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노동 착취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인본주의자들 역시 노동을 비판하지만, 자율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자율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의 구호중 하나인 "일할 권리"를 새로운 구호 "노동 거부"로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말할 것도 없이 마르크스의 발걸음을 따룬다. 여기서의 마르크스는 자유가 노동시간 단축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던 그 마르크스다. 

(p. 159)


마지막으로 살펴볼 곳은 '자율적 마르크스주의'다. 안토니오 네그리로 대표되며 기존의 사회주의운동들이 노동을 신성시 하며 노동부과를 당연시 하며 '노동거부'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비판하며 사회주의는 '더 많은 일'도 아니며 '더 나은 일'도 아닌 '더 적은 일'로 가야한다고 하였다. 저자도 이 자율적 마르크스의 주장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안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 1970년대 페미니즘의 가사임금 요구를 살핀다.

먼저 그것에 앞서 가사노동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한쪽은 정통적인 진영으로, 가사노동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지 않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보는 쪽이였으며, 다른 한쪽은 덜 정통적인 진영으로 가사노동이 잉여가치를 잔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창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의 필수요소로 파악되어야하고 그래서 가사노동을 재생산노동, 나아가 생산노동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논쟁의 끝은 마르크스 이론의 기술적 해석의 싸움으로 변질이 되며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이 책에서는 마리아로사 델라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의 저작인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을 중심으로 가사임금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가사임금의 요구는 가사노동을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며, 신성시 하고자 의도한 것 역시 아니다. 이 페미니스트들이 무급 가사노동의 생산성을 주장한 것은 도덕적 선언이 아니었다. "생산적인 것이 도덕적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만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가사노동의 비가시성과 그 도덕화 모두에 맞서려는, 즉 가사노동이 일호서는 폄훼되면서 애정노동으로 과대평가되는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의제에 담긴 어려움과 급진적 야망을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p. 197)


델라 코스타와 제임스는 가사노동을 '일'로 칭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일'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가사노동의 거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가사임금 운동조차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영감도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도 있었던 탓에 성공적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앞서 가사임금의 요구에 대한 두 가지 비판을 논한 바 있다. 하나는 가사임금을 주부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젠더 분업이 더 공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많은 형태의 일에 임금을 지금함으로써 임금 시스템의 완전성이 의문시되기보다는 옹호된다는 것이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에 비해 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하고, 그리하여 일에 대한 소득의 의존을 낮춘다. 이를 통해 임금 시스템과 가족 제도가 소득 분배의 신회성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게끔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다.

(p. 230)


당시 주장했던 가사임금의 형태는 주부들에게 지급하는 것이였는데 이는 곧 젠더 분업을 더 확실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었으며 취지와는 무관하게 이는 자본주의 남성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의 시스템을 공고하게 해줄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인 케이시 윅스는 이 관점을 없애버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맞게 정치적으로 세련된 형태로 이 요구들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며 그 적절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일에 대한 의존도 줄인다는 효과도 있다. 


기본소득 요구는 가장 내 특정 젠더 구성원을 잠재적 수혜자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이자 자극으로서 훨씬 나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현실화된 젠더 범주를 재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 요구는 다른 상황에 놓인 여러 주체의 관심사에 부응할 수 있다. 그 주체들에는 가사임금 요구가 닿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한 여성 계층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기본소득 요구의 젠더 중립성을 고려하면, 재생산노동의 조직화와 젠더분업을 논의 의제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적 재생산의 조직화와 재생산노동의 젠더 분업이 기본소득 요구의 설명과 전파가 일으키는 관점의 일부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p.232)


최근들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한 기본소득은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스위스는 부결로 끝이 났고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여러 후보들이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완전'한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사회수당의 성격이거나 실업부조형의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최근의 청년수당이 이런형태다. 아직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현실적인 문제등으로 인해 바로 도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지금 그나마 행해지고 있는 '비 완전'한 기본소득'이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못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노동여부에 관계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이루어 질 날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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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기다리던 겟타님의 페이퍼로군요! 잘 읽었습니다.

제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사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읽는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할것 같다가,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아, 그 때 그 책에서 말한 게 그런 뜻이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더러 있었거든요. 이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읽다가도 그런 경험을 또 했어요. 바깥에서의 노동을 인정하면서 그렇지만 가사노동이 그 일들을 받쳐주잖아, 하는 부분과 바깥에서의 노동도 인정하면서 그러나 가정 내에서의 노동도 임금을 받아야 하는 노동이다, 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그렇더라고요. 두 주장에는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가 갑자기 이 책 읽으면서 확 오더라고요.

노동윤리의 개념도 그래요. 전 아직 100쪽 까지밖에 못읽었지만 어렴풋이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라 다 읽고나면 또 뭘 더 알게 될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200쪽 넘게 읽으셨다니, 절반 이상 읽으셨네요. 제가 지금 들춰보니 역자의 말까지 포함하면 363쪽 정도 밖에 안되던데 말예요. 겟타님 거의 다 읽으셨어요!
아울러 순위 변동을 기대해봅니다. 후훗.

블랙겟타 2020-01-27 13:54   좋아요 0 | URL
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맞아요 다락방님 저도 어설프게나마 임금격차 논문을 통해 봤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이제야(?)좀 더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그랬어요. ^^

다락방 2020-01-25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겟타님. 이 책의 3장, 4장(읽는중)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네요. 중간에 베티 프리던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비판)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우리가 베티 프리던을 먼저 읽었다면 이 부분이 더 재미있겠다 싶으면서, 그러나 이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베티 프리던의 책을 읽을 때 더 좋을 것 같기도 했고요. 책을 계속 읽는 건 너무 좋으네요. 이렇게 아는 사람 이름 나오면 막 반가워하고.
기본소득에 대해서 저는 딱히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었는데(사실 잘 몰라서요) 이 책 읽는데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요!! 재미있어요! 그렇지만 오늘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서 이만 읽고 집에 가려고 합니다. 242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으하핫.

블랙겟타 2020-01-27 15: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5장에서 유토피아가 나오면서 갑자기 잠깐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긴한데요.. 조금만 참고 견디면 마지막 페이지를 보실 수 있을거에요 :)
 

“정부의 문제는 주 52시간제를 안 지키면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 젊은 사람들은 애들 키우고 돈 쓸 데가 많아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주 52시간 상한제가) 그걸 막아버린 것이다. (한국은) 좀 더 일해야 하는 나라다.”


이 발언이 뭔고 하니.. 제1야당의 대표께서 작년 12월에 있었던 서울대 강연중에 발언한 부분이다. 발언 중에 언급한 주52시간제는 작년에 꽤 이슈가 되었던 키워드였다. 문재인대통령이 후보시절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2년차에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온갖 후폭풍이 밀려왔다. 경영계에서 죽는 소리가 나오고 보수지에서는 연일 비판논조의 글들이 나왔다. 한국현실을 모르냐? 등등..

게다가 작년 11월엔 4차산업혁명위원장이라는 분이 중앙일보 인터뷰("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을 지키나")에서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며 누가 시켜서 한것도 아니며 내 인생을 위해 한 거다.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제의 적용은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빼앗는 거라며 항변을 토해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산업혁명때의 영국을 보고 있는건가?.. 아이러니하게 일부 노동자들도 반대의 생각을 가지신 분도 꽤 있다. 왜냐면 주52시간제를 적용함으로써 임금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야당대표의 발언중에 젊은 사람들은 애들 키우고 돈 쓸데가 많아 일을 더 해야한다는 부분도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보육등의 생활비용을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 따른 '추가임금'으로 충당해야한다는 것을 전제한 발언이다. 정부도 결국 이러한 움직임을 무시하지 못하고 법 시행 한 달도 채 안남은 11월에 50-299명인 기업에 대해서 '계도기간' 1년을 주겠다고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주 52시간이라는 것도 정확히 법정근로시간은 주40시간(하루8시간, 5일)인데 예외에 해당해야할 12시간추가를 한쪽에선 마치 원래의 근로시간 기준인 양 논의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게다가 특히 요즘엔 24시간 멈추지 않은 산업이 늘면서 플랫폼노동등 노동의 개념이 점점 더 확장되고있어 장시간 노동이 교묘하게 이용되기 쉬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 이 책은 사실 미국에 대해 쓴 책이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노동시간으로 보더라도 더 나은 국가가 아니기때문에 한국에서도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같이 읽고 있는 알라디너 이웃분들의 진도를 나아갈수 없는 뻑뻑함에 대한 성토(?)에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재미없을 수가 있나! 라고 호기롭게 서문을 읽으며 뭐 서문이야.. 본문으로 들어간다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본문 1장..2장을 읽으면서 나의 눈꺼풀이 무너지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ㅠㅠ

이 책은 대중서라고 보기엔 딱딱해서 무너지는 눈꺼풀을 부여잡고 현재 2장까지를 읽어내고 있다. 하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이 현실에서 이 책 1장에서 지금의 '노동의 신성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역사를 통해 살피고 있다. 노동윤리는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비롯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출발해 산업화 윤리로 탈산업화 윤리로 이어졌다. 지금의 포스트신자유주의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임금을 벌기위해 일해야하는 것을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포스트테일러주의의 노동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단순한 노동의 능숙함을 넘어 엄격한 자기관리를 요구하는데 까지 이르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동윤리가 실제 노동현장과 동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불안정성을 가진 노동윤리는 도전받아야하고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 산업세대라고 할까 고도의 경제성장시기를 겪은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더 많이 일해야 근면(?)해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 저임금-과중한 업무가 비정상적인 방법이였지만 그렇게 '사람을 갈아넣어' 어쨌든 이렇게 한국이 성장했다. 지금도 여전히 저임금-과중한 업무가 행해지고 있는데 한국의 엘리트들은 그럼 더 많이 일해서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한다. 정상적인 대안인가? 그런 식으로 이제까지 지탱가능케 했던 것이 남성 임금노동 뒤에 가려진 무급의 여성가사노동이 전제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구조였으며 그나마 유지했던 남성임금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 구조가 최근의 경제체제에서는 생활하기 힘든 구조가 되면서 여성들이 갑자기 임금노동시장에 진출해야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여성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시장 속으로 였지만 말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출처 및 참고

시사IN 640호, 15년을 기다린 '52시간' 과거로 갈 수는 없다  

시사IN 640호, 황교안 대표님 말씀 정확하게 틀렸네요

프레시안, 1조 자산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궤변

프레시안, 30년 전으로 가고 싶은 IT산업 첨단의 기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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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9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엇 겟타님도 이 책 읽기가 어렵군요! 그렇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명절 연휴에 뽝 읽을거에요. 뽜샤!!

블랙겟타 2020-01-21 22:38   좋아요 0 | URL
재밌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잘 안넘어가고 그런데요.. ㅠㅠ 그래서 요즘엔 마르크스에 관한 팟캐스트도 듣고 그러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ㅋㅋㅋㅋ
조금만 버티다보면 어느새 끝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고 이써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1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맥락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이 언급된거네요 ㅋㅋㅋㅋㅋ (미리 읽는 느낌)

블랙겟타 2020-01-21 22:40   좋아요 0 | URL
조금 초반에 진입장벽이 좀 있는거 같은데요.. (응? 중반 읽는 지금도 책넘기기가 무겁긴 하지만요..ㅋㅋㅋ;;)
같이 읽으면 조금 더 잘 읽혀지겠죠?
함께 읽어요 ㅋㅋ (•̀ᴗ•́)و

단발머리 2020-01-22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사이에 두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겟타님의 잘 정리된 글을 차분히 읽고 돌아갑니다.
오늘은 더 많은 쪽수로 만나고 싶네요. (정말 내게 제일 걱정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이팅!!

단발머리 2020-01-22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겟타님~~~ 다락방님이 겟타님 2, 3장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고 하시면서 기다리시는 눈치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여 글 쓰시라고요! (후다닥!!!)

블랙겟타 2020-01-22 15:30   좋아요 0 | URL
으으읔 ㅋㅋㅋㅋ
무언의 압박이 아니라 직접적인 압박이네욧 (⁰︻⁰)
이..일단 타이밍 맞게 막 3장을 끝냈는데요...
(버퍼링이 있는 관계로..;;) 3일 내로 쓰..쓰겠습니다 ( ˃̣̣̥᷄⌓˂̣̣̥᷅ )
 

이 페이퍼를 쓰려고 책상에 앉아서 서재에 들어가보니.. 마지막 글을 쓴지가 한달도 넘었더라..;;;

내가봐도 더럽게 게으른.... ㅋㅋ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써야지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이 머리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책상까지 앉는과정이 까마득하니 멀게만 느껴진다. 하하.. 

(글쓰면서 여러 알라디너분들과 책의 느낌도 공유하고 소통도 하면 좋은데... )

그래서 거창하게 안쓰더라도 가볍게라도 시작을 하자하고 앉은게 지금이다.


12월달엔 어떤 주제에 꽂혀 여러 책들을 읽었거나 읽을 예정이다.

공정사회? 교육으로 인한 불평등? 계급의 대물림? 이런 주제들 말이다.

최근들어와 세대론에 대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고 맞든 안맞든 간에 청년에 대한 분석에 책뿐만 아니라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열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청년들에게 겉핥기식으로 잠깐 주목하는 듯하다가 분석하다가 무시하고 반복되었지만..)

현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특히 청년 공채로 들어온 정규직들이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모습들 과 올해 하반기부터 아직도 현재진행형상태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 비롯된 청년들의 박탈감이라고 해야될까? 공정사회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야될까? (이 키워드들이 모든 청년들을 대표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있지만 이런 감정이 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 같다.)이러한 불만들. 


절차만 완전경쟁시험으로 한다고 대입을 정시 비중을 불평등이 완화될까? 

왜 청년들은 유독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민감한가.

이 책들을 12월 동안 읽으면서 뭔가 힌트를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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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07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르는 수고 없이 겟타님이 골라놓은 책 중에서 골라야겠어요.
굿모닝~~하려했는데 벌써 1시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블랙겟타 2019-12-07 13:14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글도 틈틈히 쓸께요. ㅋㅋㅋㅋ
그럼.... 단발머리님 굿 애프터 눈! ㅋㅋㅋ

목나무 2019-12-07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의 12월의 주제 독서 정말 좋은데요. 저도 늘 관심갖는 주제이기도 한데...
단발머리님처럼 저도 책 고르는 수고 덕분에 줄었어요. ^^
읽은 느낌이나 감상도 기다리겠습니다.~ ^^

블랙겟타 2019-12-07 22:12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도 관심이 있으신 주제였군요.
제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
공교롭게도 최근에 저에게 보이던 책중에 이 주제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네. 감상들도 남기겠습니다. ^^

수이 2019-12-07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외식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분들 말씀 우연히 듣다가 그런 말 들었어요. 우리나라는 어른들이 아이들 죽이려고 발악하는 나라 같아 그렇지 않아? 청년들을 살리자는건지 죽이자는건지 알 수가 없어_ 옆에서 지켜보는 나이든 사람 심정이 이런데 그들 마음은 어떨까 하시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 끄덕끄덕_

블랙겟타 2019-12-07 22:22   좋아요 0 | URL
보통 청년들에 대해서 관심을 있는 것처럼 하다가 자기입맛에 맞는 쪽으로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게 대부분이라서요.
반대로 청년(혹은 밀레니얼 세대)들도 너무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된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미래를 위한 방향에선 벗어난 느낌이 들어서요. 공교롭게도 이 ‘공정‘이 이상하게 ‘박탈감‘ 이나 ‘역차별‘로 이어져 베타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있으니깐요. 저도 넓게 보자면 이 세대의 범주에 들어가니 이러한 흐름들이 걱정이되기도..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이제 10월은 지나가고.. 11월이 오는데 나는!? 아직까지 3편을 보고 있을뿐이고.. 

진짜 넉넉잡아도 1부 3편까지 볼 것 같아서 미리 자기 반성의 시간을... ㅠㅠ

(늘 반복되는 반성ㅜ)


어찌됬든..(!) 저자인 보부아르는 프롤로그에서 먼저 여자에 대한 생물학·정신분석·유물사관의 관점을 검토한다고 소개했듯이 1부 2편은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사회는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정치권력은 늘 남자들 손에 있었다. "공적인 혹은 단순한 사회적 권위는 언제나 남자에게 속해 있었다"고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사회 연구를 통해서 단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대등관계에 있는 동류나 타자는 남성에게 있어 언제나 남성적 개체였다. 어떤 형태든 집단 내부에서 발견되는 이원성(二元性)은 남자로만 이루어진 한 집단과 다른 집단과의 대립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일부이며, 남자와 남자 사이의 하나의 교환도구이다.

(p.101)


이 책에서는 원시사회에서부터 사회는 남성의 것이였다고했다. 이전부터 이미 양성 간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였다는 뜻인데 그럼 태초에 인류활동은 남성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렇다면 이것을 보자. 1968년에는 이후 고인류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논문집인 <사냥하는 인간>이 나왔었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 획득을 위한 '사냥'은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사냥하는 인간>에서 사냥하는 인간의 모델에 등장하는 사냥꾼은 남자였다. 사냥 한 모델을 남자로 한정지으면서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이 '사냥'은 이후 남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인류학에서도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남자는 사냥뿐 아니라 어로·목축·상업을 맡고, 여자는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성별 분업을 행해졌었다는 명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여성 인류학자들이 증가하며 기존의 백인 남성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 집단에서 보이는 수렵 행위는 다양하며, 어느 한 모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족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자가 사냥에 참여하는 모습은 종종 발견됩니다. 남자만이 사냥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사냥하는 모습만 부각되고 강조되었으며, 사냥하는 남자만이 학계의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이유는 여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일은 계속 지워져왔으며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인류 진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사냥 적응의 시작과 전개에 참여했던 다양한 인류 조상의 모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인류학계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고 북돋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백인 남성' 지우니 '사냥하는 여자' 보이네, 이상희 캘리포니아대학 인류학 교수,

『시사 IN』624호 p.148~149 


최초에 학계로 소개되길 남성 모델로 상정하면서 마치 남성만이 했던 것으로 굳어져버렸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명제와는 다르게 여성들도 사냥을 했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이상희교수는 최근에서야 밝혀진 이유를 그동안 여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앞으로 인류학계도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부아르가 2편 '역사'을 통해 깨달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썼듯 여성의 운명을 장악해온 것은 언제나 남자들이었다는 점 아니었을까? 또 보부아르는 인류의 태초부터 남성은 생물학적 특권때문에 자기들을 지배적 주체로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 특권을 놓치지 않고 남성들은 늘 여성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흔히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배운다지만 기존의 '남성'의 역사만이 아닌 '여성'의 역사도 주목하고 배워야 과거의 잘못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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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30 0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늘쯤 글 하나 쓰려고 생각중이었는데 겟타님 올려주셨군요!
인용하신 시사인의 저 글은 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도 제2의성 읽고 있고 시사인도 읽었는데 어째서 두 글을 연결해 쓸 생각을 못했을까요? 이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글을 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블랙겟타 2019-10-31 08:54   좋아요 1 | URL
그런데 써놓고 다시 보니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꽤 있었더라구요. ^^;;
네. 한 책에서도 각자 주목한 부분이 조금씩은 다를테니까 그런 점에서 다른분들께 저도 많이 배웁니다. (꾸벅)

공쟝쟝 2019-11-05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정말 절반도 안써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남는 반 이상의 서사를 여성들이 써가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늘부터는 역사 돌입합니다! ㅎㅎ

블랙겟타 2019-11-05 22:46   좋아요 1 | URL
이제까지 사실 반쯤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였죠. 쟝쟝님도 역사의 한획(!)을 그으시길요!
그럼 저는 그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