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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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하여.

이 책 첫장에 적혀있는 글이다. 보부아르? 보부아르라면... 사르트르랑 계약결혼한 그 보부아르 말이지? 첫장에서 언급할 정도면 그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나보다. 

(10월 선정도서이기도 하니 곧 보부아르의 책을 나도 읽게 되겠지..^^)

저자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이 책 『성의 변증법』단 한권으로 60-70년대를 강타한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을 이끈 대표적인 급진적페미니스트라고 알려져있다. 게다가 이 책은 그녀가 25세에 쓴 것이라고 하니.. 대단한 사람이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성 계급으로 선언하면서 생물학적 출산과 양육의 짐을 여성만이 온전히 질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늘 열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분석을 위해 사용한 사적 변증법에서 경제적 해석을 통해 여성의 억압을 희미하게 인식했다고도 볼수 있었다. 파이어스톤은 자신이 직접 마르크스,엥겔스의 계급분석의 틀을 빌려 설명함으로써 그들이 한 작업이 훌륭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해석에 의해 여성의 억압을 설명하려는 것은 그자체로 한계점이 있으며 오류라고 생각하였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억압의 원인을 다양하게 접근하였는데 먼저 여성억압의 핵심이 출산임을 간파하고 출산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리고 아동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아동기라는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아동은 연약하고 보살펴야하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런 아동을 1차적으로 보살펴야하는 존재는 대부분 여성이었음으로 여성과 아동을 가정의 틀 안으로 묶어둘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부장적인 가족으로 강화시키고 이것 또한 여성의 억압의 원인이 출산과 양육인 여성의 역할로 인한 것과 연결된다. 


아동기의 신화는 여성성의 신화와 더 잘 대응된다. 여성과 아이들은 모두 무성적이며, 따라서 남성보다 '더 순수하다'고 여겨졌다. 그들의 열등한 지위는 정교화된 '숭배'하에 나쁘게 은폐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성과 아이들 앞에서는 심각한 문제들을 논의하지 않았고 한 마디의 욕설도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을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등 뒤에서 비하했다. 여성과 아이들은 화려하고 비활동적인 옷으로 구분되었고, 특별한 과제(각각 가사노동과 숙제)가 주어졌다. 둘 다 정신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졌다.("여성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p.129~130)


아동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은 닮아있다. 결국 아동과 여성은 성인 남성보다 열등한 지위를 갖게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이버네틱 코뮤니즘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아이의 생식을 위한 가족의 대안으로 가구를 확립하고, 독신 혹은 생식과 무관한 단위에서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모든 상상가능한 생활방식이 결합되면, 현재 가족으로부터 발생해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기본적 딜레마들이 해소될 것이다.

(p.336) 


이렇게 여성의 억압의 주요 원인을 출산과 양육에서 찾아내었고 그리고 이러한 억압을 없앨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생물학적 가족'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이버네틱 코뮤니즘'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로 부터의 자유를 위해 독신 직업인이나 생식에 무관하게 함께 살기로한 사람들끼리의 동거를 통해 '생물학적'이 아닌 가족을 형성할 수 있고 생물학적인 생식인 출산은 과학에 의한 생식인 인공생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과학의 발전을 통한 대안을 생각했으며 생물학적인 가족이 아닌 가족들도 현재 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때 지금 현재에 반영된 것이 꽤 되었기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성의 변증법』에서 혁명은 성적 혁명/경제적 혁명/문화적 혁명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여성을 생물학적 생식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전체 사회에,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 남성과 다른 아이들에게도 담당하게 할 것. 모든 사람의 경제적 독립과 자결권을 가질 것. 여성과 어린이들을 사회에 완전히 통합할 것. 성적 자유와 사랑의 재통합이 이루어질 것(근친상간, 동성애, 사랑과 성의 재통합) 모든 여성과 아동들에게 성적으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자유를 줄 것등이 혁명의 내용이 된다.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p. 397~398)


그녀는 안타깝게『성의 변증법』 한 권을 내놓고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후 주변의 증언들을 통해서 그녀는 오랫동안 정신병을 알고 있었고 2012년 사망하였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다. 당시 페미니즘운동의 한획을 그을 만큼 그녀는 통찰력과 담대한 대안을 내놓을 정도로 상상력이 있었지만 엄격한 보수 유대계 가족에 속했다는 점과 이후에 있었던 가족의 죽음, 그가 속한 여성운동 내부의 조직 갈등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등이 축적되면서 그녀의 이상을 본격적으로 펼치지 못한채 떠나버렸다. 그녀의 이론은 지금와서 보면 물론 한계점도 존재하지만 그녀의 이 책에서 보여준 통찰력과 상상력만큼은 나를 많이 깨우쳐주었다. 왜 '고전'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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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 알라디너분들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서 뭔가 했더니 바로 이『징구』때문이란다.

이 책이 뭐길래..?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얼른 검색해보았더니... 다행히 아직 대출중인 상태가 아니여서 바로 빌려서 읽었다.

크기도 작고...분량도 길지않고...아~ 단편소설 모음집이구나. 


『징구』를 처음 들었을때 사람이름인가..? 그리고 책을 직접 봤을때도 아! 표지의 여성의 이름인가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이 책의 첫번째 작품인『징구』을 읽어가면서도 뭐야. 징구는 언제? 베일에 쌓인 인물일까? 제목이 징군데? 다른 인물들만 나오고...

아 이제 언급이 되는구나. 


"징구 아니에요?" 부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순간 다른 멤버들은 전율을 느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교환했고, 그러다 일제히 안도하면서도 그들의 구세주에게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모두 표정은 같았지만 각자 다른 감정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p. 28)


(...)





본격적으로 내용이 펼쳐지며 후반부를 읽는 나의 모습은 마치 영화 『유주얼서스펙트』에서 수사관 데이브가 컵을 갑자기 떨어뜨리면서 뭔가를 깨닿는 모습이었다.

와.. 하하하하하. 

징구가 뭔지 알 필요가 없었다. 징구는 징구였다.


이디어 워튼 자신이 명문가 자녀로서 당시 상류사회에서 느꼈을 위선과 허식을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여러 단편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책도 조그맣고 분량도 적어서 부담도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느끼려면 직접 읽어보는 편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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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22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이 재미있는 책을 읽으셨군요, 블랙겟타님! 아하하하
저는 이 뒤의 단편 로마의 열병을 참 좋아합니다.
:)

블랙겟타 2019-09-22 21:21   좋아요 0 | URL
네 웃음의 이유를 이제는 알게되었답니다! ㅎㅎㅎ
저는... ‘다른 두사람’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

단발머리 2019-09-22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에는 이 문장이 필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블랙겟타 2019-09-22 21:3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깨서 왜! 추석 후유증의 특효약으로 골랐는지를 알것 같더라구요 ( •ᴗ•) 하하하하

syo 2019-09-22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아직 안봤는데 어쩐지 으하하하하하하하!!

블랙겟타 2019-09-22 21:33   좋아요 0 | URL
이미 syo님은 마치 읽은 거 같은 느낌!?
하하하하하
 




#1

8월말 -9월 초까지 여러 권을 또(!) 샀다.

기존에 보관함에 두었던 책들 몇권(『노동자가 원하는 것』, 『아이들 파는 나라』)을 샀고..

동네서점에 갔다가 다락방님이 사서 읽어보라는 것에 혹해서(?) 『탈코르셋 선언』과 사인본이 있어서 얼른 집어들었던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두 권을 사고 왔다. 



# 2

9월 선정도서인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을 추석기간에 걸려서 아직 못사는 바람에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딱! 대출이 안된 채 책장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추석기간부터 사기 전 조금씩 읽어볼까 하고 빌리는 와중에 혹시... 『나, 시몬 베유』도? 있을까 했는데 역시 있었고  얼른 이렇게 두권을 빌려왔다. 그리고 상태가 최상인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많이 안빌린것 같다. 『나, 시몬 베유』는 출판된지도 최근이고 청구기호에 맞게 꽃혀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꽃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٩(ˊᗜˋ*)و

지금 읽고 있는『시녀이야기』와 함께 읽으려고 『허랜드』도 도서관에서 찾았는데 의외로 책 비치도 안 되어있더라. 

추석끝나고 사야지.



자...그건그렇고..이렇게 또 샀으니... 추석기간 동안 좀 읽어야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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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9-13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한 열독이 가능하시다면 마구마구
열독하시는 해피 추석 되시길요~~!!

블랙겟타 2019-09-13 09:4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도 짧지만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 ♡
 


최근에 영화의 전당에서 이 영화『이타미준의 바다』를 보고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놀랬다. 이타미 준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보고 온건데 한국 건축계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는 재일한국인(우리는 쉽게 이렇게 말하지만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말해야한다고 한다. 분단이 되기전 넘어간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한국, 북조선으로 선택했을지  그것도 아닌 조선으로 선택했을지 그의 선택을 존중해줘야지 무조건 한국인으로 보는 것은 실례이자 무례일 수 있기때문이다.)의 건축가로서 제주의 여러 건축들(바람,돌, 물 미술관, 방주교회등)을 설계했다고 한다. 영상미까지 더해 그런지 건축에 대해서 1도 모르는 내가 봐도 독특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일본 건축계에서의 경계인으로서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엉뚱하게도 몆 장면에 눈길이 갔다.

그가 건축가가 된 이후 처음 건축한 것이 가족의 집이었는데 이 영화 초반에 나온 여동생의 인터뷰에서 집지을 때 오빠에게 아무말도 해서는 안된다라고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했다. 아니 뭐 자기 집 짓는데 자신의 방은 어떻게 하고싶고 그런 마음들이 있을텐데 오빠에게 아무말도 하지마라라고 했던 그 대목이 괜히 나는 옛날 분들의 남아선호가 보였다. 그리고 이 분은 어릴 때 몸이 약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도쿄에서 환경이 좋은 시즈오카로 이사와 자랐다고 했지만 도쿄와 시즈오카는 가까운 곳이 아닌데 나머지 가족일원들도 좋아서 간 것일까? 괜히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나와 그가 살아계셨을때 현장에선 야쿠자여야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이 잠깐 나왔는데 어? 야쿠자가되어야한다는 말이 흥미로운 말이면서도 무슨 의미일까?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진짜 이 부분이 슥 지나가 아직 어떤 의민지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유추해보자면 그 이후에 그를 따라 건축가가 된 딸의 인터뷰중 제주도 방주교회를 건축하던 때 골조가 다끝났고 한창 공사가 진행되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아버지께서 매일매일 디자인을 바꿔서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고 나오는데 수시로 바뀌어 지시가 내려올때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그의(어쩌면 천재만이 생각할 수 있는) 건축학적이고 미학적인 고집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있으니 유명한 건축가가 되었을수도.. 하지만 야쿠자가 되어야한다는 말이 그렇게 천재라는 이유로 쉽게 포장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미학적 고집이 유명한 건축가로 발전시켜주었지만 그 밑에 수많은 현장 혹은 아래 사람들이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은아닐까? 그는 이것을 알까? 


건축에 대해서 1도 모르기 때문에 무례한 발언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그에 대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더라면 100%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아 이런면은 이럴 수 있구나라고 이해를 해볼텐데 지인들이 나와서 좋은 면만 이야기하고 몇가지 의문이 될만한 내용들은 슥 지나가 버리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없다. 당연히 그를 나쁜사람으로 만들어야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여러면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일대기를 그린 영화라면 그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토대로 그 사람 자체를 더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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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한창 인기 있을때 한 팟캐스트방송에서 남성 출연진들이 유일한 여성 출연자에게 물었다. 

"이정도로 대단한 책인가요?"

"에이 현실이랑 달라요. 너무 과장했네. 특수한 경우죠."

이부분을 듣다가 어? 여자들이 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는 아닌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연예인들의 결별 혹은 이혼소식 같은 가쉽성 뉴스를 보다가 어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저저. 내가 알아봤지. 여우 같더니만, 기가 세니까 그렇지." 등등의 말.

어? 어머니는 어째서 당신이 여자이면서 여자 편을 안들지? 왜 가부장적인 발언를 하실까?

(꼭 여자라서 여자 편을 무조건 들라는 말은 아니고 동성이면 더 감정이입이 더 잘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 책 『여자는 인질이다』를 읽으며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살아남기위해' 여성들은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남자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마녀사냥의 역사는 물론, 세계 다르 곳에서 벌어진 비슷한 선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남자는 여자를 죽일 수 있으며, 여자를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쓸 수 있고, 정말 사소한 것마저 여자를 죽이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현실이 우리 의식 깊이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보면 여자가 '죽어도 싼 년'이 되기는 너무도 쉽다.

(p.192~193)


강남역 살인사건을 필두로 최근부터 사회적인 이슈가 된 여성을 상대로 한 사건들은 범행동기가 진짜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에 벌어진 것도 아니다, 늘 있어왔다. 가정의 문제, 혹은 연인의 문제라는 그림자에 숨어버려 제대로 부각조차 되지 못했다. 



이 책은 우리가 대부분이 알고 있을 '스톡홀름 증후군'의 실제 사건인 1973년에 일어난 스톡홀름 인질사건을 통해 보여진 남자의 폭력이 사랑하는 관계에서 생각보다 얼마나 왜곡되어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름 친절이라고 여자들에게 베풀었던 것이 '친절'이 아니었음을 오만이었음을 느꼈을땐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자를 보호하려는 행동은 폭력적인 행동과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호와 폭력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 든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악의를 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테드 번디가 여자를 차 세워둔 곳까지 데려준 건 여자에게 얼마나 절실히 보호가 필요한지 알았기 떄문일 수 있다. 남자가 보호 행동을 하는 기저에는 여자를 대하는 남자들의 저열한 태도와 행동에 느끼는 동질감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레이디 퍼스트'와 기사도 정신이 시작되며, 남자가 여자에게 사소한 친절을 베푸는 것도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p. 259)


남자가 여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말 그대로 그저 친절이라면, 다른 남자나 여자가 본인에게 같은 친절을 베풀어도 남자는 기뻐해야 할 것이다. 다른 남자나 여자가 담뱃불을 붙여주거나 의자를 빼서 앉혀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소득, 명예, 권력, 심지어 자시느이 자아까지도 파트너에게 의탁하는 데 불만이 없을 것이다. 밤에 차 세워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나 여자가 있으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남자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은 누가 자신을 여자로 -아니면 여자처럼- 보거나 대하는 일이다."

(p.277)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현실을 발견했을때 머리 속이 잠시 하얘진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실제가 그저 한면만 바라봤던거야?' 책을 본 뒤로 겪게되는 현실을 마주할때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해야 해야될까? 그냥 무시하고 예전처럼 없었던 일처럼 살면 편한데 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내가 잘나서 여성주의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던 이 읽기들이 이제는 별생각없이 누려왔던 '일상'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보다가도, 예능을 보다가도, 팟캐스트 방송을 듣다가 글을 읽다가 등등 '어? 이건.. 아닌데?...' 많은 여성들이 실제 공포를 느끼는 현실에서 나는 아직 겨우 그런 사소한(?)불편함을 느끼고 혼잣말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왜 같은 곳을 살면서 한쪽은 늘 일방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걸까? 연인관계, 사랑하는 관계에도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이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출발하자. 생물학적 남성인 내가 성평등을 향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책을 읽고, 앞으로도 더 읽으면서 고민해봐야겠다. 



여성학 수업에서 모든 여자가 이런 순간을 겪는다고 설명하면, 남학생들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여자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도 안 된다는 어투로 정말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있냐고 묻는 남학생이 매년 한 명씩 나온다. 그럼 여자 학생들은 "지금 장난치는 거지?"같은 말로 반응하며 놀란다. 남학생들이 충격을 받는 만큼이나, 여자 학생들도 남자들은 이런 경험을 아예 알지도 못한다는 데에 충격을 받는다. 여자의 삶은 항상 공포가 자리하는데, 남자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대화다. 이 지점에서 가부장제 사회가 여자가 아닌 남자로 살아간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성별에게 큰 공포로 가득한 삶이, 다른 성별에게는 공포가 없는 삶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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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08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의 이 글을 읽으니, 또 한 번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기를 잘했구나 싶어요. 계속 참여해주고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책 읽으면서 하얘지는 경험을 한다 하셨는데, 저는 아프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잘못된 생각들과 행동들도 돌아보게 되고요. 이 책은 제가 같이읽기 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책이었고 인상깊은 책이었는데, 앞으로 제 삶에 이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잘 읽었어요, 블랙겟타님!

블랙겟타 2019-09-08 12:46   좋아요 0 | URL
아직 많이 공부중이죠. 모르기도 모르고 생각할 부분도 많으니깐요.
같이 읽지 않았으면 이런 책 있는 줄도 몰랐죠. (๑•̀ᴗ-)

이성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 되었어요.
네. 앞으로 읽을 책들도 열심히!

공쟝쟝 2019-09-2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이 책은 읽으면서 진짜 머리 몇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사랑은 무엇인가....... 아, 사람은 무엇인가....... 아..... 그런거였나???????? 뭐 이런생각. 그러고 보니 우리 함께 많이 읽어왔네요... 와........ 페미니즘 책읽기하면서 많이 불편해지셧다니 참 잘 하고 계시네요.(응?) ㅋㅋ 저는 불편과 분노의 감정으로 날뛰던 시간은 지났고.... (물론 시시 때때로 자주 자주 불편하고 화나고 아프지만)..... 의존하지 않는 법, 의지하지 않는 법, 스스로를 진짜로 믿어보는 것을 연마중입니다........ 그것이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그 무엇이든요~ 함께 읽으면서 조금씩 더 변화해가요. ㅎㅎㅎ 좋은 것 같아요 ㅋㅋ 케케

블랙겟타 2019-09-26 21:46   좋아요 1 | URL
음... 이 책을 읽으면서 일반적인 이성연애관계에 대해서도 뭔가 공평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죠.

네! 함께 꽤 많이 읽었죠 ㅎㅎㅎ 사실 약간의 불편함뿐인 제 감정을 어떻게 제 생각으로 녹여낼지는 계속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고민중이에요.

저도 ‘함께 읽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 (V•̀ᴗ-)✰

공쟝쟝 2019-09-26 22:31   좋아요 1 | URL
그쵸 이성애 무엇.. 아니 사랑 무엇? 사랑이라는 감정은 스톡홀롬증후군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