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문제는 주 52시간제를 안 지키면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 젊은 사람들은 애들 키우고 돈 쓸 데가 많아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주 52시간 상한제가) 그걸 막아버린 것이다. (한국은) 좀 더 일해야 하는 나라다.”


이 발언이 뭔고 하니.. 제1야당의 대표께서 작년 12월에 있었던 서울대 강연중에 발언한 부분이다. 발언 중에 언급한 주52시간제는 작년에 꽤 이슈가 되었던 키워드였다. 문재인대통령이 후보시절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2년차에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온갖 후폭풍이 밀려왔다. 경영계에서 죽는 소리가 나오고 보수지에서는 연일 비판논조의 글들이 나왔다. 한국현실을 모르냐? 등등..

게다가 작년 11월엔 4차산업혁명위원장이라는 분이 중앙일보 인터뷰("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을 지키나")에서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며 누가 시켜서 한것도 아니며 내 인생을 위해 한 거다.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제의 적용은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빼앗는 거라며 항변을 토해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산업혁명때의 영국을 보고 있는건가?.. 아이러니하게 일부 노동자들도 반대의 생각을 가지신 분도 꽤 있다. 왜냐면 주52시간제를 적용함으로써 임금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야당대표의 발언중에 젊은 사람들은 애들 키우고 돈 쓸데가 많아 일을 더 해야한다는 부분도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보육등의 생활비용을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 따른 '추가임금'으로 충당해야한다는 것을 전제한 발언이다. 정부도 결국 이러한 움직임을 무시하지 못하고 법 시행 한 달도 채 안남은 11월에 50-299명인 기업에 대해서 '계도기간' 1년을 주겠다고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주 52시간이라는 것도 정확히 법정근로시간은 주40시간(하루8시간, 5일)인데 예외에 해당해야할 12시간추가를 한쪽에선 마치 원래의 근로시간 기준인 양 논의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게다가 특히 요즘엔 24시간 멈추지 않은 산업이 늘면서 플랫폼노동등 노동의 개념이 점점 더 확장되고있어 장시간 노동이 교묘하게 이용되기 쉬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 이 책은 사실 미국에 대해 쓴 책이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노동시간으로 보더라도 더 나은 국가가 아니기때문에 한국에서도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같이 읽고 있는 알라디너 이웃분들의 진도를 나아갈수 없는 뻑뻑함에 대한 성토(?)에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재미없을 수가 있나! 라고 호기롭게 서문을 읽으며 뭐 서문이야.. 본문으로 들어간다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본문 1장..2장을 읽으면서 나의 눈꺼풀이 무너지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ㅠㅠ

이 책은 대중서라고 보기엔 딱딱해서 무너지는 눈꺼풀을 부여잡고 현재 2장까지를 읽어내고 있다. 하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이 현실에서 이 책 1장에서 지금의 '노동의 신성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역사를 통해 살피고 있다. 노동윤리는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비롯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출발해 산업화 윤리로 탈산업화 윤리로 이어졌다. 지금의 포스트신자유주의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임금을 벌기위해 일해야하는 것을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포스트테일러주의의 노동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단순한 노동의 능숙함을 넘어 엄격한 자기관리를 요구하는데 까지 이르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동윤리가 실제 노동현장과 동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불안정성을 가진 노동윤리는 도전받아야하고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 산업세대라고 할까 고도의 경제성장시기를 겪은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더 많이 일해야 근면(?)해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 저임금-과중한 업무가 비정상적인 방법이였지만 그렇게 '사람을 갈아넣어' 어쨌든 이렇게 한국이 성장했다. 지금도 여전히 저임금-과중한 업무가 행해지고 있는데 한국의 엘리트들은 그럼 더 많이 일해서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한다. 정상적인 대안인가? 그런 식으로 이제까지 지탱가능케 했던 것이 남성 임금노동 뒤에 가려진 무급의 여성가사노동이 전제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구조였으며 그나마 유지했던 남성임금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 구조가 최근의 경제체제에서는 생활하기 힘든 구조가 되면서 여성들이 갑자기 임금노동시장에 진출해야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여성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시장 속으로 였지만 말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출처 및 참고

시사IN 640호, 15년을 기다린 '52시간' 과거로 갈 수는 없다  

시사IN 640호, 황교안 대표님 말씀 정확하게 틀렸네요

프레시안, 1조 자산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궤변

프레시안, 30년 전으로 가고 싶은 IT산업 첨단의 기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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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9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엇 겟타님도 이 책 읽기가 어렵군요! 그렇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명절 연휴에 뽝 읽을거에요. 뽜샤!!

블랙겟타 2020-01-21 22:38   좋아요 0 | URL
재밌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잘 안넘어가고 그런데요.. ㅠㅠ 그래서 요즘엔 마르크스에 관한 팟캐스트도 듣고 그러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ㅋㅋㅋㅋ
조금만 버티다보면 어느새 끝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고 이써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1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맥락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이 언급된거네요 ㅋㅋㅋㅋㅋ (미리 읽는 느낌)

블랙겟타 2020-01-21 22:40   좋아요 0 | URL
조금 초반에 진입장벽이 좀 있는거 같은데요.. (응? 중반 읽는 지금도 책넘기기가 무겁긴 하지만요..ㅋㅋㅋ;;)
같이 읽으면 조금 더 잘 읽혀지겠죠?
함께 읽어요 ㅋㅋ (•̀ᴗ•́)و

단발머리 2020-01-22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사이에 두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겟타님의 잘 정리된 글을 차분히 읽고 돌아갑니다.
오늘은 더 많은 쪽수로 만나고 싶네요. (정말 내게 제일 걱정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이팅!!

단발머리 2020-01-22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겟타님~~~ 다락방님이 겟타님 2, 3장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고 하시면서 기다리시는 눈치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여 글 쓰시라고요! (후다닥!!!)

블랙겟타 2020-01-22 15:30   좋아요 0 | URL
으으읔 ㅋㅋㅋㅋ
무언의 압박이 아니라 직접적인 압박이네욧 (⁰︻⁰)
이..일단 타이밍 맞게 막 3장을 끝냈는데요...
(버퍼링이 있는 관계로..;;) 3일 내로 쓰..쓰겠습니다 ( ˃̣̣̥᷄⌓˂̣̣̥᷅ )
 

이 페이퍼를 쓰려고 책상에 앉아서 서재에 들어가보니.. 마지막 글을 쓴지가 한달도 넘었더라..;;;

내가봐도 더럽게 게으른.... ㅋㅋ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써야지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이 머리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책상까지 앉는과정이 까마득하니 멀게만 느껴진다. 하하.. 

(글쓰면서 여러 알라디너분들과 책의 느낌도 공유하고 소통도 하면 좋은데... )

그래서 거창하게 안쓰더라도 가볍게라도 시작을 하자하고 앉은게 지금이다.


12월달엔 어떤 주제에 꽂혀 여러 책들을 읽었거나 읽을 예정이다.

공정사회? 교육으로 인한 불평등? 계급의 대물림? 이런 주제들 말이다.

최근들어와 세대론에 대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고 맞든 안맞든 간에 청년에 대한 분석에 책뿐만 아니라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열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청년들에게 겉핥기식으로 잠깐 주목하는 듯하다가 분석하다가 무시하고 반복되었지만..)

현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특히 청년 공채로 들어온 정규직들이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모습들 과 올해 하반기부터 아직도 현재진행형상태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 비롯된 청년들의 박탈감이라고 해야될까? 공정사회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야될까? (이 키워드들이 모든 청년들을 대표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있지만 이런 감정이 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 같다.)이러한 불만들. 


절차만 완전경쟁시험으로 한다고 대입을 정시 비중을 불평등이 완화될까? 

왜 청년들은 유독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민감한가.

이 책들을 12월 동안 읽으면서 뭔가 힌트를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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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07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르는 수고 없이 겟타님이 골라놓은 책 중에서 골라야겠어요.
굿모닝~~하려했는데 벌써 1시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블랙겟타 2019-12-07 13:14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글도 틈틈히 쓸께요. ㅋㅋㅋㅋ
그럼.... 단발머리님 굿 애프터 눈! ㅋㅋㅋ

목나무 2019-12-07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의 12월의 주제 독서 정말 좋은데요. 저도 늘 관심갖는 주제이기도 한데...
단발머리님처럼 저도 책 고르는 수고 덕분에 줄었어요. ^^
읽은 느낌이나 감상도 기다리겠습니다.~ ^^

블랙겟타 2019-12-07 22:12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도 관심이 있으신 주제였군요.
제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
공교롭게도 최근에 저에게 보이던 책중에 이 주제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네. 감상들도 남기겠습니다. ^^

수이 2019-12-07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외식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분들 말씀 우연히 듣다가 그런 말 들었어요. 우리나라는 어른들이 아이들 죽이려고 발악하는 나라 같아 그렇지 않아? 청년들을 살리자는건지 죽이자는건지 알 수가 없어_ 옆에서 지켜보는 나이든 사람 심정이 이런데 그들 마음은 어떨까 하시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 끄덕끄덕_

블랙겟타 2019-12-07 22:22   좋아요 0 | URL
보통 청년들에 대해서 관심을 있는 것처럼 하다가 자기입맛에 맞는 쪽으로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게 대부분이라서요.
반대로 청년(혹은 밀레니얼 세대)들도 너무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된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미래를 위한 방향에선 벗어난 느낌이 들어서요. 공교롭게도 이 ‘공정‘이 이상하게 ‘박탈감‘ 이나 ‘역차별‘로 이어져 베타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있으니깐요. 저도 넓게 보자면 이 세대의 범주에 들어가니 이러한 흐름들이 걱정이되기도..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이제 10월은 지나가고.. 11월이 오는데 나는!? 아직까지 3편을 보고 있을뿐이고.. 

진짜 넉넉잡아도 1부 3편까지 볼 것 같아서 미리 자기 반성의 시간을... ㅠㅠ

(늘 반복되는 반성ㅜ)


어찌됬든..(!) 저자인 보부아르는 프롤로그에서 먼저 여자에 대한 생물학·정신분석·유물사관의 관점을 검토한다고 소개했듯이 1부 2편은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사회는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정치권력은 늘 남자들 손에 있었다. "공적인 혹은 단순한 사회적 권위는 언제나 남자에게 속해 있었다"고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사회 연구를 통해서 단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대등관계에 있는 동류나 타자는 남성에게 있어 언제나 남성적 개체였다. 어떤 형태든 집단 내부에서 발견되는 이원성(二元性)은 남자로만 이루어진 한 집단과 다른 집단과의 대립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일부이며, 남자와 남자 사이의 하나의 교환도구이다.

(p.101)


이 책에서는 원시사회에서부터 사회는 남성의 것이였다고했다. 이전부터 이미 양성 간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였다는 뜻인데 그럼 태초에 인류활동은 남성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렇다면 이것을 보자. 1968년에는 이후 고인류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논문집인 <사냥하는 인간>이 나왔었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 획득을 위한 '사냥'은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사냥하는 인간>에서 사냥하는 인간의 모델에 등장하는 사냥꾼은 남자였다. 사냥 한 모델을 남자로 한정지으면서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이 '사냥'은 이후 남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인류학에서도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남자는 사냥뿐 아니라 어로·목축·상업을 맡고, 여자는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성별 분업을 행해졌었다는 명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여성 인류학자들이 증가하며 기존의 백인 남성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 집단에서 보이는 수렵 행위는 다양하며, 어느 한 모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족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자가 사냥에 참여하는 모습은 종종 발견됩니다. 남자만이 사냥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사냥하는 모습만 부각되고 강조되었으며, 사냥하는 남자만이 학계의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이유는 여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일은 계속 지워져왔으며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인류 진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사냥 적응의 시작과 전개에 참여했던 다양한 인류 조상의 모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인류학계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고 북돋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백인 남성' 지우니 '사냥하는 여자' 보이네, 이상희 캘리포니아대학 인류학 교수,

『시사 IN』624호 p.148~149 


최초에 학계로 소개되길 남성 모델로 상정하면서 마치 남성만이 했던 것으로 굳어져버렸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명제와는 다르게 여성들도 사냥을 했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이상희교수는 최근에서야 밝혀진 이유를 그동안 여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앞으로 인류학계도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부아르가 2편 '역사'을 통해 깨달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썼듯 여성의 운명을 장악해온 것은 언제나 남자들이었다는 점 아니었을까? 또 보부아르는 인류의 태초부터 남성은 생물학적 특권때문에 자기들을 지배적 주체로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 특권을 놓치지 않고 남성들은 늘 여성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흔히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배운다지만 기존의 '남성'의 역사만이 아닌 '여성'의 역사도 주목하고 배워야 과거의 잘못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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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30 0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늘쯤 글 하나 쓰려고 생각중이었는데 겟타님 올려주셨군요!
인용하신 시사인의 저 글은 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도 제2의성 읽고 있고 시사인도 읽었는데 어째서 두 글을 연결해 쓸 생각을 못했을까요? 이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글을 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블랙겟타 2019-10-31 08:54   좋아요 1 | URL
그런데 써놓고 다시 보니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꽤 있었더라구요. ^^;;
네. 한 책에서도 각자 주목한 부분이 조금씩은 다를테니까 그런 점에서 다른분들께 저도 많이 배웁니다. (꾸벅)

공쟝쟝 2019-11-05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정말 절반도 안써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남는 반 이상의 서사를 여성들이 써가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늘부터는 역사 돌입합니다! ㅎㅎ

블랙겟타 2019-11-05 22:46   좋아요 1 | URL
이제까지 사실 반쯤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였죠. 쟝쟝님도 역사의 한획(!)을 그으시길요!
그럼 저는 그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겠어요! ㅎㅎㅎ
 














요즘에 북플에서..서재에서... 이 책이 많이 보였다.

와 다들 읽기 시작하는구나..

어? 그러고 보니 나도 써야하는데? 급히 알라딘 서재에 접속해 이렇게 쓰고 있다.  ^^;;;

사실.. 한달 안에 완독해야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룰이기도 했던 '자주 서재에 글쓰기'를 너무 안지키고 있었다. ㅠㅠ


앞서 같이 읽었던 대부분의 책에서 『제2의 성』이 자주 언급되었던 걸 보고 그렇게 유명한가?  당대를 넘어 아직도 여성주의 고전하면 이 책!이 먼저 떠오른다던데 나한텐 저자인 보부아르 이름만 들어봤지 전혀 읽어본적도 없고... 이러던 차에 드디어 10, 11월 도서가 이 책으로 선정되었다.

드디어 나도 한번 읽어보는구나.     


며칠 전 2권짜리로 된 『제2의 성』을 샀고 하루 뒤 무사히 받았다. 그리고..집에 있던 알라딘 북커버를 씌우니 딱 맞다. 

읽기도 전인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남자는 결코 어떤 성(性)에 속하는 개인으로 자신을 규정하며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가 남자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남성'·'여성'이라는 용어는 법률서류에서나 형식상 대칭적으로 쓰일 뿐이다. 실제로 두 성의 관계는 전기의 양극 및 음극의 관계와 똑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프랑스어로 '남자(homme)'라는 단어가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남자가 양성(陽性)과 중성(中性)을 대표하기 떄문이다. 라틴어의 '남자(vir)'란 단어가 지닌 개별적인 의미가 '인간(homo)'의 전체적인 의미에 동화해 버린 것이다. 반면에 여자란 오로지 음(陰)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온갖 규제가 주어진다.

(p17~18)


우리가 고전적으로 두가지로 구분해서 단지 서류따위에서 성별란에 기입하는 남/여 또는 여/남 으로 쓰는 정도의 간단한 차이를 느끼면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나만해도 '남자다움'을 대중매체나 어른들에게 약하든 강하든 강요받으며 자라오긴 했지만 어떤 다른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그냥 이런 것을 의식안하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차이다. 그리고 왜 여성은 음(陰)일까? 한자로 음은 숫자적으로도 마이너스이자 음양설에서도 소극적이고 차가운 뭐 그런 걸 뜻한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어릴적에 대부분을 왼손으로 썼다고 했다. 그떄는 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서 강력하게 우파(정치적인게 아니라 오른쪽 손으로 써야한다는..)를 주장하며 훈육하셨기에 글씨는 굴복해서(?) 지금은 오른쪽으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ㅠㅠ. 하지만 밥을 먹을 땐 왼쪽을 지켜냈다. ㅋㅋ 훈육의 부작용인지.. 이게 좀 이상해져서 어떤 것은 오른쪽으로 사용하는게 편하고 어떤건 왼쪽이 편하고 양손잡이인것 같지만 양손 다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좀 이상하긴 하다..


아! 이 일화를 왜 꺼냈냐면 '왼'이란 단어라는 것도 이렇듯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결과적인건지 원래 옛날부터 인류는 뭔가 오른쪽을 써야하는게 자연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 왼쪽을 사용하는 쪽이 소수이기 때문에 '왼'이 부정적인 느낌이 생겼나라는 일말의 변명이 있다고 한다고 해도  '음'을 뜻하는 여자는 비율로 따져도 인류에서도 남성과 대등한 수준으로 있는 데도 이쪽은 왜 그럴까?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보부아르는 늘 정상적인 성인 남자의 반대급부로 치부되는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이 책을 썼었을 거다. 
















그리고 이 책을 도서관에서 읽는 도중 쟝쟝님이 최근에 읽었던 책인 『미투의 정치학』이 도서관에 있나 검색해보니 어, 대출가능이네? 바로 빌려서 이 책도 동시에 읽고 있다. 오늘 첫장인 권김현영님의 글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를 읽었는데 여기에서 언급한 미투 사건중 우연히 (엄청 가까이서 접했던건 아니었지만) 비교적 근처에서 접했던 사건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직접 잡음이 나오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연관되었던 사람에게 그 시기를 지나 이 후에 다시 당시의 상황을 들으며 생각보다 더 심했구나를 느꼈었던 게 생각이 났다. 


아까 쟝쟝님의 페이퍼를 보고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 그 페이퍼에서 시스젠더인 남자가 여성주의를 읽거나 공부하는 기분이 뭘까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다른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나같은 경운 처음 이 분야의 책을 읽는 초창기에는 지적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 자책도, 죄책감도 생기면서 읽고 있었고 나중에는 뭔가 잘못된 것은 알겠는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자사람인 내가 뭔가 일조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요즘은 가지고 있다. 여성들이 이 분야의 책을 읽는 것과 내가 책들을 읽음으로써 느끼는 감정들이 같을 것 같지도 않고 아직 나만의 생각으로 안 다져진 부분도 있기에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이 분야 책을 읽어가고 대화를 하며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상태다.   


# 추가- 요즘 듣고 있는 노래. (원래 올리려고 했던 노랜데 깜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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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9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주 서재에 글쓰기’ 룰을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ㅎㅎ

블랙겟타 2019-10-20 07:15   좋아요 0 | URL
(๑•̀ᴗ-)

공쟝쟝 2019-11-11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 놔 ㅋㅋ 저 이거 왜 인제 읽었죠?ㅋㅋㅋ 시스젠더 남자 사람이 페미니즘 공부하는 이유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올려치지 않을거야! 더 분발해서 친구들 설득하시오 🤗

블랙겟타 2019-11-11 11:22   좋아요 0 | URL
부부담스런 과제를 던져 주셨네요.. ㅋㅋㅋㅋ (٥﹏٥` )

공쟝쟝 2019-11-11 11:57   좋아요 1 | URL
성평등에 일조하라!!ㅋㅋㅋ

블랙겟타 2019-11-11 13:11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 최소한 밀알이라도 되겠습니.. ㅋㅋㅋ
 















예전에 대학생시절 서양정치사상의 고전을 소개한  책을 읽다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아리스토텔리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랑 플라톤의 『국가』를 덜컥 구매한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책장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근 몇년동안 잦았던 이사를 통해. 결국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무겁기도 무겁고... 읽을 것 같지가 않았다.(사놓고 안 읽었다는 얘기다.ㅡㅡ)

이렇듯이 고전은 진짜 스스로는 못 읽겠다고 느꼈었다.


흘러흘러 작년 말부터 우연한 기회에 참가한 여성주의 책 읽기 모임에서 7월 선정도서로 이 책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로 정했다. 

어.. 고전?..앞 전에 읽었던 책들도 쉬운건 아니였지만 고전을 다룬 책을 드디어 접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6월 도서이자 이 책에 다루었던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과 동시에 읽었긴 하지만 말이다. ^^:;)


그래. 생각해보니 이왕 여성주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고전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의 흐름을 잡을 필요도 있겠군..


이렇게 말했지만 이 책은 고전자체이기 보다 고전에 대한 해설을 하는 책으로 입문자에겐 더 맞는 책이다.

그래도 아무리 고전을 해설하는 책이라도  혼자서 읽는 것 보다 누군가와 같이 읽는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처럼 여성주의 고전에 대한 지식이 전파된 것은 이미 한 세기가 되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콜론타이만 하더라도 그녀의 여성해방론 전체가 아니라 자유연애론만 과도한 관심 속에 부각되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여성참정권이 해방 후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여성운동가들이 참정권 요구를 내걸 일도 없었지만, 참정권운동을 통해 여자들이 조직화하고 여성운동의 역량을 축적하는 경험도 할 수 없었다. 여자들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외부와의 대결 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자기인식을 확고히 해가는 체험을 할 계기가 없었던 것이니, 외적 행운이 언제나 내적결실의 강화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p. 6)


생각보다 그동안 한국내에서는 여성주의 고전에 대해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들어 어느때보다 활발해진 페미니즘 이슈로 인해 나같은 사람도 이 책을 접하게 되었으니 앞으론 고전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거라고 믿는다. 이 책에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주디스 버틀러까지 여러명의 여성주의자들이 언급되는데 나에겐 '엥겔스, 밀도 여기에 포함되는거야?'라던가 그나마 이름이라도 들어본 보부아르 빼곤 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명의 여성주의자들중에 주목해서 본 여성주의자는 매리 울스턴크래프트, 알렌산드리아 콜론타이, 베티 프리단이었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통해 근대 페미니즘의 출발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었다.



계몽사상의 옹호자였던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도 이성옹호의 차원에서 옹호했다. 즉 인간은 이성의 담지자이고, 여자도 인긴이기에 이성의 담지자인 만큼,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인간의 보편적 속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여성적 가치를 중시하지말고 여자를 인간으로 대해달라는 것이 울스턴크래프트의 가장 강력한 요구였다.

(p. 50~51)


그녀는 18세기 후반의 인물로 계몽사상의 옹호자였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믿는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과 여성은 이성의 담지자로서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현실 속 여성은 약할까라고 의문을 가졌던 그녀는 여성억압적인 담론과 교육이 그 원인이라고 지목하며 여자는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여자를 똑같이 인간으로 대해달라는 요구였지만 당시로선 저정도의 주장을 목소리 내는 것도 힘들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그래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를 위해 여성을 위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도 분명했다.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되는 이유가 잘 교육 받는 여성이 좋은 어머니, 좋은 시민이 된다고 생각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말하기 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말하는 데 더 방점을 두었다. 그리고 계급적인 면에선 기층여성들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 분명한 한계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이성주의자로서 여성주의사상을 개척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 한계가 있음에도 그녀의 주장했던 내용은 근대 페미니즘의 출발로 볼때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다.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혁명가, 소련의 정치인이자  여성 외교관이었다. 그리고 맑시스트 여성운동가였다.

이력에도 알 수 있듯 마르크스주의자 여성운동가로서 그녀도 역시 당시 자신이 발 딯고 있는 영역에서 여성주의자로서 받았을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가진 인물이었다.


콜론타이의 여성주의적 면모는 오히려 소련 학계에는 곤혹스러운 요소였다. 소련 시대에는 공식 학계나 여성운동계에서도 '여성주의'라는 말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소련 체제는 콜론타이와 같은 걸출한 여성운동 지도자가 현장에서 사라진 이후에는 여성운동을 왜소화시키고 관제화시켰으며, 그렇게 축소된 테두리에 포섭되지 않는 여성해방 관련 논의들을 폄훼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p. 229)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자중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힘쓴 인물로 이후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를 결합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왜 소련에서는 콜론타이를 곤혹스러워했을까?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농민문제나 여성문제등 개별분야에서 해결되어야할 문제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이지 독자적인 움직임이나 해결방식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도 콜론타이는 여성의 억압을 느끼고 여성주의적 입장을 내었었다. 


시대적 한계라고 봐야할까? 여성주의자이기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전통적인 마크르스주의자로서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여성참정권운동과 동일시하는 '부르주아 여성주의'의 의미로 해석하였기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여성문제를 중시하되 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이 이를 주도해서는 안된다고 보아서 그 자유주의적 여성운동가들에게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비판을 하며 억압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필연적으로 맞닥드릴 수 밖에 없는 문제인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면 '자동'적으로 여성문제가 해결될까 라는 의문에 대해서 복잡한 심경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처음에는 그렇게 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20년대를 거쳐가며 사회주의가 '자동'으로 여성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여성문제에 관한 콜론타이의 견해는 점점 진화했고 여성문제의 상대적 독자성을 점차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 견해를 낸 인물로 그녀가 혁명 후 맞닥뜨린 현실에 수긍하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베티 프리단인데 이 인물은 냉전기 미국의 자유주의 여성주의자로 저서 『여성성 신화』를 통해 당시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을 이끈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을 숭배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는 그대로의 여성,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보아줄 것을 요구했다. 성별 차이론이 생물학적 차이론으로 나아가고 또다시 여성억압으로 귀결되는 데 대한 비판이 여성성의 신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p. 365)


프리단은 남녀의 근본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담론이 여성성의 우상숭배를 낳았고 겉으로는 여성을 높여준다는 이 체계가 여성의 다양한 활동기회나 가능성을 박탈하고 여성억압으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대로의 여성으로 보아 줄 것을 요구했다. 전통적인 여성담론에서는 여성혐오나 여성비하로 여성은 열등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인식의 한가지와 오히려 여성숭배로서의 농경시대 초기의 여신숭배이거나 아테네 여신숭배따위의 여성은 우상적 존재로 인식하는 한가지로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담론이 요구하는 여성상은 결국 현모양처로서 가사부담자로서의 여성으로 귀결되었다. 프리단은 그녀가 교외에 거주하는 중산층 주부로서 살면서 느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여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여성의 독립성, 인격적 성숙, 지적, 사회적 활동을 여성도 당연하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 시대에서는 여성을 오로지 가정에 속박하고 성에 집착함으로서 나쁜 어머니가 된다고 보았다. 여성이 가정이라는 선택지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독립적 활동만 보장된다면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고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 책과 같이 읽었었던  『성의 변증법』의 파이어스톤과는 다르게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개인적인 윤리의 차원에서 사고했으며 상대적으로 온건한 여성주의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고전의 저자들이 기본적으론 여성주의자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주장하는 바가 미묘하게 나뉘고 서로간에 부딪치는 면도 볼 수 있었다.  각각의 주장에는 시대적 한계 혹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의 한계로 지금에 와서 볼 때 아쉽거나 비판되어야할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왜 이 고전을 읽어야할까라는 질문에는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이 당대에 주장한 목소리들을 현재에 읽음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나아가할지 어떤것들을 고민해야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선 '고전'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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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0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콜론타이랑 베티 프리단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콜론타이가 썼다는 소설과 [여성성의 신화] 사두었어요. 아, 물론 여성의 권리 옹호도...
의욕이 앞서는 탓에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해서 책을 자꾸 부지런히 쌓아 두지만 그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게 될지 모르겠어요. 회사 그만두고 책만 읽으면서 살고 싶네요. 흑흑 ㅠㅠ

10월 도서, [제2의 성]도 열심히 읽읍시다! 저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킁킁.

블랙겟타 2019-10-10 13:03   좋아요 1 | URL
저도 <제2의 성>곧 시작할께요.
아 참 책이 없지.. 책부터 먼저 사고.. ㅋㅋㅋ

2019-10-10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0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0-14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성어린 독후감! 짝!🖐🏻 저도 사회주의와 페미니즘 관계 흥미롭게 읽었어요!! 여성주의를 한번 죽 정리해줬던 책! ㅋ

블랙겟타 2019-10-14 22:44   좋아요 0 | URL
네. ^^
이 책 쟝쟝님이 추천하신거죠? 덕분에 다양한 고전과 여성주의자들을 알수 있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