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부산에 신발공장들이 많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굴지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들의 하청공장들이 부산에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찍혀 나온 운동화들. 그 당시는 정작 한국에서 이 운동화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 한국의 사람 가격이 쌀 때다. 당시 대부분 신발 공장의 노동자들은 여자들이었다. 어쨋든 몇 수십년이 흘러 부산엔 신발 공장은 이전하던가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그만큼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 왜냐면 임금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 옷등에서 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는 보기 힘들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나이키 신발을 보니 메이드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이라고 적혀있구나. 동남아권 나라에서 많이 생산된다. 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은 중국에서 만든 것일테지? 내가 어릴적만하더라도 걸어다니면서 컴퓨터못지않은 것들을 들고 다닐거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또 어릴적엔 옷을 이모집에서 보내주신 소포안에 있었던 옷들을 많이 물려 받아 입었었다. 지금은 SPA브랜드의 등장도 있거니와 옷도 타협만 잘하면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질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기에 색이 바래거나 닳아지면 (예전같으면 기워서 사용하면 되지만) 지금은 버리고 새로 사는게 더 간편하고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금은 소비의 시대다. 소비할 것이 넘쳐난다. 넘쳐나다 못해 주체를 못해 버려야 새로운 것 사야하는 지경이다. 버리기도 많이 버리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폭증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근원에는 여성에 대한 '착취'에서부터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은 여전히 근대 과학의 기초이며, 물질적 힘과 결합된 지식이다. 화약, 향해술, 나침반 등 기술발명의 많은 것이 사실 전쟁, 정복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전쟁의 기술'은 인쇄술처럼 지식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폭력은 신남성이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수립하는 데 사용된 핵심 단어이자 핵심 방법이다. 이런 폭력수단은, '옛날처럼 자연의 작용을 부드럽게 인도하는 것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이 수단들을 자연을 정복하고 종속시킬 힘, 그 뿌리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p. 201)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이 주장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결국 자연이란 인간이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지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베이컨으로 시작된 경험주의 철학은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자연에 대한 인식이 함께 사는 곳이라기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해(정복, 파괴등) 인간을 위해 쓰여져야했다. 이는 곧 남성-여성간의 지위에도 적용이 되었다. 인간(Man)은 자연(Nature)을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에 대한 인식 또한 아이를 출산하는 신성한 존재, 인간(Man)에서 볼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로 여겨지며 이전부터 이미 여성이 자연과 동의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또한 동등한 주체가 아닌 정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녀사냥은 아프리카에서도 위세를 떨쳤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 특히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처럼 노예무역에 한때 연루되었던 나라에서 분열의 핵심수단으로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도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자원을 둘러싼 강력한 투쟁으로 인한 여성의 지위 하락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캘리번의 마녀』, p. 341)


이런 흐름은 예전에 읽었던 『캘리번의 마녀』에서도 보았듯, 유럽에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에서도 마녀사냥의 형태로 자연에 대한 정복욕구가 끔찍하게 나타났다.


마녀사냥으로 유럽 여성을, 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이야기의 다른 측면'은 유럽과,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처음 부를 축적한 계급의 여성이 사치품과 부의 소비자와 과시자로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가중주부의 단계로 가는 이야기다.

(p. 227)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 그 대륙들의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것또한 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결과적으로 북미나 유럽의 여성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고 그들또한 가정주부화시켜 저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소비만 하는 존재로 종속시켜버렸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가정주부라고하는 이런 신비화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다. 이는 이 노동분업을 순조롭게 기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는 세계시장을 위해 착취 혹은 극도의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여성이 조직화되지 못하도록 한다. 여성을 개별화한다. 이는 관심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미지로, 말하자면 남성의 부양을 받는 '진짜' 가정주부로 쏠리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대다수 여성에게 실현될 수 ㅇ벗는 일일 뿐아니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파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p.261~262)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사실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남성'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전혀 여성에 대한 '착취'를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고 별 탈없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먼저 남성으로서 폭력적인 '여성'착취의 과실을 따먹기도 한 존재였고 두번째, 한국인으로선 개발도상국등지의 여성들의 '착취'로 인해 생산되는 값싼 상품들을 소비해온 나로선 이 내용들이 두렵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바꿔야할까. 내가 남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과 실제 어떠한 형태로든 '착취'당해온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의 질은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동아시아권에만 머무를 것만 같았던 전염병 유행이 현재 유럽-미국에서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전지구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의 특징으로 비롯된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화된 산업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글로벌한 전 세계 산업네트워크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으며 또한 금융은 어떤가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에 대한 맹신과 폭발적인 팽창과 함께 금융또한 전세계가 전 지구적인 금융사슬로 묶여있다. 코로나 국면이 진정되더라도 기존의 리먼브라더스사태등의 이전의 경제위기와는 또다른 형태로 찾아올 것같다. 새로운 형태의 위기에 사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은 없는 것 같다. 어쨋든 기존의 자본주의하의 단기적 처방 방법대로 전세계가 돈을 풀기 시작했다. 이 해법이 어느정도 통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 위기의 근원을 좇아가면 생태 위기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자연을 인간이 정복해야한다는 대상으로 본 자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누리는 지금은 분명 빛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착취'가 있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존과 다른 뭔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3-3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저는 여자로서도 다른세계의 여자를 착취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괴롭더라고요. 그렇다면 길게 보고 마리아 미즈가 말한것처럼 소비를 내가 조절해야 하는것이구나 싶고요.

3월의 마지막날, 한 편 더 쓰셨네요, 블랙겟타님. 고생하셨습니다.

블랙겟타 2020-03-31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껏 과학과 기술의 발전 혜택을 듬뿍 받고 사는 사람이라 당장 어떻게 해야될지는 두렵고 어렵기도 하네요.

나중에 읽을 <에코 페미니즘>을 통해 마리아 미즈의 구체적인 주장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 •ᴗ•)
 

예전에 경제학 배운다고 노동경제학쪽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노동경제학에서 중요한 관심주제중 하나는 임금격찬데 그 중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설명하지 않아도 일반사람들도 존재하다는 걸 다 안다. 왜 생길까는 지금도 여러가지로 경제학계에선 연구하고 있지만 완벽한 대안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몇몇 중엔 남성과 여성의 몸의 차이, 즉 신체에서 나오는 선천적인 차이로 인해 남성은 뭔가 육체 노동영역(1,2차 전통적인 산업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 예를 들면 돌봄이라던지 가사영역, 서비스영역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격차가 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즉, 이부분이 경제학에서는 설명할 수 있는 격차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하지만 경제학은 왜 성별 분업이 이루어졌는지 신체적 특징때문에 그렇다고 했지만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는 여성에게도 노동시장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어 좋은 일자리에 많이 유입이되게끔하고 정치영역에도 여성이 많이 진출해서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만들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정부에 압력을 가해 여성에게 좀 더 많은 사회 복지 혜택을 주도록 하는 것을 통해, 혹은 노동시장에서, 특히 좋은 일자리에서 여성에게 평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것을 통해, 혹은 여성이 정치나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을 통해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기대했던 페미니스트는 모두 기대가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평등과 자유에 대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권리도, 여성과 관련해서는, 여건이 좋을 때만 보장되는 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권리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자본이 축적을 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유보시키겠다고 하면 유보되고 만다.

(p. 69~70)


위의 이런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냐면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전에도 분명 이런 생각했었고 잠시 이뤄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여건 좋을 때 선심성으로 내놓았고 그마저도 다시 퇴보한 적이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왜 매번 이런 결과로 이어질까? 그것은 남성에 의한 '착취'라는 근본적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남녀관계를 말할 때 착취를 말하지 않는다면, 억압과 종속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공중에 붕 뜬 것이 될 것이다. 얻는 것이 없다면 왜 남성이 여성에 대해 억압적이겠는가? 착취와 관계되지 않는 억압 혹은 종속은, 그렇다면 순전히 문화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된다. 어느 정도는 타고난 남성의 공격적이고 새디스트적 경향 등을 언급하지 않고는, 그 근원을 알아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착취가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범주라고한다면, 그 기초에 남녀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부족과 사회에 의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달라 코스타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의 착취에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성은(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서도) 남성에게 착취당한다. 그리고 자본에 의해 가정주부로 착취당한다. 만약 여성이 임금 노동자라면 [자본에 의해] 임금노동자로서도 착취를 당한다. 그러나 이 착취조차도 다른 두 가지의 연결되어 있는 착취 형태에 의해 규정되고, 강화된다. 

(p.107)


저자인 마리아 미즈는 남녀관계를 착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이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달라코스타를 인용한 부분을 읽다가 비슷한 주장을 다른 책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아! 찾아보니 작년에 읽었던 『캘리번과 마녀』에서 였다.
















달라 코스타의 말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착취, 즉 "임금 노예제"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졌고, 이 무임노동이 임금 노예제의 생산성의 비결이다(1972:31).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한다.

(캘리번과 마녀, p. 21)


『캘리번과 마녀』의 서문에도 적혀있듯이 특히 자본주의적 축적에서 이러한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필수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 달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도 비슷하게 말하길 보이지 않는 무급의 가사, 돌봄 노동으로 인해 자본주의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 남녀관계는 남성의 여성'착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나의 순진한 생각과 다르게 여성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준다거나 여성이 정치적 힘을 가진다고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럼 어떻게? 우선 '착취' 역사를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3-28 15: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블랙겟타님 한달동안 이 책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독하셔서 너무 멋집니다. 으하하핫. (나도 완독함)
이렇게 정리해주신 것도 좋고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읽고 정리까지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이 생각나고 저 책이 생각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색다르거나 특별한게 없었는데도 읽는동안 또 충격이더라고요. 아 맞아, 아 그렇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인도 여성들의 처참한 폭력과 살해-페미사이드-앞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책에서 왜 페미사이드가 나와야 하는걸까, 잠깐 어지러웠었어요. 결국 연결되어 있지만요.

자, 우리 힘내서 3월 도서도 읽어봅시다.

블랙겟타 2020-03-31 14:02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저는 이 책이 읽은 것중에 손꼽힐정도의 책이었어요.

여성주의 책을 매달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당연히 이 의미는 새롭게 알아서 기쁜것과 부끄러움이 같이 있어요.

다락방님 그런데.. 3월 도서는 다 읽었는데여? ㅋㅋㅋㅋㅋㅋ 당연히 ‘4월’로 찰떡같이 알아들을게요~(σ^∀^)σ

다락방 2020-03-31 14: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요 4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찰떡같이 알아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하긴, 이제 우리가 그럴 사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4-03 0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진했던 겟타... 저 역시 순진했던 구좌파(적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로서 책을 읽으며 계속 끄덕끄덕 했더랬죠.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너무 멋지지 않나요?

블랙겟타 2020-04-05 21:58   좋아요 1 | URL
네. ^^
자본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도 슬쩍 눈길을 준 적이 있었는데요.. 여기도 확실한 대안이다라고 하기엔 알면 알수록 한계가 보여서 어떤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충격도 받았고 새로운 고민거리를 얻었어요 ^^;; 물론 멋졌기도 했구요 ㅎㅎ
 














3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책이다. 

와- 제목에서만 봐도 무거운 단어들의 조합이다. 뭐 언제는 쉬운 책있었냐만은.. 

어찌됬건 이 책을 샀던 건 3월되자마자 바로 샀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미루다가 겨우 저번주 부터 읽기 시작했고 첫글을 이제서야 쓴다. 좀 더 읽고 쓰려고 했지만 너무 미루는 버릇이 있다보니 읽는 의욕도 떨어지기 십상이다. 안되겠다 잘쓰려고 하지 않더라도 자주 쓰면서 나의 의욕을 키울 필요가 있다 싶어 급하게 책상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이 책에 대한 정보는 없었던 채 책을 넘기며 '뭐... 몇년 전에 나온책인가..?'하고 보다가 엥? 86년에 초판이 발행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무려 내가 없었을 때 나왔던 책이라니.. 어쩐지 이 책 가격이 일반 책보단 비싸다더니... 이런 책이었니? 

뭔가.. 어려워 보여...라고 책을 시작하면서도 그래도 한가지 마음 한켠엔 반가웠던 것이 있다.


먼저, 올해 읽었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보이지 않는 가슴』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가사노동, 돌봄노동에 대해 빚을 지고 있는지...무시하고 있는지 알아본 기억이 났었고
















가부장제에 대해선 작년 4월에 읽었던 책 『가부장제의 창조』를 통해 가부장제가 자연스럽거나 생물학적인 근거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기억이 나며















부제인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에 대해선 작년 2월에 읽었던 책 『캘리번과 마녀』를 통해 씨름했던 기억도 나고.. 아 맞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다른 책, 3월에 읽었던 『혁명의 영점』에서도 가사노동, 재생산에 대해서 말했었지?















와- 꼴에 몇권 읽었다고 어렴풋이나마 생각나는거 보소. ㅋㅋㅋㅋㅋ

이런 책들 안 읽고 이 책 도전했더라면 몇달 걸렸을텐데... 

(결론은 그동안 해왔던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를 하기를 잘했다는 얘기?) 

이렇게 한 장르의 책을 꾸준히 읽다보니 이전의 책들의 내용과 연결된 부분이 있기에 읽을때마다 아 저 단어? 저 책에서.. 이 책에서 봤었는데? 다시 ireaditnow 어플을 실행해 그 책을 읽으며 저장했던 문구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전의 책들을 읽지 않고 이 책을 펼쳐들었더라면 아마 나른한 오후에 독서실 형광등을 별을 삼아 나를 꿀잠으로 인도해줄 책베개로 썼을것 같은 아찔한 예상을 뒤로한채 지난주부터 무난하게 읽기시작했고 역시 생각만큼이나 어려운 내용들도 있어 휘리릭~하고 읽혀지진 않지만 아직까진 그래도 꽤 잘 읽어가고 있다.

역시 고전인 만큼 우와-하면서 읽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번달엔 꼭 글을 여러번 써야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3-17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다보니까 [가부장제의 창조]랑 겹치는 부분이 본문중에 나오더라고요. ‘니네 남자들이 먹여살린 줄 알지? 그거 아니라니까? ‘ 크- 어어, 나 이거 가부장제의 창조 읽어서 아는건데 여기서 또 나온다~ 하면서 좋아했어요.
돌봄노동도 마찬가지, 언급하신 책들 당연히 떠올랐고요. 실비아 페데리치! 자본주의는 실비아 페데리치 덕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거든요. 저도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와서 그나마 마리아 미즈의 책 읽기가 좀 낫구나 싶어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으하하핫.

시작하셨으니, 자, 이제 열심히 읽고 씁시다, 겟타님. 뽜샤!

블랙겟타 2020-03-17 12:3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작년에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들을 끙끙대며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요.. ㅋㅋㅋㅋ 그렇게 읽어놔서 아주 약간(?)은 편한 느낌이 드네요. 그 책도 다음에 또 읽으면 더 이해가 잘 되겠죠.

네. 조용하게 부지런히 읽고 있으니깐요. 글만 부지런히(ㅠㅠ)쓰면 될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라로 2020-03-17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글 보고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담다가 깜놀했어요.^^;; $56.00 굉장히 비싼 책이네요....하하;;
열심히 같은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블랙겟타 2020-03-19 00:38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라로님^^
외국에서도 기본 가격(?)은 아니였나보네요.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죠? 읽긴 쉽지 않겠지만요 ㅎㅎ
읽어도 아직 모르는게 많지만요..ㅎ라로님의 응원을 등에 엎고 이번 달 동안 열심히 읽어볼게요. :D

단발머리 2020-03-19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전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런 방식으로 연결해서 공부할 때 더 오래 기억되고 더 잘 이해될거라는 생각이요. 오늘도 역시 겟타님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러나, 오늘의 문장은 여기.

무려 내가 없었을 때 나왔던 책이라니.. 어쩐지 이 책 가격이 일반 책보단 비싸다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3-31 14:07   좋아요 0 | URL
요즘엔 옛날에 나온 책(?)들이 더 대단한 책이 많은 것 같아요.. ㅋㅋㅋ

Comandante 2020-03-2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블랙겟타 2020-04-03 09:08   좋아요 0 | URL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

비연 2020-03-2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얼른 따라잡아야겠어요. 게으름 피우다가 (몸살 핑계도 대고 ;;) 아직 2장이라니.
겟타님 글 보니... 더더욱 불끈.

블랙겟타 2020-03-31 14:15   좋아요 0 | URL
그래도..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저야 뭐 시간이 있다보니 하하하..;;

공쟝쟝 2020-03-25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여러번 써야지! 👍👍

블랙겟타 2020-03-31 14:24   좋아요 1 | URL
에... 뭐...제가 그렇게 썼던가요?? ㅋㅋㅋㅋ
쟝쟝님은 이제 새로운 안락한 공간에서 책 읽으신다면 책이 술술 넘어가시겠어요 ~^^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의 2월의 도서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다. 이 책 제목은 영문명으로 봐도 알 수 있듯 경제학 용어중 가장유명한 용어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를 패러디했다. 

2월초에 이 책을 읽는 초반만 하더라도 '돌봄경제학이라.... 금방 읽겠다'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건만 시험공부에 잠시(?) 몰두하느라 도중에 읽다가 손을 놓기도 알라딘에도 거의 접속하지도 않은채 시험치고 왕창 읽어야지했는데 예상치못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바람에 시험도 미뤄지고 2월 마지막주를 맞이 했다. 겨우내 다읽고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2월 마지막날...;;; 사실 글도 자주 썼어야했는데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이제 하나 쓰고 있다. 


주류경제학을 한창 배울때 뭐가 보이지 않는 손이지? 수요-공급 그래프를 그리거나 문제로 접한 경제학은 뭔가 그럴듯하게 보였으면서도 뉴스기사 사회면에서 접하는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게 다가 아닌거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진짜 자유시장이라는 환경은 실현되기는 하는걸까?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경쟁 시장에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힘을 뜻한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사랑, 의무. 호혜 같은 가족 가치를 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성취에 관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가슴은 돌봄에 관한 것이다. 손과 가슴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지만 서로 갈등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p. 29)


저자인 낸시 폴브레교수는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먼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경제활동이 돌아간다는 믿음은 각자의 가정의 돌봄의 영역을 '누가' 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트리클 다운' 이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여 만인을 이롭게 할 것이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자.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 아내나 어머니들이다. 아내나 어머니들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스미스가 이 생각을 떠올렸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이기심은 오직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세상에만 적당한 개념이다. 그가 믿는 도덕 감정은 가족과 가정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스미스는 타인에게 제공하는 어떤 서비스 노동이건 (분명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산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p. 38~39)


나도 위 문장을 경제학 원론에서 본적이 똑똑히 기억이 나지만 안타깝게도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 당연하게도 '여성'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나 아내가 이기적인 행동으로 식탁을 차릴까? 이러한 이유로 볼때 이기심으로만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당연히! 가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가정과 돌봄을 책임진다고 가정했던가. 앞서 읽었던 여러 여성주의 책에서도 보았듯이성의 변증법』은 생식의 독재의 관점에서『반사회적 가족』은 모성의 독재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부여당했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어느 때든 비용과 이득을 고려하기 마련이고, 선택의 결과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득을 누리는가에 맞물려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이 양육 전문가가 될수록 여성은 남성에게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은 대체로 가족을 돌보는 데 따르는 책임과 더불어 권력을 획득한다.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노동 분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한 통제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 손을 들어준다.

(p. 34)


경제학 특히 주류경제학은 특화를 통한 효율성을 엄청 좋아한다. 

다 할 필요없이 잘하는 것만 집중해서 그것만 하자. 그리고 혹시 다른 것이 필요하다면 교환을 통하면 된다.

성 역할도 마찬가지 였다. 산업화가 이뤄진 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자본주의 하에서도 보다 더 남성은 노동만 여성은 가정만의 형태가 고착화되었다. 고전경제학의 논리인 특화를 통한 효율성이 가정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화를 통한 효율적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일견 합리적인것 처럼 보이지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부여했을 따름이며 전혀 수평적인 구조가 아니고  남성지배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성이 생물학적인 이유로 출산을 독점한다고 하더라도 모성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던가 육아를 잘하게 태어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후 여권운동의 흐름 속에 겨우 여성들도 가정을 벗어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회가 그렇게 쉽게 기득권을 포기했을까? 여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은 기존 사회에서 부여한 성역할의 범위 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간호나 돌봄시장이라할지 청소라 할지 가정에서 해왔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분야였다. 그러면서 노동분업이 일어났다. 남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과 여성이 다수 속해있는 노동시장으로 나눠진것이다. 이는 성별 임금격차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부분이라고 봐도 좋다. 


'분리 영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역사적 사명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먀셜은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지닌 효율성을 찬양했다. 그는 노동 시장에서 여성에게 높은 임금을 주면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에 소홀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분명히 경고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학위 과정에 여성을 입학시키기를 거부하기도 한 그는, 여자들이 아이들보다도 자신들의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더 몰두할까 봐 염려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출산율 감소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고 "여성이 남성을 닮아가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여성을 탓했다. 

 분리 영역이라는 독트린은 여러 이유로 경제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더. 분리 영역을 상정하면, 도덕성의 원칙을 강변하면서 사랑과 이타심을 분석할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가정이라는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경제적 측면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더 편리한 것은 분리 영역은 여성은 이타적이어야 하는데 남성들은 왜 이기적이어도 되는가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남성들에게는 양쪽 세계에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편한 방법이었다.

(p. 42~43)


자신들이 기득권을 쥐고있으면서도 출산율 하락만큼은 무섭게 다가오나보다. 하지만 더더욱 여성 탓만 했지만 말이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보이는 것은...ㅜㅜ)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왜 남성에게만 더 해당이 되는지는 이해가 안간다. 남성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거고 여성은 모성의 신화로서 가정적인.. 이타심을 가진 생물인데 남자를 닮아가면 안되지라며 훈계하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가부장제는 단순히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가부장제는 돌봄 노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여성에게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타주의를 주입함으로써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수의 논리를 최소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p. 52)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교육, 보건, 보육 등을 맡겨놨더니 경쟁적인 흐름이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동안 가부정적인 질서 하에 반강제적으로 '여성'에 의해 싸게 공급되었던 돌봄노동의 특징으로 인해 그 효과를 경제성장으로 다같이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학에서도 무한한 성장만 바라볼 것이 아닌 유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앞으로 이 돌봄노동을 '여성'만이 전담해서도 안되고 각각 가정차원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결국은 이 영역을 사회전체 혹은 국가에서 같이 고민하고 부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강제적(?)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도 어느한쪽을 희생양삼아 성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경제학계에서도 반성을 해야하고.. 나도 지난 경제학도(?)로서 반성을 하며 사회의 모순이 없어질 때까지 여성주의도.. 여러가지 책들도 열심히 읽고 고민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3-0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 지난 경제학도의 글 잘 읽었습니다. 경제학도의 글이라서인지 같은 책을 읽고 풀어내는 게 확실히 저랑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딱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겟타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학과 관련 지어 얘기를 하시네요. 이래서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또 좋은건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성학 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을요. 사실 저는 보이지 않는 가슴 읽으면서 성의 변증법을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겟타님은 성의 변증법을 똭- 가져오시네요. 후훗.

읽느라 수고하셨고 글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3월 도서로 만납시다! 3월 도서는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죠? 내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휴...

블랙겟타 2020-03-02 18:21   좋아요 1 | URL
경제학도(?) 치곤 경제학을 싫어하는 사람이지요..(응?)
네. 쓰다보니 경제학에 좀 더 집중이된 듯한..
저도 한 권으로 같이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2월엔 글을 많이 쓰지 못해..좀 그런게 있긴 한데요.. 하하 안그래도 3월 책 샀어요!

공쟝쟝 2020-03-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류 경제학의 완전 승리 = 돌봄 사라짐 & 출산 거부 = 인류 멸망
ㅋㅋㅋ 반쪽짜리 보이지 않는 손의 최후 ㅋㅋㅋ

블랙겟타 2020-03-02 18:25   좋아요 1 | URL
주류 경제학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가사노동&육아 문제를 시대가 바뀌면서 억지로 논하다보니 제대로 될리가요..하하..
 















말도 많았던 서문, 1장을 지나 2장, 3장으로 오니 아.아. 조금은 이해가 된다. 4장 5장으로 넘어가면 술술읽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이 책을 연휴에도 부여잡기로 했다. 


2장에선 1장에서 살펴본 '노동윤리'의 역사와 전통적으로 투쟁하고 저항했던 마르크스진영으로 들어가본다.

노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마르크스주의아니던가. 2장을 보면 알듯이 마르크스주의 진영안에서도 여러 갈래가 존재한다.


'더 많은 일'

처음 살펴볼 사례는 저자가 '사회주의적 근대화'라고 일컷는 쪽이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쪽으로 '노동윤리'와 투쟁하고는 있지만 지향하는 것은 '더 많은 일'이다. 그'자본주의'는 노동이 가진 잠재적인 성장을 완벽하게 이끌어내지 못하고 우리가 공산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발전한)생산력을 자본주의에서보다 생산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기에 여기에선 노동자의 '자기희생'과 '인내심'을 강조하였으며 무쇠같은 노동규율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레닌은 미국의 '테일러주의'를 칭송하였다. 레닌시기의 소련을 생각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떠올려 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의 문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문제삼아 대립각을 세웠을 뿐, 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노동윤리'를 여기서는 지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더 나은 일'

두번째 사례는 1969년대 영미권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엇던 쪽이다. 에리 프롬의 <마르크스의 인간관>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라고 칭하고 있다. 프롬은 자본주의에 대항해 내놓은 것은 앞서 레닌이 주창했던 '더 많은 일'이 아닌 ' 더 나은 일'이다. 프롬은 마르크스가 소외되고 의미없는 노동을 생산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적으로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진정한 자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을 '더 나은일'로 변경함으로써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은 최근의 포스트-포드주의의 노동조건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아닌 노동에 뭔가 감정적인, 감성적인 자아실현을 주문하고 있는 요즘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것은 앞서 레닌이 표방한 '더 많은 일'보다는 나아갔지만 아직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노동윤리' 거부와는 뭔가 다르다.


















'더 적은 일'

고로 자율주의 전통은 근대화 모델과는 달리 자본주의 아래서의 노동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노동 착취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인본주의자들 역시 노동을 비판하지만, 자율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자율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의 구호중 하나인 "일할 권리"를 새로운 구호 "노동 거부"로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말할 것도 없이 마르크스의 발걸음을 따룬다. 여기서의 마르크스는 자유가 노동시간 단축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던 그 마르크스다. 

(p. 159)


마지막으로 살펴볼 곳은 '자율적 마르크스주의'다. 안토니오 네그리로 대표되며 기존의 사회주의운동들이 노동을 신성시 하며 노동부과를 당연시 하며 '노동거부'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비판하며 사회주의는 '더 많은 일'도 아니며 '더 나은 일'도 아닌 '더 적은 일'로 가야한다고 하였다. 저자도 이 자율적 마르크스의 주장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안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 1970년대 페미니즘의 가사임금 요구를 살핀다.

먼저 그것에 앞서 가사노동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한쪽은 정통적인 진영으로, 가사노동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지 않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보는 쪽이였으며, 다른 한쪽은 덜 정통적인 진영으로 가사노동이 잉여가치를 잔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창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의 필수요소로 파악되어야하고 그래서 가사노동을 재생산노동, 나아가 생산노동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논쟁의 끝은 마르크스 이론의 기술적 해석의 싸움으로 변질이 되며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이 책에서는 마리아로사 델라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의 저작인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을 중심으로 가사임금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가사임금의 요구는 가사노동을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며, 신성시 하고자 의도한 것 역시 아니다. 이 페미니스트들이 무급 가사노동의 생산성을 주장한 것은 도덕적 선언이 아니었다. "생산적인 것이 도덕적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만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가사노동의 비가시성과 그 도덕화 모두에 맞서려는, 즉 가사노동이 일호서는 폄훼되면서 애정노동으로 과대평가되는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의제에 담긴 어려움과 급진적 야망을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p. 197)


델라 코스타와 제임스는 가사노동을 '일'로 칭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일'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가사노동의 거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가사임금 운동조차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영감도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도 있었던 탓에 성공적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앞서 가사임금의 요구에 대한 두 가지 비판을 논한 바 있다. 하나는 가사임금을 주부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젠더 분업이 더 공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많은 형태의 일에 임금을 지금함으로써 임금 시스템의 완전성이 의문시되기보다는 옹호된다는 것이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에 비해 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하고, 그리하여 일에 대한 소득의 의존을 낮춘다. 이를 통해 임금 시스템과 가족 제도가 소득 분배의 신회성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게끔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다.

(p. 230)


당시 주장했던 가사임금의 형태는 주부들에게 지급하는 것이였는데 이는 곧 젠더 분업을 더 확실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었으며 취지와는 무관하게 이는 자본주의 남성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의 시스템을 공고하게 해줄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인 케이시 윅스는 이 관점을 없애버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맞게 정치적으로 세련된 형태로 이 요구들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며 그 적절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일에 대한 의존도 줄인다는 효과도 있다. 


기본소득 요구는 가장 내 특정 젠더 구성원을 잠재적 수혜자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이자 자극으로서 훨씬 나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현실화된 젠더 범주를 재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 요구는 다른 상황에 놓인 여러 주체의 관심사에 부응할 수 있다. 그 주체들에는 가사임금 요구가 닿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한 여성 계층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기본소득 요구의 젠더 중립성을 고려하면, 재생산노동의 조직화와 젠더분업을 논의 의제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적 재생산의 조직화와 재생산노동의 젠더 분업이 기본소득 요구의 설명과 전파가 일으키는 관점의 일부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p.232)


최근들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한 기본소득은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스위스는 부결로 끝이 났고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여러 후보들이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완전'한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사회수당의 성격이거나 실업부조형의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최근의 청년수당이 이런형태다. 아직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현실적인 문제등으로 인해 바로 도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지금 그나마 행해지고 있는 '비 완전'한 기본소득'이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못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노동여부에 관계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이루어 질 날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상상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1-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기다리던 겟타님의 페이퍼로군요! 잘 읽었습니다.

제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사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읽는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할것 같다가,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아, 그 때 그 책에서 말한 게 그런 뜻이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더러 있었거든요. 이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읽다가도 그런 경험을 또 했어요. 바깥에서의 노동을 인정하면서 그렇지만 가사노동이 그 일들을 받쳐주잖아, 하는 부분과 바깥에서의 노동도 인정하면서 그러나 가정 내에서의 노동도 임금을 받아야 하는 노동이다, 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그렇더라고요. 두 주장에는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가 갑자기 이 책 읽으면서 확 오더라고요.

노동윤리의 개념도 그래요. 전 아직 100쪽 까지밖에 못읽었지만 어렴풋이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라 다 읽고나면 또 뭘 더 알게 될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200쪽 넘게 읽으셨다니, 절반 이상 읽으셨네요. 제가 지금 들춰보니 역자의 말까지 포함하면 363쪽 정도 밖에 안되던데 말예요. 겟타님 거의 다 읽으셨어요!
아울러 순위 변동을 기대해봅니다. 후훗.

블랙겟타 2020-01-27 13:54   좋아요 0 | URL
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맞아요 다락방님 저도 어설프게나마 임금격차 논문을 통해 봤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이제야(?)좀 더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그랬어요. ^^

다락방 2020-01-25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겟타님. 이 책의 3장, 4장(읽는중)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네요. 중간에 베티 프리던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비판)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우리가 베티 프리던을 먼저 읽었다면 이 부분이 더 재미있겠다 싶으면서, 그러나 이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베티 프리던의 책을 읽을 때 더 좋을 것 같기도 했고요. 책을 계속 읽는 건 너무 좋으네요. 이렇게 아는 사람 이름 나오면 막 반가워하고.
기본소득에 대해서 저는 딱히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었는데(사실 잘 몰라서요) 이 책 읽는데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요!! 재미있어요! 그렇지만 오늘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서 이만 읽고 집에 가려고 합니다. 242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으하핫.

블랙겟타 2020-01-27 15: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5장에서 유토피아가 나오면서 갑자기 잠깐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긴한데요.. 조금만 참고 견디면 마지막 페이지를 보실 수 있을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