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사문유관 님의 서재 (사문유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79638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1 Aug 2026 08:57: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사문유관</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879638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사문유관</description></image><item><author>사문유관</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구원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영적 고독과 소외 - [바라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796383/17458523</link><pubDate>Tue, 18 Aug 2026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796383/174585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4878&TPaperId=174585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4/75/coveroff/8931024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4878&TPaperId=174585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라바</a><br/>페르 라게르크비스트 지음, 한영환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04월<br/></td></tr></table><br/>스웨덴 작가 페르 라게르크비스트(Pär Lagerkvist)의 소설 &lt;바라바&gt;는 예수 대신 석방된 죄인 바라바의 남겨진 삶을 통해 신앙, 구원,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린 문제작이자 1951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이다.&nbsp;<br>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대신 풀려난 강도 바라바는 군중의 함성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다.&nbsp;그는 제자들과 나사로, 언청이 여인 등 예수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지만 그들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돌며, 생명의 무게와 죄책감 속에 방황한다. 이후&nbsp;노예로 끌려가 광산에서 만난 사학이라는 신앙심 깊은 동료와 교감하고, 로마 대화재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신앙을 오해해 도시를 방화하다 체포되어 결국 예수처럼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nbsp;<br>바라바는 신의 은총(대속)을 가장 먼저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믿고 싶으나 믿지 못하는 그의 회의주의는 현대 사회의 영적 고독과 소외를 대변한다.&nbsp;<br>소설 전반에 걸쳐 예수는 '빛', 바라바는 '어둠'으로 대비된다. 그러나 바라바의 어둠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빛(진리)을 갈망하지만 눈이 부셔 차마 고개를 돌려버리는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기도 한다.&nbsp;<br>작가는 맹목적인 신앙보다, 평생 고뇌하고 방황하는 바라바의 '의심'이 오히려 더 진실한 인간적 본질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nbsp;<br>바라바는 '나 대신 죽은 저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평생 시달린다.&nbsp;예수의 제자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예수를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는 경계인으로 남는다.&nbsp;<br>결국 십자가형을 당하며 "내 영혼을 당신에게 맡깁니다"라는 모호한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의 열린 사유를 유도하는 결말일 것이다.&nbsp;<br>명확한 회개나 구원의 확신 대신 "믿고 싶다"는 모호한 갈망과 침묵을 남기며 여운을 준다.&nbsp;결국 신앙이란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달린 일이지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권유할 문제는 아니라는, 그래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고독한 숙제로 짊어지고 가야 할 대상 아닐까 하는...&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4/75/cover150/8931024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547576</link></image></item><item><author>사문유관</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감정에 치우친 기독교 비판이라 객관적, 철학적 사유가 아쉽다. - [안티크리스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796383/17324076</link><pubDate>Mon, 08 Jun 2026 2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796383/173240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3444&TPaperId=173240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2/50/coveroff/89573334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3444&TPaperId=173240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티크리스트</a><br/>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13년 12월<br/></td></tr></table><br/>니체의 후기 저작 &lt;안티크리스트&gt;(Der Antichrist)는 기독교의 가치 체계를 정면으로 공격하며 '모든 가치의 전도'를 시도한 격렬한 비판서이다.&nbsp;<br>니체는 기독교가 강자의 미덕(생명력, 권력의지, 자긍심)을 죄악시하고, 약자의 결함(동정, 굴종, 무능력)을 미덕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한다.<br>또한 동정은 생명 에너지를 약화시키고 우울함을 전염시키는 감정이며, 퇴행적인 인간을 보존하여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는 해악으로까지 규정한다.<br>니체는 복음서의 예수를 '순수한 상징주의자'이자 현실의 고통을 초월하려 했던 인물로 존중하는 반면, 사도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대속'과 '부활'이라는 교리로 왜곡하여 복수심과 증오의 종교(교회)를 만들었다고 격렬히 비난한다.<br>상대적으로 불교 역시 허무주의적 종교이지만, 기독교처럼 '죄'라는 가상의 개념으로 인간을 괴롭히지 않고 고통을 객관적으로 치료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문명화된 종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nbsp;<br>서술 방식은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기승전결 대신 짧고 강렬한 단문과 단락을 배치하여 메시지의 타격감을 극대화한다.&nbsp;'생명 대 반(反)생명',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귀족 도덕 대 노예 도덕' 등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nbsp;<br>이 책에서 니체가 주장하는 바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nbsp;<br>니체는 바울과 초기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복음서와 역사적 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역사 내에 존재하는 사랑, 희생, 공동체적 연대의 긍정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원한(Ressentiment)'의 메커니즘으로만 종교를 환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br>서술 전체가 분노와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어, 객관적인 학술적 비평으로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 의견을 가진 독자와의 합리적 대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폐쇄적 구조인 것이다.<br>약자에 대한 동정을 전면 거부하고 강자의 권력의지만을 긍정하는 논리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인권, 평등, 약자 보호를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논리는 훗날 파시즘과 나치즘에 의해 왜곡되어 악용되는 빌미를 제공했다.&nbsp;<br>기독교의 절대적 도덕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생명력'과 '권력의지'라는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타인을 심판하는 교조적 태도(또 다른 형태의 절대주의)에 빠져있다고도 볼 수 있다.<br>니체의 기독교 비판에 나름 수긍되는 점도 있지만, 기독교의 장구한 역사 과정과 인류사에 미친 양면적 가치를 감정적으로 부정하고 있기에 철학적 가치는 높지 않은 책이라 할 것이다.&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2/50/cover150/89573334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42503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