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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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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누구보다도 예리한 구병모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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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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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록 ‘사랑’은 어떤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늘 꿈을 꾸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나보다. 그런 면에서 갓 연애를 시작한 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기운을 나누어받는 것 같아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가 그토록 인기가 많은 것을 보면.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집중하는 이야기는 그토록 많은 반면에, “그후로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 사랑이 어떻게 식어가는지, 끝난 뒤의 모습이 어떠한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사실 모든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끝나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이것은 ‘이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은 어떤 사랑의 시작과 끝을 매우 담담하게 다루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19살에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테니스 클럽에 갔다가 자신의 엄마뻘인 48세의 여성과 짝을 이뤄 복식경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19세의 남성과 48세의 여성. 게다가 여성에게는 남편과 두 딸(심지어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은)까지 있었으니 둘의 사랑이 순탄할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어찌 어찌 사랑의 도피까지 해서 집을 얻어 함께 살게 되는데.

웬만한 로맨스 영화의 엔딩으로 적절할 법한 장면 이후에도 이야기는 한참 이어진다. 반짝거리던 욕망과 애정이 어떻게 바래가는지, 감정이 어떻게 식어가는지, 그로 인해 두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등이 주인공의 ‘기억’에 근거하여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는데, 읽으면서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 떠올랐다. <슬픈 짐승> 역시 사랑의 시작과 끝, 끝난 이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여기서는 화자가 여성이지만. 두 소설 다 매우 적나라하고, 그런 면에서 사랑의 진실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환상을 박살내어버리는 이야기들이기도 하지만, 책 속에서 나오는 말처럼 진실은 원래 친절하지 않은 법이므로.

문체가 건조해서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예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확실히 연애를 매우 건조하게 다룬 이야기이기는 해도,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뜨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은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읽자마자 속으로 당연히 덜 하고 덜 괴로워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보다도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 왠지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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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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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난이도 관련하여 논란이 많았다. 특히나 언어영역 31번의 경우 가장 어려웠던 문제로 꼽히면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어가 아닌 물리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정도도 읽어내지 못하면 난독증이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질적 문맹률을 준엄히 꾸짖기도 했다. 물론 많은 한국인이 실질적 문맹인 것은 맞지만(포탈에 실린 기사의 댓글을 보라) 31번 문제를 예시로 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31번 문제의 지문을 보고 상당히 ‘나쁜’ 글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문제의 난이도와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는 글쓰기의 본질을 두고 이러한 설명을 한다. “쓰기는 쓰기 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며 의미를 구성하고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행위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도 이와 상통한다. 1) 의미의 전달이 명료하고, 2) 진실성이 있고, 3) 타인이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을 이야기하는가의 여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글쓰기와 읽기에 있어서 ‘소통’이라는 목적이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능의 목적은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고,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갖추려면 어렵고 난해한 문제 또한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렵고 난해한 문제가 반드시 배배 꼰 나쁜 문장을 통해서 출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그 본질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괜히 유식하거나 똑똑한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고, 글 좀 쓴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러 배배 꼰 이상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쉽고 단순한 문장은 ‘쉬운 글’로 폄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쓰여졌다고 하여, 읽기 쉽다고 하여, 그것이 ‘쉬운’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황현산 선생의 <사소한 부탁>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부터 돌아가시기 전인 2017년까지 선생이 이곳 저곳에 기고한 칼럼 및 평론을 모아놓은 책이다. 읽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읽기 쉽고 편안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문장은 짧고 단순하며, 대부분 아주 쉬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모든 단어가 제각기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위치해 있어 거슬림이 없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은 물 흐르듯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편의 글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읽기 쉬운 글이라고 쉽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책에 담긴 글들을 읽으며, 피카소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느날 공원에 있던 피카소에게 한 여성이 다가와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자 피카소는 5분 정도 시간을 들여 초상화를 그려주고는 500만원을 요구했다고. 5분 쓴거 가지고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여성에게 피카소는 지금 사용한 것은 5분이지만, 이렇게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50년을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한다. 이처럼 명료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사유와 성찰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 깊이가 차마 짐작도 하기 어려울만큼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하여간에 책을 읽을 때는 기억에 남는 좋은 문장을 메모해두곤 하는데, 받아적을 문장이 너무 많아서 괴로웠던, 그런 책이다. 날카롭고 다정하고 그러면서도 품위가 있는 글. 읽을수록 글쓴이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되는 그런 글들이었다. 책의 말미에 실린 각종 시집과 소설책에 관한 평론들은 다른 글들보다 조금 어렵기도 하고 평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생소할 수 있지만, 그리고 책 전체적인 느낌과 조금 맞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특히나 어떠한 형태로든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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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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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본 친구가 놀러왔을 때의 일이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왜 한국 남자들은 다 똑같은 옷을 입고다녀?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왜 죄다 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백팩을 메고 있느냐는 것이다. 에이, 아니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진짜로 죄다 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어김없이 백팩을 메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고로 대학가를 주로 도는 750번 버스였다.) 같은 동아시아 국가 출신에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는 일본인 역시 결국은 외국인인 것이고, 외국인의 눈에는 해당 문화의 특성이나 자국과 다르게 튀는 지점이 바로 보이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콜럼비아 작가인 안드레스 솔라노는 10여년 전 번역원의 초빙으로 한국에 방문했다가 한국어 강사였던 이수정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콜럼비아에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생활한다. 아내는 한국어 강사로, 그는 (프리랜서 작가라고는 하지만) 반 백수 상태로. <한국에 삽니다>는 그가 한국에 두번째로 들어온 뒤, 이태원에 집을 얻고, 거기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다. 초기에는 일거리가 없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KBS에서 라디오 스페인어 디제이의 대타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콜럼비아에서는 이 책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애초에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아니 의식조차 못하는 어떤 부분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그 간극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미녀들의 수다>나 <비정상 회담>같은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한국에 삽니다>는 기존의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나 기행문(?)등과 다르게 “내가 본 한국”에서 끝나지 않고 “한국에 살고 있는 나 자신”으로까지 이어진다. 콜럼비아의 반대쪽에 있는 낯선 곳.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신.

워낙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주제인데다가, 작가가 매우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여전히 살고 있는, 이태원은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공간으로, 나에게는 더 특별하게 와닿았던 부분이기도 하고, 한국의 성매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에로 비디오 등의 ‘특징’을 파악하는 부분에서는 작가 특유의 예리함이 느껴져서 매우 감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깜짝 놀랄만한 대목들이 있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여성을 보고 낭만적인 상상을 하는 부분이라든지, 과거에 어떤 여성과 모텔에 갔던 경험을 말한다든지, 아내와 혹시라도 바람을 피게 될 가능성을 두고 나눈 대화라든지 등등. 그도 그럴 것이 번역을 아내인 이수정씨가 직접 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부사이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기에 독자인 나로서는 뭐 할 말이 없지만서도, 이런 부분까지 이렇게 솔직하다니 하면서 헉 하고 놀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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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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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추천할만한 책이 없냐고 묻기에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을 꼽았다. 최현숙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진보활동가인 최현숙씨는 24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여성이 좋아졌다고 돌연 커밍아웃을 하며 이혼을 했다. 그 뒤부터는 애인과 함께 살다가 헤어지면 또 홀로 지내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았다. 2008년에는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그녀가 매체에 그간 기고했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평소에도 도전을 좋아하고 용기가 있는 지인에게 어울릴 것 같아 추천을 했었는데, 엊그제 직접 읽어보다가 부리나케 연락해야만 했다. 추천 취소예요. 아마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직접 읽어보니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만한 책이다. 논조는 대단히 강하고, 문장은 다소 거칠게 느껴지며, 글을 쓸 때 대부분의 사람이 하기 마련인 기본적인 필터링 따위가 전혀 없다.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근에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에 누가 섹스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섹스를 많이 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고 갱년기 증상이었다고 언급한다거나, 여성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꼴렸다거나’, 뭐 이런 내용이 가감없이 나온다. 그나마 나의 머리와 손을 거쳐 한 번 정돈된 것이 이러하고, 실제 표현은 더욱 생생하다.

물론 섹스가 다루지 못할 주제는 절대 아니지만, 예상과 너무 다른 내용들이라 좀 놀랐다고 해야하나. 아마도 이토록이나 생생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목소리(선정적이란 표현보다는 적나라하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를 듣는 것이 오랜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본인 스스로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를 널뛰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와닿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주장이 상당히 강한데, 해당 부분이 평소 나의 생각과 좀 달라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아마도 나의 페친들 중 어떤 이들이라면 읽다가 매우 화를 냈을지도.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된 것은 나의,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느라고 모두 애쓴다.”는 그녀의 어머니의 말처럼 그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와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폐경기’라는 용어에 대한 의견이나 고부갈등을 바라보는 시각 등 여성주의 이슈를 대하는 것 또한 기존의 페미니스트들과 사뭇 다른 방향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이토록 용감하고 치열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1957년생. 생각해보면 그 연배에 결혼생활을 무려 24년이나 하고서 중간에 커밍아웃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백이다.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인데. 그만큼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강하고 용기 있는 그녀임에도 아이들과 관련한 대목을 읽을 때는 감춰두었던 여리고 약한 부분이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자녀가 성소수자인 경우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부모가 성소수자인 경우의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들들의 마음과, 그 아들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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