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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2/2/10~19
'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보고 왜 그 제목이 쓰일 수 있었는지를 마음 깊히 감동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의 배경은 197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분쟁이 중심이 되는 잠무 카슈미르 지방의 지도에도 없는 라다크라는 지역(과거에는 하나의 국가였었던.)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이 오랬동안 외부 환경과 고립된 특수성으로 생긴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스칸디나비아의 선진국 중 하나인 스웨덴에서 지은이가 방문하고 살게 되면서, 16여년 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라다크'라는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주관적으로 서술하였다.
라다크는 어떤 곳인가?
지형적 환경에 의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진보라는 폭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가치를 가지고, 언어를 가지고 삶은 영위해 나가는 라다크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들에게는 티베트 대승 불교의 문화가 삶의 기본으로 깔려 있으며, 자연을 개발하고 억압하는 방식 대신, 자연과 친구가 되며, 올바르게 이용할 줄 아는 지속 가능한 삶의 무대로써 자연을 대하며, 돈이라는 화폐 경제가 무의미 하기 때문에, 일정한 문화적 관습에 따른 물물교환이나 노동력교환을 이용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가족구조에 있어서도, 노인은 스스로를 경험 전달자로써 위치하려고 하지 대가족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노인들은 깨끗한 환경과 꾸준한 운동및 노동으로 기대수명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비교적 건강한 삶을 영위 한다는 것도 이채롭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에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부모가 일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가족애를 느끼며 하나의 인격으로써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노인들이나 부모에게 지혜를 배우고 되고 집안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노동력을 보태 준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척박한 지형과 극과 극을 넘나드는 기후 속에서도, 그들은 불평을 배출하는 법이 없이 인생을 즐기는 듯하다. 생활을 위해, 거의 모든 가정들이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며,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돈을 벌기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말그대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은 힘들게 하지않으며,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일로써가 아닌 하나의 놀이로써,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게 진행된다. 불필요한 부를 쌓아두지 않으며,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나, 개개인의 직업과 민족에 의해 약간이 존재할 뿐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처럼 진보가 거쳐간 나라보다 훨씬 차이가 작다.
라다크 사람들은 특별한 의학적 수혜를 받지 않고, 동양 전통 고유의 의학적 방법에 의해 건강을 유지한다. 환경에 의해 비만이 없으며 정신 병자가 거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지낸다. 라다크 사람에게는 '삶의 기쁨'이란 것이 내면에 생활화 되어 있을 만큼, 개개인 적으로 수양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는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웃음으로 해결해낸다.
"전통적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라다크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산다. 생활이 진행되는 속도 역시 여유롭고 편안하다. 그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규칙적이고 충분한 운동을 하며 정제되지 않은 천연식품을 먹고 산다."
그들의 행복의 원인은, 무엇보다 삶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들은 내면의 건강을 위한 종교와, 따스한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와 감사할 대지와 가장 가깝게 있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리라.
" 그들은 음식보다 잔치를 더 좋아하고, 불편함 보다는 편안함을, 아픈 것보다는 건강한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기쁨의 모습과 마음의 평화는 적어도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특성들은 그들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178
그러나, 이러한 라다크 사람의 평화가 깨지게 된 계기는 소위 선진문화의 일방적인 전달과 서구의 시각으로 계획된 개발이 되게 된 것이다.
서양인이 보기에는 라다크 사람들은 행색이 초라하여 불쌍하고 가난에 찌들어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예전에 지나왔던 개발의 잣대를 여과없이 적용시킨다. 그들은 라다크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분은 서양인이 가지고 있는 것에 못미치더라도, 정신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움을 지닌 족속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구문물과 물질 문명위 위대함(?)을 Tv와 영상매체를 통하여 우월함을 느끼게 하여, 라다크 사람들이 물질에 대해서 눈을 뜨도록 만드는 가슴아픈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다.
그들은 돈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들 스스로가 절대적인 가난함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게 한다. 젊은이들은 서구의 문화를 동경하고 부에 대해서 좀더 집착을 가지나, 서구문명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한다. 상대적인 가치를 잊어버리고 숫자로 대변되는 절대적인 가치의 차이를 깨닫게 되자 스스로의 삶이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릇된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청년층과 노인의 갈등이 생기고, 돈때문에 공동체가 파괴 될 위험 까지 발생한다. 더욱더 소유에 욕심을 부리게 되고, 남들 앞에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그것들이 모두 서구 문명의 무자비한 개발과 진보때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개발 이전에 그들은 자급자족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나, 개발 이후 바뀌어 버린 삶은 그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이윤을 창출하도록 만들고 부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빈부의 격차가 크게 나게 되버리고, 정서적으로도 점점 가난하게 되었다.
서양의 교육이 라다크 지역에 들어왔고, 아이들은 서양과 소위 선진국의 기준의 교육에 맞춰 사람을 하나의 경제구조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었다. 개발 이전에는 모든 교육은 그들의 조상과 자연에서 얻을 수 있었고, 지혜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오히려 개발된 국가에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정선적으로 풍요로운 교육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학교교육을 통해 더많이 지구촌에 대해 알수록 보잘것 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만들어 버린다.
새로운 경제체제가 이 지역에 구축된 이후로는 사람들은 어려운 농사일 대신, 도시로 들어가 빈민층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예전에는 돈없이 모든 생활 물품을 직접 자급자족하여 살았는데, 이제는 돈을 벌어야 구매할 수 있다. 경제가 개방되자, 라다크의 농산물은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각종 유전자 변형의 농산물과 화학비료가 들어오게 되면서, 농업마저 파괴될 위기에 놓인다. 라다크 사람들은 점점 서양의 기준대로, 서양식의 삶을 살아야 삶이 값지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게 되고, 일의 노예가 되버린다.
" 소비지향주의는 이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정서적인 불안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는 신분의 상징물에 대한 욕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뭔가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증대시킨다. 그 당사자는 자신의 소유물들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p234
이러한 라다크 사람들의 삶에 변화에 있어서 개발은 어던 의미일까?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서구식의 개발이라는 방식은 라다크의 삶에 있어서 재앙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기술의 진보와 경젱성장의 이름으로 라다크에 침투하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 줄은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기술의 진보와 라다크의 전통가치를 공존하게 방책을 찾는다.
그러면서 '반개발'이란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 사람들로 하여금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미래에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p286
우리로 하여금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미 라다크 사람들은 개발의 우산 속에 들어왔고, 이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그들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개발과 진보의 앞모습만 보고 판단하게 할 수 없다. 역효과및 어두운 면을 파악하게끔 도와주고 나서 책임의식을 가지게끔 한다.
그리하여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 문화로써 라다크의 현실을 젊은이와 거주민으로 하여금 달라진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라다크의 계승가능한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게 도와준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기술을 이용하여,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화된 농경문화를 살리고 라다크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협동과 공동의 문화를 되살린다. 외부인들이 라다크의 올바른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서론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게끔 연결 고리 장치를 만든다.
'역사에서 배운다' 라는 말이 있다. 온고지신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이것이 의미 하는 참뜻을 깨닫지 못했으나,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앞으로 추구할만한 가치를 지닌 말이라는 것을 라다크 사람과 문화를 통해 깨달았다.
GNP 로 행복을 측정할 수가 있을까? 돈으로는 행복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 자살이라는 개념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더 많이 먹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이상하기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라다크 사람들이다.
역사는 진보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라다크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퇴보나 다름없다. 기술의 발달로 삶의 질은 과연 향상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예전에는 필요한 만큼만 일했지만, 지금은 먹고 죽지 않기위해 죽어라고 일하는게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이제 우리 스스로 해답을 찾아봐야 할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 나는 평생을 가지고갈 화두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