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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여기, 한국을 관통하는 50개의 시선
김정인 외 지음, 백승헌 외 기획 / 사이드웨이 / 2025년 8월
평점 :
#도서협찬 #그러므로내란은끝나지않았다 #사이드웨이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어떻게 해도 이해할 방도가 없는 그날의 일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일상으로의 회복이 되질 않으니까.
이 책은 그 시도 중 가장 충실하고 방대한 논의로 기억될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를 단지 한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제도적 취약성을 파헤친 책.
정치, 역사, 경제, 외교, 법, 종교, 시민운동, 지역, 헌정질서 등 9개 장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에는 집필진 대담을 통해 사태의 총체적 맥락을 정리한다.
프롤로그는 이번 계엄 사태가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성향과 일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권 여당·관료·법조·극우 시민 담론 등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통제 실패가 집약된 사건임을 강조한다.
제1·2장(역사·정치)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법조·경제 관료 집단의 카르텔과 여당의 극우화는 민주적 견제 장치의 붕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제3장(경제)에서는 저성장과 불평등이 분배 대신 희생양 찾기 정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4장(외교)는 전통적 ‘북풍’ 프레임을 넘어, 실제로는 ‘윤석열 리스크’가 더 큰 위협이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제5장(윤석열 인물 분석)에서는 검사 시절부터 이어진 양분법적 세계관과 음모론적 사고가 통치자의 성격을 규정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장을 읽으면서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검증은 그가 청문회에 등장했던 수년 전에 이미 끝난 것으로 알았었다. 한번 덧씌운 이미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6장(극우)는 한국 극우의 핵심 키워드를 ‘외로움’으로 분석한다. 경쟁·능력주의·사회적 고립이 결합하면서 2030 남성의 박탈감이 극우화로 연결된다는 지점이 특히 설득력 있다.
제7·8장(시민운동·지역)에서는 광장의 역동성과 지역 저항의 다채로움을 기록하면서도, 여전히 정치가 시민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탄핵 인용시까지 분출되었던 광장의 목소리는 이후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렸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직선제를 얻어낸 것에 만족하고 더이상의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미묘하게 반복되는 역사이다.
제9장(헌정질서)는 결국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규범인 헌법으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독립된 사법부, 공화국 시민의 덕성, 반차별과 관용의 태도야말로 민주주의의 재발 방지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2017년 탄핵을 겪으면서 헌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었다. 그런데 여전히 헌법 제1조에만 머무르고 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은 국민, 영토, 주권만이 아니라 기본권, 통치구조까지 포함한다.
9차에 거쳐 개정되었지만 국민 전체의 의사가 반영된 것은 맞을까? 광복 이후 성문화된 법 조문들은 국민이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법 조문들을 그대로 차용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삼권분립이 이리도 쉽게 부정당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극우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의 ‘외로움’은 지금 한국 사회의 불안정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정치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토양 위에서 자라난 문제였다.
제목처럼, 이번 계엄 사태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적 취약성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책임에도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일부 장에서 학술적 용어와 분석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계엄 사태 이후의 실질적 제도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 제안이 보강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그럼에도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덧붙이자면 사이드웨이에서 출간된 <오염된 정의> 역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서.
커뮤니티에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을 '긁는' 말이 있다. '그러게 선거에서 이기지 그랬냐.'라는 말. 그런데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과오가 덮어지는 것인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