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csw2700님의 서재 (csw2700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4 Oct 2026 04:01:32 +0900</lastBuildDate><image><title>csw2700</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8131149229905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csw2700</description></image><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공감과 이해를 경쟁력으로 만드는 대화의 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49619</link><pubDate>Thu, 01 Oct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496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130257&TPaperId=175496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8/51/coveroff/k6521302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130257&TPaperId=175496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공감과 이해를 경쟁력으로 만드는 대화의 기술</a><br/>비치키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08월<br/></td></tr></table><br/>#도서협찬 #감정을읽는사람은다르게말한다 #비치기 #교보문고 #북다방1기<br/><br/>AI가 정중한 사과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 주는 시대다. 표현은 매끄럽고 예의도 충분하지만, 그런 문장을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문장을 잘 쓰는 것과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은 얼마나 가까운 일일까.<br/><br/>비치키의 &lt;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gt;는 이 질문을 사람 사이의 대화로 가져온다. <br/>책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상대의 말을 얼마나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그 말을 꺼내기까지의 마음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br/><br/>친구가 승진 소식을 전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br/>직급이나 연봉을 물을 수도 있고, 기분이 어땠는지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오랫동안 기다린 인정을 받고 벅찬 마음으로 왔다면, 먼저 받아 주어야 할 것은 순전한 기쁨이다. 무엇에 먼저 반응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느끼는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br/><br/>우리는 대화 중에 서둘러 원인을 찾고, 잘잘못을 가리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래야 도움이 됐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다는 감각이 먼저 필요할 때가 많다. <br/>조언이 옳아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br/><br/>가장 오래 남은 건 대화의 여백이다. <br/>누군가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우리는 쉽게 내 경험을 꺼낸다.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하고 싶어서 이겠지만, 어느새 내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곤 한다. 상대는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br/>내 경험을 말한 뒤에는 잠시 멈추고 상대가 무엇을 덧붙이는지 기다려야 한다. 말이 끊겼다고 급히 다른 말로 채우지 않는 것, 그 기다림에는 더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뜻이 담겨 있다. <br/>이럴 때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용기를 모으는 시간이다.<br/><br/>상대가 다른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게 여유를 주라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br/>고개를 끄덕였다고 반드시 동의한 건 아니다.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혹은 말하는 사람의 지위가 부담스러워서 이견을 삼켰을 수 있다. “혹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라고 물었다면 정말 다른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견이 나오자마자 반박하면 그 질문은 형식적인 절차가 되어 버린다.<br/><br/>‘감정을 읽는다’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br/>표정 하나로 속마음을 알아맞힐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위험하다. 잠깐의 망설임은 반대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피곤하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일 수도 있다. <br/>그래서 관찰과 함께 확인이 필요하다. <br/>내가 알아챈 게 맞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상대가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br/><br/>갈등도 마찬가지다. <br/>사람마다 기준과 경험이 달라서, 내게 당연한 일이 상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 차이를 곧바로 옳고 그름으로 몰아가면 대화는 굳어 버린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을 때 비로소 서로의 판단이 만들어진 배경이 보인다. <br/>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내 경계를 말하려면 ‘나’를 주어로 말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상대의 성격을 단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한 뒤, 앞으로 바라는 행동을 덧붙이면 대화는 함께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br/><br/>다만 AI 시대에 관한 책의 메시지는 조금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br/>AI도 공감하는 듯한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인간의 가치를 ‘AI는 못 하는 말’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br/>내가 더 주목한 건 관계를 이어 가는 사람의 책임이다. <br/>건넨 말을 기억하고, 그 말대로 행동하고, 오해가 생기면 다시 설명하고 사과하는 일. <br/>신뢰는 그런 시간 속에서 쌓인다.<br/><br/>책을 덮고 떠올린 실천할 일. <br/>답부터 서둘러 내놓지 않기, 내가 이해한 마음이 맞는지 한 번 더 묻기, 다른 의견이 나와도 대화 이어 가기, 친한 사이라고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 <br/><br/>다음 대화에서는 “그래서 어떻게 됐어?” 대신 “그때 마음은 어땠어?”라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 보고 싶다. <br/><br/>이제는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 익숙한 사람에게도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8/51/cover150/k6521302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985198</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귀향 그리고 오뒷세이아 - [귀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9022</link><pubDate>Sun, 27 Sep 2026 1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90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8760&TPaperId=175390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06/43/coveroff/89527687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8760&TPaperId=175390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귀향</a><br/>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04월<br/></td></tr></table><br/>베른하르트 슐링크의 &lt;귀향&gt;은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페터 데바우어가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낸다고 해서 귀향이 끝나는 건 아니다. <br/><br/>오히려 그때부터 더 어려운 질문이 시작된다. 그토록 찾던 아버지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부모에게서 질문만 물려받는 걸까, 아니면 그들의 답과 잘못까지 물려받는 걸까.<br/><br/>아버지 없이 자란 페터는 스위스 조부모 집에서 미완성 소설 원고를 발견한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돌아온 병사가 아내 곁에 이미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이야기인데, 정작 결말 부분이 사라져 있다. 이 사라진 결말은 아버지가 부재한 페터의 삶과 닮았다. <br/>그는 소설의 결말, 원고를 쓴 작가, 자신의 아버지를 차례로 추적하지만 결국 세 탐색은 하나로 합쳐진다.<br/><br/>이 소설의 바탕에는 &lt;오뒷세이아&gt;가 있다. <br/>텔레마코스가 오디세우스를 찾듯 페터도 아버지를 좇는다. 다만 텔레마코스의 아버지는 집을 되찾는 영웅이지만, 페터의 아버지는 판단해야 할 역사다. <br/>요한 데바우어는 나치 시대엔 전체주의를 뒷받침하는 글을 쓰고, 전후엔 새 이름과 세련된 이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며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의 지성과 매력은 페터에게 거부감과 경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br/>악한 사상이 꼭 조잡한 얼굴로 나타나는 건 아니고, 지적 정교함이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br/><br/>이 문제는 이미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예고된다. 할아버지는 오심이 때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말하고, 은밀한 방법으로만 할 수 있는 올바른 일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 아비도 그렇게 물었었지"라고 덧붙인다. <br/>아버지는 실제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질문의 형태로 아들의 삶에 들어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했다고 같은 답에 도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질문은 물려받아도 판단까지 상속되진 않는다.<br/><br/>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침묵하는데, 이는 아들을 보호하려는 선택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알 권리를 대신 결정해버린 통제이기도 하다. <br/>그런데 페터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군다. 불안과 욕망을 설명하기보다 혼자 견디고, 위기가 오면 대화 대신 떠난다. 베로니카의 아들 막스에게는 자신이 못 받은 부성애를 주려 하고, 그와 함께 오디세우스 영화를 보다가 어릴 적 읽은 소설이 &lt;오뒷세이아&gt;의 변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br/><br/>정작 페터가 돌아가야 할 곳을 보여주는 이는 바바라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동안 페터는 원고에 대한 집착을 잊는다. 하지만 실종됐던 그녀의 남편이 돌아오자 페터는 싸우지 않고 물러난다. 미완성 원고 속 상황을 그대로 반복하는 셈이다. 훗날 다시 만나지만,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 페터는 또 바바라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으려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br/><br/>바바라는 기다림에 충실했던 페넬로페가 아니다. <br/>그녀는 페터의 혈통과 상관없이 그를 받아들이면서도, 요한 데바우어의 사상만큼은 분명히 악이라고 판단한다. 모든 게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버지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바바라에게 돌아간다는 건 연애의 완성이 아니라, 과거의 미스터리보다 현재의 관계를, 떠날 자유보다 머물 책임을 선택하는 일이다.<br/><br/>&lt;귀향&gt;은 아버지를 닮는 것과 아버지처럼 사는 것을 구분한다. <br/>페터가 아버지와 달라지는 길은 핏줄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자기 안에 아버지와 닮은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다른 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좋은 결과가 처음의 부당함을 지우지는 않고, 선한 목적이 기만의 도덕적 비용을 없애지도 않는다. <br/>작가는 결과와 해석만으로는 제거되지 않는 책임을 끝까지 남겨둔다.<br/><br/>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 질문은 "아버지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아버지와 닮은 질문을 가진 나는 어떤 답을 선택할 것인가"다. <br/>페터의 진짜 귀향은 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니라, 물려받은 질문을 자기 책임 아래 다시 판단하고 누군가(바바라)의 곁에 머무르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br/><br/>귀향이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서 새로운 결말을 쓰는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06/43/cover150/89527687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064360</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이우일의 그리스로마 신화 -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1 - 신들의 우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8993</link><pubDate>Sun, 27 Sep 2026 1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8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528&TPaperId=17538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4/25/coveroff/k7621305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528&TPaperId=17538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1 - 신들의 우화</a><br/>이우일 지음, 이준석 감수 / 비채 / 2026년 07월<br/></td></tr></table><br/>#이우일의그리스로마신화 #만화_그리스로마신화 #성인용 #비채 #도서협찬_서평단<br/><br/>들어는 보았는가?!<br/>그리스로마신화 삼대장?!<br/>그중 1인인 '이우일 만화가' 작품되시겠다.<br/>(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그중 1인_비채 피셜)<br/><br/>설마설마하면서 봤는데.<br/>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정!"이다.<br/>시리즈 중 첫번째만 읽었음에도 부인할 수가 없다.<br/><br/>그리스로마신화에서 아직도 새로울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br/>이 책 한번 읽어보라 권한다.<br/><br/>메두사가 묻는다.<br/>"괴물과 영웅은 누가 구분하는거지?"<br/>알고보니 피해자 아닌가 싶다.<br/>죽어서도 페르세우스의 정적 제거수단이 되고, 끝내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 장식품이 된다. <br/>자. 다시 묻는다.<br/>"괴물과 영웅은 누가...?"<br/><br/>오이디푸스왕 이야기. <br/>익숙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br/>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아들들의 왕위 다툼과 크레온의 후일담은 처음 접한 듯 생경하고,<br/>자신이 묻힌 곳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해달라는 오이디푸스의 부탁을 들어준 테세우스. 둘의 교감 역시 이참에 알고 간다.<br/><br/>동생의 주검을 수습한 안티고네(오이디푸스의 큰딸)가 크레온에게 묻는다.<br/>인간의 포고령이 우선인가? 신들의 불문율이 우선인가?<br/><br/>삽화에 글자 몇자를 얹었을 뿐인데 왜 이케 먹먹하지?<br/>이러면 헤라클레스, 오뒷세우스도 읽지 않을 수가... 없...<br/><br/>덧) 사심없이 시작해서 사심으로 끝맺는 리뷰.<br/>잘 읽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4/25/cover150/k7621305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542518</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비둘기가 고양이처럼 보인다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3424</link><pubDate>Wed, 23 Sep 2026 1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34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5334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off/k5621305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5334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a><br/>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도서협찬 #박솔뫼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사과 #북다방1기 <br/><br/><br/>함께 있다는 말의 무게<br/><br/>박솔뫼의 &lt;사과&gt;를 읽으며 오래 남은 것은 사건보다 창밖을 바라보는 애리의 자리였다. 차는 어딘가로 향하지만 애리는 그 풍경 속을 직접 걷는 자신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선호와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둘은 같은 것을 같은 모습으로 보지 않는다. 선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애리의 감각을, 애리가 끝내 설명하거나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잠시 나란히 있을 수 있고, 그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함께 있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br/>이어 실린  &lt;비둘기 옮기기&gt;는 이 책을 읽는 방법까지 돌아보게 한다. 화자는 비둘기를 고양이로 바꾸지 못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비둘기를 아주 조금 다르게 본다. <br/><br/>여섯 편을 읽고 난 뒤 내게도 그런 변화가 남았다. 익숙한 말로 분류하던 사람과의 관계가 전처럼 보이지 않았다.<br/><br/>성혜령의  &lt;하악&gt;에서 자인은 장애가 있는 동생 태인을 돌본다. 가족이라면 기꺼이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은 너무도 당연시되기에 거절하기도 어렵다. 자인이 느끼는 피로와 분리되고 싶은 마음을 읽으며,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말 앞에서 정작 돌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자주 지워지는지 생각해본다. 자인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타인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알아보면서도 자신 역시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br/><br/>임솔아의 &lt;나의 빈 묘에&gt;에서는 묘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 묻게 된다. 지윤과 윤미는 반려견 조아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곳에 묻어주고 싶어 한다. 묘는 죽은 뒤의 자리를 미리 정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 삶을 나누고, 누가 나를 기억하며 찾아올 것인지에 관한 자리이기도 하다. 조아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두 사람의 마음이 전해졌다.<br/><br/>장희원의 &lt;영주&gt;는 훨씬 불편한 방식으로 '곁에 있음'을 요구한다. 영주는 과거 자신의 고통을 지켜봤던 우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목격해 달라고 한다. 우진이 끝내 말을 잃고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결말은 단순한 복수의 성공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지나쳤던 사람이 뒤늦게 그 고통을 자신의 문장으로 다룰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목격과 책임 사이에 놓인 긴 시간을 독자가 피할 수 없게 만든다.<br/><br/>정기현의 &lt;그거 점 된다&gt;는 몸에 생긴 점과 허물을 통해 남들이 정한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기묘하고도 경쾌하게 뒤집는다. 희정이 점을 없애려 애쓸 때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 때, 같은 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br/><br/>황시운의 &lt;일일업무 보고서&gt;에서는 그 몸의 문제가 다시 일상의 구체적인 시간으로 돌아온다. 세진에게 먹고 일하고 몸을 돌보는 일은 매일의 판단과 노동이다. 도움을 받는 일에도 나중에 치를 값이 있을 수 있다는 세진의 생각은 그의 독립심을 추상적인 미덕이 아니라 살아온 경험으로 이해하게 한다. 아무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내일을 생각하게 되는 세진의 마음 또한 오래 남는다.<br/><br/>이 작품집의 인물들은 저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돌보고, 기억하고, 목격한다. <br/>그러나 어느 관계도 '우리'라는 말 하나로 간단히 묶이지 않는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사랑과 돌봄 안에서도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진다.<br/><br/>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비둘기가 아주 조금 고양이처럼 보였다는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150/k5621305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07916</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3423</link><pubDate>Wed, 23 Sep 2026 1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33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458&TPaperId=17533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4/48/coveroff/k7021304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0458&TPaperId=17533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a><br/>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도서협찬 #스핑크스의왼쪽눈동자 #김유진 #북다 #북다방1기 <br/><br/>내 기억을 되찾는 일은 나를 되찾는 일일까?<br/>지금까지 믿어 온 기억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잘리고 다시 붙여진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br/><br/>김유진 작가의 장편소설 &lt;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gt;는 이 질문을 기억 회복술과 기억 제거술이 존재하는 가상의 대한민국으로 가져간다.<br/>브레인 임상연구센터의 레지던트 4년 차 김수오는 교수진 몰래 어머니 김소희에게 기억 회복술을 시행한다. 수술은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희가 이미 누군가에게 뇌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수오가 알고 싶었던 것은 오래전 사라진 아버지의 정체와 그가 가족을 떠난 이유였다. <br/><br/>그러나 되찾은 기억은 오히려 어머니를 더 괴롭게 만든다. 기억을 찾는 일이 곧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수오는 뒤늦게 마주하게 된다.<br/><br/>이야기의 긴장은 수오가 기억 제거술을 은밀히 시행해 온 의사 주경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한층 깊어진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과거를 밝히기 위해 그에게 접근했던 수오지만, 점차 주경재의 의술 자체에 매료되어 간다. 주경재 역시 수오가 접근하는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그를 곁에 둔다. <br/><br/>두 사람의 대립은 서로를 밀어붙이는 행동보다, 상대의 욕망과 약점을 읽어 내는 과정에서 더 큰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br/>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수오가 주경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는 주경재에게 분노하면서도, 수술실에서 펼쳐지는 그의 기술 앞에서는 경외감을 느낀다. 경계해야 할 대상에게서 오히려 배우고 싶어지는 마음. 그 모순이 수오를 단순한 복수극의 주인공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위한 선택이라 믿었던 일이 어느 순간 자신의 능력을 향한 욕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 역시 서늘하게 다가온다.<br/><br/>소설이 던지는 질문.<br/>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그 결정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잊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뒤에 따라올 고통까지 감수해야 하는가. <br/>무엇보다 수술을 받는 당사자의 뜻을 확인할 수 없거나 타인이 그 결정을 대신한다면, 그 기억은 과연 누구의 것이 되는가. 회복과 제거라는 서로 다른 방향의 기술은 결국 같은 질문 앞에서 만난다.<br/><br/>&lt;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gt;는 어머니의 잃어버린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이자, 타인의 마음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의사들이 결국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br/><br/>비밀이 하나씩 풀릴수록 궁금해지는 것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이들이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기억을 손질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면서도, 소설은 끝내 가장 오래된 인간의 문제를 건드린다. <br/><br/>우리는 진실을 알 권리와 고통을 잊을 권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br/><br/>덧) 오래전 읽었던 &lt;굿바이, 욘더&gt;가 떠올랐다. 결말이 어땠더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4/48/cover150/k7021304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044823</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시 읽는 고전 - [나민애와 다시 읽는 고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18355</link><pubDate>Tue, 15 Sep 2026 18: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183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42X&TPaperId=175183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63/coveroff/89255684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42X&TPaperId=175183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민애와 다시 읽는 고전</a><br/>나민애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08월<br/></td></tr></table><br/>고전이라고 하면 부담이 앞선다. <br/>&lt;죄와 벌&gt;, &lt;안나 카레리나&gt;, &lt;파우스트&gt;, &lt;1984&gt;, &lt;프랑켄슈타인&gt;, &lt;돈키호테&gt;… 제목은 익숙하지만 막상 펼치려면 방대한 분량과 낯선 시대적 배경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br/><br/>이 책은 그 거리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br/>저자의 관심은 완독이나 문학사적 지식이 아니라 “이 작품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가”에 있다. <br/>책을 여는 문장부터 인상적이다. 고전은 강 같은 것이다. 아폴리네르가 &lt;미라보 다리&gt;를 쓰던 시절에도, 지금도 센강은 흐른다. 사람과 시대는 바뀌어도 강은 제자리를 지나가듯, 몇백 년 전 작품 속에도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랑과 욕망, 두려움과 삶의 의미가 흐른다.<br/><br/>책의 출발점은 사랑이다. <br/>&lt;시경&gt;의 &lt;관저&gt;에서 &lt;향연&gt;, &lt;신곡&gt;, &lt;죄와 벌&gt;, &lt;안나 카레리나&gt;로 이어지며 사랑은 매번 다른 얼굴을 보인다. &lt;향연&gt;에서 인간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존재이고,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연인을 넘어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존재다. &lt;죄와 벌&gt;의 소냐에게 사랑은 무조건적 용서가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힘이다. <br/>반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뜨겁지만 불안하다. 사랑이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상대의 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고, 사랑을 잃는 것이 곧 자기 존재를 잃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랑은 인간을 구원할 수도, 집어삼킬 수도 있다.<br/><br/>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악’으로 넘어간다. <br/>에덴동산의 뱀에서 &lt;파우스트&gt;의 메피스토펠레스까지, 과거의 악은 인간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악마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lt;1984&gt;에 이르면 악은 한 명의 악당조차 아닌 감시와 통제의 시스템이 된다. 빅 브라더가 없어도 스마트폰과 알고리즘이 취향과 행동을 예측하는 지금, 누군가 보고 있다는 감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든다. SNS에 좋은 모습만 골라 올리다 보면 실제의 나와 보여주기 위한 나 사이에 거리가 벌어진다. 1949년에 나온 &lt;1984&gt;가 여전히 무서운 이유다.<br/><br/>&lt;프랑켄슈타인&gt;을 바라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br/>우리는 그 이름을 괴물로 기억하지만 정작 괴물에겐 이름이 없고, 그는 처음부터 악했던 존재도 아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를 만들어 놓고 책임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창조주였다. 그러니 크리처의 질문은 “왜 나를 만들었나”보다 “왜 만들어 놓고 버렸나”에 가깝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만든 것에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느냐를 묻는 이 질문은, AI와 생명공학의 시대를 사는 지금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br/><br/>&lt;침묵의 봄&gt;에서 고전의 범위는 문학에서 현실로 넓어진다. 레이첼 카슨이 고발한 DDT의 자리에 저자는 미세플라스틱을 놓아본다. 물질은 바뀌었어도 인간이 편리함을 얻는 대가를 자연과 다른 생명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반복된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야기는 모아진다.<br/><br/>&lt;돈키호테&gt;와 루쉰의 &lt;광인일기&gt;를 나란히 읽는 방식도 흥미롭다. <br/>두 주인공은 모두 당대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저자는 그 ‘미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기존 질서를 의심하는 사람은 언제나 처음엔 이상한 사람으로 불린다. 정상이라는 것은 결국 누가 정하는가—새로운 시대를 먼저 본 사람이 자기 시대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는 해석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br/><br/>책의 후반부에는 전쟁이 등장한다. <br/>헤밍웨이가 그리는 전쟁에는 영웅적 장면보다 상실이 먼저 있고, 살아남았지만 믿었던 세계를 잃은 이들에게서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이 태어난다. <br/>그리고 시선은 마지막으로 빅터 프랭클에게 향한다.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을 겪은 그가 끝내 붙잡은 것은 ‘의미’였다.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은 좋은 환경이나 행복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데 있으며, 그 의미는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다.<br/><br/>그래서 사랑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전쟁과 절망을 거쳐 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 <br/>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미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  &lt;향연&gt;과 &lt;죄와 벌&gt;의 사랑이 &lt;1984&gt;의 감시, &lt;프랑켄슈타인&gt;의 버림받음, &lt;침묵의 봄&gt;의 파괴, 전쟁의 폐허를 모두 통과한 뒤 다시 도착한 결론이기에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로 읽히지 않는다.<br/><br/>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은 고전을 떠받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 훌륭하다고 말하는 대신 인물의 선택에 의문을 던지고 지금의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면서도, 수백 년 전 작품이 살아남은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기술을 만들어 놓고 책임을 고민하며,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br/><br/>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오래된 생각을 배우는 일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아주 먼 시대의 거울에 비춰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강물은 같아 보여도 매 순간 다른 물이 흐르듯, 스무 살에 읽은 &lt;죄와 벌&gt;과 마흔에 읽은 그것은 같은 책이 아니다. 작품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은 한 번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br/><br/>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단어도 결국 ‘고전’보다 ‘다시’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63/cover150/892556842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96380</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광 없는 영웅들 - [영광 없는 영웅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02503</link><pubDate>Tue, 08 Sep 2026 1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5025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042&TPaperId=175025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24/coveroff/k9721300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042&TPaperId=175025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광 없는 영웅들</a><br/>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8월<br/></td></tr></table><br/>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lt;오디세이&gt;가  관객 1,000만 명을 넘기며 고대 그리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퍼디아 레넌의 데뷔작 &lt;영광 없는 영웅들&gt;은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두 작품 모두 2천 년 전 지중해를 배경으로 전쟁과 귀향, 인간의 존엄을 다루지만, 시선의 방향은 정반대다. &lt;오디세이&gt;가 위대한 영웅의 귀향을 그린다면, 이 소설은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을 실직 도공 람포·겔론과 굶어 죽어가는 전쟁포로들을 바라본다.<br/><br/>기원전 412년 시라쿠사.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은 참패로 끝났고, 살아남은 아테네 병사들은 채석장에 갇혀 죽어간다. 승리한 시라쿠사도 온전치 않다. 무역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가족을 잃었으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PTSD를 앓는 듯하다. 그런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람포와 겔론은 아테네 포로들을 배우로 세워 에우리피데스의 &lt;메데이아&gt;와 &lt;트로이의 여인들&gt;을 공연하겠다는, 말 그대로 미친 계획을 세운다.<br/><br/>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낯선 것은 말하는 방식이다. <br/>고대 그리스인들의 장중한 문장 대신 현대 아일랜드 특유의 구어체와 농담, 빈정거림으로 말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로마인에게 영국식 억양을 입혀온 기존 역사물 쪽이 오히려 자의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식민 지배를 겪은 시칠리아와 아일랜드 사이의 역사적 공명, 그리고 고대 희극과 더블린 유머의 닮은꼴에서 이 선택의 근거를 찾는다. 그 결과 람포와 겔론은 술집 옆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생생해진다.<br/><br/>소설은 두 얼간이가 사람들을 끌어모아 연극을 올리는 버디 코미디로 시작해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br/>리허설이 진행될수록 그저 '적군'이었던 구덩이 속 아테네인들은 이름과 가족,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된다.<br/><br/>전쟁이 상대에게서 이름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연극은 그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다. 대사를 외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굶어 죽지 않고, 시라쿠사 관객은 증오하던 적군이 연기하는 슬픔을 보다가 결국 자신의 슬픔과 마주한다. 사람은 전쟁으로 타인을 적으로 만들고, 이야기로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br/><br/>여기서 두 소설은 다시 갈라진다. <br/>"영웅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가"라는 &lt;오디세이&gt;의 질문에 이 소설은 "전쟁이 끝난 뒤 인간은 어떻게 다시 인간이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 답으로 예술을 내놓는다.<br/><br/>람포는 허세 있고 무책임하며 종종 비겁한, 결코 미화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가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br/>배우들이 처음엔 공연의 도구였다가 점점 공연보다 소중한 존재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설은 단순한 예술 찬가를 벗어난다. 예술이 사람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진 않는다. 다만 잠시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고, 그 상상이 가끔 한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br/><br/>겔론은 다른 방식으로 슬퍼한다. <br/>상처를 피하는 람포와 달리 그는 죽은 아이와 떠난 아내의 흔적을 사물 속에서 되짚으며, 세상이 망가졌는데도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20년 전 들은 희곡의 한 구절로 목숨을 건지는 장면은, 문학이 살아남는 방식이 도서관이 아니라 기억을 건네는 순간에 완성됨을 보여준다.<br/><br/>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은 초반의 유쾌함을 걷어낸다. 시라쿠사는 승리했지만 패자도 승자도 전쟁에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br/>그래서 제목 '영광 없는 영웅들'은 다르게 읽힌다. 이 책의 영웅은 괴물을 죽이거나 나라를 구하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가져다주고, 배우를 구하고, 밧줄을 던지고, 친구를 끌어올리고, 이야기를 기억한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영웅적 행위는 대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br/><br/>&lt;오디세이&gt;가 바다와 신, 운명이 펼쳐지는 거대한 귀향의 서사라면, &lt;영광 없는 영웅들&gt;은 채석장과 술집, 조그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쪽은 한 인간이 세계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고, 다른 쪽은 망가진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고통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면 후자의 위업이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br/>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적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며, 때로 자기 자신까지 구해낸다. 그래서 이 고대 그리스 배경의 소설은 놀라울 만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br/><br/>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br/>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된다. <br/>망가진 세계에서 아름다운 것 하나를 만드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히 영광스러운 위업일지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24/cover150/k9721300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52425</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 [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amp;lt;오디세이&amp;gt;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9997</link><pubDate>Sun, 30 Aug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99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462&TPaperId=174799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12/coveroff/893247646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462&TPaperId=174799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lt;오디세이&gt;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a><br/>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lt;오뒷세이아&gt;를 읽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괴물도 영웅담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끝없이 헤매면서도 돌아갈 곳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br/><br/>오뒷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한 고향이 아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왕의 자리, 오래전의 이름이 있는 곳. 무엇보다 그가 다시 오뒷세우스가 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야기처럼 읽힌다.<br/><br/>우리는 흔히 그의 10년 방랑을 포세이돈의 분노 탓으로 기억한다. <br/>하지만 오뒷세우스를 가장 오래 붙잡아둔 것은 적대적인 괴물이 아니라 달콤한 것들이었다. 로토스를 먹으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잊는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1년을, 칼륍소의 섬에서는 무려 7년을 머문다. 괴물은 싸우면 되고 폭풍은 견디면 된다. <br/>그러나 편안함은 다르다. 굳이 떠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조금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br/><br/>우리를 삶의 방향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불행보다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다. 아침 알람을 끄고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 오늘 하루쯤은 괜찮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순간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곳까지 떠밀려와 있다.<br/><br/>오뒷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br/>중요한 순간에 잠이 들고, 부하를 통제하지 못하며, 수많은 선택 앞에서 흔들린다. 12척의 배로 떠났지만 결국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은 그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때문에 그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위대함은 길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수없이 길을 잃고도 다시 방향을 잡았다는 데 있다.<br/><br/>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칼륍소의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이다. 그녀와 남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뒷세우스는 영원한 낙원 대신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선택한다. <br/>삶은 유한하기에 소중하다. 끝이 있기에 오늘이 특별하고, 돌아갈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귀향을 서두른다. ‘가리는 자’라는 뜻의 칼륍소의 섬에서, 오뒷세우스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잊혀간다. <br/>그래서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이름을, 잊혀졌던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br/><br/>김헌 교수의 번역은 이 세계를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듬지 않는다. <br/>마음이라 옮길 법한 표현을 ‘횡격막’으로, 분노를 ‘담즙이 치솟는다’는 식으로 살려낸다. 낯설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3천 년 전 사람의 몸과 감정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br/>그들은 몸 전체로 생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존재였다.<br/><br/>영화가 모험을 압도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면, 원작은 그 모험의 의미를 묻게 한다. <br/>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자꾸 머물렀는지, 왜 인간은 불멸보다 유한한 삶을 선택하는지. <br/><br/>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br/>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br/>처음 품었던 꿈일 수도, 오래 잊고 지낸 사람일 수도, 어느 순간 놓쳐버린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br/><br/>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다시 묻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br/><br/>우리는 모두 조금씩 오뒷세우스다. <br/>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돌아가야 할 곳이 남아 있다. 귀향은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끝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다.<br/><br/>덧) 인생에서 한번쯤 고전을 읽어야 한다. 마침 영화 개봉과 맞물려 열풍이 일어나는 중이다. 슬그머니 동참해본다.<br/>아직 늦지 않았다. 이왕이면 이 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12/cover150/893247646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01298</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람을 삼키는 집 이야기 - [프린츠하우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99</link><pubDate>Thu, 27 Aug 2026 08: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130422&TPaperId=174745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20/coveroff/k0621304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130422&TPaperId=174745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린츠하우스</a><br/>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08월<br/></td></tr></table><br/>한남동에 있는 초고가 빌라 '프린츠하우스'. 겉으로 보면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곳 같지만, 강지영의 소설에서 이 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을 집어삼키고 그 안의 욕심을 부풀리다가, 결국엔 주인마저 지배해버리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그려진다.<br/><br/><br/><br/>주인공 선우는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진 뒤 이 집을 물려받는다. 자기가 집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그 집 안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집을 팔고 떠나겠다는 선우의 말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br/><br/><br/><br/>그러던 중 과거 이 집에 살던 집주인의 딸 전승아가 세입자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오컬트 호러로 흘러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냄새, 환청,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들이 이어지면서 읽는 내내 불안함이 쌓인다. 초반부는 뭔가를 직접 보여주기보다 감각을 슬금슬금 건드리는 방식이라 더 무섭게 느껴진다.<br/><br/><br/><br/>승아 몸에 깃든 건 여러 독한 생물들을 서로 잡아먹게 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하나에 원한과 독기를 몰아넣는 '고독(蠱毒)'이라는 것이다. 약한 게 강한 것에 먹히고, 그게 또 더 강한 것에 먹히면서 결국 가장 강한 하나만 남는 구조인데, 이걸 읽다 보면 프린츠하우스 자체가 딱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를 향해 서로 밀어내다가 마지막에 남은 게 바로 이 집이 아닐까 싶어서다.<br/><br/><br/><br/>그런데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무속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구마사제 이사악이 등장하면서 가톨릭의 악마와 구마 의식 쪽으로 넘어가고, 결국엔 탐욕을 상징하는 악마 '마몬'까지 연결된다. 무당이랑 악귀, 구마사제가 한 이야기에 다 섞여 있으니 처음엔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끌어왔는지 이해가 된다. 고독이든 악귀든 악마든, 결국 다 같은 거라는 얘기다.<br/><br/><br/><br/>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설정은 '불티'다. <br/><br/>악마와 한번 접촉한 사람한테는 불티가 남는데, 이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붙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 <br/><br/>이걸 그냥 무서운 설정으로만 보면 저주 이야기지만, 사람 욕심에 빗대어 생각하면 갑자기 확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갖고 싶은 마음, 이미 가진 걸 놓치기 싫은 마음—그게 바로 불티인 셈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악마가 항상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br/><br/>오히려 진짜 속마음, 그러니까 내가 애써 모른 척하던 욕심이나 열등감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준다.<br/><br/><br/><br/>이 집엔 패닉 룸도 나온다. <br/><br/>원래는 위험할 때 사람을 지키려고 만든 공간인데,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비밀을 숨기는 곳으로 쓰인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만든 공간이 결국 진실을 감추는 곳이 돼버리는 이 아이러니도 이 작품이 하고 싶은 얘기랑 잘 맞아떨어진다.<br/><br/><br/><br/>&lt;프린츠하우스&gt;는 읽는 재미가 확실한 오컬트 호러다. <br/><br/>한국 무속과 서양 구마 의식을 섞어놓은 설정도 새롭고, 미스터리와 반전 덕분에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힘들다. 근데 다 읽고 나면 귀신이나 악마보다 좀 더 찜찜한 게 남는다. 귀신은 책 속에 두고 나오면 그만이고 악마도 허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좋은 집 갖고 싶고 돈 더 벌고 싶고 지금 가진 거 잃기 싫은 그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거니까 그럴 수가 없다. <br/><br/><br/><br/>작가는 귀신 들린 집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독자한테 자기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게 만든다. <br/><br/><br/><br/>내 안에는 지금 불티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이 소설의 진짜 무서움이 시작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20/cover150/k0621304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522030</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괴담보다 무서운 현생 - [심연의 텔레패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85</link><pubDate>Thu, 27 Aug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7693&TPaperId=174745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86/coveroff/k5921376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7693&TPaperId=174745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심연의 텔레패스</a><br/>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br/>짧은 한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br/><br/>대학 오컬트 동아리 모임에 마지못해 나간 카렌은 기리야마라는 학생한테서 어둡고 위험한 물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섬뜩한 괴담을 듣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는데, 이틀 뒤부터 집에서 걸레를 바닥에 내리치는 것 같은 '철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br/>비릿한 냄새가 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물웅덩이가 생기고, 무엇보다 그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소설이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튀어나와서가 아니다. 제일 안전해야 할 우리 집이라는 공간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br/><br/>카렌이 결국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야기는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의 하루코와 조수 고시노 쪽으로 넘어가고, 소설 분위기도 같이 바뀐다. <br/>쫓기는 사람의 공포담이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를 파헤치는 미스터리로 바뀐다. 조사해보니 기리야마의 괴담을 들은 사람이 카렌 말고도 여럿 있었고, 다들 비슷한 일을 겪은 뒤 실종됐다는 게 밝혀진다. <br/>사라지기 직전에 남겼다는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이야기 내내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br/><br/>이 소설이 진짜 재밌어지는 건 여기부터다. <br/>하루코와 고시노는 초자연현상을 덥석 믿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아니라고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꾸민 일인지, 심리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건지 하나씩 따져본다. 괴상한 사건도 일단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원인을 찾아가는 두 사람 덕분에, 소설에는 공포와 추리물 특유의 재미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br/>겉으로 보면 완벽한 저주 구조인데, 두 사람은 계속 "정말 괴담 때문에 사라진 게 맞아?"라고 물으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br/><br/>괴담, 실종 사건, 초심리학, ESP처럼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소재들이 한 이야기 안에 섞여 있는데도 산만하지 않다. <br/>초반에 슬쩍 던져놓은 작은 단서들을 후반부에서 하나씩 다시 꺼내 쓰면서 이야기를 넓혀가는 구성이 좋았다. 무서운 대상도 계속 바뀐다. 처음엔 '철퍽' 소리가 무섭고, 그다음엔 기리야마라는 사람이 무섭고, 그다음엔 괴담 자체가 무서워진다. 그런데 읽다 보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무섭다고 느꼈던 게 정말 이 사건의 핵심이었을까.<br/><br/>보통 호러소설은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무서움이 좀 가시는데, 이 소설은 하나 밝혀지면 그 뒤에 더 큰 질문을 하나 더 놔둔다. <br/>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오히려 예상 못한 방향으로 커진다. 카렌 파트가 만든 서늘한 분위기와 다르게 하루코와 고시노가 나온 뒤로는 두 사람 특유의 티키타카가 적당히 숨통을 틔워줘서, 3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도 술술 읽힌다.<br/><br/>&lt;심연의 텔레패스&gt;는 귀신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 안 되는 현상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거기 숨은 규칙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br/>무서운데 동시에 미스터리이고, 초자연현상을 다루면서도 묘하게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평범한 집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하나에서 시작해 생각지도 못한 큰 진실로 나아가는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조용한 방 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혹시 누가 날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86/cover150/k5921376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438662</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과학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그 마음 - [투명한 나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71</link><pubDate>Thu, 27 Aug 2026 0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745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602&TPaperId=174745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02/11/coveroff/s8321312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602&TPaperId=174745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투명한 나선</a><br/>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07월<br/></td></tr></table><br/>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유카와 마나부는 늘 사건 바깥에 서서 논리로 현상을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리즈 열 번째 이야기인 &lt;투명한 나선&gt;에서는 그 익숙한 구도가 뒤집힌다. 이번엔 경찰이 사건을 쫓다가 우연히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br/><br/>지바현 앞바다에서 등에 총을 맞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를 실종 신고했던 동거 여성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그녀는 갑자기 직장을 쉬고 자취를 감춘다. 구사나기와 우쓰미가 그 흔적을 좇던 중, 뜻밖에도 유카와의 이름과 마주친다. 도움을 청받은 유카와는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구사나기를 배웅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그런데 어떻게 협조하겠다는 건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br/><br/>이때부터 이 이야기의 진짜 궁금증은 총격 사건 하나만이 아니게 된다. <br/>유카와는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br/>그리고 뭘 감추고 있는 걸까.<br/><br/>이 작품이 남다른 건 사건의 트릭보다 유카와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br/>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유카와는 좀 괴팍하지만 냉철하고 똑똑한, 이미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집에서 자랐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는 사실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br/>그런 그가 부모님 곁에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 친구인 구사나기조차 몰랐던 유카와의 시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br/><br/>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br/>사람의 행동까지도 하나의 공식처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br/>도망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도망치고,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걸 숨긴다. <br/>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지만, 그 뒤에 사랑과 죄책감, 그리고 오래된 약속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br/><br/>제목처럼 사람의 삶은 곧게 뻗은 길이 아니다. <br/>과거의 일과 지금의 일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같은 자리에서 겹쳐진다.<br/><br/>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유카와가 변했다는 점이다. <br/>여러 사건과 여러 사람을 겪어온 지금의 유카와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br/>진실을 밝히는 게 항상 옳은 일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학자에게 진실은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진실은 때로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br/><br/>그렇다고 거짓말이 답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br/>이 작품은 그 사이의 애매하고 복잡한 지점을 계속 들여다본다. <br/>수사를 방해하는 건 아니냐는 구사나기의 물음에, 유카와는 짧게 대답한다. 너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도 약속한다고. 이 짧은 대화 안에 두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온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br/><br/>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 아니라, 유카와가 오래 묻어뒀던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도 정작 자기 삶에서는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이번 작품의 유카와를 훨씬 사람답게 느껴지게 만든다.<br/><br/>바다에서 발견된 시신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새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br/>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br/>그리고 오래전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온다면, 그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br/><br/>과학적인 트릭을 풀어내는 천재 물리학자의 모습보다, 자기 과거를 안고 살아온 한 사람의 얼굴이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br/><br/>덧)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02/11/cover150/s8321312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021172</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투자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 - [워런 버핏 평전 - 2026년 개정증보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35830</link><pubDate>Thu, 06 Aug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358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109&TPaperId=174358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45/coveroff/k1421301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109&TPaperId=174358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워런 버핏 평전 - 2026년 개정증보판</a><br/>앤드루 킬패트릭.정주용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윌북 / 2026년 07월<br/></td></tr></table><br/><h1>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은 익숙하다.&nbsp;</h1><h1>“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 “10년간 보유할 주식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마라”, “가격은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얻는 것이다.”&nbsp;</h1><h1>그러나 이러한 문장만으로 버핏을 이해할 수 있을까.&nbsp;</h1><h1><br></h1><h1>앤드루 킬패트릭의 &lt;워런 버핏 평전&gt;&nbsp; 2026년 개정증보판은 버핏의 명언을 나열하는 대신, 그 말이 어떤 경험과 판단 속에서 나왔는지를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h1>이 책은 크게 인간 워런 버핏의 성장 과정과 투자자로서의 행보를 따라간다.&nbsp;여섯 살 때 콜라를 팔아 이익을 남기던 소년,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하던 학생, 하버드 입학을 거절당한 청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 제자,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투자조합을 운영한 젊은 투자자가 어떻게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금융 제국을 건설했는지가 방대한 자료와 일화를 통해 펼쳐진다.<br>버핏의 성공은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다.&nbsp;그는 시장이 언제 오를지를 맞히기보다 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분석했다. 다른 사람의 전망이나 주식중개인의 보고서보다 기업의 연차보고서, 재무제표와 같은 ‘미가공 데이터’를 직접 읽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 옳고 추론이 타당하기 때문에 옳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평생 그의 판단을 지탱했다.<br>그렇다고 버핏이 무조건 남들과 반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nbsp;충분한 분석 없이 군중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독립적 판단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버핏의 자신감은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을 철저히 이해한 뒤에야 생겼다. 그는 모든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투자 카드가 스무 장뿐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하며, 확신할 수 있는 소수의 기회를 오래 기다렸다.<br>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는 대담하게 투자했다.&nbsp;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턴포스트, 가이코, 코카콜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면 버핏의 성과 역시 시장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의 성공은 수많은 거래에서 조금씩 이긴 결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몇 번의 중대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br>버핏이 찾은 것은 단순히 싼 주식이 아니었다.&nbsp;그는 사람들이 계속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고,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하며, 경쟁자가 쉽게 넘을 수 없는 ‘해자’를 지닌 기업을 선호했다. 찰리 멍거와 함께하면서 그의 투자 방식은 평범한 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에서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으로 발전했다.<br>좋은 기업을 샀다면 쉽게 팔지 않았다.&nbsp;버핏에게 주식은 시세표 속 숫자가 아니라 실제 기업의 일부였다. 기업 전체를 인수한다는 관점에서 주식을 샀고, 사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보유했다. 그의 투자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보다 ‘좋은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오래 보유하는 것’에 가깝다.<br>이러한 장기 보유를 가능하게 만든 힘은 복리다.&nbsp;수익이 다시 원금이 되어 또 다른 수익을 낳는 과정은 짧은 기간에는 미미해 보이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노년기에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률뿐 아니라 수익을 소비하지 않고 오랫동안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복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시간이다.<br>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투자 철학이 버핏의 생활 방식과도 일치한다는 점이다.&nbsp;그는 수십 년간 같은 집에서 살고, 낮은 연봉을 유지하며, 과도한 부채와 불필요한 소비를 멀리했다. 버크셔 역시 화려한 본사나 경영자의 과시를 위해 주주의 돈을 쓰지 않았다. 검소함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습관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는 태도였다.<br>버핏은 투자와 경영에서도 정직과 신뢰를 중시했다.&nbsp;경영자를 선택한 뒤에는 자율성을 보장했고, 잘못된 판단은 빠르게 인정했다. 주주들에게 과장된 기대를 심기보다 실적이 나빠질 가능성까지 솔직하게 알렸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에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에게 돈은 과시와 소비의 수단이 아니라 더 나은 곳에 배분해야 할 자본이었다.<br>&lt;워런 버핏 평전&gt;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nbsp;오히려 나는 어떤 투자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대상에 욕심만으로 투자하지는 않는지,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br>버핏처럼 되고 싶다면 그가 산 종목을 따라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nbsp;스스로 공부하고,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며,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결정한 뒤에는 오래 견디는 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투자는 결국 무엇을 사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의 문제다. 워런 버핏은 그 사실을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긴 삶 전체로 증명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45/cover150/k142130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94545</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오직 그녀의 것 - [오직 그녀의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7468</link><pubDate>Tue, 28 Jul 2026 1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7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1546&TPaperId=17417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43/coveroff/k3720315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1546&TPaperId=17417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직 그녀의 것</a><br/>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9월<br/></td></tr></table><br/>김혜진의 &lt;오직 그녀의 것&gt;은 한 여성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br/>석주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은 아니었다. 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우연히 문학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고, 선배의 권유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문학을 접한다. 처음에는 수업계획서에 적힌 책을 따라 읽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문장에 오래 머문다. 문학은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열린 문이었고, 석주는 그 앞에 오래 머무르며 자기 안의 끌림을 발견한다.<br/><br/>석주의 열정은 불꽃처럼 겉으로 타오르지 않는다. <br/>그녀는 조용히 읽고,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고, 문맥과 행간을 살핀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석주는 그렇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문장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그녀가 문학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문학이 그녀의 삶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br/><br/>그러나 석주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br/>석주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 특히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다. 아버지에게 교사는 딸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출판사에 들어가겠다는 석주의 선택은 불안하고 낯선 길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석주의 첫 번째 독립 선언처럼 읽힌다. 석주는 가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납득하는 삶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삶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br/><br/>비슷한 장면은 연인의 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반복된다. <br/>석주가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성의 일은 결혼 전 잠시 하는 일이고, 결혼 후에는 가정이 우선이라는 시대의 공기가 그 반응 안에 담겨 있다. 석주는 아버지 앞에서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해야 했고, 연인의 부모 앞에서는 결혼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남성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직업의 지속성을, 석주는 매번 해명해야 했다.<br/><br/>출판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석주를 편집자로 단련시킨다. <br/>교열부 선배 오기서는 문장 앞에서 대충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가르친다. 많이 고치는 것도, 적게 고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원고가 필요로 하는 만큼 정확히 개입하는 것, 그것이 석주가 배운 교열의 윤리였다. 이후 편집부 선배 장민재는 석주에게 한 권의 책 전체를 보는 눈을 열어준다. 문장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작가의 세계와 독자를 함께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석주는 교열자에서 편집자로 성장한다.<br/><br/>연인 원호와의 사랑도 석주에게 중요한 통과의례가 된다. <br/>원호는 석주에게 일 바깥의 생활과 감정을 알려주지만, 그 사랑이 석주의 삶 전체를 대신 완성해주지는 못한다. 이별을 겪으며 석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도 소중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석주에게 그것은 책 만드는 일이었다. 이별은 그녀를 일로 도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자기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보게 만든다.<br/><br/>이후 석주가 출판사를 옮기고 인정받는 과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br/>선배에게 배운 기준은 이제 특정 회사나 사람에게 묶이지 않고 석주 자신의 감각이 된다. 낯선 조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안목, 어떤 원고 앞에서도 작동하는 판단력, 책을 책답게 만들려는 태도야말로 그녀가 얻은 진짜 자산이다. 편집자의 일은 본래 보이지 않지만, 석주는 그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운다.<br/><br/>책 말미에서 석주가 신입 지원자의 면접을 보는 장면은 이 소설의 결산처럼 다가온다. <br/>젊은 시절의 석주는 늘 질문받는 사람이었다. 왜 교사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 왜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 하느냐는 시선, 편집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석주는 질문하는 자리에 선다. 지원자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뒤늦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일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책을 만드는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br/><br/>이 지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br/>석주는 평생 남의 원고를 읽고, 남의 문장을 고치고, 남의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남의 것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원고를 대하는 태도, 선배의 가르침을 자기 안목으로 바꾼 시간,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은 열정, 어디서든 잃지 않은 직업적 자존은 모두 석주의 것이었다.<br/><br/>이 작품은 존 윌리엄스의 &lt;스토너&gt;와도 닮아 있다. 스토너가 세상의 큰 인정 없이도 문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지켰다면, 석주는 보이지 않는 편집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축적해간다. &lt;스토너&gt;가 상실의 소설이라면, &lt;오직 그녀의 것&gt;은 축적의 소설이다. 석주는 부모의 기대, 결혼제도의 압력, 사랑의 상실, 직업 세계의 불안을 지나며 자기 삶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든다.<br/><br/>결국 &lt;오직 그녀의 것&gt;은 한 편집자의 성장담이자, 한 여성이 자기 삶의 소유권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오직 그녀의 것이란 어떤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시간과 선택, 그리고 남의 문장 곁에서 끝내 잃지 않은 자기 삶 그 자체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43/cover150/k3720315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984358</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생가 - [생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5211</link><pubDate>Mon, 27 Jul 2026 1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52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00&TPaperId=174152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1/29/coveroff/k6021300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0000&TPaperId=174152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생가</a><br/>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누군가는 불타 버린 집을 복원하려 하고, 누군가는 이를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읽어 갈수록 알게 됩니다. 여기서 되살리려는 대상은 한 채의 한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br/><br/>&lt;생가&gt;는 전직 대통령의 생가 복원이라는 현실적 소재에 수목 신앙, 한옥 건축, 대물림되는 가족의 비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결합한 한국형 오컬트 호러입니다. <br/>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영화감독 출신인 작가가 시나리오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읽다가 영상을 그릴 때가 자주 있었어요.<br/><br/>2017년, 독재로 권력을 유지했던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화재로 불탑니다. 이 집을 지었던 도편수 지범근은 아들 재헌에게 “생가…… 절대 복원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아버지와 오래 절연하고 독일에서 살던 재헌은 이운암의 손자 건승으로부터 복원을 제안받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 하였으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왕 시작하려 마음먹은 재헌은 이 일은 평생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넘어설 기회이자, 유언에 맞서는 복수로 여깁니다. <br/><br/>그런데 조사차 생가에 들어간 그는 곧 깨닫습니다. “이건 집이 아니거든요.” 건물의 구조와 동선은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를 가두거나 불러들이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장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br/><br/>소설의 목차는 한옥을 짓는 순서(파가, 개기, 열초, 선목, 벌목, 입주, 상량, 생가)를 따르는데, 여기서 집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br/>공사가 진전될수록 땅속에 묻혀 있던 기억과 원한도 함께 형태를 갖춥니다. ‘복원’은 잠들어 있던 악을 다시 깨우는 일이 됩니다. <br/><br/>생가에 쓸 소나무를 베는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재헌은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베어 운반하지만, 이후 가지에서 붉은 명주 조각과 밧줄에 쓸린 흔적을 발견합니다. “베지 말아야 할 걸 베고 말았다.”  <br/>붉은 명주와 고목, 도편수와 대들보처럼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들에서 시작되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br/><br/>&lt;생가&gt;는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br/>재헌은 아버지의 금기를 깨고 생가를 완공하려 하고, 건승은 할아버지의 명성을 다시 세우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윗세대가 남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br/>재헌은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가 깊숙이 내려갈수록 점차 아버지를 닮아 갑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심연 속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br/>소설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집과 가족,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 아버지의 죄와 권력이 자식에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집을 매개로 묻습니다.<br/><br/>이운암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국가폭력을 남긴 인물이 시간이 지나며 영웅으로 미화되고 생가가 성역처럼 보존되는 모습은 우리 현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br/>생가를 다시 짓는다는 것은 그가 상징하는 권력과 숭배의 질서까지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귀신보다 두려운 것은 잘못된 역사를 잊고 죽은 권력을 계속 불러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br/><br/>또 다른 주인공 시록은 무병을 피해 트럭을 몰며 살아가는 여성으로, 생가에 쓸 소나무를 운반하며 재헌과 얽힙니다. 위계와 규칙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권력과 가부장적 질서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합니다.<br/><br/>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조화와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감추고 죽은 권력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서사도 영화적입니다. 흩어진 단서들이 중반부터 빠르게 결합하고, 후반에는 반전이 이어지며 의미가 계속 달라집니다. &lt;파묘&gt;나 &lt;곡성&gt;처럼 전통신앙과 역사적 기억을 결합한 오컬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만합니다.<br/><br/><br/>집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기억을 감추기도 합니다. 죄악으로 세워진 집을 복원하는 일은 역사를 보존하는 일일까요, 끝났어야 할 과거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일까요.<br/><br/> &lt;생가&gt;는 그 질문에서 출발해 집과 가족, 권력과 역사가 뒤엉킨 심연으로 독자를 끌고 갑니다.<br/>그래서일까요? 책을 읽고 악몽을 꾸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1/29/cover150/k6021300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12987</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새옷 입은 연금술사 - [연금술사 - 최신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5086</link><pubDate>Mon, 27 Jul 2026 17: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50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2&TPaperId=174150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10/coveroff/k0221304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2&TPaperId=174150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금술사 - 최신개정판</a><br/>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07월<br/></td></tr></table><br/>새 옷을 입은 &lt;연금술사&gt;, 새해 첫날 다시 읽는 마음<br/><br/>파울로 코엘료의 &lt;연금술사&gt;를 다시 펼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줄거리를 몰라서 읽는 책이 아니라, 이미 아는 이야기를 지금의 내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읽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br/><br/>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피라미드로 떠나고, 먼 길을 돌아 결국 보물이 처음 출발했던 자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야기. 줄거리만 보면 단순합니다. <br/><br/>그런데 이 단순한 이야기는 해마다 다르게 읽힙니다. 특히 1월 1일에 읽으면 더 그렇습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우리는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싶어집니다. 그때 &lt;연금술사&gt;는 조용히 묻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저 멀리에 있느냐, 아니면 이미 가까이에 있지만 아직 알아보지 못한 것이냐고요.<br/><br/>이번에 새 옷을 입고 옮긴이의 말을 새로 실은 판본은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옮긴이의 말은 이 책이 여전히 “나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소중한 여정”으로 읽힌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lt;연금술사&gt;는 단지 산티아고의 모험담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의 표지를 읽고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br/><br/>“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문장은 냉정히 보면 낙관적이고 자기계발서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으니까요. <br/><br/>그럼에도 이 책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이 문장이 현실을 부정하는 주문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lt;연금술사&gt;는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위로하는 책이라기보다 “정말 원한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책입니다. <br/>산티아고는 꿈만 꾸지 않습니다. 양을 팔고, 길을 떠나고, 도둑을 맞고, 다시 일하고, 다시 떠납니다. 이 책이 말하는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과 실패와 우회를 삶의 재료로 바꾸는 힘입니다.<br/><br/>산티아고가 돈을 잃었을 때 그 사건은 단순한 실패일 수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언어와 장사를 배우고 다시 떠날 힘을 얻습니다. 크리스탈 가게에서 보낸 시간도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든 과정이었습니다. <br/>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실패라고만 불렀던 일들, 멈춤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정말 아무 의미 없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br/><br/>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어쩌면 크리스탈 가게 주인입니다. <br/>그는 메카 순례라는 꿈을 갖고 있지만 떠나지 않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인물은 꽤 불편합니다. 마치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같습니다. <br/>우리는 꿈을 말하지만 막상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변화가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월 1일에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 뜨끔해집니다. 올해도 꿈을 아름답게 보관만 할 것인지, 서툴더라도 한 걸음 걸어볼 것인지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br/><br/>결말이 여전히 좋습니다. <br/>산티아고는 피라미드까지 갔다가, 보물이 처음 꿈을 꾸었던 고향 근처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결말을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로만 읽으면 조금 싱겁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물의 위치가 아니라, 산티아고가 그 보물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br/>떠나기 전과 돌아온 그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에 도착했지만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br/><br/>그래서 이 책은 새해 첫날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br/>한 해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 안에 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보는 눈일지도 모릅니다. 가족, 일, 건강, 오래 미뤄둔 마음, 아직 포기하지 못한 가능성. 그것들이야말로 각자의 숟가락 위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일 수 있습니다.<br/><br/>나는 올해 무엇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br/>내가 두려워 미루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br/>내 삶이 보내는 표지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br/>그리고 나만의 보물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가. <br/>&lt;연금술사&gt;는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이 질문들을 다시 꺼내게 하는 책입니다. <br/><br/>새해 첫날, 산티아고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은 결국 피라미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이어집니다. 멀리 헤매던 모든 길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전히 부드럽고 단순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br/><br/>새옷을 입은 &lt;연금술사&gt;. 여전히 좋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10/cover150/k0221304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1013</link></image></item><item><author>csw2700</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연월일 - [연월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4946</link><pubDate>Mon, 27 Jul 2026 15: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8131149/174149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069&TPaperId=174149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38/coveroff/k3721380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8069&TPaperId=174149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월일</a><br/>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05월<br/></td></tr></table><br/>극심한 가뭄이 닥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떠나지만, 일흔두 살의 셴 할아버지는 남습니다. 늙은 몸으로 피난길을 따라가 봐야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어차피 죽는다면 살아온 땅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br/><br/>그런데 그의 집 앞에 옥수수 싹 하나가 돋아납니다. 마을에 남은 것은 노인과 눈먼 개,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옥수수 한 그루뿐입니다.<br/><br/>셴 할아버지 곁에는 비를 기원하는 제물로 묶여 있다가 눈을 잃은 개가 있습니다. <br/>죽어가던 개를 풀어준 노인은, 모두가 떠난 뒤 그 선택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둘 다 늙고 쇠약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이 작품의 따뜻함은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구하는 데서가 아니라, 약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가까스로 살아가는 데서 나옵니다.<br/><br/>옥수수를 살리려는 노인의 사투는 처절합니다.<br/>씨앗을 찾아 헤매고, 늑대와 대치하고, 쥐 떼가 밭을 뒤덮자 잎을 하나하나 닦아냅니다. 처음엔 지나친 고집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옥수수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님이 드러납니다.<br/>그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생명, 자신이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노인에게 옥수수는 삶의 이유가 됩니다.<br/><br/>셴 할아버지는 옥수수로 산맥을 되살리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공덕비를 세워주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허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이길 바랍니다. 몸이 늙어 예전처럼 일할 수 없을 때, 자신이 짐이 되었다는 감각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br/>그가 옥수수를 지키는 일은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와 세상에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싸움입니다.<br/><br/>&lt;노인과 바다&gt;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노인 모두 외부의 보상을 얻지 못합니다. 물고기는 상어에게 뜯기고, 공덕비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싸움에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존엄이 남습니다. <br/>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일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br/><br/>가장 씁쓸한 장면은 동전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옥수수의 거름이 될 존재를 정하려 동전을 던지지만, 훗날 발견된 동전은 양면이 모두 같은 글자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거름이 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br/>그러나 사연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 동전을 그냥 땅에 던져버립니다. 한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담긴 물건이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폐품이 되는 순간—우리의 삶도 어쩌면 그렇습니다.<br/><br/>마을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옥수수에는 서른일곱 개의 알이 맺혔지만, 제대로 살아남은 것은 일곱 알뿐입니다.  그 일곱 알에서 다시 일곱 그루가 자라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바둑으로 치면 겨우 반집 차이의 승리, 그 작은 차이가 생명과 죽음을 가릅니다.<br/><br/>셴 할아버지는 죽음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연약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옥수수 뿌리가 노인의 몸을 관통한 모습은 잔혹하면서도 숭고합니다. <br/>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br/><br/>'연월일'이라는 제목은 해와 달과 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단위를 나란히 놓은 말입니다. 셴 할아버지의 싸움은 물을 긷고 쥐 잡고 흙 파는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축적되고, 잊히는 삶일지라도 그가 살아낸 하루하루는 옥수수 일곱 알 속에 남아 다음 시간으로 이어집니다.<br/><br/>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모자무싸.<br/>나이 들었을 때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 초라해졌을 때도 우리는 말합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br/><br/>셴 할아버지에게 옥수수는 그 말을 대신해 주는 생명이었습니다. 공덕비는 세워지지 않았고 동전도 버려졌지만, 그가 지켜낸 일곱 알은 다시 싹을 틔웠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살아낸 시간은 그렇게 다른 생명 속에 남습니다. <br/><br/>옌롄커의 &lt;연월일&gt;이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38/cover150/k3721380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5387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