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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 J.R.R. 톨킨과 C.S. 루이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5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박홍규가 쓴 <놈 촘스키>(인물과 사상사, 2019)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그는 놈 촘스키(Noam Chomsky)를 현대 아나키즘(Anarchism)의 전형으로 봅니다. 박홍규 자신도 ‘유연한 아나키스트’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의 작품에서 아나키즘적 가치관을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북한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나키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특히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할 때 이런 거부감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정치뿐 아니라 자본, 종교 등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이는 자유와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절대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율과 자치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박홍규는 ‘머리말’에서 톨킨과 루이스가 봉직했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은 ‘자유와 평등의 우정 유토피아’이었지만,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계급적 권위와 취직 학원으로 기능하는 디스토피아라고 일갈합니다.
박홍규는 이 책 제1장과 2장에서 톨킨과 루이스의 출생과 성장, 이들이 즐겨 읽었던 책들과 대학 생활, 1차 세계대전과 이후 이들의 교수 생활, 이들의 결혼 생활을 추적해가며, 가톨릭 신자인 톨킨과 성공회 신자인 루이스의 아나키즘적 우정을 설명합니다. 제4장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핵심 주제는 ‘선악의 싸움’입니다. 결국 사자 아슬란의 도움으로 자유와 평화를 회복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 자율, 평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5장은 톨킨의 <호빗>, 제6장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다룹니다. <반지의 제왕>의 주제도 역시 <나니아 연대기>처럼 ‘선악의 싸움’인데, 절대권력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보여줍니다. 골룸, 프로도, 샘, 심지어 간달프조차 절대 반지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지의 제왕>에는 기독교의 칠대 죄악 중에 색욕을 제외한 모든 죄가 나오는데, 그중 교만이 가장 큰 죄악입니다. 그리고 교만은 권력으로부터 옵니다. 톨킨에 의하면, 권력은 세상이 직면한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아무리 적은 권력이라고 해도 권력은 그 자체로 해롭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악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자들은 어떤 권력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평화를 공동 목표로 함께 모여 행동한 것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다양한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자유, 평등, 자연, 우정 등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사랑을 받을만합니다. 지금은 오직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고 소유와 권력만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박홍규는 톨킨과 루이스의 작품들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우정 유토피아’를 꿈꾸라고 독자들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