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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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김사월, 이훤, 열린책들, 2025)은 가수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엮은 에세이다. ​ 


이훤 시인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교회 동생이 미국 유학 중에 알게 된 오빠이라며 이 분의 시집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당시 시집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서 받아놓고는 구석에 두었다. 시집과 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특이한 이름의 이 시인의 이름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다 애정하는 이슬아 작가와 같이 책을 낸 남자 시인이 있다는 것, 그 책과 관련한 기사인지 (누구의 블로그인지) 그 글을 읽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아 작가는 결혼은 안 할 줄 알았는데(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들기도 하면서 분명 상대방은 그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찾아보니 맞았다. 나와 전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마냥 반갑고 신기했고 내 일처럼 흥분? 되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


이 책을 통해 김사월 가수를 알게 되었다. 서평단에 참여하게 되고 책을 기다리면서 멜론에서 이 가수를 검색하여 음악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청량하면서도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약간 슬픈 듯, 그러나 가라앉지 않는 느낌이었다. 음악 스타일도 그녀 목소리와 비슷했고 내가 곧 좋아할 음률이었다. 이훤의 친구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서로 주고받는 글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재미있고 유쾌한 관계. 남녀를 떠나 이런 우정을 가진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서로 지극히 존중하면서도 아주 친밀한 거리감도 있다. 예술가라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그동안 서로 쌓아왔던 시간과 정성 어린 손길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주변 공기가 부드러워지는 느낌 아니? 네 글에서 그런 냄새가 나서 넌 사진을 참으로 사랑하고 시기하고 아낀다고 생각했어." p.23 ​ 


나는 내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는 사람일까. 문득 나와 나의 친구들을 돌아본다. 나는 늘 바쁜 사람 (그래서 너는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니 굳이 안 챙겨도 되겠지)라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듣는다.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존재인 것 같다. 나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 진짜 이야기는 숨기고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사람, 그래서 책 이야기를 하나보다. 책은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수단이기에. 가끔 나의 이런 모습을 까발리듯 지적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을 만난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가 이내 수긍한다. 적나라하게 다 지켜보고 있으니깐. 그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저자들만큼 애틋한 우정을 과시하지만 못하지만 남편과도 편지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른 분위기와 결을 자랑하는 우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어본다. ​


 책에는 예술가로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낸다. 시인이자 사진 전시를 하는 이훤과 가수이자 공연을 하는 김사월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이훤은 이 집필 당시 시집과 산문을 출간하고 김사월은 4집 앨범을 발매한다. 새로운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숙명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극찬의 반응에 가슴 뛰고, 화려한 무대 위의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엔 정말 세상이 장밋빛 같아. 인생의 모든 고통을 다시 겪는다 해도 다시 이 삶을 살고 싶다는 낭만에 빠진다. 일상으로 착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p.58 ​ 


하지만 1-2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하듯이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2년 동안 쏟아부었던 것을 2개월 동안 드러내 보이고 전부 사라진 상황을 마주할 때면 우울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재능 넘치는 동료들을 볼 때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스스로를 견디는 일은 인생 최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왕성한 동료들 볼 때 여전히 어떤 날은 불안의 종이 울려. 그때마다 찬찬히 그 앞으로 가서 충분히 듣고 종을 땅에 내려놓거나 안 보이게 덮어 둔다. 며칠 지나 돌아가면 없어졌기도 하더라. 그리고 그럴수록 좋은 일 생긴 동료들을 힘껏 축하해 준다. 그들이 잘 되는 게 나에게도 이로운 일임을 기억하려고 애써. 친구들과 서로 영향받으며 함께 더 나은 작업자가 되는 게, 모두 정체된 우리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떠올려 내고 만다.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p. 28 ​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수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우리. 누구 엄마, 어떤 독서가, 어느 글쓰기샘 등 모든 영역에서 비교의 말이 넘쳐나고 위축과 불안이 밀려오곤 한다. 불안의 종소리를 충분히 듣는다는 저자의 말에 안도감이 느꼈다. 회피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 다독이고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두 예술가의 전방위적 대화를 담아놓은 책이라고 할까. 대부분 예술 이야기지만 일상과 생활, 우정, 관계에 대한 다양한 주제도 풀어놓고 있다. 고상하면서 천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진지하여 여러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둘 다 뛰어난 문장가여서 그런지 밑줄 문장이 꽤 된다. 여기에는 많이 올리지 못했지만. 흥미진진한 두 작가의 세계를 탐험하고 온 것 같다.


*출판사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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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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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돌베개, 2023)는 25년 경력의 교사인 저자가 10년 동안 빈곤층 청소년들의 삶의 여정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가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복지와 교육 등과 관련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직장을 가진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렵고, 부모의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여러 일을 전전하는 등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안쓰럽기도 하고, 나 자신의 모습과 겹쳐져서 가슴이 시리기도 했다. 나와 가장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학생의 인터뷰는 한 문장도 빠짐없이 내 이야기 같았다. 자주 다투는 부모님, 무관심과 대화 단절 속 무기력한 분위기. 가난에 대한 수치감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 아빠처럼 살게 될 거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에 사로잡힌 채 보냈던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돈이 많지 않지만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 이것은 빈곤층 청소년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이들은 모두 가정 내에서 어느 정도의 가난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행과 연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가난해도 가족 간에 충분히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p.109)


나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화목할 수 있는데 부모님은 왜 저러시나, 하고. 돈도 없는데 화목한 분위기도 만들지 못한다며 부모님을 이중 삼중으로 원망했었다. TV에 나오는 가족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만이 행복한 가족이라고 여겼고, 그렇지 못한 우리 집은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화목하기 어렵다. 차라리 이 사실을 더 빨리 알았다면 부모님을 덜 원망했을 것이고, 내가 덜 불행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저자가 지적한 정상가족 프레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가난한 가족일수록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 약자들이다. 정상가족의 배타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열패감을 경험한다. (...) 다시 말해, 정상가족이 아니었을 때 경험한 편견 가득한 시선과 차별, 배타성이 가난한 청소년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p.65-66)


어떤 학생에게는 정상가족을 향한 열망이 자신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정상가족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태도일 수 있다. 여전히 정상가족의 범위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다 더 차갑고 차별적인 시선까지 받아야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정상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비혈연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특히 가난의 의미를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난은 너무 단편적이다. 가난은 단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체·정신적 건강과 기본 교육 기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에 가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도,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과 학대의 트라우마는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좀 벗어나도 되지 않느냐"며 쉽게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지 잘 모른다. 가난하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낙인처럼 여겨지고,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이런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p.99-100)


저자는 여러 사회적 자원을 활용해 현명하게 청소년 시기를 보낸 사례를 소개한다. 그 청소년은 가난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고, 가난의 원인에는 사회적 모순과 구조적 한계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위축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 관계도 무난하게 유지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헌신적인 어머니 덕분에 돌봄 센터나 복지제도 등을 통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꿈을 키우는 등의 욕구도 충족할 수 있었다. 이 바탕에는 주변 어른들의 역할도 컸다. 적극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결국, 가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빈곤 정책뿐만 아니라, 이를 실제로 수행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제공 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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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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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예술가이자 작가, 미술원 교수였던 분.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현대지성, 2025)책을 읽자마자 폭풍 검색하여 이 분의 모든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책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단어 하나까지 모든 문장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군더더기, 중언부언 전혀 없고 어렵지 않는, 산뜻하고 깔끔한 문장들의 향연. 다채롭고 신선하면서도 과함이 없고 아주 매끈하다. 간결하고 밀도 높은 문장 안에 부담스럽지 않게 음미할만한 내용이 알맞게 놓여 있어 배려받는 느낌도 든다. 적당하게? 지적 예술적 생활적 자극을 받아, 읽는 내내 은은하게 행복했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30년 넘게 예술 활동을 하시면서 부단히 읽고 썼을 게 분명하다.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은 생활 속 여러 사물 안에 담긴 속성을 작가 특유의 감성과 통찰을 담아낸 책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사물에 대한 재조명은 또다른 차원에서 일상과의 창조적인 연결 고리를 만들어낸다. 얼마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탐색했을까. 문장 마다 탐복했지만 어쩌면 나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사유의 흐름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빛나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기보다 작고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사물에 집중하여 예리한 시선이 담긴 단단한 사유를 살포시 흘려 둔다. 강요하지도 않고 강조하지 않는 그의 태도도 너무 좋다. 


"잠은 매일 작은 용량으로 복용하는 죽음이다.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삶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달콤한 마법의 외출이다. 수면제 과다 복용이 전통적인 자살법이듯, 잠은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가장 가까운 통로다. 매일 밤 우리는 이 작은 죽음의 품에 안겨서 얼룩진 낮의 악몽을 씻어내고 하얗게 빛나는 이마를 들어 새날을 맞이한다. 기적이 따로 없다." (p.173)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하얗게 빛나는" 나의 이마를 쓰윽 문질러본다. 기적 같은 하루을 엳어주는 잠의 효능을 적확한 문장으로 직시하니 순간 내 인생이 또렷해진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 담긴 통찰이 나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다독이는 듯하다. 이런 문장들이 이 책에는 백 개가 넘는다. 여기에 다 적지 못하는 게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너무 과한 칭찬은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유일하게 밑줄도 플래그 하나 없다. 어떤 문장을 선택해야할지 몰라서. 모두가 밑줄이여서. (너무 과한가^^;)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림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림자 같은 어둡고 음침한, 눈에도 띄지 않으며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것들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것의 역할과 의미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당장 눈에 보이고 쫓아가야할 것들이 천지인데. 하지만 그림자가 나의 일부이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나를 생생한 실체로 떠오르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실제로 그리는 것은 석고상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이다. 밝은 회색에서 가장 짚은 어둠 사이로 풍부한 음영의 스펙트럼을 섬세하게 구분해 묘사함으로써 화면 위에서 석고상이 생생한 실체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꽃을 설명하는 글에는 꽃이라는 말이 들어갈 수 없다. 꽃 주위의, 꽃이 아닌 모든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꽃이 저절로 드러나게 해야하는 것이다... 사물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사물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말하는 것이다."(p.4-5)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이분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더 경험하다보면 나도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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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 - 곰 세 마리부터 아기 돼지 삼 형제까지 흥미진진한 영국 동화 50편 드디어 시리즈 3
조셉 제이콥스 지음, 아서 래컴 외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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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와 곽재식 소설가의 추천사 때문에 서평단 신청을 했다. "인생은 여정과 여정과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우리에겐 언제나 이야기가 필요하다"(p.8)문장과 "영국 동화의 신비로운 맛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p.11)에게 추천한다는 말에 끌렸다. 또한 항상 자기 전에 "이야기 해줘~"라고 요청하는 8살 막둥이에게 새로운 소스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교훈이 담긴 주제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읽는 재미는 더해준다. 우리나라와 다른 배경과 시대, 인물이 등장해도 왠지 결말을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이국적인 일러스트에도 눈길이 머물기도 한다. 결국, 아이를 위한 읽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읽기였다!


<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현대지성, 2025)는 ‘영국의 그림 형제’라 불리는 조셉 제이콥스의 동화 50편을 엄선해 소개하는 책이다. 용기, 사랑, 욕망, 재미, 운명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분류하고, 각 동화의 핵심을 한 줄 속담으로 정리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 -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세상 끝의 우물 - 제 복은 귀신도 못 물어 간다' '장미 나무 -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아래 익숙한 한 줄 속담은 다양한 이야기 세계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동화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의 이면을 담아내는 중요한 문화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잭과 콩나무>는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나친 욕심이 부른 비극을 경고하며,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성실함이 결국 보답받는다는 진리를 들려준다. 특히 한국 전래 동화와 닮은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다른 문화 속에서도 비슷한 교훈이 반복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야기에는 시대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막내 윈드는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그 후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밤버러 성의 인근에는 흉측한 두꺼비가 눈에 띄는데, 그 두꺼비는 바로 사악한 마녀 왕비랍니다."(p.220)


대부분의 이야기가 권선징악, 해피 엔딩의 결말을 보여준다. 뻔하지만 윈드와 함께 모험을 했던 우리는 이 결과에 만족스럽다. 과거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교훈과 메시지는 지금 우리 삶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강조도 놓치지 않는다. 다만 자주 '징악'의 대상이 '사악한 마녀 왕비'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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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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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오아시스, 2025)는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25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질병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까다로운 질문들앞에서 철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건넨다.

" 가장 큰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이가 꺼리는 곳에 머무르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 (...)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는 데다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이것저것 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일부러라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다. 젊은 사람과 사고방식이 다르더라도 실제 손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자신은 물이라고 생각하고 흘러보내는 것이 좋다."(p.96-97)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책의 핵심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디서 들어본 철학자와 책이지만 그 두께와 무게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켜준다. 원문이나 해설서 등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메시지의 정수만 가려내서 이해 쉽게 표현하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등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거운 질문 앞에 무너지기 보다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듯하다. 철학이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일,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는 일은 곧 철학이 요구하는 발상이다."(p.6)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산주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노년의 개념을 전복시켜 '약함', '불가능함'과 '무위'와 같은 개념을 활개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는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누구나 생산의 속박에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년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p.61)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년은 젊음과 생산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늙음과 무능으로만 보고 아주 큰 문제로만 인식했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노년을 특별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순간,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 해서 이미 순수하게 노년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바꿔 말해서 그런 식으로 노년을 특별하게 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노년은 문제가 되기는커녕 사회가 만든 모든 차별을 극복할 계기로 작용하며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종소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p.62)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다룬 '나와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법' 챕터이다. 인간관계 문제는 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까지 따라올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죽는 그 순간만 온전히 혼자일 뿐, 매 순간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인간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라며 넘어가고 싶지만 나는 항상 나와 너무 다르면 힘겹고 나(의 단점)와 너무 비슷하면 괴로워한다. 이런 나에게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나'에게 포섭되지 않은 존재"(p.137)라고. 나에게 포섭되는 존재는 사물 밖에 없다. 타인에 대해 다르면 다르다고 불편해하고 같으면 같다고 싫어하는 태도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물 취급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는 전체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슷하다는 레비나스의 경고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오후 뿐만 아니라 오전과 저녁, 밤까지 모든 삶의 여정에는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며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데 철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접하고 적용하게끔 이끌고 있다. 철학 하면 머리부터 아팠던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것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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