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몸
주원규 지음 / 뜰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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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탐하고 나서 벗은 몸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승민의 벗은 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태초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죄를 범한 인간이 보기에 그 발가벗은 모습은 감춰야 할 수치스러운 민낯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집단에서든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다.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일컬어지는 비정상인의 집단에서도 보다 더 비정상적인 대상을 만들어낸다. 그 예로, 본 책의 pg 22에서 장애인을 위해 건립된 센터에서조차 장애인 가운데 더 통제하기 힘든 장애를 가진 승민이를 소외시키고 내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교 집단에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성격은 조금 다르겠지만 교리대로 행하지 않는 자를 바른 길로 가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죄'책감이 들게 만든다. 그들은 본인이 믿는 신에게 벌 받기를 두려워하고 신이 기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신이 직접 얘기하지 않으니 현실은 신을 많이 공부한 대리인을 통해서 신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 대리인이 신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작가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다수의 신도들이 사회적 통념과 모럴에 관한 갈등을 일소하려는 종교(대리인 개인)의 획일적인 해법 아래 통제되고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현재 JMS와 같은 사이비 종교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됨에도 그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 더 죄악이라 여기고 본인이 믿는 잘못된 신의 모습 아래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만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보여준 우리 사회의 단면은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그 모순 가운데 무엇이 경계해야 할 모습이고 벗은 몸인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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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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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세 노인의 엽총 자살이라는 다소 거창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담담한 어조로 세 노인의 주변 인물의 삶을 그려나간다. 인생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죽음을 생각해도 다른 이는 자기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나갈 수밖에 없는 것. 아주 가까운 이 조차도...

 학창시절에는 바람만 불어도 나아갈 것처럼 웃었는데 지금은 즐겁다가도 금세 허무해진다. 나는 나를 찾아가는데 남들은 나를 더 몰라주고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삶에 치여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만 확실해진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가족, 친구를 사랑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마지막 날을 준비해나가는 것 같다. (자살만이 아닌 그냥 내 삶의 마지막날.)

 옮긴이가 내가 느낀 바를 잘 정리해 주었기에 옮긴이의 글을 인용해 끝맺어본다.

[결국 죽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며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 따라서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줍니다.]

 

드러나게 대립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은 은연중에 알기 마련이다. 체념. 어느 시기부터 아버지한테서 그게 느껴졌다. 혼자서 산속으로 이주해 버린 것도 그 체념과 관련 있었을 테고, 인간보다 고양이니 염소니 작은 새와 같은 동물에게 더 애정을 쏟았다. - P65

그것들은 전부 집 안에서의 기억이며 인상이었다. 집 밖에서의 아버지를 나는 얼마만큼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속이 술렁거렸다. 아버지를 자신들 가족의 것이라 여겼다. 아니라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떠나 버렸을까.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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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
한수지 지음 / 엣눈북스(atnoonbook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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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책 속의 주인공 그리고 화자에 이르기까지. 단 몇 문장과 몽글한 그림 만으로 쓸쓸함, 따뜻함, 희망, 위로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한수지 작가님의 이번 작은 대비되는 문장을 그림으로 데칼코마니처럼 구현한 방식이 특히 인상 깊었다. 다음 작품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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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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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매주 챙겨보다 보면 항상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움에 갇힌다. 분명 A의 입장을 들었을 때는 그리고 정황상 분명 B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B의 입장을 들으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B가 여전히 범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B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과한 이해심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하물며 생생한 변명의 장인 재판은 오죽할까. 피해자, 피고인 가릴 것 없이 서로의 가장 불쌍한 처지를 내세우고 상대의 잘못을 과하게 표현하는 등 사연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판사는 그 가운데 법에 의거해 가장 정의로운 판단에 가까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판단을 가리는 명확한 잣대는 없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조금씩은 다른 수많은 사건을 법전에 기록된 몇가지 조항만으로 유사하게 잘잘못의 정도를 구분 짓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않아 보인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촉법소년 및 미성년자 범죄와 관련해서도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것만이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우한 가정과 그것을 돌보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불안정한 삶으로 이끈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사회와 가정의 책임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사연을 모두 고려해주기에는 판사마다 그 사연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따라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무리 안타까운 사연이라도 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판사는 잔인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주영 판사와 같이 재판장에 와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 개개인의 삶과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지 고뇌하는 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따뜻함을 느꼈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온 세상이 울고 있었다. - P162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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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조 지무쇼 지음, 서수지 옮김, 와키무라 고헤이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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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로써 각 감염병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너무 무겁지 않게 훑어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작가가 일본인이자 경제학부 교수이다 보니 예시가 일본에 치우쳐져 있고 각 전염병의 병리적인 내용이 기대했던 것보다 부족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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