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도 조선어와 일본어, 어느 것을 말해야 할지 입을 떼지 못하다 가위눌릴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차지츰 꿈도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말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니담아 놓을 생각도 뜸해졌다. 시도 마찬가지였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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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한바탕 웃었다. 창가에서 머뭇대던 바람도, 한번 웃음이 터지니 그 기세에 휩쓸려 빈 강의실 안을 한 바퀴 휘돌고 나갔다. 한결 숨통이 트였다.
p.108

해 봐야 소용없는 비판과 저항은 이제 그만 멈추고, 새로운 체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자신의 양심도 설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논리를 찾느라, 식민지의 창백한 지식인들은 카페와 공원에서 값싼 담배 연기를 꽤나 흩날리고 있었다.
p.152

 땅거미가 드리워지는 빈 교정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동주의 가슴에 무언가 차오르는 게 있었다. 부드러운 봄바람 이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고향 집의 군불 때 아랫목에서 자울자울 밀려오는 졸음결에 듣던 할머니의 성경읽는 소리였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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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생김생김을 살펴보자면, 동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에 항상 엷은 웃음이 어려 있었고, 약간 도도록한 아래 눈두덩이 그 웃음을 신중하게 받쳐주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과묵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에 비해 몽규는 안경 너머 쌍꺼풀진 눈이 또렷했고, 꼭 다문 입술에 꼿꼿한 미간이 날카롭고 예민해 보였다. 그래도 한번 입이 열리면 거침없는 웅변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몽규는 달변가였다.
p.34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시험 기간에 빈 책상이 없어도 학생들은 그 자리만큼은 비워 두었다. 강의실도 연구실도 잃어버린, 존경하는 교수에 대한 배려였다.
p.97

일본이 길을 내는 방식은, 산과 강의흐름을 존중하던 조선 사람들과는 달랐다. 산이고, 강이고, 사람이고 거치적거리는 것은 다 걷어 버리고 치워 버렸다. 개천은 메우고 길가 살림집들은 밀어 버렸다. 작은 산은 무너뜨리고 큰 산은 허리를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신촌역에서 경성역까지, 얼마 안되는 거리에 긴 터널만 두 개였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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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거론하며 급식을 남기지 말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급식을 남기는 안 남기는 아프리카 아이들은 여전히 굶는다.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지 말 것,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나눠먹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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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곡식이 자라듯, 사람의 경우도 그와 다르지 않다. 정성과 애정을 먹어야 둘다 제대로 자란다. 농작물이 뿌리내린 토양을 자양분 삼아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사람 역시 그렇다. 생명의 자생력을 믿고 성장할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 또한 농부와 부모의 몫이 아닐까싶다.
p.66

자녀 양육비를 따져 자녀 수를 결정하기도 한다지만, 없는 살림에 부모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일 중에 그래도 잘한 일이 있다면동기간을 맺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동기간끼리 의좋게 지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우애를 쌓고, 그 우애를 밑천 삼아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리라 믿기 때문이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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