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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가족사회학, 가족심리치료라는 저자의 연구분야에 솔깃했고 이미 심리전문가들의 바이블이자 많은 심리전문가들에게 쓰이고 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모호한 상실’이라는 용어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다.
모호한 상실이란 완전한 상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렇지만 여전히 상실감에 젖어 있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용어의 정의를 읽자마자 세월호참사부터 최근의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와 이태원 참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자연재해나 참사로 인한 실종과 같이 육체적으로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치매나 알코올 의존증과 같이 육체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는 경우도 함께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나 역시도 이런 모호한 상실감에 젖어 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상실 가운데, 모호한 상실은 정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고 불분명한 상태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치명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은 몸을 눈으로 직접 봐야 상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그러한 검증을 통과한 적이 없으므로 부재나 존재에 대한 그들의 인식 변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책의 구성은 응고된 슬픔, 예상치 못한 이별, 이별할 수 없는 이별, 끝나지 않는 상실, 상실을 받아들이는 터닝 포인트, 내 안의 슬픔과 조용히 대면하기 등의 주제로 저자 개인의 경험과 환자와의 상담, 문학작품 등과 함께 버무려 고통을 완화하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슈얼 가족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은 삶의 일부분을 즐거운 일로 계속 채우며 관습적인 것을 무시했고 비극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의 예술적 감성이 가족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가 ‘떠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상태에 따라 그들의 관점을 매일 바꾸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심지어 그녀의 새로운 존재 방식까지 즐길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마주하는 것만큼 우리를 무너뜨리고 힘들게 하는 일은 없다. 이러한 상실감을 겪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원인을 찾고, 확실한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어쩌면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하는 자기 비난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저자는 모든 일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닥뜨린다. 시시포스가 밀어 올리는 바위가 늘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밀어 올리는 모든 바위는 결국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의 모든 일이 부조리하다고 했듯이. 저자는 사람들이 비록 불분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상실 이후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