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 PATA
문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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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이면서 그녀가 아닌, 깊숙이 숨겨진 '그녀'에 대한 이야기"


붉은 마젠타 컬러를 입은 표지는 어딘가 미스터리함을 가득 뽐내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간간이 방송을 통해 만나온 문가영이라는 사람의 이미지 때문인지, 새삼 그녀의 숨겨진 내면을 만나볼 수 있는 이 책이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처음에 그녀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책 제목을 보고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녀의 내밀한 언어들로 채워진 산문집이었다.

누군가에게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오픈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듯 당당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것은 보면 스스로 꽤 오랜 시간 자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깊이 고심하고 되뇌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을듯하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살펴보면, 1부 '존재의 기록'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진실한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 탐구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부 '생각의 기록'은 질주하는 단상들 사이에서 자신과 바깥을 향한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각이 돋보인다.

특히 의도적으로 1부와 2부의 페이지를 흑백으로 나눔으로써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느낌을 선사하는데, 이를 통해 다가오는 느낌도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 더해 부록에서 만날 수 있는 실제 파타의 아버지가 쓴 육아일기는 또 다른 관점에서 파타를 바라보게 하는 한편, 그녀가 쓴 기록들이 실로 진짜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나'이지만 내 안에 자리한 또 다른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실제의 나와 성격이 다를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를 수도 있으며, 무언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상념의 형태로서 자리하면서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내밀하고 은밀한 구석에 꾹꾹 눌러 숨겨두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홀로 있는 시간에 둘만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이 더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제각각의 모양새라 누군가에게 언어로 꺼내기엔 복잡 미묘한 내면의 목소리를 저자는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풀어내며, 예측할 수없이 튕겨대는 상념과 생각의 고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배역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한 저자는 글을 쓸 때조차 배역이 필요해,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신을 '파타'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내면에 존재하는 상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진실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실이 아니기도 하며 어떤 것은 왜곡되거나 거짓인 내용이 존재할 수도 있다. 머릿속에 자리한 수많은 저자의 상념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고 자라는 상념들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나의 삶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이제 사사로운 감정들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파타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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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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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에 대해 저자의 내면에 자리한 '파타'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질문하고 떠올리고 쫓아가며 그 과정들을 글로 남겼다.

이 기록들은 때로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반대로 이해되지 않거나 복잡하게 다가오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저자 자신의 상념에 대한 기록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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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거짓말 잘할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하지도 마."
(...)
의미 없는 거짓말과 의미 없는 경고.
반복.
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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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기처럼 나 홀로 다짐하고, 경고하며, 되뇌던 반복의 말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같은 상황이 이르면 또다시 반복할 걸 알면서도 스스로 의미 없는 거짓말을 반복하던 나의 모습,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경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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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손으로, 품에서 품으로.
세상에서 세상으로. 옮겨지던 그녀.
어릴 적부터 어디를 가든 파타는 두 발로 땅을 디뎌본 적이 별로 없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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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자리한 다양한 상념들이 정작 현실 속에서 경험치로 자리한 적은 별로 없다. 모든 생각과 의문들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든 물음과 생각들은 허공에 뜬 상태로 옮겨지고 또 옮겨지는 게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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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카리는 파타의 마음속에서 한 번도 영웅이 아닌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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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가 있는 집의 동생들이 흔히 갖는 동경 혹은 영웅심리가 엿보이는 문장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첫째들이 갖는 어떤 책임감이 이와 닮아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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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은 엄마는 파타에게
"눈앞의 사람에게는 늘 진실하게 대해야 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파타는 엄마에게 "엄마 정말 잔인하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

파타의 시선을 따라가 함게 같은 곳을 보던 엄마는 파타에게

"그래? 그래도 누구를 만나든 진심을 다해 대하면 모든 사람들이 네 편이 되어줄 거야."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뀌는 그 순간 파타는 엄마에게
".... 엄마 나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엄마는 파타에게
"내 딸은 모든 걸 품을 수 있으니까... 내 딸은 그랬으면 좋겠네."

여전히 아이 같은 서운함에 파타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고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들만큼이나 엄마의 마지막 말은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18~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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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말이 객관적으로는 옳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심 내가 상처받은 것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고 서러운 기분.

토라져 고개를 휙 돌리거나, 방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가 모습을 감춰보지만, 이내 마음 한편에는 부모님의 말이 맴돌아 자꾸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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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내가 써준 편지 내놔."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듯 파타에겐 마무리보다 자신의 편지가 중요했다. 하얀 종이에 얹어지는 활자들은 그녀의 감정들을 대신하고, 그녀의 넘치는 사랑은 모음 끝에서 뚝뚝 흘러내린다. 그래서 파타는 자신이 쓴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 걸 좋아한다.
(...)
한 아름 편지들을 안고 집에 도착했다. 안심했다.

'내 맘을 돌려받았어. 난 잃은 게 하나도 없네.'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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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치사한 것 같으면서도 순수한 모습이 엿보이는 에피소드로, 당시 파타는 어쩌면 진짜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감정이 흠뻑 스며든 편지를 되돌려 받고 집에 도착한 뒤에 안심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다가도, 새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편지로 에둘러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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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체성을 찾고 있어요."
(...)
"매년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높이도 다르고 깊이도 달라요. 작년보다 이번 계단이 유독 높았나 보네요. 그래서 적응하는 중인가 보다. 그건 혼돈의 시기가 아니라 빨리 온 축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체성을 찾아야 해. 그게 앞으로의 몇 년을 책임질 거야.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 버려요. 아주 좋은 축복이니 자꾸 연구하지 말고, 그냥 관찰해."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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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찾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문장으로, 계단에 비유함으로써 심정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부분이었는데, 혼돈이 아닌 축복, 정리하려 하지 말고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 버리라는 말에서 꽉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하나하나 꼭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골라내고 연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데 섞어 비벼 버려도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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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꾸만 내가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거야. 그들의 소망이 덕지덕지 내 몸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널 사랑하기 때문인 걸 잘 알지 않냐는 말에 "알아, 내가 나쁜 거 알아. 아니, 이게 싫은 거야. 자꾸만 내가 나쁜 사람이 되게끔 만들어. 그저 사는 나에게 자꾸만 행복하라고 하잖아! 그게 잘못된 건지 사람들은 모르나 봐.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 건지."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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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공감이 갔던 문장 중 하나로, 문장이나 단어를 떼어놓고 보면 분명 나를 위하는 말과 행동처럼 보이지만, 상황과 겹쳐놓고 보면 일방통행의 이기적인 행태로, 실은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정작 당사자는 모른다.

그래서 대놓고 그만하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그저 갑갑할 따름이다. 의미 없이 빌어주는 행복이나 질문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뱉은 말들이 타인을 불행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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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어갈 즈음 그녀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연말 약속
연말 계획
신년
새해
다짐

그녀는 이에 대한 두 가지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첫 번째는 그저 하면 되는 일에 대단한 사족을 붙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두 번째로 파타의 시간은 시계방향으로 도는 원이 아닌 직선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흘러가는 하나의 선에는 기준점이 될 만한 홈이 없다.

'그냥 하면 되잖아. 그냥, 12시. 내일. 다음 주 월요일.
1월 1일, 이게 다 무슨 기준이고 무슨 소용이야.
다짐을 할 시간에 이미 뭐라도 했겠다.'

뱉지 못한 말이다.
55~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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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의 말에서 어쩐지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특정 시기를 찾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의지박약이라, 그런 핑계를 대서라도 미루거나 혹은 시작할 용기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떨 때는 '제발! 그냥 지금 해!'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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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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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상념들의 특정 부분들이 조각처럼 자리한다. 메모지에 남긴 조각의 파편들이 흐트러졌다 만나는 텍스트 이미지를 통해 단상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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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어차피 좋아질 기분 조금 빨리 좋아지면 안 될까?
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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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뇌지만, 쉽게 되지 않은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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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손이 한참 앞서 있는 내 생각을 쫓아가지 못할 때.
결국 오늘도 난 아무것도 적지 못했네.
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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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이 함께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때로 오류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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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1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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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통하지 않는 진심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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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쥔 손가락

오래된 관계가 가장 끈끈하다고 하지만 이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게 바로 이런 관계들이다. 그래서 난 오래된 관계를 부수는 걸 좋아한다. 이는 느슨한 탄력감과 편안한 긴장감을 주고 무엇보다 견고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잔인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2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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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될수록 견고하다는 말은 관계에 맞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오래된 관계는 낡고 느슨해져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때론 교체하거나 폐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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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아빠가 쓴 파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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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에피소드들에 등장했던 파타의 유년 시절을 아빠의 육아일기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만나볼 수 있다. 파타는 알지 못했던 순간의 기록들에서는 사랑과 든든함이 묻어난다.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는 시선에서, 잠들기 전 들려주는 아빠의 이야기에서 큰 사랑을 느낀다.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더불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며 자신을 찾아나가는 그 모든 순간이 사실은 소중한 일상의 순간이었음도 알게 된다.

그저 사랑스럽고 기꺼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아빠의 육아일기는 허물없이 아끼는 마음으로만 가득 차서 그래서 더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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