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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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에 자주 등장하는 '이슬아 작가'. 유튜브를 볼 때도, 기사를 볼 때도 종종 그녀의 이야기가 등장하여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전에는 특별히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관심 대상도 아니었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들에 그녀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면서 어느새 관심이 그녀의 글과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마침내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꽤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출판사 대표이며, 글을 쓰는 작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글쓰기 교사라는 직업은 꾸준히 하는 일이었고, 여기에 강의를 하는 강사와 가사와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까지 겸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듯 보였다.


그 외에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일간 윤슬아'라는 형태로 많은 독자들에게 글을 발행하는 일도 진행하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알고 보니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했다는 '일간 윤슬아'에 발행되는 글이 궁금해졌고, 그녀가 썼다는 책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만나본 그녀의 책은 가장 최근에 출판된 <끝내주는 인생>이라는 책으로, 인간 이슬아의 세계가 담겨 있는 산문집이었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슬아의 세계가 담겨 있는 책으로 어찌 보면 약간 관찰자적 느낌으로 그녀의 삶을 살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친한 친구들과 어떻게 보내는지, 이를테면 야해지거나 수다스러워지거나, 무너지는 순간 등을 살펴볼 수 있었고, 또 자신의 어릴 적을 회상하며 동생과 함께 겪고 나눈 일상 속에서 어떤 유대감을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 평소의 습관과 생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했는데, 잠을 자지 못해서 컨디션이 저조할 때 하는 행동들이라던가 일상 속에서 너무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들, 이를테면 태권도장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사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일상이라던가, 요가원을 다니면서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상의 모습들이 따뜻하게 담기면서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외에도 자신감에 넘쳐 흔쾌히 친구의 요청을 허락한 일이 낭패감으로 다가온 순간 같은 일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담으면서 읽는 독자들 마저도 함께 그 순간에 매료되어 이야기에 빠져들 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마치 끝내주는 인생의 찰나를 모두 모아 둔 앨범을 들여다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이때는 이랬지'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어떤 부분은 그녀만의 생각이나 사상이 반영된 부분도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나와 버린 반응들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었는데 이를 통해 오랜만에 앨범을 들여다보듯 천천히 '나만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찰나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며 상기하는 시간을 통해 오늘의 나는 '안녕'한지 그녀의 글을 통해 지금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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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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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적룡 부대에서 장교로 복무 중인 대학 친구 정현이 한 시간짜리 글쓰기 강연 후 동생 찬희와 함께 다섯 곡의 노래를 부르는 북 콘서트 행사를 요청해 왔다.


당시 여러 상을 휩쓸고 승승장구하던 때라 별생각 없이 승낙한 이 강연에서 그녀는 낭패를 보고 마는데, 이때의 곤란하고 식은땀 나던 상황은 동생의 한마디가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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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됐었다"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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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게 공연을 마치고 나온 동생조차 누나 앞에서는 "좆됐었다"라고 마무리 지은 상황이라니.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로 군인들 앞에서 글쓰기 강연을 하는 것조차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이후 고장 난 마이크 때문에 동생 찬희는 마이크는 버려두고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상황으로 보면 가히 스스로 '이슬아 미친년'을 부르짖을 만하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밤새 이불킥 할 하루를 만들어 버린 그녀. 아찔하면서도 진땀 나게 만들었던 군부대 강연의 에피소드는 그렇게 즐거움과 예상치 못한 긴장감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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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가장 닮은 너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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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희가 돌아가기 전에 나는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
그의 밴드가 <형제자매>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던 날, 나는 내 집에서 빨래를 개면 동생의 목소리를 들었다.
(...)
나는 반듯하게 개던 수건에 얼굴을 묻고 훌쩍훌쩍 울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찬희가 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
설명하지 않아도 찬희는 아는 것이다. 닮았기 때문에,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네서 함께 울던 우리들의 작은 인생이 여기까지 왔다.
89~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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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이면 느끼지 못할, 형제자매가 있는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을 엿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한 집에서 함께 나고 자라면서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감정 혹은 경험.


공유하는 기억, 장소, 느낌들은 그렇게 불현듯 다가와 한순간에 나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는 서로를 안다. 닮았기 때문에,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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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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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어느 겨울날, 진하는 나에게 흰색 물건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오큘러스 퀘스트 2'라는 제품으로 꽤나 최신 버전의 가상현실 기기였다.
(...)
나는 가상현실 안에서 눈을 떴다.


종이비행기 하나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손으로 그걸 집어 들어 허공으로 획 날려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어, 하고 소리 냈다. 곧바로 알았다. 이거 진짜네.
(...)
공과 채가 맞닿는 순간, 손에 전해지는 가벼운 마찰, 그리고 서로를 밀어내는 미세한 중력. 그런 감각들이 너무나 진짜였다.
(...)
오큘러스 고글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세계에 순순히 설득당했다.
곧이어 푸른색 로봇 하나가 나타나 인사를 붙였다. 정중하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존재였다.
(...)
그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
나도 리듬을 탔다. 어느 순간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잡았다.
(...)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리드를 따라왔고 나는 음악 속에서 소리 내어 웃으며 춤을 줬다.


그러다 주춤했다. 불현듯 진하가 떠올라서다. 내 시야는 고글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이곳은 우리 집 거실이고 진하는 나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부끄러운 심정으로 물었다.
"보고 있어?"
진하가 대답했다.
"너무 재밌어."
그는 꼼꼼한 관찰자다.


고글 바깥에서 진하는 '렉룸'을 찾아 가보라고 제안했다. 가상현실 채팅 공간이었다.
(...)
쟤네들 혹시 NPC야?"
진하가 대답했다.
"NPC 아니야. 너랑 동시에 접속한 진짜 유저들이다. 외국 초등학생 들일걸."
(...)
"헬로."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집어 들더니 내 머리 위에 쏟았다.
(...)
그것은 물론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나는 쓰레기통을 상대 머리 위에 쏟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또 다른 유저는 음료수 병 하나를 집어 들더니 옆 사람 몸에 쏟아붓고 있었다.
(...)
특별한 악의 없이도 이곳에선 그래볼 수 있는 듯했다. 진짜가 아니니까. 쓰레기나 음료수를 함부로 쏟아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대미지가 없나? 육체를 걸지 않는 세계에서도 무엇이든 가능해서는 안 될 텐데, 그걸 정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
다른 방으로 가보니 테니스장이 있었다. 마침 그 방에 들어온 애와 함께 테니스를 몇 판 쳤다. 치다 보니 꽤나 진지해져서 나는 온몸을 휘두르며 스매싱에 임했다. 땀에 젖은 채로 게임이 끝났다.
근처엔 라운지바도 있었다.
(...)
풀어진 자세로 소파에 기댄 이들,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수다를 떠는 이들 옆에서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외롭다는 걸 알아차렸다. 분명 이방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공간이 아마도 미래의 에스엔에스일 텐데.
(...)
그 세계에 나는 얼마나 접속하게 될까. 중요한 이야기와 궁금한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인다면 어떨까. 과연 좋은 일이 끔찍한 일보다 많이 벌어질까.


피로해하며 렉룸에서 로그아웃했다.
(...)
'틸트 브러시'라는 프로그램으로 안내했다. 3D 페인팅이 가능한 앱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자 진하가 미리 그려놓은 선들이 나를 감쌌다.
(...)
이 아름다운 선들이 어디로 흐를까 궁금했다. 천천히 뒤돌았다.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뒤편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하가 그린 나였다.
(...)
3D 페인팅 픽셀로서의 내 존재는 자유 자재했다. 여기에 동작을 부여하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도대체 이 기술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걸까. 황홀하고 두려웠다.
(...)
"마지막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가봐."
그곳은 나사에서 설계한 구조를 그대로 구현한 장소였다.
(...)
우주로 나간 나는 선체 외부에 달린 안전봉을 꼭 붙들고만 있었다. 놓치면 영영 우주를 떠돌 테고 그럼 끝장이니까.
(...)
"등 뒤에 추진장치가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멀리 가봐도 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그 말은 왜 언제나 용기가 되는 것일까.


꽉 쥐었던 안전봉을 놓고 두 손으로 우주선을 힘껏 밀쳐냈다.
(...)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끝없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주를 날며 정면에서 바라본 지구는 아주 평온하고 자비로운 행성이었다.
(...)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의 선택은 유턴이었다. 지구를 등지고 태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고글 속 광활한 세계에서 유영을 배우고 있었다. 아주 뜨겁고 커다란 행성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다치지 않을 걸 아니까.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아니까.
(...)
오큘러스 고글을 벗었다.
(...)
그리고 양팔로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가상현실에서 돌아온 내 몸. 다치기 쉬운 몸. 느리게 배우는 몸. 이 몸으로 여러 겹의 리얼리티를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 진하를 꼭 껴안으며 예감했다. 다가올 미래에서 나는 도태될지도 모르겠다고.
(...)
어쨌거나 흥미진진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별 수 없이 그 시대에 바치게 될 것이다.
104~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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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VR 고글을 통해 돌아본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어쩐지 두려움과 흥미로움, 거부감과 황홀함 등의 이중적인 감정을 들게 한다.


직접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더없는 환희와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또 타인의 시선에 묶여있던 나를 내려두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동시에 느낀다.


스스로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 시대는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거기에 '나'는 얼마나 적응하며 맞춰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글이다.


그 세계에 얼마나 접속하게 될까? 글쎄,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어쩌면 접속 횟수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 따라 도태되는 내가 될 수도, 아니면 적응 끝판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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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최고의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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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배운 건 잘 잊히지 않아. 늑대와 고양이의 죽음에서 배운 것들. 이 배움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게 해. 동물들의 각별한 형제인 너. 강하고 약한 너. 결점투성이인 너.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너... 너무나 유한한 너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지. 나중에 아프더라도 지금은 힘껏 그래야지.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1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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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나를 발견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비슷한 형태의 글을 예전에 '요조'의 에세이에서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쩐지 큰 슬픔을 경험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깨달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아픔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작은 일마저도 큰 의미를 담게 되는 것, 소중한 것을 제대로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 유한한 삶에서 현재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 삶 자체를 가치있게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인생을 가지는 것.


그렇게 최고의 나로 사는 인생의 전환점은,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는 순간은 결국 아프게 배운 인생에서 오는 것 같다.


솔직한 이슬아의 세계를 살펴보면서, 진짜 나의 세상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그리운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는 한편, 지금 나의 삶을 채우고 있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와 내가 누리는 즐거움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또 차곡차곡 자신의 미래를 채워나가고 있는 저자의 삶을 통해 나도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몰두하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저자를 보며 격한 응원을 담아본다.


더불어 차근차근 내딛고 있는 나의 소중한 한걸음에도 힘찬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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