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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로 만든 세상 - 은행개혁과 금융의 제자리 찾기
신보성 지음 / 이콘 / 2024년 6월
평점 :
“부분준비제도는 불법이므로 100%준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딱 떠오르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1부 <돈은 빚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금융과 은행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부(部)로 이루어져 있으나, 내용상 크게 보면 은행의 역사, 현대 은행제도의 문제점, 은행의 개혁 방안 이렇게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 은행의 역사는 곧 위기의 역사 – 부분준비제도의 탄생과 이로 인한 은행 위기의 반복
17세기 중반 주화와 금괴의 보관소 역할을 하던 런던의 금장(goldsmith, 금세공인)은 우연한 계기로 보관 금을 초과하는 가짜 보관증(맡긴 금: 20파운드, 보관증 표시: 30파운드)을 유통시킨다. 보관증 초과 발행은 오늘날 대출에 해당한다(초과 표시된 10파운드는 차입금, 그에 대한 대가는 이자). 금장은 평균적으로 고객이 맡긴 금의 10%만 실제로 인출됨을 확인하고는 실제 보관하는 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보관증을 발행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부분준비제도의 기원이 된다.
오늘날 은행은 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의 진짜 돈(본원통화)만 보유하고 진짜 돈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가짜 돈(파생 통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주는 꼴이다. 은행제도가 지닌 모든 문제점은 부분준비제도에 기인한다. 은행 위기는 뱅크런의 형태로 시작되는데, 뱅크런은 예금이 부채(고정 청구권)와 보관증(상시 인출)이라는 양립 불가한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는 데 따른 것이다. 은행의 역사는 수익 증대를 위한 과도한 대출(예: 상환무능력자에 대한 대출)→손실 축적→뱅크런→파산, 이 과정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각국에서 은행 개혁 시도가 있었음에도 은행 위기가 계속되자 오히려 부분준비제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은행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전개된다.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중앙은행에서 본원통화를 무제한으로 대출해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과, 은행이 파산할 경우 예금자 손실을 보상해 주는 예금보험제도라는 안전망 도입으로 은행을 고치는 쪽이 아닌 구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 현대 은행제도의 문제점 – 과잉금융과 부채의존경제
부분준비은행에 의해 총생산보다 더 많은 대출이 공급되는 현상을 ‘신용팽창’이라한다. 이 책에서는 안전망에 기대어 신용팽창이 장기간, 그리고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을 ‘과잉금융’이라 칭하며 현대는 신용팽창을 넘어 과잉금융 상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과도한 부채, 만성적 저성장, 자산시장 버블, 양극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 부작용의 원인이 과잉금융이라고 설명한다.
과잉금융으로 잉태된 부채의존경제는 부채 양산과 자산가격 상승이 멈추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모든 경제주체는 부채의존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자산가격 부양을 목표로 돌진한다. 이 현상은 우리가 최근에 겪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19 때 양적 완화(돈 풀기)와 그에 따른 자산(주식/부동산) 가격 상승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은행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 보편적 법원칙의 회복, 100%준비제도 도입
오늘날 예금계약의 법적 성질은 소비임치계약(은행이 소비 可, 예금자는 언제든지 반환청구 可)이나, 보관인 동시에 대차인 관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금계약은 불법이다. 소비임치계약은 부분준비라는 탈법적 관행을 합법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은행 위기는 ‘부분준비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보편적 법원칙의 회복 즉 100%준비제도(보관과 대차의 분리, 통화와 신용의 분리)를 도입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이 책은 10여 년 전 저자의 아드님(당시 중학생)이 은행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보인 반응(아드님 왈, “아무튼 은행의 시작 자체가 불법 아니야?”)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지식이나 제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문제의식이 없는 건 참으로 문제다. 이 책은 저자의 말씀대로 ‘은행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허구적 신화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은행의 역사, 금융이론, 금융위기 등 금융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현대 은행제도의 불법성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매우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수개월간의 서평 활동에서 만난 책 중 단연코 1등이다.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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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문학동네(@munhakdongne)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문학동네 경제경영 출판 브랜드 이콘 출판(@econ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