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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ㅣ 디테일로 보는 미술
수지 호지 지음, 장주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작가란 온갖 것에서 비롯되는 감정들을 담는 그릇과 같다. 하늘로부터, 땅으로부터, 종이 한 조각으로부터, 지나가는 형태로부터 그리고 거미줄로부터” 피카소가 한 말이다. 작가뿐 아니라 모든 삶이 그릇이 아닐까. 넘칠 듯 담겨 위태로워 보이는 그릇, 모자라서 옹색해 보이는 그릇, 그렇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풍요로워 보이는 그릇이자 다른 것을 담을 여백이 있는 그릇. 각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나타낸 현대의 화가들에 대한 책이다. 책에 수록된 그림들도 큼직하고 마음에 든다.
햇빛의 느낌과 질감을 그리는 화가들
철학과 감정을 담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가난한 화가들
색채로 사랑을 고백하고, 선으로 새로운 세상을 연 화가들.
기차의 속도감으로 흐려지는 풍경, 야외의 눈부심과 빛나는 수면을 가능케 한 튜브형 물감, 성직자나 권력자가 아닌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릴 수 있게 한 산업혁명, 이 혁신들이 모여 새로운 예술사조를 만들어냈다. 이들을 인상파, 야수파, 미래파, 입체파, 오르피즘, 사실주의, 다다이즘 등등으로 불러달라거나, 불리었다. 이 중 꽤 많은 사조는 모욕적인 어조로 불렸지만, 지금은 거장앞에 붙는 사조가 되었다.
예술은 유연하고 가변적이다. 한 시대에 다양한 사조들이 나타난다. 그 전 사조들을 닮거나 발전된 형태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유행, 변혁을 담은 예술이 각광받고, 그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은 그 다음 세대에 애정을 받는다. 시대를 앞서간 그림들은 그래서 동시대엔 비난과 모멸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흐름과 사조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소비되는 흐름들도 있다. 변혁과 새바람이나 충격과 파격 대신 안온하고 편한 그림.
현대미술의 시작엔 이견이 많다. 사실주의부터를 시작으로 보거나 혹은 인상주의부터, 또는 20세기를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개념미술의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고 본다. 가톨릭과 인본주의와 화려한 궁정의 생활상에서 영웅과 애국주의에서 튜브물감을 들고 기차를 타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사조, 인상주의. 사진이 생겨나면서 화가들은 초조해졌다. 더 이상 똑같이 그리는 건 의미가 없어. 그들의 눈에 들어 온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기차의 창 밖 이그러지는 풍경들, 그리고 야외에서 느끼는 햇살의 눈부심과 호수에 비치는 반짝임. 그래서 그들은 빛을 그리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냈다. 자연이 자연의 색이, 빛의 반짝임이 주인공이 된 그림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그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에겐 익숙한 그림들이 그 시대엔 혁신과 신선함으로 구태의연함과 투쟁했다.
고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오베르트의 교회>그림을 분석해 웨트 인 웨트 (젖은 물감위에 바로 물감을 덧칠하는 기법)기법을 설명하고, 일본 우키요에판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윤곽선을 연한 색으로 표현해, 연속선이 아닌 끊어진 자국으로 만든 것이 차이점이라며 표현기법등에 대한 설명도 첨가되어있다.
세잔은 밑그림을 감춘 예전 그림과 달리, 밑칠이 작품으로 보이도록 의도해, 사실이 아닌 그림임을 강조한 최초의 현대미술인점을 이야기하며, <빅투아르산>그림을 확대해 보여주고 있다.
클림트의 <나무 아래 피어난 장미 덤불>을 보자. 로젠빈트(장미산들바람)부는 언덕, 무심한 듯 띠를 이룬 풀밭 위로, 레몬옐로, 뻐밀리언, 알리자린 크림슨, 연빨간색이 짧고 강렬한 점들이 가득한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장미들이 후두둑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내가 부인이라면 마티스의 엉덩이를 걷어찼을 것 같은 <마티스 부인, 초록색 선>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은 부인이 아니라 햇빛의 느낌. 이러거나 저러거나 기분 나쁜건 매한가지가 아닐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현대인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외로움과 단절은 구구절절 수백 페이지의 글자들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텅 빈 어두운 거리와 대비되는 작은 식당에서 단절을 느낀다.
불안과 우울 속에서 본 환각들을 그려낸 야요이는 자신의 소멸을 점으로 그려냈다.
마크 로스크의 색면화앞에서 느끼는 경건함과 초월의 감정들, 말레비치의 검은색에서 손을 모아 기도했다는 이들은 그림에서 신성함을 경험했다.
파울라 레고의 소설같은, 아니 소설의 주제를 하나의 그림으로 압축한 <환영> 고문과 분리, 억압을 이야기하는 설치예술가 모나 하툼, 삐뚤어지고 고통받는 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고통으로 일그러지게 하는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그림들이 표현기법과 의미등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다.
현대미술이 있다. 여기에 사람도 있고 말도 있고 소도 있단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매직아이인가 싶어 눈을 중앙으로 모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자. 어디가 소인지 어디가 말인지 대강 추측은 가능하다.
이 책의 장점은 현대 유명화가들의 백과사전 역할쯤 한다는 것, 그림이 크고 선명하다는 것, 그림을 부분별로 확대해 기법과 색감을 설명해 주는 것, 이런 류의 책치곤 가격이 괜찮다는 것, 그리고 위에 말했듯 소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아 준다는 것.
마음에 드는 그림들에 잔뜩 인덱스를 붙이자, 그리고 그 날의 마음날씨에 따라 그림을 골라 보는 거다. 어쩌면 누군가의 위로보다 더 큰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끔 아이가 엄마는 왜 명화책들을 사냐고 묻는다. 그런 책들을 읽는다고 지식이 늘어나거나, 혹은 미술관에서 폼 잡으면서 이 그림은 말이야~ 이런 주제도 못되면서 말이다.
(내가 그림이 좋은 이유는......
체육을 못 한다. 뭐 아쉬울 건 없다. 음악? 음악도 못 한다. 그렇지만 이 것 또한 아쉬울 건 없다. 가끔 내가 노래를 부르면 다들 웃어주니 그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도 당연히 못 그린다. 그런데 이건 좀 아쉽다. 내가 갖고 싶은 재주가 있다면 그건 그림 그리는 재주다. 내가 사랑하는 이, 그리운 이들을 그리고 싶고,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하늘과 별을 내가 받은 느낌을 담아 그려주고 싶다.
또 그림은 책과 비슷한 감동이 있다. 화가의 삶을 알게 되면, 그 그림은 화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진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화가의 감성이란 필터로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다.
고흐의 별도 좋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대낮에 그려진 선명한 달도 좋았다. 이탈리아 라벤나성당의 스테인 글라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클림트의 장식성 짙은 그림도 좋았다. 러시아 소설의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레핀의 그림도,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장욱진 그림도 좋다.
그림엔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푸른빛의 슬픔이 노란 빛의 그리움과 붉은 울음이 초록의 우수가, 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그 색과 선에 담긴 감성들이 넘나든다. 그렇게 그림은 삶을 색으로, 내면을 빛과 질감으로 그려낸다. 그냥 나는 그림이라면 좋다.
유식할 필요도 많은 걸 알 필요도 없다. 내가 좋으면 그만인 그림들, 요즘은 책표지에 자주 쓰이는 안소현, 옥승철 등의 젊은 작가들 그림도 좋아진다. 거대한 여성들을 그리는 제니 사빌이나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도 좋다.
미하일 브루벨의 악마 연작도 좋다. 악마와 인간 공주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악마와 사랑에 빠진 공주는 결국 죽고 만다. 영혼이라도 같이 있고 싶지만, 천사가 나타나 공주의 영혼을 거두어 가고,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악마를 그렸다.
우리나라 화가 중에 제일 작품 값이 비싸다는, 김환기 작가님의 수많은 점들이 그려진 작품 앞에 서면, 그 점들 하나하나마다 항아리와 달과 삶이 모두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난생 처음 뭔가를 훔쳐 내달리고 싶었다. 그 점 하나 우리 집 거실에 걸어 놓으면, 휘엉청 밝은 달 하나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날은 별 하나로, 어느 날은 항아리로 그렇게 거실을 밝혀주지 않을까. 그 항아리에 내 마음들을 담아 두고 푹푹 삭혀 깨끗이 빨아 밤하늘에 널어 두면 달도 되고 별도 되지 않을까. )
아래 그림은 오리피즘 화가 로버트 들로네의 <동시에 열린 창문들>이다.
언젠가 모든 문들이 활짝 열리고 환한 햇살들이 쏟아지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햇살처럼 쏟아져 나와 다시 웃고 떠들고 어깨 부딪치며 떠들썩하기를, 들로네의 그림을 보며 상상하고 기원해 본다. 곧 그런 날이 오겠지.
( 두번째 그림은 책 속 고갱그림 해석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