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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모드
랜스 울러버 지음, 모드 루이스 그림, 박상현 옮김, 밥 브룩스 사진 / 남해의봄날 / 2018년 9월
평점 :
태어날 때도 작았다고 해, 아주 작고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 마지막 순간에도 아이의 관에 담겨 묻힌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 이야기다.
작가는 모드 루이스와 같은 장소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모드의 작품을 좋아했고 꽤 많은 그림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그림의 매력이 뭘까 하던 작가는 어느 날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을 접하면서, 모드의 그림이 가진 매력에 빠졌고, 그래서 여러 자료들을 모아 책을 써냈다.
선명하고 밝은 빛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소박하고 정겨운 동물들과 아름다운 자연이 장난치듯 환하게 밝히는 모드의 그림들.
어그러지고 낡은 보드 위에, 버리고 간 페이트통의 남은 물감으로 자신의 추억과 자신만의 기법으로 아이처럼 그린 화가다.
내가 모드 루이스를 알게 된 건 한 편의 영화덕이다. 네이버에서 무료로 해줬던 영화
<내 사랑>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체, 내가 좋아하는 에단호크가 나온다길래 보게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학생역을 했던 에단 호크는, 여기서 모드의 남편인 무뚝뚝하고 거친 남편 에버릿으로 나온다.
그리고 모드로 나오는 샐리 호킨스, 작고 감성적이며 수줍음 많지만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채워가던 모습은 감동이었다.
모드의 어린시절은 행복했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나름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와 그리고 오빠와도 사이좋은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부모가 돌아가시고 오빠가 모드를 거의 버리다시피 하면서 유산 한 푼 받지 못하고 이모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 시기 모드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입양을 보내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모드는 가정부를 구하는 에버릿의 광고를 보고 그를 찾아가게 된다. 둘은 결혼을 하고 에버릿의 그 작은 오두막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드는 오두막 가득 꽃과 나비를 그린다. 그런 모드의 그림들이 팔리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렇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에버릿, 밖으론 나가지 못하는 모드. 모드는 그리고 에버릿은 그림을 팔아 번 돈을 바닥에 묻었다.
영화 속 캐나다 오지의 노바스코샤는 황량했다. 바닷바람과 외따로이 서 있는 작은 오두막, 인적 드문 동네, 그렇지만 그 오두막에 모드는 봄을 그리고, 따스함을 불어넣었다. 모드를 위해 판자와 페인트를 주워오고, 살림과 요리를 했던 에버릿.
비록 모드 사후에, 모드의 유품들을 몽땅 팔려했고, 결국 돈을 훔치러 온 젊은이에게 살해당하는 어쩌면 매정해 보이는 에버릿이지만, 모드는 에버릿을 의지하고 믿었고 에버릿 또한 모드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저 어린시절 너무나 가난해 구빈농장에서 일하며 끼니를 걱정했기에, 에버릿에게 돈은 쓰기보다 모으는 것, 오로지 검소하게 사는 것만이 생존방법이었을 거다.
그래서 모드는 불평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은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도, 싸구려 붓 때문에 그림에 털이 묻어도, 전기대신 킨 촛불 때문에 그림에 촛농이 묻어도. 그런데 지금에 와선 모드의 진품과 가품을 가리는데 이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그림을 그렸고, 엉뚱하게 소 다리를 세 개로 혹은 너무 긴 속눈썹의 소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자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드가 가진 위트였다. 바닷가재처럼 곱아지는 류마티즘 걸린 손으로 모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팔기 위해,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운 게 다다. 나머진 그저 모드는 스스로 터득한 것들, 그녀의 내면, 의지와 인내가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림에 담겨있다.
귀여운 고양이들과 아름다운 꽃들, 바닷가와 일하는 소들의 순박함, 말과 망아지의 즐거운 한때가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미소짓게 되는 것, 편안하고 행복한 유년과 그 시절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모드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우리에게 나눠준 것은 아닐까. 오랜 병마와 힘듦 속에서도 마음속에 담고 있던 행복한 기억들을 선물한 것. 그래서 오히려 밀려드는 주문에 급급해 비슷한 그림들을 연달아 그렸던 시기보다, 초창기의 그림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책도 좋았고, 영화도 좋았다. 척박한 배경과, 실제처럼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모드의 오두막, 그리고 빨간 귀마개 모자와 낡은 체크무늬 옷을 입은 키 크고 마른 성난 얼굴의 에버릿. 바람과 눈, 바닷가의 쓸쓸함이 가득했던 화면 사이로, 환하게 웃는 모드를 태우고 달린 에버릿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난다.
힘들고 우울했을지도 모를 삶이지만, 그 속에서 위트와 밝음을 찾아내 주변을 그린 모드, 그림 속에서 반전을 보여준 화가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 잣대로 보는 그녀의 삶이, 그녀에겐 그리 나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