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걸 4 : 멈춰 버린 세상을 구하라! 헌터걸 4
김혜정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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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해결사, 미카엘라 그리고 헌터걸까지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각종 괴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책들이 인기? 오히려 남자애들이 부수적 인물로 나오는데 조금은 그래도 될 듯.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리즈
남자애들은 코드네임시리즈의 강파랑~

독서의 쓸모가 뭘까.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내가 책만 잡고 있으면 아무 일도 시키지 않으셨다.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공부라고 생각하셨고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읽는 행위가 칭찬받는 아주 고차원적인 고상한 행위라 생각됐다
무슨 책이든 상관없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든 얄개시대든( 연식이 나온다ㅠㅠ)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대학생언니오빠의 책을 몰래 읽든 책을 읽는 행위는 우리집에선 신성하기조차 한 행위ㅎㅎ 너무 거창하지만 심부름을 피할수 있는 행위였다.
고맙고 지혜로운 엄마셨다.
지금의 엄마들처럼 많이 배우시지 않으셨지만 빨래를 하시면서도 무슨 책을 읽었는지 뭐가 재미있었는지 항상 물으셨고 어떤 책인지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으셨다.
책은 책으로 충분하다.
무료할때 혹은 두렵거나 힘든 상황에서도 책 속 상황을 상상하며 이겨내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슬픈 마음, 스트레스를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킬킬 거리다 잊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은 재미있지만 엄마가 쓸모가 없다고 해요.
그럼 무슨 책이 쓸모있니?
음. 역사나 과학이나 뭔가 지식책이요.
그럴때면 너무 맘이 아프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실 수 있는 엄마가
아이가 한 껏 웃고 즐거울 수 있는, 그 과정에서 배우는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다니.
그러지 말자. 즐거운 것도 엉뚱한 것도 모두 독서다.
아이가 홀로 우뚝 서서 살아나갈때 도움이 되는 건 수 많은 책들 속에 느낀 감동과 즐거움이다. 얕은 지식을 깊은 지혜로 만들어 주는 것도 , 평생 책을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첫 단추가 되는 것도, 즐거운 책읽기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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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하는 몸 속? 세포 이야기.
귀염귀염 적혈구, 왠지 츤데레 백혈구와 각종 세균들 ~
아이들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책

음. 만화책을 쪼금 더 선호하네요 아이들이 *^^*
하리하라의 세포여행은 중학생들이
용감한 세포 비앙카는 초딩아이들
일하는 세포는 모두가 좋아하네요
아무래도 일하는 세포 2권도 사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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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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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시인의 시집읽기

서론

시인 신철규의 당선소감이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였다고 한다.

시집에서도 시인의 말에서도 눈물이 묻어난다.

울음이라는 주제는 이 시인에게는 그저 눈물이 아니라 같이 울어주고 같이 위로하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순수함 또한 의미하는 게 아닐까한다.

본론

1.거시적인 읽기

이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만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고자 하는 시집이다.

첫째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제목은 가슴에 너무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친구를 위로할 때,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 너만큼 나도 슬프다가 아닐까.

지구의 모든 이들이 겪었을 아픔을 공감하는 제목으로 다가왔다.

둘째 시의 전체적인 행과 연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눈물이나 물 파도등으로 일관적으로 물과 관련해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복되는 주제는 1장과 2장에서는 사회속에서 느끼는 부조리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3장에서는 부모의 희생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슬프지만, 결국 같이 울어주는 행위와 기도라는 행위로 다시 한

셋째 시의 화자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그와 그녀처럼 3인칭으로 지칭하면서 결국 모든 이들이 시의 화자이기도 하다.

그와 그녀라 지칭하며 시인 자신과의 관계를 객관화하면서 담담하게 아픔을 이야기한다.

“프롬프트”(p18)의 가면이나 “벌거벗은 모자(p23)의 공중에 뜬 모자가 걸어갑니다는 구절과 “모자와 마스크”(p28)속의 샌드위치맨이나 모두 영혼없이 삶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다리위에서”(p30)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삶에서 겪은 일을 시로 풀어쓰며 막히는 차 속에서 철새떼를 보며 역전과 추월이 불가한 세계에 우리가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며 그런 현실에 대해 연민과 답답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반면 “소행성”(12)에서는 어린왕자를 빗대며 삶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의 위로”(22)에서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있다. 죽어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과 ‘유리파편을 씹으며’로 비유한 자해하며 사랑을 지우는 그녀, ‘자신만의 절벽을 바라보는 사람’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몸에 불을 기르고’ ‘밤늦게 돌아온 아내’ 그런 고단하고 힘들었을 이들을 공감하고 싶어 한다. 위로가 되고 싶어 그런 아내와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같은 꿈을 꾸고 싶어 한다.

2.미시적인 읽기

제목부터가 마음이 아팠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얼마만큼의 힘듦인걸까. 그러다 이 말이 한 빈민가 아이의 말에서 따왔다는 걸 기사로 알게 되었다.

신철규 시인의 시 “슬픔의 자전”(90)에서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이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타워팰리스 뿐만 아니라, 임대아파트의 아이들을 차별하는 부모들의 기사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만큼이나 소중한 아이들이 차별 속에 지구만큼 슬퍼한다는 걸 알까. 그래서 그 맑은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그렇게 혀 끝에 매달려 입 속에 넣은 사과마저 짠 맛이 돌게 한다는 걸 알까.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과 차별은 우리 어른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생일잔치라는 건 시작일뿐이라는 걸 안다. 얼마나 많은 아픔과 좌절이 있을지, 그러나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이들이 있기에, 그런 일들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들, 같이 울어주는 신철규 시인같은 이들이 있기게 작고 겁나지만 희망이라는 걸 이야기한다.

“검은 방”(84)의 첫 구절은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이다. 첫 구절부터 연상되는 슬픈 사건. 바로 세월호이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는 구절은 우리 모두의 눈앞에서, 텔레비전앞에서, 전원 구조라는 오보앞에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우리 앞에서 그렇게 기울어가던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천박한 텔레비전 방송은 세월호 아이들의 가난함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받게 될 보험료를 계산한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실제 세월호 희생자들이 들었던 말과 다른 말을 쓰며 반어적으로 더욱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가만히 있으라, 그러면 모두 구조될 것이다라는 방송을 믿었던 306명의 희생자들. 시인은 어쩌면 그런 말들과 행동들에서 우리 또한 책임을 면하지 못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어쩌면 시인이 세월호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해주고 싶은 말, 아니 우리 모두가 해 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기도보다 더 간절한 말.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야 내 친구도, 주변인들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그렇게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결국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라는 시인의 싯구처럼 그렇게 딱딱해져 가라앉는 것이다. 시인은 유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라고 표현했고, 그런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가을이 멀었는데도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라는 구절은 반어적이면서도 중의적이다. 가을이 멀었지만 온통국화다에서 국화는 세월호 아이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아픔이 계속 기억될 것임을 알기에 반어적으로 아직 가을이 멀었다는 앞구절과 달리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제데 아직도 국화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아프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싸여있는 일, 그러나 추모하는 일마저, 그들과 같이 울어주는 일마저 국가는 방해했고, 저주 같은 말들로 마치 신이 없는 듯 이간질을 하고, 이제 그만됐다라는 말들을 주저없이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일은 우리에게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 그런 일 인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검은 비닐봉지를 쓰듯 여전히 답답하고 힘든 것이다. 죽을만큼 힘든것이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세월호 이후 해변은 제단이 되었고, 그 사이에는 검은 허파가 떠 있다.

허파는 숨을 쉬는 일을 한다. 산소를 모으고 이산화탄소를 내 보낸다. 어쩌면 그렇게 침몰한 세월호 속 306명의 희생자들에게 그런 허파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철같은 허파로 그들이 강철같이 숨을 쉬며 살아오기를,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헛된 희망이었기에 그 강철같은 허파는 검은 색이다. 제단이 된 해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울고, 같이 기도하는 일이다.

3.맥락적인 읽기

신철규 시인은 조선일보로 등단, 6년 만에 이 시집을 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는 세월호 추모시집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손석희의 뉴스룸에 <눈물의 중력>이란 시의 한 부분인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란 부분이 소개되며 많은 이들이 세월호 시인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신철규 시인의 시들에서는 슬픈 기사들이 담겨있다.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지 않은 한, 언제나 내 귀와 눈을 뚫고 들어오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속에 유난히 가슴을 후벼 파는 일들이 있다. 신철규 시인은 그런 사건들을 가장 가슴에 새기도록 아름답지만 슬픈 시어들로 이야기하고 있다.

눈물과 슬픔, 기도, 물, 파도

이 시집을 읽고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신철규 시인은 같이 울어주며, 우는 이의 손을 잡고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낸 건 아닐까.

슬픈 이들의 손을 모두 잡아 줄 수도, 모두 같이 울어 줄 수 도 없기에, 그 대신 같이 울어주고 같이 기도해 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시집은 아닐까. 시인의 공감적이고 따스한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 있으며, 그 아픔들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기도와 눈물, 그리고 공감하는 시들이 나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결론

이 시인의 시어에는 물의 이미지가 많다.

눈물, 파도, 물이란 단어들, 울 수 있는 사람.

신철규 시인은 눈물이 또 다른 눈물을 위로하고 씻어 준다고 한다.

짜디 짠 파도와 같은 슬픔을, 또 다른 눈물로 희석시켜, 그 파도와 같은 슬픔이 상처에 밀려 올 때 덜 아리도록 위로하고 싶어 한다.

밀양 송전탑에서 농민들 위로 쏟아진 물폭탄 속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우리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부모들의 시위 앞에서 시인은 눈물을 보았고, 그 눈물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울어주는 것이었다.

눈물을 눈물로 치유하며, 그들과 공감하고 작은 희망을 찾고자 한다.

수많은 촛불들이 그 눈물 잠시 위로했지만, “눈물의 중력”의 싯구처럼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많은 일들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사회현실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것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면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온화한 방법으로 시를 쓰는 작가가 아닐까.

바꾸고자 하는 세상을, 위로라는 방법과 공감이라는 방법으로 가장 온화하면서 가장 힘 있는 방법으로 시를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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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
히스토리

누군가는 지금의 역사는 말그대로 히스토리였다고 말한다.
( 물론 히스토리의 어원은 그나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전쟁, 그리고 무력. 이긴자의 편인 역사 속에서 여성은 설 자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반인 여성이, 동반자로서의 여성이 폄하되고 도구화되었던 과거는 그리 예전일이 아니다. 몇 몇 여성역사학자들은 히스토리가 아닌 허스토리를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허스토리.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워버린, 혹은 승자의 입장에서 적혀진 역사서 속에 잃어버린 여성의 모습은 인류 모두에게 손해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성의 지위는 조선시대 중반기이후부터 급격하게 하락하여, 남성의 도구적 모습을 보였고, 핍박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모양처라는 남성위주의 여성 역할을 강요당했다.

지금도 현대시대는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자 주제에”

“여자 따위가”

“여자는 그런 거 못해”

등으로 차별받고 있다.

또한 그런 틀에 갇혀 여성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비하하며, 노예적 삶을 살기도 한다. 인류의 삶속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해 특히 한국에서의 시대 흐름속 여성의 모습을 알아보고, 앞으로의 여성의 지위와 모습에 대해 모색해 보자.

중간 ~

1)고대시기

인류의 시작에 있어서는 모계사회일 수 밖에 없었다.

동굴 속의 집단 생활에서는 부계를 확인 할 길이 없었다.

사냥을 하지만. 실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채집이었고, 채집의 대표주자는 여자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나마 스스로 음식을 움켜쥐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모유에 의지했고,생사의 결정도 어머니에 의해 가능했다. 그렇기에 모계사회였고, 농경사회에서도 초기에는 여전히 모계사회가 근간을 이루었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었고, 삶을 이어갔다.

2)신석기, 청동기, 철기 및 삼국시대

그러나 농경사회에 접어들고, 철기의 발달로 뛰어난 무기등으로 전쟁 등 침략 전쟁이 구체화되면서, 여성보다는 남성이라는 것이 사회전반에 차지하게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 지면서, 소유의 개념이 노동력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여성에게 낙인을 찍었다.

노동력을 소유하기 위해, 여성을 가두거나 자신의 소유물로 타인들과 합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야만 그 후 생겨나는 자식들에 대해 소유물로서의 주장이 가능했고, 자신이 일군 것들에 대해 걱정없이 물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이 가진 장점인 무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서로를 위해 그 무력에 대해 용인했다.

간혹 여성이 모자라면 폭력을 이용해 쟁취하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였다.

여성 또한 그들에겐 그저 하나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철기시대의 도래로 농작물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전쟁시 무기의 발전으로 비약적 발전하는 시기에서, 여성은 또 다른 노동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사회인 고조선에서, 여성의 존재는 단군신화에서 “웅녀”라는 존재로, 그리하여 단군왕검을 낳게 되는 모성의 존재로 나올뿐이다.

웅녀라는 존재가 나라의 건국이나, 단군왕검의 통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나마 삼국시대 우리는 “소서노”에서 여성의 긍정적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했으나, 주몽은 예전 자신의 처였던 예씨부인의 아들인 유리를 아들로 삼게 되고, 결국 소서노는 자신의 두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고구려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며 신격화하였지만 여신의 몫은 소서노가 아니라,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국모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소서노 또한 백제 초기 등에 나라의 건국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결국 역사에서는 그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삼국유사나 사기 등에서 소개되는 여성은 그저 효녀라던가,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서 조력자의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혹은 남성들이 원하는 남성들이 꿈꾸는, 말 잘 듣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일부종사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어머니를 위해 종이 된 효녀 지은이라던가, 혹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끝까지 기다리는 설씨녀 등의 이야기나, 죽어서 귀신으로 나타난 진지왕과 하룻밤을 보내는 도화녀 등이 다이다. 남자들이 여성에게 요구한 것은 명석함이나 용감함보다는, 남자를 끝까지 기다리거나 순종적인 모습인 것이다.

세계사를 살펴보아도 별다를 것이 없다. 유럽에서 여성은 하나의 중요한 재산이었다. 서로 동맹을 맺을때에도, 돈독한 관계를 맺을 때에 중요한 요인으로 필요했던 것이 바로 결혼동맹이었고, 이때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들은 아주 필요한 도구였다.

여성은 또한 그저 종족보존을 위한 것일뿐, 고대 그리스 등에서는 오히려 남성들의 사랑이 더 고귀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오히려 영특한 여성은 골칫거리로 묘사되었다. 독립적으로 살거나 공부를 하고 싶다면, 수녀원에서 살며 수녀가 되거나, 혹은 가혹한 경우에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몸뿐, 머리는 필요없다는 것이 남성의 지배적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 시대 여성에 대한 기록은 전무할 뿐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같은 지금은 유명한 여성 화가조차도,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자신이 고문을 당해야 했다. 자신이 고발한 내용이 진실인지를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를 고문함으로서 확인하려 한 것이다.

여성에게 세상은 그다지 공평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금 특이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신라시대 여성의 모습이다.

화랑제도에서 원화로 등장하는 남모와 준정은 뛰어난 외모와 재치있는 여성이었다. 둘은 남자 화랑들과 같이 어울리기도 했고, 둘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결국 남모를 질투한 준정이 그녀를 집으로 유인, 술에 취하게 한 후 죽이게 된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준정도 사형에 처하고 원화제도는 사라진다.

그 후에는 외양이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화랑이라 하고 낭도를 모집하였다.

신라에서는 미실이라고 하여, 색으로 왕실에 충정하는 집안이 있다는 내용도 있으며,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은 만명공주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실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서동요에 보면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을 만나러 가는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물론 그 노래로 인해 선화공주가 궐에서 쫓겨나지만 말이다.

그리고 “처용가”에 보면 역신과 바람이 난 아내의 모습도 묘사된다.

물론 역신과의 바람은 성적인 결합이 아닌, 병든 아내라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의외로 신라의 성적인 모습은 개방적이고, 또한 여성의 지위도 그리 낮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특이한 골품제도로 인해, 부모 모두 왕족인 이들이 성골이라 불리며 왕위를 계승했기에, 근친상간이 많았다. 또한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어 유일하게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3명의 여왕이 나오기도 하였다.

특히 선덕여왕 같은 경우는 황룡사탑이나 첨성대 등을 세우기도 하였고, 다양한 긍정적인 이야기 등이 같이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신라시대의 첫 번째 여왕으로서 굉장히 현명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귀족의 딸들은 어릴 때부터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수예와 간단한 글공부를 하게 되며, 배우는 것도 주로 시부모나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따르며 자녀들을 훈육하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집안 살림을 돌보고, 하인들을 통솔하는 등의 주로 집 안에서 이루지는 것들을 교육받게 된다. 아내라는 말의 어원도 안에 있는, 즉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일반 농민의 자녀들은 어릴적부터 노동력에 동원된다.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게 된다. 걱실걱실 일 잘하고, 애 잘 낳게 엉덩이가 펑퍼짐한 여성이 신붓감 1위인 것이다. 천민들의 삶은 여성은 더욱 고달프고 비참했다. 고된 노동 뒤에 더 무서운 신분 높은 자들이 자행하는 성폭행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천민 여성들의 삶은 더욱 고달팠다.

전쟁중에는 신분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삶은 가혹함과 성폭행과 폭력들에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물로 세계사에서도 여왕은 등장하고, 간혹 현명하고 멋진 모습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왕은 선호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혹은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덜 싫은 것, 조금 덜 손해보는 것을 택했을 뿐, 여성이라 더 기쁘거나 더 좋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의 여성의 모습 또한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그녀들이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할 수 있는 곳, 혹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수녀원뿐이었다.

귀족의 자녀들은 태어나면 7살쯤엔 수녀원에 교육을 위해 보내진다.

거기서 수예나 간단한 철자, 그리고 기도하는 법 등을 배운다. 물론 청소와 요리도 배우지만, 주로 거기서도 순종과 종교적 금기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게 된다.

그러나 14살쯤 되면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결국 사교계에 대비하여, 마치 팔리는 물건처럼 품평 후에 비슷한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나마 이것은 귀족의 자녀이며, 농노의 자녀로 태어나면 평생 일만 하다 아이를 낳다가 혹은 노동에 지쳐 힘든 삶을 이어가다 죽게 된다. 단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일상적인 폭력과 노동 외에, 성적인 위험에도 노출되게 된다. 높은 신분의 남성들에게 당할 수 있는 성폭력과, 각종 강도나 주변의 남자들에게 항시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귀족의 여성들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강도가 좀 다를 뿐인 것이다.

3)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 조금 특별한 시기이다.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지금보다 여성의 지위가 더 나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여성들은 제사에 대해 평등하며 해방되어 있었다.

제사는 절에서 모시는 것이었기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돌아가면서 제를 지내는 비용을 절에 내고, 그 곳에서 모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도 동등하게 유산을 상속받았고, 또한 경제적 활동도 가능하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 우선이 아닌, 태어난 순서였고, 균등 상속이었으며, 또한 개가나 재혼, 이혼 요구 등도 가능했다.

그리고 아내는 동반자적 존재였기에, 가능한 일부일처제가 선호되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시집 오기도 하고, 혹은 친정에서 재산을 상속받거나 남편의 재산 등으로 경제활동을 했다. 그 돈을 쌈짓돈으로 하여 고리대금업을 하기도 했고, 혹은 길쌈 잘 하는 하인을 사들여, 가내공장식으로 베를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즉 남편은 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와 관련된 일들을 하였고, 아내는 그런 남편이 걱정없이 다양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해 준 것이다.

결국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동등하며 도움을 도는 존재이지, 누군가에 기대거나 의존적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전쟁 후, 과부의 증가와 인구 감소를 이유로 박유가 일부다처제를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수 많은 고려의 여인들이 그의 집을 둘러싸고, 그에게 달걀을 던지는 등의 시위를 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외가와 친가의 구분이 없었다.

외삼촌이 아니라 모두가 그냥 삼촌이었으며, 이모와 고모의 구분이 없었다.

성적인 행위에서도 여성 또한 적극적이었으며, 혹여 간통죄로 잡힐시에도 간단하게 관청 등에서 수를 놓는 등의 일로 벌을 대신하곤 했다.

또한 어머니의 친정 즉 외가와 가까이 살면서, 항시 외가 식구들과 친하게 지냈기에 외손자나 사위까지도 음서의 범위에 들어갔다. 즉 정5품이상의 가문에서는 사위와 외조카까지 음서의 범위에 들어 과거시험을 치지 않고도 관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외가쪽 사람이 큰 벼슬에 올라도 모두가 기뻐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결혼은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이었다. 즉 남귀여가혼이었던 것이다.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처가에서 도움을 받았고, 자식을 처가에서 낳아 길렀다.

물론 고려 또한 정치나 군사관계에 있어서는 다분히 남성 위주 사회였다.

그러나 그 남성들은 여성들과 더불어 살아가거나 보호하는 위주였고, 대등하게 대하는 분위기였다.

쌍화점 등의 고려가요를 보여도 남녀상렬지사를 다루는 가사의 노래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그리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고려시대에 이름을 알린 여인으로는 고려병사 이관의 딸 설죽화이다.

아버지 이관이 죽자, 남장을 하고 무술을 익혀 강감찬의 휘하에서 아주 용감히 싸운 여인이다.

고려 성종때부터 성리학을 받아들이며, 여성에 대한 수절등에 대한 건의를 하였으나 그런 주장 또한 재혼을 금지시키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수절을 장려하기 위해, 남편이 죽고도 재혼하지 않는 여성에게 ‘수신전’을 주었지만 큰 효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유럽은 이런 고려보다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는 진보적이지 못했다.

르네상스 시기 체사레 보르자의 여동생이자 절세미녀였던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자신의 오빠와 아버지인 교황의 야망에 의해, 이리저리 결혼을 하며 진정한 사랑 대신, 세 번의 결혼을 해야 했던 불운의 여인이다.

엘리자베스1세가 남성들을 호령하며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며 대영제국을 이룩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헨리8세가 물려준 성병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스스로 처녀로 영국과 결혼했다하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계시를 받았다며,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프랑스를 지킨, 잔다르크는 결국 프랑스왕에게 토사구팽당하며,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영국군에게 마녀로 화형당했다.

천문학자로 유명한 브라헤를 기억해도, 브라헤를 도왔던 거의 그의 연구의 태반에 영향을 끼친 소피브라헤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4)조선시대

조선시대 대표여인하면 떠 오르는 것은 바로 신사임당이다.

현모양처의 대표표본이자 오만원권의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모양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신사임당의 이름은 인선으로 외가에서 태어나 외가에서 자랐다.

아버지 신명화의 첫째딸로 덕수이씨는 이원수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친정인 강릉에서 머물며 자식들을 낳고 길렀다. 가끔 시집에 들르곤 하다가 38살의 나이에야 시가에서 살기 시작했다. 사임당은 비교적 자유롭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전폭적 지지로 공부를 함에 구애받지 않았고, 마음껏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자랐다. 여자라고 차별받지 않았고, 시가살림을 위해 서울로 옮겨서도 항시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했다.

또한 자꾸 과거시험에 떨어지는 이원수를 한심해 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현모양처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시댁보단 친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림과 글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그녀는 자식을 가르침에도 이런 친정쪽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불운의 삶을 거쳐간 또 다른 여성천재가 있다.

바로 허난설헌이다. 허균의 누이이자 뛰어난 시 작품으로 중국에서 오히려 그 진가를 더 인정받은 여성이다. 친정은 여성에게도 같이 공부를 시키는 등 오히려 자유로웠으나 시댁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보다 글솜씨가 뛰어난 아내를 질투하고 미워했던 남편과, 시어머니의 구박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거기다가 그 당시 조선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글을 폄하하고 한심해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것은 외로움과 아픔,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이었다. 결국 그녀 또한 쓸쓸히 아파하며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글은 다행히 허균에 의해 문집화 되었고,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세련된 시들이 남겨져 있다.

처음부터 조선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중요시 되고, 불교가 천시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졋다.

일단 제사가 절이 아닌 개인의 집에서 치러지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시댁에 살고 있는 딸들이 친정제사의 주관이 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시댁에서 친정의 제사 음식을 만들고, 친정식구들을 부르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면서 결국 많은 집안에서 제사를 장남이 주관하게 되고, 그러면서 유산의 상속에도 불평등이 생겨났다. 제사를 장남이 주관하게 되니, 장남에게 재산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경제적 권한도 제사에 대한 권리도 사라지면서 여성의 지위는 갈수록 낮아졌다.

거기다 임난과 병자호란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남성위주의 가치관이 더욱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두 번의 전쟁에서 사회의 주류이자 지도자역할을 했던 양반이나 왕은 도망을 가는 등 존경받지 못할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그들은 좀 더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 다시 존경을 받고자 했다. 그런데 그 도덕적 규율을 지켜야 하는 대상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그들은 여성의 수절을 중요시 여기며, 수절을 강요, 수절을 위한 죽음을 조장하기도 했고, 병자호란 후 청군에게 잡혔다 도망 온 여성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결국 힘없는 여성들만이 희생양이 되어 고난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유럽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자 하려해도 아직까지 그 장벽은 높았다.

거기다 중국은, 송에서 시작 명청시대 엄청나게 유행하기 시작한 전족은 여성들의 삶을 얽메었다. 어린 시절부터 발을 구부려 천으로 감싸. 아주 작은 발로 만드는 이 전족은 결국 여성들이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5)근대시기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수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양선의 출몰과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과 사상, 또한 서양 세력과 관련해 개방과 쇄국을 논하며 분열된 나라.

서양은 식민지를 넓히며, 자신들의 힘과 부귀영화를 누리려 노력하던 때이다.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부귀를 통해 수많은 발명과 발전을 이루는 전성기였지만, 여성운동 또한 많은 변화를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게 되면서 혁명에 참여 하고, 또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인 여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로 프랑스 혁명에 참가한 올랭 드 구즈가 있다. 빈민가에서 태어났으나, 글을 썼고,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다”면서 여성의 권익을 주장했지만,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그 후 서양사에서는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이 탄생했고, 1차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에서 또 전쟁밖에서 경제적으로나 많은 힘이 되어준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주게 되고, 여성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은 그러지 못했다.

근대화의 물결이 닿기도 전에, 우리는 일본의 강제점령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자신들식의 여성관을 불어 넣었다.

그것이 바로 현모양처이다. 여성은 집안에서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남편 보필을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를 위하는 것이며 여성의 의무라는 것이다. 목소리가 커서도, 자신의 권리를 내세워서도 안되며, 양보가 여성의 미덕이며, 참는 것이 여성의 도리인 것이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성의 이상적 모습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고, 똑똑하거나 자기 주장을 하는 여성은 드세거나 남성에게 인기없는 한심한 캐릭터로 묘사되어졌다.

우리나라의 신여성들 또한 남성들의 삐뚤어진 잣대와, 남성 자신들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운 이중성으로 짓밟혔다.

대표적 인물로 나혜석을 들 수 있다. 미술교사로 또한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나혜석은 결국 남편의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 또 자식들에게도 버림받아 훗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다. 첩도 모자라 기생질까지 서슴지 않는 조선의 남성들이 여성의 정조에는 엄중하면서도 잔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근대화를 이바지하고, 독립운동에도 목숨 걸었던 수많은 여성들이 남자들에 비해 덜 대우받고 역사책 등에서도 언급이 적다.

끝~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역사 속 여성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결국 지금 우리곁을 지키는 제사와 남녀차이와 관련된 풍습 등은 기껏해야 조선시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것이다. 거기다 고려시대의 모습은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남성들은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 때의 모습이 진정한 예법인양 강요하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와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최초 여성변호사인 이태영의 노력과 수많은 여성들의 힘으로 가족법이 개정되었고, 또한 호주제도도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에는 정말 많은 눈물과 고난이 있었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후남들이 눈물을 흘렸고, 또 수많은 누나와 여동생들이 남동생이나 오빠의 공부바라지를 위해 공장에 가야 했다.

똑똑하고 영특한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고, 수많은 법정싸움이나 이혼에서의 재산분배 등에 불이익을 받았다.

지금은? 그렇다. 양육권이나 재산분배, 이혼과 재혼 등에서 여권신장은 많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거기다 여성들조차도 예쁘면 된다, 당연히 남자가 이렇게 해야 한다 등 진정한 양성평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뿌리 깊게 내린 남존여비 사상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동등해질때 사라질 수 있다.

정신적으로 아직도 남성우월주의에 젖어 있거나, 혹은 난 여자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갇혀 있는 이들이 있는 한, 진정한 양성평등은 어렵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차이와 차별의 문제이다. 서로의 차이는 있다. 여성과 남성은 당연히 다르다. 그것은 차이이다. 그런데 이 차이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것은 옳지 않고 폭력이다.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남녀가 모두 소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남성의 어깨를 누르는 경제적 문제를 서로 같이 짊어지고, 여성의 어깨를 누르는 시댁과 친정의 불평등이나 제사와 명절의 문제 또한 시댁먼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부부가 올바른 독립을 한다면 이 긴 세월 반목했던 여성과 남성의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역사상 언제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이 있어왔다. 지금은 알파걸이란 이름으로 능력 있고 사회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상이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여성의 또 다른 굴레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남녀의 가사평등이 실현되지 못한 사회에서, 알파걸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우리보다 먼저 양성평등에서 앞서는 서양에서조차도 유리천장이란 말로 여성들이 당하는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사회적인 제도와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의 3,40대 주부들을 보면 여실히 문제점이 드러난다. 나름 귀하게 큰 딸들이 지금은 며느리이자 어머니일뿐이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성애의 굴레와 효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회사업무 후 하는 공부는 칭찬받지만, 아내의 업무 후 공부는 나쁜 엄마가 되는 길이다. 다시 원점인 것이다. 모성애는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텔레비전의 여성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의존적이다. 워킹맘이지만 멋진 모습보단 언제나 동동거리고 아이에게 미안해한다. 혹은 시댁에서 갖은 구박을 받지만 결국 여성의 희생 하나면 모두가 좋고 좋은 것이다라는 식의 결론이다. 마지막 해결은 언제나 멋지고 돈 많은 남성의 요술지팡이의 몫이다.

교육이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도 필요하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적극적으로 동조해야 한다. 지금의 내 딸과 내 아들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결정할 때이다. 도움과 배려가 아니라.
사회에서의 성취와 성장도, 아이양육과 가사도 같이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그러한 사회분위기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돈 많은 남자의 요술지팡이로 말괄량이지만 씩씩하고 예쁜 여주가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도 이제 그만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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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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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봄이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도 날개짓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의 봄.

정말 무서운 말이다. 침묵의 봄이 계속되다 보면 인류에게도 침묵이 찾아오지 않을까.

과학책이란 딱딱하다, 조금은 무미건조할 것이다란 나의 생각을 깨뜨린 것이 바로 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다.

책이 나올 때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 이 책을 쓰기 이전부터 레이첼 카슨은 여러 살충제의 위험성을 이야기 했고 알리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들의 결정체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는지 보여주는 이 책은 지금도 모두가 읽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가치가 있다. 여전히 레이첼 카슨이 보여준 악몽은 현재진행형이다.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려 노력하다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 레이첼 카슨의 삶 또한 우리 인류에게는 참 고맙고,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힘 있는 기업들의 반대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병마와 싸우며 이 책을 출간한 레이첼 카슨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인간은 자신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것이라 믿으며 수많은 화학물질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먹이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쌓이며 결국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바로 이런 생물농축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염병으로의 해방이 결국은 인간을 아프게 하고,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났다. 군수업체의 호황도 끝났다.

그들이 만들었던 수많은 화학물질들 또한 창고에 쌓여갔다.

이것들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하지? 그들은 로비를 했다. 수많은 산림들 사이의 작은 벌레들을 죽이는데 사용하라며, 집 안의 벌레와 해충을 죽이는데 그만이라며 많은 이들을 현혹시켰다. 해충은 본디 없다. 단지 사람의 편의에 따라 득이 되느냐 실이 되느냐로 나뉜다. 실제 인간의 목숨까지 좌지우지 할 정도의 해충은 그다지 없는 편에 속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벌레와 곤충은 생태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벌레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들에 의해서다.

원래 그 지역에 없던 종의 벌레가, 사람들의 몸에 붙어, 혹은 사람들이 수입하거나 수입하는 물건에 같이 묻어오는 것이다.

새로운 대륙이나 땅에서 그들은 천적없이 불어나게 되고, 그런 모습에 경악하며 인간은 더 독한 독성물질을 뿌려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독성물질이 답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벌레에게는 천적이 있다. 그래야 균형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결국 독한 물질을 뿌려, 땅과 지하수에 공기마저 오염시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아프게 하는 것은 너무나 과한 조치이며 옳지 않다.

그저 그 벌레들의 천적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세대의 중독은 아이와 그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DDT나 클로르덴, 염화나프탈렌, 디엘드린, 엔드린 등은 먹이사슬에 영향을 주고, 유기인산계살충제는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잡초인 세이지를 뿌리 뽑기위해 사람들은 화학제초제를 뿌렸다.

화학제초제는 세이지를 말려 버렸고, 겨울에도 꿋꿋한 세이지를 먹고 견디던 산양과 뇌조를 사라지게 했다. 잡초도 사라지고 꿀벌도 사라진 곳. 더 이상 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도 더 이상 그 황무지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선택적 살포는 더 적은 비용으로도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무차별 적으로 화학제초제를 남발했고, 더 이상 잡초도 꿀벌도 없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다시 되돌리는데는 더 많은 노력과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또한 잡초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이다. 잡초란 없다. 하나하나 모두 토양과 지구에 그리고 인간의 삶에 기여를 한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에 장미나무에서 작은 선충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화학살충제 대신 메리골드를 심었다. 잡초로 취급되던 메리골드의 뿌리에는 토양속의 선충류를 죽이는 물질이 분비된다. 그리하여 메리골드의 도움으로 장미는 다시 건강해졌다.

미국에 느릅나무병이 돌자, 느릅나무병균을 옮기는 풍뎅이를 박멸하기 위해 또 엄청난 양의 화학살충제가 뿌려졌다. 그러자 느릅나무에 그 살충제가 묻었고, 그것을 먹은 지렁이는 곧 엄청난 양의 살충제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 지렁이를 먹은 울새들은 불임, 그리고 고통속에 죽어갔다. 하지만 뉴욕주는 느릅나무병에 걸린 나무들을 철저하게 선별함으로써 병의 확산을 막았다. 철저한 선별과정과 처리를 통해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로 수많은 생명들을 고통 속에 죽게 했다.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어서 뿌린 것들이 아닌 것이다. 다른 대안들은 많다.

도움이 되는 식물이나 선택적 살포, 그리고 천적의 이용으로도 충분히 화학제초제나 살충제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토양에 뿌려진 살충제들은 결국 돌고 돌아 사람의 몸속에 축적될 것이다. 고통속에 죽어가는 울새가 결코 울새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사람들의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암을 유발시킨다. 사람들도 고통속에 결국 죽어가는 것이다.

현대적 화학물질의 개발아래 백혈병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살충제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사용하는 각종 세제들도 엄청난 수질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곤충들은 화학살충제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되었고, 더 독하고 더 강한 살충제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에게도 더 치명적이 되는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이 잉태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숭고한 생명들을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와 사익을 위해 가차없이 몰살이란 걸 택한다.

바나나는 내게 아주 비싼 과일이었다. 어릴 적 소풍갈때나 먹을 수 있었던 과일.

그러나 지금은 가장 싼 과일 중의 하나이다. 오랜 기간 배를 타고 왔음에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바나나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상하지 말라고, 빨리 숙성되지 말라고, 곤충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라고 얼마나 많은 살충제를 뿌렸을까? 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대는 그 밑에는 노동자들이 묵묵히 바나나를 따고 있고,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다 짧게 생을 마감한다.

누구를 위한 일들인걸까?

그 누구도 이 실상을 안다면 그렇게 살충제 가득한 과일을, 얼룩다람쥐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제초제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무심코 날벌레를 잡는다고 살충제를 뿌리고, 흠 없고 고운 빛깔의 과일들을 고르며,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는 채소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산에 살충제를 뿌린 날이면, 여기저기 거미들과 나방들의 시체가 가득해도, 그냥 거미줄이 없어서 나방들이 없어서 편하다고만 생각하는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은 정말 무섭도록 잔인하다. 결국 그 끝엔 인간이 마지막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40년 전에 출간된 이 책, 지금은 다양한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많이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달라진 것인가

여전히 우리 주방에는 수많은 세제와 다양한 살충제들이 구비되어 있고, 여전히 소나무의 재선충엔 살충제를 뿌려 대고 있다.

살충제가 뿌려진 산의 열매들은 붉게 잘 익어 가고 있지만, 곳곳엔 먹지 마시오란 표지판뿐. 이것이 달라진 것일까? 글자를 알지 못하는 청솔모도 다람쥐도 수 많은 살아 있는 생명들은 여전히 붉게 잘 익은 살충제 범벅의 열매들을 먹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의 죽음에 내 일이 아닌 듯 두 손 놓고 있다.

또한 굶주리는 사람을 줄여 보겠다고, 생산량이 훨씬 많은 품종을 만들지만, 결국 그 품종의 씨앗은 일회성이라 매해 새로운 씨앗을 사야하며, 그 씨앗에 맞는 독한 비료와 농약을 쳐야 해 결국 그 비료와 농약 그리고 새로운 씨앗값으로 빚더미에 앉아 굶어 죽거나 자살하는 이들이 더 늘어나기도 한다. 땅은 땅대로 오염되어, 더 이상 건강한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렇기에 더 독한 약들을 뿌려 대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상식보다는 돈의 힘이 권력이 힘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이 슬펐다.

응용곤충학이나. 대체 혹은 선별 살충이 가능함에도, 누군가의 힘에 의해 상공에서 뿌려지는 숱한 살충제, 미국이나 필리핀 등의 드넓은 논밭에 뿌려지는 뿌연 제초제들이 결국은 바람을 타고 우리 숨결로, 결국은 우리의 먹거리로 우리를 차곡차곡 질식사시키는 건 아닐까.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의 논에 살고 있는 우렁쇠와 논오리가 그 대안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제와 살충제를 치우고 발효액이나 목초액 혹은 계피를 대안으로 삼는 사람들.

조금 못생겨도, 곤충과 같이 먹어도 흠 있는 과일에도 감사하고, 적은 농약, 적은 오염으로 키워진 음식들을 찾는 사람들이 바로 희망이다.

침묵의 봄에 묘사된 줄다람쥐와 울새의 고통은 눈물나게 슬펐다. 이것은 인간이 저지른 살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도 희망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화학물질의 두려움을 깨쳤고,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동식물들의 아픔도 알게 되었고, 다음 차례는 인간임을 예감한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환경단체와,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이 만들어진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DDT의 발명으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카슨 때문에 아프리카 등에 DDT를 쓰지 못해 말라리아가 창궐,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도 비난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필요성에 의해 DDT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한을 두고 있다. 즉 기업의 욕심이 카슨의 책에 대한 의문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DDT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다양하게 밝혀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침묵의 봄과 일맥상통하는 수많은 환경문제에 산재해 있다.

많은 동물들이 멸종하고, 그러한 멸종이 또 많은 악재를 낳고 있다.

더 독한 살충제를 뿌려야 하고, 그럼에도 인간은 더 편리하고 더 위생적이어야 한다는 모순속에 인간을 제외한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을 지옥으로 바꾸고 있다.

더워지는 지구와 아파하는 살아 있는 것들, 그리고 인간 또한 아파하고 있다.

자연이란 위대한 품속에, 인간이란 존재만이 끝이 뽀족한 송곳으로 자연을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살충제의 오남용을 막고 응용곤충학과 을 대안으로 삼아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갈길 은 더 멀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을 말해주고 있다.

그냥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다.

우리에겐 다른 길이 있다.

화학물질등을 이용한 곤충의 불임화나, 곤충이 만드는 여러 가지 물질을 유인물로 이용하는 방법, 거미를 이용해 나무의 여린 잎을 곤충으로 보호하거나, 개미나 새집을 이용해 숲을 보호하는 등 인간과 곤충이 공생하는 것이다.

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모두를 병들게 하며, 내성으로 인해 점차 살충제를 뿌리는 주기마저 빨라지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생각은 결국 효율적 인간상을 만들었고, 효율적 인간상은 쉽고 빠르게, 인간만을 위해 혹은 인간이 상위라는 오만을 가지게 했다. 결국 이런 오만은 도미노현상을 만들어 자연계의 악몽을 만든 것이다.

인간도 곤충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연이라는 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불태우는 식의 걷잡을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곳이 모두에게 소중한 것임을, 인간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존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주었다.

새들의 죽음 그 뒤에는 우리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이 가장 무서운 침묵에 쌓이기 전에 우린 공생하며 서로 돕고 사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공생하는 방법은, 모두를 싸그리 없애는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리는 것보다 가격면에서도 훨씬 낫다. 내성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무슨 길을 갈 것인가?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살충제를 뿌리던 이들이 쓰러지고, 세제를 쓰던 주부가 백혈병에 걸리는 세상?

아침에 새 소리에 눈을 뜨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존중받는 세상?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레이첼 카슨 또한 믿을 것이다.

인류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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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becando 2020-01-30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고도 모른척한 사람들 알려고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침묵하는 동안 부메랑이 되어 이 세상에 무서운 경고를 하고있네요 나만 아니면 이라는 생각이 인간 본연 심성어딘가에 깊숙히 박혀있는것같아 사람이라는게 무섭습니다
이렇게 경종을 울리는 소리들이 더이상 묻히지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