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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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림이 커서 좋다.

 

일요일의 화가로 유명한 루소의 정글시리즈 <뱀을 부르는 주술사>, 루소는 정규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 성공한 화가다. 특히 정글시리즈는 파리수목원과 동물박제 전시관을 통해 그려낸 것, 그래서인지 더 몽환적이고 더 정글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는 그리고 만드는 재주는 부족해도,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예술가들이 득세할 거라고 한다. 데미언 허스트같은 대가도 주로 아이디어를 내면 만드는 것은 화실사람들의 몫이다. 3D 프린트가 보급되면서, 가구 디자인도 조각도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능해진 세상이며, AI가 그림도 그리는 세상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품들도 이제 특허권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되면 루소처럼 일요일의 화가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술의 평등이 진정 이루어지는 걸까. 아니면 수십 년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신의 꿈들을 펼쳐내는 장인 예술가들의 사라짐에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

 

귀족과 교회에서 부의 흐름이 부르조아, 부유상인들에게 흘러가면서 나온 벽걸이형 그림들, 그리고 그런 그림의 대가였던 한스 볼롬기에르의 꽃그림에 담긴 인생.

꽃은 불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화공덕, 삶의 허무. 서양에서도 그랬나 보다. 결국 비싼 꽃이든 들꽃이든 시들게 마련이고 말라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렇지만 서양에선 이런 꽃들옆에 원죄를 짊어짐을 의미하는 달팽이와 탐욕을 의미하는 애벌레 등을 넣어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교휸도 잊지 않았다.

 

히틀러가 너무나 좋아해서 거의 뺏다시피 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그림 속 월계관이 의미하는 영광과 트럼펫이 의미하는 명성을 갖고 싶었지만, 역사의 여신 클리오는 히틀러를 다르게 기록할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 사회에서 외면받는 계층의 세탁부들, 그들의 얼굴이 모호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주인공일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탁부>의 그림에서 아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로보는 아이의 얼굴에서 따스함과 정감을 찾는다. 돈과 권력이 줄 수 없는 연대와 사랑.

   

 

부자들, 귀족들이 마치 애완견처럼 과시하듯 데리고 다닌 다모증환자의 초상화는 벨라스케의 <시녀들> 속 난쟁이들, 인간 동물원까지 떠올리게 한다. 불운을 담는 그릇으로 필요했던, 혹은 우스개와 농담을 위해 필요했던, 혹은 특이함으로 과시하려 했던 귀족과 왕족들의 도구가 된 이들의 모습,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은 지금의 시대에 어울린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리스도교를 믿다가 돌기둥에 묶여 온 몸에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아 결국 돌 또는 몽둥이로 맞아 순교한 성인이다. 옛날 사람들은 질병 또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 등에 맞아 감염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화살들을 맞고도 죽지 않은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자신들을 흑사병에서 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세바스티아누스의 얼굴엔 고통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돌기둥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개선문 기둥 장식에 묶은 것, 만테냐는 고대 조각과 고대의 인체 비례 규범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또 다른 재미는 구름이다. 마치 말을 모는 노인같은 형상의 구름.

다빈치는 담벼락의 얼룩이나 구름을 보면서 연상하고 연상된 형상을 그려보라는 조언을 통해, 자연을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표현하라고 한 것이다. 만테냐는 이 조언을 그림을 통해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준다. 구름 속에 담긴 형상, 말을 모는 기사 혹은 노인 같기도 한 모습이다.

 

나무 바닥에서 재미있는 무늬를 발견했던 에른스트, 프로타주도 생각난다. 백원 동전 위에 종이 올려놓고 연필로 그어대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가 아닐까

작은 얼룩, 구름 , 노을, 세상 모든 것들에서 형체를 찾아내고 상상하며 친구 삼는 것, 예술가들이 꿈꾸는 그 재능을 아이들은 그저 갖고 있으며 즐길 뿐. 나이가 들면 얼룩은 지워야할 짐이고 구름은 흘러가는 것일 뿐 이란 게 서글프다. 그런 것들 잊고 살 만큼 중요한 일을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그의 그림이 달리와 브뢰헬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특이한건 스타워즈 속 외계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과 그림들에 대한 설명들, 시대배경과 작가님의 감상평등이 담겨 있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그리고 책 한 면을 차지하는 그림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보이고 싶어 최초로 하트를 그려 준 이는 누구일까.

(사랑은 가슴이 아니라 뇌가 인지하는 거라던데, 그럼 이젠 뇌 그림을 그려야 하나. 호두를 하나 손에 쥐어주는 것이 사랑을 고백하는 거라면 또 어떨까. 다람쥐들이나 좋아할까.)

글로 다 하지 못하는 마음을 색으로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일까.

떠나보내는 이가, 떠나는 이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며, 그리움으로 시작되었다는 그림.

그래서일까. 그림 속엔 많은 것들이 있다. 한 편의 시를 모두가 다양한 의미로 가슴에 담 듯, 그림 또한 보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보인다. 

그림에는 선동의 힘도 있다. 역사를 담는 그릇도 된다.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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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5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 ๑´•ω•)۶”

mini74 2021-10-15 12:1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스콧님 *^^*

scott 2021-10-16 11:54   좋아요 2 | URL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기를 뛰어넘는
예지 능력을 갖춘 탁월한 예술인


SF장르에도 영감을 준~

oren 2021-10-15 1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참 좋네요.^^

mini74 2021-10-15 12:21   좋아요 4 | URL
책 속 그림들이 시원시원해서 더 좋았어요 ~

미미 2021-10-15 12: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조금만 더 늦게 태어날껄 그랬나봐요. 저 아이디어는 엄청 많은데 그리는 재주는 별로ㅋㅋㅋㅋㅋㅋ(농담)예전에도 시대를 잘못만난 사람들이 많았겠죠? 😆 마지막 문장 깊이 공감합니다. 그림과 웃음은 은근 선동적,파급력이 있는것 같아요~^^*♡

mini74 2021-10-15 12:46   좋아요 5 | URL
미미님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3D프린터만 사시면 ㅎㅎㅎㅎ 미미님 글도 반짝반짝 ~ 제가 봐도 아이디어도 반짝반짝 하실것 같아요 ㅎㅎ

scott 2021-10-16 11:52   좋아요 2 | URL
그리는데 재주 전 혀
필요 없습니다
열정만 있다면
별그램 스타가 될 수 있음요 ㅎㅎㅎ

오늘도 맑음 2021-10-15 13: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아~ 아름다워요^^
오늘도 역시 놀이를 잊은 우리의 모습을 예쁘게 표현해주심에 또 마음 속 한켠이 찌르르~
문득......
정신과 병동에서 실습 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환자들과 함께 각자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환자 한분이 제 그림을 보더니 ‘이 학생이 입원해야하는 거 아니냐고ㅠㅠ‘(그분은 제가 그린그림인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종이 접기를 했었는데~
제가 색종이를 뒤집어 하얀 나뭇잎을 만들었거든요.
그때도 환자들이 하얀 나뭇잎 입원하자면서ㅠㅠ
끝으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그림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낙타나 짐승들 위로, 참치인가요? 암튼 생선들이 벌거숭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식당으로 가고 있나요?
오늘도 소녀스러움을 장착하신 mini74님,
또 다른 시간에 뵙겠습니다. 러뷰합니다.🥰


mini74 2021-10-15 13:26   좋아요 6 | URL
입원해야 할 학생이 아니라 무지무지 창의적인 학생이신데요 맑음님 *^^*에피소드에 빵 터졌어요 ㅎㅎㅎㅎ 보스 그림은 시대를 앞서가지요.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차용해서 재탄생 시키는 그림이라고 하네요.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하얀 나뭇잎님 *^^*

붕붕툐툐 2021-10-16 11:49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저도 맑음님 에피소드에서 빵 터졌습니다!ㅎㅎㅎㅎ

초딩 2021-10-16 13:26   좋아요 2 | URL
많아 웃고 갑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10-15 14: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림에 관해 매번 이렇게나 관심이 많으신 미니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한번씩 미술관 전시에는 다니지만 책을 들여다 볼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한마디로 최고예요**

mini74 2021-10-15 14:03   좋아요 5 | URL
별말씀을요..여기 고수님들 많으세요 ㅎㅎ 고맙습니다 페넬로페님 ~ 미술관 가고 싶네요 *^^*

새파랑 2021-10-15 15: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혹시 미대누나 인가요? 😆 저번에 말씀하신 <세탁소> 그림이 저거군요~!! <알레고리> 그림은 볼때마다 신비한거 같아요~ 역시 그림 마니아 미니님이군요^^

mini74 2021-10-15 15:22   좋아요 4 | URL
미대누나 아니고 먹고자고대학 밥대 누나입니다 ㅎㅎ 너무 옛날 농담이죠 ㅎㅎㅎ 네~ 그 세탁소 그림 ~ 잡은 손이 보드랍고 따뜻하지요 ~~~

서니데이 2021-10-15 2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의 그림 중에서 마지막 그림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표지에 있어서 그랬나봐요, 같은 그림도 조금 다른 이미지 안에 들어가면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mini74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10-15 21:25   좋아요 3 | URL
세 폭 제단화를 한꺼번에 보면 또 다르더라구요 ㅎㅎ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아프지 마시구요*^^*

적막 2021-10-16 0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전자책으로 샀는데 사진 실린 것을 보니 종이책으로도 사고 싶네요 ㅜ.ㅜ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남겨주신 글을 보니 기대가 됩니다!!>.<

mini74 2021-10-16 12:08   좋아요 3 | URL
전자책도 좋을 거 같아요 ~~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

붕붕툐툐 2021-10-16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페이퍼 읽으니 이 책도 읽고 싶지만-이미 보관함에 있네요?ㅎㅎ-미술관도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마지막 문단에서 그림이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달까요?
미니님 그림의 조예가 깊으신 거 같아 늘 부럽습니다. 짱 멋지심~👍

mini74 2021-10-16 12:16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ㅎㅎ 그쵸. 미술관 가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1-10-16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놓칠뻔했네요
읽고나니 또 도집니다.
미술책 사재기병!

mini74 2021-10-16 12:07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만성으로 갖고 있는 병이라서요 ~~ 못 고칠거 같아요 ㅎㅎ

초딩 2021-10-16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책 속 사진과 함께 소개해주시니 이런 책 살펴 볼 땐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디지털화 되는 추세는 씁슬하지만 또 개인이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채무 문서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내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녀딸 사라가 있다. 친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내게 건네주었던 선물이자 빚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

"오직 내게 남은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그 시간은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갚아야 할 것들의 가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삶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정작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후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넬 기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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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14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채를 생각하는 삶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봅니다.
ㅜㅜ 사실 나이를 먹어감에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생각하는 글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21-10-14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내용 좋은 것 같아요.
mini74님,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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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작가는 조금 특별하다.
20대 때 내 옆구리를 찔렀던 선배(지금의 남편)는 조금 촌스런 편이었다. 그럼에도 선배가 싫지 않았던 건, 그가 옆에 끼고 있던 책 한 권 바로 요슈타인 가아더의 <카드의 비밀> 때문이었다. 마침 그 소설을 사서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그가 옆구리에 낀 도서관에서 빌린 그 책!에 빌어먹을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하며 책장정리를 하던 끝에, <카드의 비밀>을 발견하곤, 남편에게 이 책에 대해 물었다.
“아, 그 책? 카드 잘 치는 법 인줄 알고 빌렸다가 바로 아닌 걸 알고, 다음 날 반납했지.”
그렇다. 남편은 그 책이 말 그대로 카드 잘 치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제목만 보고 빌린 것. 아마 타짜가 되고 싶었나보다 ㅎㅎ
내가 느낀 동질감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싶지만, 그래도 오순도순 잘 살아가는 걸 보면, 요슈타인 가어더 작가님의 중매가 나름 꽤 괜찮기는 개뿔이다.

밤의 유서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알버트가 근위축성 측상 경화증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추억이 깃든 오두막집에서 2009년 4월 23일에서 24일 사이, 하루 동안 유서를 쓰며 삶을 되돌아보고 자살에 대한 결심을 바꾸는 이야기다.
그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물음들과 답이 있다.
소멸하는 삶 속에서, 알버트는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도 로또 당첨이라며 지금까지 살았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며, 우리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이니 죽음 또한 별 것 아님을 자조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를 가르치지만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에일린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낯선 외따로운 곳의 오두막에서 사랑을 나눴고, 서로에게 시들할 때쯤 이 오두막을 운 좋게 구입해서 위기를 이겨냈다. 그리고 이 오두막에서 알버트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자살을 택하려 한다.
그의 선택이 옳은 걸까?
죽는 건 무서운 것일까? 사실 우리는 모른다. 죽어 본 적이 없으니. 그럼에도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공포는 크다. 텔레비전과 소설과 수많은 이야기 속 죽음들은 슬프고 우울하고 공허하다. 그렇지만 그 죽음은 상대방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의 죽음은? 모른다.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내가 아끼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지는 나의 고통을 알 뿐이다. 죽은 사람에겐 무엇이 남겠는가. 찰나의 아픔? 어쩌면 조금 긴 고통과 아픔.

“남아 있는 자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면 된다. 가족들이 몇 달에 걸쳐 내가 겪을 불명예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함께 경험할 필요는 없다”고 했던 알버트가 고통스럽고 길지도 모를 죽음이란 방법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
그들이 고통에 빠지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길, 상실의 고통이 줄기를 바랄 뿐이다.

떠나는 자로서 남는 자에 대한 배려를 선택한 것이다.
그 이유에는 사랑 말곤 없지 않을까.


“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채무 문서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내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녀딸 사라가 있다. 친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내게 건네주었던 선물이자 빚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갚아야 할 것들의 가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삶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정작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후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넬 기회도 없다.”

“오직 내게 남은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그 시간은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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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11-06 1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보다 더 견딜만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겠지요. 죽기 직전까지 아마 모를 듯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 주위에 있는 이들보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mini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mini74 2021-11-06 18:59   좋아요 3 | URL
저도 담담하게 떠나고 싶다는 소망가져봅니다. 호랑이님 고맙습니다 *^^*

초딩 2021-11-07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mini74 2021-11-07 12: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

thkang1001 2021-11-07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1-11-07 21:19   좋아요 1 | URL
축하인사 정말 고맙습니다. 편하고 즐거운 일요일 밤 보내세요 *^^*

러블리땡 2021-11-0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좋은 밤 되세요 ^^ 저도 이책 소피의세계 작가라서 바로 구입했는데 읽다가 중도 포기했거든요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mini74 2021-11-07 22: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도 좋았고 책 뒤편 강신주님 설명도 저는 좋았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죽음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ㅎㅎ 러블리땡님 즐거운 독서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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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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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닮은 영웅들의 이야기~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전집이 두 질 있었다. 계몽사에서 나온 120권 정도 되는 문고와 삼중당 문고였다. 그 중 삼중당 문고엔 계몽사전집에는 없는 그리스 로마 신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1권 2권으로 끼여져 있었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그 중에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혹은 13가지 모험과 페르세우스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테세우스는 왠지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의 짝퉁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 유럽문화의 다양한 관용어구나 원인설화, 그리고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까지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이야기들은 매력적이다.

<황금가지>에선 신화는 그저 잘못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왜 피부색이 다른가? 파에톤이 황금마차를 너무 낮게 모는 바람에,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까맣게 타서이다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전 사람들에게 세상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낯선 인종에 대해서, 그리고 내일 해가 뜰지, 혹은 계속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렇지만 그 원인이 신들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두려움은 덜해진다. 원인을 모를 때 더 두렵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신에게 기도했고, 희망을 가진 것. 오히려 신화의 매력은 그런 원인설화와, 그 시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며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신화를 알레고리나 상징으로 보는 이들, 자연신화의 의인화로 보기도 하며, 오해나 속아서 생겨났다는 설, 신들은 사실 인간이며 그들을 높이 사 신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는 에우헤메로스(알렉산더 대왕시대 살았던 인물)주의 등도 있다.
프로이트는 신화 또한 성과 무의식으로 연결했다.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오는 과정이 출산과정의 재현이라는 것.
이렇듯 신화는 철학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그리스 철학은 신화의 뮈토스(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전해주는 신화의 언어)적 사유를 로고스(이성과 진리의 언어)적 사유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신화와 영웅담에서 서로 조화와 화합을 이루고, 지혜로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괴물을 물리치며,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 질문 또한 담겨 있다는 것만으로 매력이 넘치지 않은가 싶다.


이 책은 헤시오도스가 말한 영웅들의 시대를 플루타르코스의글로 풀어낸다. 시작은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와 굉장히 닮은 영웅이다. 도리스 출신의 헤라클레스가 그리스 전체에서 유명해지자, 도리스와 적대적 관계인 앗타케 지역에서도 영웅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유사한 영웅인 테세우스가 만들어졌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다.
그는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아이를 얻지 못해 델포이 신탁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집에 닿기 전엔 포도주 자루를 열지 마라” 란 말에, 뜻을 알지 못해 현명하다고 소문이 난 친구 트로이젠왕인 피테우스를 찾아가게 된다. 피테우스는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그 날 밤 자신의 딸 아이트라를 아이게우스의 방에 들여보낸다. 신탁의 뜻은 아이게우스에게 위대한 영웅이 태어날 것이니 집에 가서 아이를 만들라는 뜻이었다.
(테세우스 또한 포세이돈의 아들이란 설이 있다. 그래서 아이게우스와 포세이돈 둘 모두와 같은 날에 아이트라가 동침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에선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아이게우스는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를 찾으면, 바위 밑에 넣어 둔 샌들 혹은 신발과 칼을 꺼내서 찾아오란 말을 남긴다.(우리나라의 주몽과 아들 유리 이야기에도 이런 신표가 등장한다.)
성장한 테세우스는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는 데, 굳이 쉬운 바닷길 대신 육지를 택한다. 육지에는 괴물이 우굴거렸다. (그 당시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이피토스를 죽이게 되고, 그래서 그 벌로 리디아의 여왕인 옴팔레에게 팔려가 종살이 중이었기에 괴물이 설치는 걸로 설명되어 있다.)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육촌뻘쯤 되는 헤라클레스처럼 영웅이고 싶었고, 아버지의 신표인 칼에 악당들의 피를 묻혀 용맹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테세우스 또한 헤라클레스와 거의 유사한 단계를 밟는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악당들을, 악당들이 선량한 이들을 죽인 방법 그대로 되돌려 처지한다.
먼저 몽둥이를 휘두르는 페리페테스(그는 몽둥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려죽였다.)를, 그 몽둥이를 빼앗아 때려죽인다. (헤라클레스의 무기도 몽둥이와 네메이아의 사자가죽이다.)
두 번째 악당은 소나무 사나이 시니스(구부려서 휘어놓은 소나무에 묶었다가 풀어줘서 날려 죽임 )를 똑같은 방법으로 처단했다.
세 번째는 크롬미온의 암퇘지이다. 헤라클레스의 괴물들은 아주 비이성적이고 특이한데, 테세우스의 괴물들은 주로 사람, 그리고 괴물이라도 소나 돼지이다. 그 이유는 희한한 괴물들은 헤라클레스가 모두 죽였다는 설도 있고, 그리고 테세우스의 시대는 앞 시대보다 조금 더 개명된 시대이기에 있을 법한 괴물들로 꾸며졌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자신의 발을 씻게 한 후, 절벽으로 밀어버린 스케이론, 그 아래엔 식인 거북이가 살고 있어서 사람을 받아서 먹었다고 한다. 애완 거북인가 ?
다섯 번째는 케르퀴오이라는 씨름꾼으로, 씨름으로 행인을 죽였다고 한다
여섯 번째는 가장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다.
그는 침대를 두 개 가졌으며, 그 침대로 덩치가 큰 행인은 작은 침대에 눕혀 잘라서 죽이고, 덩치가 작은 행인은 큰 침대에 눕혀 땡겨서 죽인 걸로 유명하다.
여기서 나온 말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로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맞추려는 이나 그런 태도를 표현하는데 쓰인다.
(보르헤스의 <알렙>에 보면 ~ 쁘로꾸스또(프로쿠르스테스)출판사는 그 엄청난 시의 길이에 개의치 않고 아르헨띠노 시선 이라는 한 발췌본을 시장에 내놓았다~ 란 문장이 나오는데 뭔 소리냐 힘들어 읽으면서도 그 부분엔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이 ㅠㅠ)
그렇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에 도착하지만, 아이게우스의 아내인 메데이아(이아손이 자신을 배신하자, 자식들을 찢어 죽이고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와서 아이게우스와 결혼했다고 한다.)는 그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알고 죽이려고 결심한다.
그래서 먼저 마라톤의 황소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마라톤의 황소는 미노스와 관련이 있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으로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레타에 왕권과 관련해서 분쟁이 생기자,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아주 멋진 황소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해서 미노스는 왕권을 안정시키자, 원래의 약속대로 황소를 다시 포세이돈에게 보내주기가 아까워졌다. 결국 포세이돈은 저주를 내리고, 그 저주는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그 황소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여기서 크레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다이달로스가 등장한다. 그가 나무로 암소를 만들어주었고, 그 속에 들어간 파시파에는 황소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미노타우로스, 그리고 그 황소는 미쳐버리고, 그 미친 황소를 헤라클레스가 수습하여 마라톤에 놔둔 것이다.
테세우스는 황소를 잡아왔고, 메데이아는 독약을 먹이려 하지만, 그 순간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의 칼을 보고 아들임을 알게 된다. 결국 메데이아는 다시 도망을 가게 되고 테세우스는 후계자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아테나이는 해마다 혹은 9년마다 크레타에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젊은이들을 보내야 했다. (그 이유는 아이게우스가 판아테나이아 경기대회를 창설했는데, 그 해 첫 우승자가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우스였고,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테나이 사람들이 안드로게우스에게 마라톤의 미친 황소를 잡아오게 했다. 안드로게우스는 미친 황소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실에 분노한 미노스는 아테나이를 쳐들어 온다. 거기다 미노스는 신들에게 빌어서 아테나이에 전염병이 돌게 했고, 결국 젊은이들을 조공으로 바치는 것으로 협정을 맺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자진해서 혹은 백성들이 왕자라도 면제를 받는 건 옳지 않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미노스가 직접 와서 골랐다고 한다.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당장 다이달로스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받아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와 칼을 건네준다. 그 덕에 무사히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풀어놓은 실을 따라 미궁에서도 탈출하게 된다. 여기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 등에 쓰이는 관용어구가 된다.
테세우스와 탈출했던 아리아드네는 닉소스 섬에서 버려진다. 입덧으로 괴로워하던 아리아드네를 닉소스 섬에 잠시 내려놓자 갑자기 파도가 쳐서 테세우스의 배가 멀리 가 버렸단 설, 사랑하지 않아서 버렸다는 설, 잠든 아리아드네를 디오니소스가 보고 반해서 테세우스를 떠나게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었다는 설,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여사제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그에게 승리하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 달고 오라고 했지만, 테세우스는 그 사실을 깜빡하게 된다. 결국 아이게우스는 검은 돛을 보고 슬퍼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고, 그래서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란 뜻으로 에게 해라고 불린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은, 새로운 왕이 등장하면 그 전 시대의 왕은 저물거나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가장 강한 자가 새로운 왕이 되며, 그 전의 왕은 설 곳이 없다는 것.)
테세우스는 꽤 괜찮은 왕이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이야기 속에선 모두가 외면했던 눈 먼 오이디푸스를 받아주었고, 테베의 전쟁에서 패한 이들을 매장하도록 도와주었다고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이란 이야기에서도 너그럽게 그려진다.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인(안티오페 또는 히폴뤼테)과의 사이에서 히폴리토스란 아들이 두었다. 후에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인 파이드라와 결혼을 하는데, 이 파이드라가 힙포뤼토스를 사랑하게 된다. 전실자식을 사랑하게 된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거절하자, 그를 모함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테세우스는 편지를 읽고, 아들을 저주하자 파도에서 괴물소가 나타나 히폴리토스를 죽게 한다.(마차를 타고 가다가, 괴물소에 말들이 놀라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보디발 모티프”가 나온다. (뛰어난 청년이 자신이 모시는 장군이나 왕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게 되고, 그것을 거절하자 오히려 모함받는 이야기로, 첫 시작은 구약에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젊은이가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디발 모티프라고 불린다.)
그 후 자신의 새 신부로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고, 친구 몫으로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겠다며 지옥에 갔다가 붙잡혀 망각의 의자에 앉게 되지만, 다행히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된다. 돌아오니 헬레네 집안의 침입으로 아테나이는 엉망이 되었고, 망명한 스퀴로스 섬에서 절벽에 밀려 살해된다.(혹은 산책하다 미끄러졌다는 설도 있다.)

테세우스가 참여했다는 모험이 너무나 많아서,“테세우스 없인 안 된다”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실제로 참여했다기 보단 여기저기 끼워넣었다는 설이 있다. )

영웅은 그 지역에 대한 우수성 혹은 정체성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영웅들은 고단한 모험과 다양한 괴물들을 만나 무찌르면서 자신의 위대함과 용맹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도전을 통해서 그리고 그런 모험을 통해서 통치자로 영웅으로 태어난다. 또 다른 젊은이가 자신의 영웅성을 입증하면, 과거의 영웅은 사라지고 영광 또한 빛을 잃게 된다.
바로 그런 점들, 유한하며 질투 많고 배신하고 악독하지만 선하기도 한 인간다움이 담긴 신화와 영웅이야기이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이 책에는 테세우스 외에도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누마, 솔론, 푸블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대 카토 등이 등장한다.
그 중 테세우스를 잠깐 소개한 이유는, 인간과 신의 결합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첫 번째 영웅이기에 조금 더 애정이 가서이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테세우스의 조상에도 신이 묻어있지만 말이다. 또한 그는 차별없이 다른 지역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중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절대 권력을 포기한 첫 번째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노예와 하층민들의 보호자요 조력자였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가 젊은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귀국했던 그 배를 잘 수리하여 아테네의 총독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보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오래된 목재를 견고한 새것으로 갈았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누구는 그 배가 원형 그대로 내려왔다 하고 누구는 바뀌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말썽 많은 논쟁거리처럼 전래지고 있다.”p87
일명 테세우스배의 역설이다. 테세우스가 타던 배의 원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도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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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2 14: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

mini74 2021-10-12 14:20   좋아요 3 | URL
ㅎㅎ 고맙습니다 ~ 이 책 스콧님 리뷰 보고 산 책 ! 넘 좋아요 *^^*

scott 2021-10-12 17:58   좋아요 2 | URL
미니님 알라딘 서재 사진이 올라 가나여 ??
제 컴에서는 먹통 ㅜ.ㅜ

전 현재 2권 완독!!
소설 보다 잼 ㅎ나죠 ^ㅅ^

mini74 2021-10-12 17:59   좋아요 2 | URL
아까 휴대폰 북플앱으로 올릴 땐 괜찮았어요 ~~

Falstaff 2021-10-12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을유에서 나왔군요!
전 동서문화동판 세 권짜리로 싼 맛에....라기보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걸로 읽었는데, 에잇, 좀 질투는 나지만 을유에서 나왔다니 늦게나마 잘 된 일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출판사 지원도서˝ 신청이라도 해볼 걸 그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별 다섯 주고요!!!!

mini74 2021-10-12 14:32   좋아요 3 | URL
뭐 전 그 전에 아동용으로 두 권 그것도 삼중당걸로 갖고 있는걸요 그림은 삼중당 어린이용이 더 예뻐요 ㅎㅎㅎ원전과 해설 설명 다 좋아요 *^^*

scott 2021-10-12 17:58   좋아요 1 | URL
을유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주석까지 깰끔!!

새파랑 2021-10-12 14: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시리즈 읽고 싶은데 이런 분야에 취약해서 😅 신화 이야기는 언제나 봐도 재미있는거 같아요. 영웅의 행동도 인간과 별반 다를게 없는듯? ㅎㅎ

mini74 2021-10-12 14:34   좋아요 5 | URL
그죠 ㅎㅎ 인간적이라서 또 자주 찌질하게 구는 모습도 맘에 들어요 ㅎㅎㅎ

미미 2021-10-12 16: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사진 속 작품 너무 아름답네요!😳 잔인한 장면같은데 켄타우로스를 때리려는? 저도 이 책 갖고 싶었는데 별 4개 주셔서..음🙄

mini74 2021-10-12 16:11   좋아요 2 | URL
켄타로우스가 친구 결혼식에 난입해서 신부를 데려가려 합니다. 그래서 싸우는 장면. 앗 이 책 넘 좋아요. 별 다섯개 ! 그런데 아무래도 원전이라서 검색도 하고 찾아 보고 해야 되더라고요. 맘 속으로 그림이 좀 더 있음 좋겠다해서 그게 아쉬워서 고민하다 4개 줬어요. 훌룡한 책입니다 ㅎㅎ *^^*

레삭매냐 2021-10-12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한 권 사서 읽다 말았네요.

첫 타자는 읽었는데 두번째 로물루스
편에서 일단 멈춤.

또 다시 시동걸어 보렵니다 부릉부릉

mini74 2021-10-12 16:11   좋아요 3 | URL
안전운전하세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10-12 16: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테세우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용감하기도 비겁하기도, 정의롭기도 불의와 손잡기도, 긍휼이 넘치기도 무정하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생각이예요
이후에 나오는 영웅들 역시 위대한 업적을 쌓기도 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순간 조촐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죠^^

mini74 2021-10-12 17:00   좋아요 4 | URL
그런 모습들이 좋더라고요.*^^*

페넬로페 2021-10-12 16: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삼중당문고판으로 책을 많이 읽은 기억이 있어요. 신화의 영웅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방대해서 공부하듯 읽지 않으면 너무 헷갈려요~~
플투타르코스 영웅전도 도전하고 싶네요^^

mini74 2021-10-12 17:00   좋아요 5 | URL
반가워요 ㅎㅎ 삼중당 문고. *^^*

막시무스 2021-10-12 17: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테세우스 신화를 가지고 페이퍼 작성중이었는데!ㅎ 미니님 글 보니 좀 더 열씨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퇴근하고 저도 자극받아 달려보겠습니다!ㅎ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mini74 2021-10-12 17:57   좋아요 5 | URL
막시무스님 기대됩니다 *^^*

새파랑 2021-10-12 18:00   좋아요 5 | URL
막시무스님과 테세우스 완전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막시무스 2021-10-12 18:21   좋아요 5 | URL
헉! 저는 테세우스 디스하는 내용인데!ㅎㅎ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scott 2021-10-12 18:48   좋아요 5 | URL
막시무스님 플루타르코스 2권 주인공 이십니돠 ^^

서니데이 2021-10-12 18: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는 여러번 들어도 재미있어요. 우리나라 신화도 아닌데,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mini74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mini74 2021-10-12 19:26   좋아요 4 | URL
서니데이님 잘 읽으셨다니 좋아요 *^^*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붕붕툐툐 2021-10-12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어려서 신화 이야기 좋아하던 사람들은 생각의 깊이가 다르더라구요~ 역시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네요~ 저는 어려서 전집이 많았으나, 명랑만화만 주구장창 읽어서 지금 ‘생각없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헤헤헷!!

mini74 2021-10-12 23:27   좋아요 0 | URL
아니옵니다 툐툐님은 명랑명상의 대가가 되셨사옵니다 ㅎㅎ ~~ 저도 명랑만화 일본만화 엄청 좋아해서 ㅎㅎ만리장성은 좀 그렇고 천리장성쯤은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10-13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중당 플루타코스 영웅전 저도 읽었어요. ㅎㅎ
그 때 한니발 얘기 읽으면서 와 전쟁에 결국 패배해놓고 이렇게 자만심 만땅인 사람이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만 나네요. 다른건 하나도 기억안남요. ㅎㅎ

mini74 2021-10-13 14:22   좋아요 0 | URL
앗 삼중당 세대 ㅎㅎ 반가워요. 전 삽화 속 로마 샌들 보면서 예쁘다 ~~ 했던 기억이 나요 ㅎㅎ

페크pek0501 2021-10-13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을유문화사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전 5권인가요? 저는 엄청난 분량에 약해요. 전 2권까지는 읽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저도 도전하고 싶은 책이 있긴 해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요.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몰라 구매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읽게 될 것 같아요. ^^
님을 보고 힘을 내겠습니다!!!
 

10월에 산 책들 그리고 경상도에서 온 귀여븐 애린왕자를 소개합니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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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05 23:3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

붕붕툐툐 2021-11-05 2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니님 축하드려요!!👍👍

mini74 2021-11-05 23:3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툐툐님 *^^*

행복한책읽기 2021-11-06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미니님 축하드려요. TV 당선이라니. 미니님 음성으로 어린왕자를 들어야겠군요.

mini74 2021-11-06 00:33   좋아요 1 | URL
헉 부끄럽습니다 ㅎㅎ고맙습니다. 책읽기님 편한 밤 안녕히 주무세요 ~~

유부만두 2021-11-29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전 여지껏 알리딘tv는 관심을 안가졌었는데 미니님 영상이 많네요?!!!
멋져요. 애린왕자 영상 재밌게 잘 봤어요! ^^

mini74 2021-11-29 15:14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유부만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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