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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신을 닮은 영웅들의 이야기~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전집이 두 질 있었다. 계몽사에서 나온 120권 정도 되는 문고와 삼중당 문고였다. 그 중 삼중당 문고엔 계몽사전집에는 없는 그리스 로마 신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1권 2권으로 끼여져 있었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그 중에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혹은 13가지 모험과 페르세우스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테세우스는 왠지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의 짝퉁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 유럽문화의 다양한 관용어구나 원인설화, 그리고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까지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이야기들은 매력적이다.
<황금가지>에선 신화는 그저 잘못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왜 피부색이 다른가? 파에톤이 황금마차를 너무 낮게 모는 바람에,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까맣게 타서이다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전 사람들에게 세상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낯선 인종에 대해서, 그리고 내일 해가 뜰지, 혹은 계속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렇지만 그 원인이 신들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두려움은 덜해진다. 원인을 모를 때 더 두렵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신에게 기도했고, 희망을 가진 것. 오히려 신화의 매력은 그런 원인설화와, 그 시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며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신화를 알레고리나 상징으로 보는 이들, 자연신화의 의인화로 보기도 하며, 오해나 속아서 생겨났다는 설, 신들은 사실 인간이며 그들을 높이 사 신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는 에우헤메로스(알렉산더 대왕시대 살았던 인물)주의 등도 있다.
프로이트는 신화 또한 성과 무의식으로 연결했다.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오는 과정이 출산과정의 재현이라는 것.
이렇듯 신화는 철학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그리스 철학은 신화의 뮈토스(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전해주는 신화의 언어)적 사유를 로고스(이성과 진리의 언어)적 사유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신화와 영웅담에서 서로 조화와 화합을 이루고, 지혜로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괴물을 물리치며,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 질문 또한 담겨 있다는 것만으로 매력이 넘치지 않은가 싶다.
이 책은 헤시오도스가 말한 영웅들의 시대를 플루타르코스의글로 풀어낸다. 시작은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와 굉장히 닮은 영웅이다. 도리스 출신의 헤라클레스가 그리스 전체에서 유명해지자, 도리스와 적대적 관계인 앗타케 지역에서도 영웅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유사한 영웅인 테세우스가 만들어졌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다.
그는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아이를 얻지 못해 델포이 신탁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집에 닿기 전엔 포도주 자루를 열지 마라” 란 말에, 뜻을 알지 못해 현명하다고 소문이 난 친구 트로이젠왕인 피테우스를 찾아가게 된다. 피테우스는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그 날 밤 자신의 딸 아이트라를 아이게우스의 방에 들여보낸다. 신탁의 뜻은 아이게우스에게 위대한 영웅이 태어날 것이니 집에 가서 아이를 만들라는 뜻이었다.
(테세우스 또한 포세이돈의 아들이란 설이 있다. 그래서 아이게우스와 포세이돈 둘 모두와 같은 날에 아이트라가 동침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에선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아이게우스는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를 찾으면, 바위 밑에 넣어 둔 샌들 혹은 신발과 칼을 꺼내서 찾아오란 말을 남긴다.(우리나라의 주몽과 아들 유리 이야기에도 이런 신표가 등장한다.)
성장한 테세우스는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는 데, 굳이 쉬운 바닷길 대신 육지를 택한다. 육지에는 괴물이 우굴거렸다. (그 당시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이피토스를 죽이게 되고, 그래서 그 벌로 리디아의 여왕인 옴팔레에게 팔려가 종살이 중이었기에 괴물이 설치는 걸로 설명되어 있다.)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육촌뻘쯤 되는 헤라클레스처럼 영웅이고 싶었고, 아버지의 신표인 칼에 악당들의 피를 묻혀 용맹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테세우스 또한 헤라클레스와 거의 유사한 단계를 밟는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악당들을, 악당들이 선량한 이들을 죽인 방법 그대로 되돌려 처지한다.
먼저 몽둥이를 휘두르는 페리페테스(그는 몽둥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려죽였다.)를, 그 몽둥이를 빼앗아 때려죽인다. (헤라클레스의 무기도 몽둥이와 네메이아의 사자가죽이다.)
두 번째 악당은 소나무 사나이 시니스(구부려서 휘어놓은 소나무에 묶었다가 풀어줘서 날려 죽임 )를 똑같은 방법으로 처단했다.
세 번째는 크롬미온의 암퇘지이다. 헤라클레스의 괴물들은 아주 비이성적이고 특이한데, 테세우스의 괴물들은 주로 사람, 그리고 괴물이라도 소나 돼지이다. 그 이유는 희한한 괴물들은 헤라클레스가 모두 죽였다는 설도 있고, 그리고 테세우스의 시대는 앞 시대보다 조금 더 개명된 시대이기에 있을 법한 괴물들로 꾸며졌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자신의 발을 씻게 한 후, 절벽으로 밀어버린 스케이론, 그 아래엔 식인 거북이가 살고 있어서 사람을 받아서 먹었다고 한다. 애완 거북인가 ?
다섯 번째는 케르퀴오이라는 씨름꾼으로, 씨름으로 행인을 죽였다고 한다
여섯 번째는 가장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다.
그는 침대를 두 개 가졌으며, 그 침대로 덩치가 큰 행인은 작은 침대에 눕혀 잘라서 죽이고, 덩치가 작은 행인은 큰 침대에 눕혀 땡겨서 죽인 걸로 유명하다.
여기서 나온 말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로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맞추려는 이나 그런 태도를 표현하는데 쓰인다.
(보르헤스의 <알렙>에 보면 ~ 쁘로꾸스또(프로쿠르스테스)출판사는 그 엄청난 시의 길이에 개의치 않고 아르헨띠노 시선 이라는 한 발췌본을 시장에 내놓았다~ 란 문장이 나오는데 뭔 소리냐 힘들어 읽으면서도 그 부분엔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이 ㅠㅠ)
그렇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에 도착하지만, 아이게우스의 아내인 메데이아(이아손이 자신을 배신하자, 자식들을 찢어 죽이고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와서 아이게우스와 결혼했다고 한다.)는 그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알고 죽이려고 결심한다.
그래서 먼저 마라톤의 황소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마라톤의 황소는 미노스와 관련이 있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으로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레타에 왕권과 관련해서 분쟁이 생기자,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아주 멋진 황소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해서 미노스는 왕권을 안정시키자, 원래의 약속대로 황소를 다시 포세이돈에게 보내주기가 아까워졌다. 결국 포세이돈은 저주를 내리고, 그 저주는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그 황소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여기서 크레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다이달로스가 등장한다. 그가 나무로 암소를 만들어주었고, 그 속에 들어간 파시파에는 황소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미노타우로스, 그리고 그 황소는 미쳐버리고, 그 미친 황소를 헤라클레스가 수습하여 마라톤에 놔둔 것이다.
테세우스는 황소를 잡아왔고, 메데이아는 독약을 먹이려 하지만, 그 순간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의 칼을 보고 아들임을 알게 된다. 결국 메데이아는 다시 도망을 가게 되고 테세우스는 후계자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아테나이는 해마다 혹은 9년마다 크레타에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젊은이들을 보내야 했다. (그 이유는 아이게우스가 판아테나이아 경기대회를 창설했는데, 그 해 첫 우승자가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우스였고,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테나이 사람들이 안드로게우스에게 마라톤의 미친 황소를 잡아오게 했다. 안드로게우스는 미친 황소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실에 분노한 미노스는 아테나이를 쳐들어 온다. 거기다 미노스는 신들에게 빌어서 아테나이에 전염병이 돌게 했고, 결국 젊은이들을 조공으로 바치는 것으로 협정을 맺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자진해서 혹은 백성들이 왕자라도 면제를 받는 건 옳지 않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미노스가 직접 와서 골랐다고 한다.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당장 다이달로스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받아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와 칼을 건네준다. 그 덕에 무사히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풀어놓은 실을 따라 미궁에서도 탈출하게 된다. 여기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 등에 쓰이는 관용어구가 된다.
테세우스와 탈출했던 아리아드네는 닉소스 섬에서 버려진다. 입덧으로 괴로워하던 아리아드네를 닉소스 섬에 잠시 내려놓자 갑자기 파도가 쳐서 테세우스의 배가 멀리 가 버렸단 설, 사랑하지 않아서 버렸다는 설, 잠든 아리아드네를 디오니소스가 보고 반해서 테세우스를 떠나게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었다는 설,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여사제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그에게 승리하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 달고 오라고 했지만, 테세우스는 그 사실을 깜빡하게 된다. 결국 아이게우스는 검은 돛을 보고 슬퍼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고, 그래서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란 뜻으로 에게 해라고 불린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은, 새로운 왕이 등장하면 그 전 시대의 왕은 저물거나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가장 강한 자가 새로운 왕이 되며, 그 전의 왕은 설 곳이 없다는 것.)
테세우스는 꽤 괜찮은 왕이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이야기 속에선 모두가 외면했던 눈 먼 오이디푸스를 받아주었고, 테베의 전쟁에서 패한 이들을 매장하도록 도와주었다고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이란 이야기에서도 너그럽게 그려진다.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인(안티오페 또는 히폴뤼테)과의 사이에서 히폴리토스란 아들이 두었다. 후에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인 파이드라와 결혼을 하는데, 이 파이드라가 힙포뤼토스를 사랑하게 된다. 전실자식을 사랑하게 된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거절하자, 그를 모함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테세우스는 편지를 읽고, 아들을 저주하자 파도에서 괴물소가 나타나 히폴리토스를 죽게 한다.(마차를 타고 가다가, 괴물소에 말들이 놀라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보디발 모티프”가 나온다. (뛰어난 청년이 자신이 모시는 장군이나 왕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게 되고, 그것을 거절하자 오히려 모함받는 이야기로, 첫 시작은 구약에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젊은이가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디발 모티프라고 불린다.)
그 후 자신의 새 신부로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고, 친구 몫으로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겠다며 지옥에 갔다가 붙잡혀 망각의 의자에 앉게 되지만, 다행히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된다. 돌아오니 헬레네 집안의 침입으로 아테나이는 엉망이 되었고, 망명한 스퀴로스 섬에서 절벽에 밀려 살해된다.(혹은 산책하다 미끄러졌다는 설도 있다.)
테세우스가 참여했다는 모험이 너무나 많아서,“테세우스 없인 안 된다”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실제로 참여했다기 보단 여기저기 끼워넣었다는 설이 있다. )
영웅은 그 지역에 대한 우수성 혹은 정체성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영웅들은 고단한 모험과 다양한 괴물들을 만나 무찌르면서 자신의 위대함과 용맹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도전을 통해서 그리고 그런 모험을 통해서 통치자로 영웅으로 태어난다. 또 다른 젊은이가 자신의 영웅성을 입증하면, 과거의 영웅은 사라지고 영광 또한 빛을 잃게 된다.
바로 그런 점들, 유한하며 질투 많고 배신하고 악독하지만 선하기도 한 인간다움이 담긴 신화와 영웅이야기이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이 책에는 테세우스 외에도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누마, 솔론, 푸블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대 카토 등이 등장한다.
그 중 테세우스를 잠깐 소개한 이유는, 인간과 신의 결합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첫 번째 영웅이기에 조금 더 애정이 가서이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테세우스의 조상에도 신이 묻어있지만 말이다. 또한 그는 차별없이 다른 지역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중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절대 권력을 포기한 첫 번째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노예와 하층민들의 보호자요 조력자였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가 젊은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귀국했던 그 배를 잘 수리하여 아테네의 총독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보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오래된 목재를 견고한 새것으로 갈았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누구는 그 배가 원형 그대로 내려왔다 하고 누구는 바뀌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말썽 많은 논쟁거리처럼 전래지고 있다.”p87
일명 테세우스배의 역설이다. 테세우스가 타던 배의 원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도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