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한량없이

크나큰 물,

바다

그 위대한 세계"

 

 

정선(鄭敾), 통천문암도(川門岩圖)

조선 18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하늘과 바다가 하나다. 큰 물결이 밀려온다. 조급한 파도가 아니라 거대한 움직임으로 그 중압감이 압도하고 있다. 요동치는 바다가 보여주지 못한 장중함이 있다. 물의 힘이 저절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파도는 위협적으로 사람을 덮치지는 않고 있다.

 

강원도 통천 해변가에 마주보고 솟구친 두 절벽으로 그 이름이 문암(門巖)이다. 두 절벽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문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 사이를 걷거나 말을 타고 자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파도로 인한 위협이나 조급함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파도 앞에선 인간의 왜소함이 전해지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은 물에 대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닐던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보는 데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반드시 물결부터 보는 것이다.”

 

오주석은 통천문암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중심은 단연 파도에 있다. “바다가 덮쳐 온다. 끝없이 넓고 깊은 동해 바다, 그 푸르고 차가운 물결이 천군만마(千軍萬馬)처럼 천둥소리를 앞세우며 밀려온다. 인간이 대체 무엇이랴? 세상에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장할 수 있으랴? 바다 앞에 서면 누구라도 왜소해진다.”하여, 바다의 위용에 주목한다.

 

해천일색(海天一色). 온 우주가 한 흐름이다.”라고 본 오주석의 혜안이 부럽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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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다, 당신을 만나다
임정일 지음 / 책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자신부터 만나자

속도는 삶의 차이를 만든다. 쉼 없이 앞 만 보고 달려야 행복한 삶으로 가는 것이라 가르치고 믿는 시대에 속도는 중요한 지침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속도에 밀려가는 삶 속에서 어느날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 알 수 있다. 속도와 행복한 삶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속도를 늦추고 잠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는 것 속에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일,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행복한 삶을 규정하는 요소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일에서 발견된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출근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 차 한 잔 마시며 올려다본 하늘의 색깔, 제몫을 다하고 떨어질 준비를 하는 낙엽, 지친 일상에서 동료가 건네는 자판기 커피한잔과 같이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기에 그 소중함을 미쳐 알지도 못하고 놓치고 마는 것들이다.

 

임정일의 느리게 걷다 당신을 만나다는 바로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잃고 있던 그 무엇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시발점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한다. 빨리 가면 자세히 볼 수 없고, 마음에 담길 수 있는 기회조차 없기에 그 소중함과 가치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보자. 느리게 걸으며 보이는 무엇들에게 시선을 마주치며 다가설 때 우리의 일상은 변화를 갖게 된다.

 

임정일은 바로 이 변화를 너와 나 그리고 우리에 대한 관심’,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힘으로 배려’,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긍정의 힘인 사랑그리고 작은 배로 강을 건너는 가르침인 지혜라는 4가지 키워드로 중심으로 일상에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거창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보고 느끼는 모든 것 속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임정일은 바로 그 예를 책의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출근길 풍경, 친구들과의 만남, 올림픽 영웅이 겪었던 이야기, , 나무, 하늘, 전쟁의 현장,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그 밑걸음이 된다고 한다. 또한,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진들은 글과 호응하여 느긋하고 평화로운 느김을 전해주고 있다. 익히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이지만 사진이 전해주는 느낌은 더 간절하다. 이 글과 사진의 호응은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각을 잡아 잠시 머물게 한다.

 

느리게 걷다 당신을 만나다에서 주장하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 권리다. 이 보편적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기에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을까?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기본적 출발이 느리게 걷기에 있다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만들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해보면 알 수 있다.

 

환경과 조건에 밀려난 자신,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지금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나를 둘러싼 풍경에 눈을 돌려보자. 그 다음으로 자신에게 눈을 돌려 무엇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마음을 열어 다스한 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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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500개 키워드로 익히는 역사상식
휴먼카인드 역사문화연구소 지음 / 휴먼카인드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역사에 관심 있으세요?

이 질문에 대부분 망설임 없이 좋아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다시 문는다면 그 대답은 더디다. 글쎄요? 학생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것 이외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을 발겨하곤 겨우 역사드라마나 역사소설 등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거리기 일쑤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더욱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지난 성인들에게 역사는 그저 흥밋거리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기 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규정하는 정부의 정책과 교육과정에서 역사를 다루는 시각을 먼저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대사는 제외하더라도 지난 역사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국민들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동북공정이나 일제침략의 처리과정 등 우리가 직면한 주변국의 국권침탈의 현장에서 국가권력이 이를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여, “‘안중근 의사(義士)는 성형외과 의사인가요?’, ‘야스쿠니신사(神社)는 야스쿠니에 사는 젠틀맨(Gentleman) 이라는 뜻인가요?’, ‘6·25는 언제 일어난 전쟁인가요?’”와 같은 웃지 못 할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한국사를 관통하는 중심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담은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삼국,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근현대로 구분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총 500개를 선정했다.

 

칠지도 : 의미-딸림 날이 각 3개씩 본체 양쪽으로 엇갈리게 솟은 독특한 모양의 백제 쇠칼, 설명-강철로 만든 우수한 제품이며, 금으로 글씨를 상감하였던 것을 통해 당시 백제의 뛰어난 제철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백제와 왜의 밀접한 교류를 입증하는 유물이다.

서얼 : 의미-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소생, 설명-서얼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으며, 무과나 잡과에 응시해도 승진에 제한을 받았다.

단발령 : 의미-백성들에게 머리를 깎게 한 명령, 설명-단발령과 명성황후 시해를 계기로 같은 해 을미의병이 일어나며 본격적인 항일 의병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이 책에서 키워드를 설명하는 예다. 한국사 전체를 걸쳐 선별된 500개 키워드 전부가 이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 등의 의미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면 각각의 사건이나 인물 등에 대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는 의미기 있어 보인다. 어쩌면 또 다른 시험대비책이 아닌가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상식을 500개의 키워드로 쉽고 빠르게 해결해 보세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및 공기업과 대기업 채용 필기시험에 대폭 늘어난 국사문항도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접합한 의미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단편적인 해설이 바른 역사상식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올바른 길을 제시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역사인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심스럽다. 선정한 키워드에 대한 앞뒤 맥락을 살펴 그 의미를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더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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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다

 

 

 

강희안(姜希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조선 15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편안하다. 나무도 바위도 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인 노인마저 원래 그 자리가 제자리인양 자연스럽기만 하다. 묵직한 먹 선이 주는 안정정감에 바람마저 멈춘 듯 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다. 그저 바라볼 뿐 더 이상의 더하고 뺄 무엇 하나 없다. 옛 사람이 자연을 노래하는 다양한 모습에서 이처럼 편안하고 넉넉한 여유로움이 넘치는 그림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선비는 오늘 한가로움을 얻었다. 그리하여 완전히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선비가 자아내는 잔잔한 삼매경과 여유와 고요함이 너무 좋아서 나 또한 그림 속의 인물이 되고 싶다. 아니 그림 속의 인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5)은 조선 태종~세조 때 살았던 선비로서 집현전 직제학과 호조참의를 지냈다. 선비로는 드물게 시, , 화 등 다방면에 능한 문인으로서 격조 높은 산수화, 인물화, 문인화를 그렸다. 온화하고 말수가 적은 그윽한 성품으로 청렴하고 소박하여 출세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원예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지었으며, 문신이자 문장가인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형이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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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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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웃음과 역설로 읽는 열하일기

조선 후기를 온 몸으로 살았던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은 실학자로 문장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는 열하일기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그 열하일기는 유명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현실이다. 열하일기가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부분적인 작품만 번역된 상태로 오랫동안 있었기에 완역된 열하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못했던 점도 있다.

 

나에게도 열하일기는 그렇게 더디 다가왔다. 보리출판사에서 발간한 열하일기 상, , 하 세 권을 손에 넣고 낮과 밤을 벗 삼아 한동안 꾸준히 읽었다. 이미 유명해서 익숙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읽기에 편했지만 그 외, 다른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열하일기를 쉽게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이유에 한 몫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열하일기를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웃음과 역설이다. 실학자, 문장가로 익숙한 박지원에 대한 시각이 의외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웃음과 역설이 박지원을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는 문명이 전환되는 시기였다. 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대두되는 사상과 과학문명에 의해 점차 변화를 겪는 시기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 것인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고미숙은 박지원의 삶이 녹아 있는 열하일기를 통해 시대를 맞서왔던 박지원의 중심 키워드를 웃음과 역설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찾아 분석하고 있다.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적 시각이 아니라 열하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열하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집필을 기획했다는 말이 공감가는 대목이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서는 연암, 지배적 코드로부터 스스로 탈주하는 연암, 신분과 나이 고하를 따지지 않고 뜻이 맞으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암, 똥거름과 기왓장에서 문명을 꿰뚫는 연암과 그러한 연암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열하일기’”

 

고미숙은 박지원을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열하일기 속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내 고미숙 만의 독특한 언어로 해설해간다. 깊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그의 시각은 묻혀 있는 보석이 보석임을 온 천하에 다시금 드러내 놓는 일이다. 하여. 그의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이 박지원이라는 한사람에 멈추는 것이 아닌 조선 후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열하일기를 통해 조선 후기와 우리가 사는 지금-오늘을 이어주는 가교로도 적극 활용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발간된 것은 2003년이다. 발간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정증보판을 발간하며 그 사이에 변화된 현실을 보충했다. 특히, 저자 고미숙의 관심은 연암 박지원에서 더욱 확장되어 다산 정약용과 비교 분석으로 이어진고 있다. 이 책에서 보론으로 다루고 있는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저서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서 상세히 언급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를 핵심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 연암이 걸어간 열하와 저자 고민숙이 걸었던 그 길이 같을 수 없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구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길이 보여주는 모습은 달라진다. 박지원이열하일기로 보여주었던 길이 우리가 걸어갈 길에 대한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새롭게 주목받는 박지원과 열하일기는 그 길에 웃음과 해학으로 벗하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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