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없는 시절의 봄빛 자랑, 동백冬栢

臘底凝陰數己窮 랍저응음수기궁
一端春意暗然通 일단춘의암연통
竹友梅兄應互讓 죽우매형응호양
雪中花葉翠交紅 설중화엽취교홍

섣달 밑 음기 엉겨 운수 이미 다했거니
한 자락 봄 뜻이 남 몰래 통했구나.
대나무와 매화가 서로 응해 양보하여
눈 속의 꽃과 잎이 푸른 속에 붉어라.

보한재 신숙주의 동백에 관한 시다. 동백은 겨울철에 피는 까닭에 동백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동백꽃에는 네 종류가 있다. 홑잎에 붉은 꽃은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는 것이니, 세상에서 동백이라고 일컫는다. 홑잎은 남쪽 지역 바다 섬 가운데서 잘 산다. 혹 봄에 꽃피는 것은 춘백이라고 한다."

동백은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원래이름은 산다山茶다. 산다라는 이름은 잎사귀가 산다와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춘椿, 중국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고도 부른다.

이백李白 시집의 주를 보면 "해홍화는 신라국(海紅花 出新羅國)에서 나는데 매우 곱다" 라고 적혀 있다. 동백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동백이 겨울에 핀다지만 따뜻한 곳에 사는 남쪽 식물이다. 애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강진의 백련사나 광양의 옥룡사지 고창의 동백숲 대부분은 봄이 무르익어서야 꽃을 피우니 춘백이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내 뜰에도 사연이 있는 동백나무 두그루가 있다. 어린 나무라 아직 꽃은 볼 수 없어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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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닥나무
늘 꽃을 보면서 놀라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색이 주는 느낌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꽃을 만나면 한동안 주위를 서성이게 된다. 강렬한 원색이지만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마음을 이끌어 다독여 주는 것은 인위적인 색으로는 범접할 수도 없는 자연의 색이 주는 매력이다.

한겨울 잎도 없이 제법 큰 꽃봉우리를 내밀어 놓고도 한동안 멈춘듯 가만히 있다. 수없이 많은 꽃 하나하나가 모여 봉우리를 만들어 큰 꽃처럼 보이지만 진짜 꽃은 아주 작아 앙증맞기까지 하다. 노오란 꽃과 눈맞춤하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납매, 풍년화, 매화 등과 비교적 이른 봄에 피는 나무보다 조금 느긋하게 핀다. 이들 꽃이 순하고 여린 맛이라면 삼지닥나무는 아주 강렬하게 봄향기를 전해준다.

삼지닥나무리는 이름은 가지가 셋으로 갈라지는 삼지三枝 모양에 닥나무처럼 쓰인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 종이를 만드는 원자재로서 널리 알려진 닥나무보다 더 고급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귀한 나무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노오란 꽃봉우리가 열리면서 마치 사람들의 마음에 봄을 맞이하듯 '당신을 맞이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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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
부지런한 사람들의 이른 꽃소식에 마음이 앞선다. 귀한 때 귀한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익히 알기에 마음따라 몸도 부지런해져야 할 때다.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라 꽃소식도 빠르다.
한겨울인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다. 매실나무를 선두로 납매와 풍년화가 그 주인공이다. 추위에 움츠려드는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꽂 향기에 취할 수 있어 그 고마움이 참으로 크다.

잎도 없는 가지에 꽃이 먼저 풍성하게 핀다. 꽃잎 하나 하나를 곱게 접었다가 살며시 펼치는 듯 풀어지는 모양도 특이하지만 그 꽃들이 모여 만드는 풍성함도 좋다.

봄에 일찍 꽃이 소담스럽게 피면 풍년이 든다고 풍년화라 한다. 힘겹게 보리고개를 넘었던 시절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배고픈 사람들의 염원을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두고도 찾지 못한 곳을 몇년만에 들렀다. 가지치기로 다소 외소해진 모습이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옆에 함께 핀 납매와 함께 반갑게 눈인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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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2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낸 맘에도 풍년이 깃들길 기원하며 사진 감상했어요.
 

꼬박 1년을 기다렸다.

마음은 이미 해가 바뀌고 한겨울 섬진강 매화로 향기를 품었다지만 뭔가 빠지듯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뜰에 있는 매실나무에 올해 첫꽃이 피었다. 두손 모아 합장하고 벙그러질 듯한 꽃봉우리를 골라 정성스럽게 담는다. 찻물을 끓여서 잔에 붓고 꽃 하나를 띄운다. 꽃이 펼쳐지며 가슴깊이 스며드는 향기에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이 드디어 열린다. 봄맞이 의식을 치르듯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다. 정월 보름의 귀밝이술을 대신한다.

비로소 봄의 시간에 들어섰다.

봄을 歆饗흠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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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동백나무

비오고 찬바람 심하게 불던날 완도수목원을 찾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붉은색으로 피는 동백꽃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가까운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흰색으로 피는 동백나무는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붉은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동백꽃을 찾는다면 동백꽃의 매력을 절반만 본 것이다. 이토록 고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이 흰동백나무다.

흰색의 꽃잎이 노랑색의 꽃밥과 어우러지면서 만든 꽃봉우리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겹꽃이 아니라서 단정함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아름답다.

다양한 산들꽃을 보러다니면서도 흰색으로 피는 꽃이 주는 매력에 이끌려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꽃 친구의 마음이 담긴 제주도에서 건너온 흰동백나무 하나를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다. 꽃이 피는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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