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덩굴'
때 아닌 때 꽃이 꽃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다가 먼 길을 나섰다. 꽃과 함께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흔치않은 경험이라 나선 길이지만 꽃은 보지 못했다. 지난해 본 꽃으로 대신 한다.


꽃 보고 열매까지 확인했다. 수많은 꽃을 만나지만 꽃과 열매 둘 다를 확인할 수 있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과 거리가 주는 부담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꽃에 더 주목하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호자라는 이름은 가시가 날카로워 호랑이도 찌른다고 해서 호자虎刺라는 이름이 붙은 호자나무에서 유래한다. 잎과 빨간 열매가 비슷하지만 호자덩굴은 덩굴성이며 풀이라 호자나무와는 다르다."


붉은색의 둥근 열매에는 두 개의 흔적이 있다. 꽃이 맺혔던 흔적일까. 다른 열매와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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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한파라고 아침은 올 입동 이후 가장 추웠다. 바람결에 실려온 냉기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것도 잠시 한낮의 볕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바람을 피해 볕이 오롯이 들어오는 양달에 앉아 볕바라기 하기에 딱 좋은 볕이다.

무엇에 쫒기는 것처럼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단풍이 다 지도록 단풍놀이 한번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페이스북은 여기저기서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여는 창마다 요란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불타듯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동안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의 흔적 일 것이다.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막바지 겨울로 가는 단풍보다 더 분주한 발걸음으로 마음만 더 부산스럽다.

나도, 볕이 잘드는 인적 드문 숲으로 가 이미 떨어진 낙엽으로 포근한 자리에 앉아 미쳐 땅과 만나지 못한 낙엽을 한동안 바라다 보고 싶다.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시골 마을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넉넉한 품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벗이 되었을 나무 그늘에 들어 한나절 그 나무의 벗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온통 머리털이 세어서도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부끄러운 억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들길을 서너시간 쯤 걷다 지칠만할 때 돌아오면 좋겠다. 그것도 과분하다면 오후 볕을 깊숙히 끌여들여 오랫동안 품고자 서쪽을 온통 창으로 만든 모월당慕月堂 긴 책장에 기대어 산을 넘는 햇볕의 끝자락을 잡고서 잠시 조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느긋한 기다림이라 애써 다독이던 마음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듯 담쟁이덩굴에 한줌 볕이 들었다. 이 볕 한줌 덜어내어 품속 깊숙히 넣어두어야겠다. 내 마음에 볕이 필요한 그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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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몇 번이나 세월에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말자
그만 생을 꺽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송경동의 시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다. 무엇이든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 집중해 보자.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늘 현재진행형이니 오늘에 충실히 살아가는 수밖에?.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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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 일어난 지 384년째 되는 해에 압록강 동쪽으로 1000여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나의 조상은 신라에서 나왔고 밀양이 본관이다. '대학大學'의 한 구절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뜻을 취해 이름을 ‘제가齊家’라고 하였다. 또한 ‘초사楚辭’라고 부르는 '이소離騷'의 노래에 의탁하여 ‘초정楚亭’이라고 자호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고고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이치를 종합하여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100세대 이전의 사람에게나 흉금을 털어놓았고 만 리 밖 먼 땅에 가서 활개를 치고 다녔다.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하고 온갖 새의 신기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득히 먼 산, 해와 달과 별자리, 작은 풀과 나무, 벌레와 물고기, 서리와 이슬, 날마다 변화하지만 정작 왜 그러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의 이치를 마음속에서 깨달으니, 말로는 그 실상을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입으로는 그 맛을 충분히 담아낼 수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혼자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여겼다.

아아! 몸만 남기고 가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생사와 성명의 밖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북학파 학자로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27세 때 쓴 글 '소전小傳'의 내용을 옮겨왔다. 스스로를 설명하는 내용에 공감하며 호응하듯 읽는다.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삶에서 보이는 외로움과 자부심으로 이해한다. 

시간이 겹겹이 쌓여 돌이 되었다. 바닷물에 씻긴틈에 다시 흙이 채워지고 용케도 뿌리를 내려 꽃까지 피웠다. 이 경이로움을 박제가의 삶에서도 느낀다. 빈 손으로 세상 나들이 왔다가 가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생명으로 본다면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몸만 남기고 가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알아줄이 없다한들 무엇이 아쉬울까. 세상 나들이 제 뜻대로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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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

毋將一紅字 무장일홍자
泛稱滿眼華 범칭만안화
華鬚有多少 화수유다소
細心一看過 세심일간과

'붉다'라는 글자 하나만 가지고
온갖 꽃 통틀어 말하지 마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가 있으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보아야하리

*'북학의'를 지은 박제가朴齊家의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라는 시다. 박제가의 이름이 적힌 그림 '연평초령의모도'의 의문을 따라가는 신상웅의 책 '1790 베이징' 첫머리에서 만난다. 우선 반가운 마음에 원문을 옮겨오고 그 주석은 이 책을 쓴 신상웅의 해석을 빌려왔다.

박제가의 글 중에 자주 찾아보며 음미하는 특별히 좋아하는 시다. 일상의 관심사 중 하나인 꽃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마음 가짐으로 따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해에 본 꽃을 일부러 찾아서 올해도 본다. 어제 본 꽃을 오늘도 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일도 보고자 한다. 처음 볼 때와 나중 볼 때가 다르고 여러번 봐도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이 보인다.

어디 꽃 뿐이겠는가. 사람도 이와 같아서 꽃 피어 지고 열매 맺는 사계절이 몇 번이나 지나는 사이를 두고서 비로소 가까워 진다.

늘 꽃을 보러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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