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아름다움, 매화梅花

細竹淸梅緣水涯 세죽청매연수매

東風春意滿香閨 동풍춘의만향규

가는 대와 맑은 매화 물가에 따라있고

동풍에 봄뜻이 규방에 가득해라

이는 보한재 신숙주가 서첩에 쓴 시구다. 매화는 예나 지금이나 시인묵객을 비롯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꽃이다. 찬바람 부는 한겨울 탐매를 나선 사람이나 만발하여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때에도 단연코 선두에 서는 꽃이라 할 수 있다.

䟱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물은 맑고 얕은데 그림자 빗겨 있어

달 뜬 황혼에는 그윽한 향기 떠다니네

매화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매화로 처(妻)를 삼던 송나라 사람 임포를 빼놓을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 매화분에 물을 주라던 조선의 퇴계 이황도 있다. "천엽이 단엽만 못하고 홍매가 백매만 못하니 반드시 백매의 화판이 크고 근대의 거꾸로 된 자를 선택하여 심으려고 하였다"는 정약용도 있다.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돌보거나 이름난 매화를 찾아 탐매의 길을 나서기도 했다.

그 취향은 오늘에도 이어져 전국에 사는 벗들이 섬진강 기슭에 모인다. 해가 바뀌고 첫 꽃나들이 장소로 정한 곳이 섬진강 소학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꽃이 핀다는 곳이다. 오랜 꽃궁기를 건너 첫 꽃을 찾는 나들이이고 그것도 모두가 사랑하는 매화라 더욱 즐거운 나들이가 된다. 어쩌면 꽃은 애둘러 말하는 핑계고 벗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이 우선인 듯도 하다.

매화타령의 한구절로 차갑고 아름다운 매화를 만난 소회를 대신한다.

매화 옛 동걸 봄 철이 돌아온다.

옛 피던 가지마다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하도 분분하니

필지 말지 하더매라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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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대부분 꽃으로 만나지만 꽃도 잎도 모르면서 매번 열매로만 만나는 나무다. 그러니 볼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숲길에서 열매를 보고서야 겨우 이름 부를 수 있다.

꽃은 노란빛이 도는 녹색으로 잎보다 먼저 잎겨드랑이에 달려 핀다는데 아직 직접 확인하진 못했다. 암꽃과 숫꽃이 딴 그루에서 다른 모양으로 달린다고 하니 기억해 둬야겠다.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독특한 모양의 열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발걸음을 붙잡는다. 4개의 씨방이 대칭형을 이루며 꽃처럼 달려 있다. 씨방에는 검은색 종자가 들어 있다.

많은 꽃들이 피는 시기에 함께 피니 주목하지 못했나 보다. 매년 꽃도 잎도 확인할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때를 놓치고 나서 하는 말이 된다. 올해도 그러는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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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동백꽃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2월은 동백꽃과 관련된 시를 모아본다. 문정희 시인의 시 '동백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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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가움이 좋다.

코끝이 찡 하도록 파고드는 냉기가 싫지 않다. 겨울답지 않았던 낯선 모습에서 오는 당혹감이 비로소 물러간다는 반가움이기도 하다. 시린 손끝에 온기가 돌면서 냉기와는 다른 볕의 넉넉함으로 건너가는 시간이다.

봄기운을 불러오기 위한 겨울의 배려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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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매臘梅(소심)
엄동설한 매화 피는 시기에 같이 핀다. 매화를 닮아 매화의 매자를 달았다. 매화를 닮았다고 본 것은 겉모습이 아닌 그 속성을 본 것이다.

12월을 섣달, 납월(臘月)이라 하는데 그 추운 섣달에 피는 매화라 하여 '납매'라 부르는 꽃이다.

'납매'는 중국이 원산이어서 당매라고도 하고 꽃색깔이 노랑이어서 황매라 부르던 것을 송나라 때부터 '납매'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꽃은 1∼2월 잎이 나오기 전에 옆을 향하여 피는데 좋은 향기가 난다. 종모양 노오란 꽃망울을 열어 붉은 꽃잎을 드러낸다. 일반 매화보다 먼저 핀다. 보통 1월 중하순에 피어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삭막하고 추운 겨울 닫힌 마음에 봄 향기를 전해주는 것으로부터 '자애'라는 꽃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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