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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평점 :
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하는 주제 중 하나가 ‘벗의 사귐’이다. 옛사람들도 지란지교芝蘭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지기지우知己之友, 백아절현伯牙絶絃 등 수많은 고사성어로 그 귀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고사성어의 공통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의 사귐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어려우니 더 강렬한 열망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도 한 이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시선을 발견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의 저자 이승수가 옛사람의 사귐에 관한 사례를 모아 놓고 이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드러낸다. 사람 사귐의 기본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교류의 빈도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와 사뭇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나옹화상과 이색, 정몽주와 정도전, 김시습과 남효온, 성운과 조식, 이황과 이이, 양사언과 휴정, 이항복과 이덕형, 허균과 매창, 김상헌과 최명길, 임경업·이완과 녹림객, 이익과 안정복, 나빙과 박제가
옛사람들의 이 조합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잘 어울릴 같지만 다시 보면 부자연스러운 조합이기도 하다. 저자 이승수는 이 관계를 주목하면서 진정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벗의 사귐의 본질에 가까운 교류’가 가능하다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시대를 주요 배경으로, 이익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사유와 삶을 존중했던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사귐을 담았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에 남은 감동적인 일화들, 주고받은 편지와 시, 그림 등을 재료로 스물네 사람의 사귐을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여전히 벗의 사귐 대한 생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난 이 책의 저자 이승수의 머리말에서 아주 흥미로운 문장을 접한다. ‘벗의 사귐’에 주목하면서 늘 무엇인가 빼놓고 살아가는 것 같은 아쉬운 내 속내를 짐작케 하는 문장이다.
“실체가 없는 참다운 우정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옛날에는 참다운 우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둥, 세상이 황폐해져 우도友道를 찾기가 어렵다는 둥, 옛일을 낭만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사는 이 시대를 개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완벽하고 영원한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압박할 마음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삶을 성찰하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벗 하나 없는 내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따스한 벗이 되어주지 못하는 내가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 불일치와 아이러니에 삶의 진실이 있다.”
어쩌면 내 속내를 그대로 담은 듯싶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문장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사연 깊은 이야기보다 더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침, 섬진강에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문득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것과 이들의 사귐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 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벗의 사귐'에 대해 다시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