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

 

"나는 나고여기는 여기고지금은 지금이니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의 목소리를 내야겠네."

 

이옥(李鈺, 1760~1815)의 시論詩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이해한다여기에 "규격화된 좋은 시만 따라 하느라 저만의 진짜 시를 잃고 말았다시는 좋은데 내가 없다내가 없으니 좋아도 허깨비 시에 불과하다."고 말한 이덕무의 시에 관한 이야기까지 더하면 정민 교수가 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이 책 나는 나다는 조선 문장가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에 주목하였다. '시로 국가공무원을 선발했던 나라조선을 대표할 만한 이들의 시론詩論을 모아, '한시 미학 산책'의 정민 교수가 해설을 덧붙여 엮은 책이다.

 

조선 전기에는 형식지상주의에 빠져 있었고조선 중기에는 학당풍이 성행했으며, 18세기 이후 비로소 조선풍이른바 시를 쓰는 주체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시뿐만이 아니라 북학파로 불리는 세력이 등장할 정도로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있어서 사회와 개인의 삶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사회적 흐름이 형성된 시기가 바로 조선 후기였다이런 흐름과 연속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정조의 문체반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그 흐름의 한 축으로 시에 주목하고 그 변화를 살핀다.

 

"허균이용휴성대중이언진이덕무박제가이옥정약용"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다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확실한 관점을 가지며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보여주기 위한 것정형화된 것화려한 기교에 치중한 것을 추구하지 말고 자기 본연의 목소리를 낼 것내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론은 시를 짓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사회가 나아갈 미래를 예측하며 바른 길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옛사람들의 글 짓는 일에 비추어 삶의 태도를 이해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이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이해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난골족 : 백석 시전집 한국문학을 권하다 31
백석 지음, 김성대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석, 그 이름으로 말하는 시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시를 통해 기억되는 시인이 있다. 백석(1912~ 1996)이 그다. 특별하게 시와 관련된 일상이 아니지만 이 싯구를 기억하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 익혔기 때문이리라. 그 후로도 종종 찾아 읽거나 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백석의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따라붙으며 작품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보곤 했다.

 

애플북스의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 31번째로 출간된 백석의 '여우난골족'은 그간 발굴된 시인의 모든 시를 싣고 있다. “백석이 출간한 유일한 시집 사슴을 전후로 발표된 작품은 물론 분단 이후 쓴 시와 동시까지 시기별로 나눠 수록, 정리하여 그의 시세계 전반을 접할 수 있게 엮은 전집이다.”

 

백석 시인의 이름이 익숙한 만큼 사람과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싶은 마음에 이번 기회를 통해 백석의 연보를 찾아 꼼꼼하게 읽어 본다. 짐작만할 뿐 여전히 알 수 없는 시인과 시인의 작품이다. 그저 천천히 읽고 또 읽어갈 뿐이다. 이미 접하고 여러 번 읽어 익숙한 시 말고도 112편의 시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번에 쓰윽 읽어갈 수 없는 시들이라 되돌이표를 수없이 그린 까닭이다. 여전히 어려운 싯구에서 멈추길 반복하지만 반복할수록 묘한 매력으로 읽힌다.

 

시인들을 매료시킨 시,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월북 작가라는 정치적, 역사적 이력, 백석의 여인들과 같이 시인을 이야기하는 시선을 많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할까라는 생각에 앞서 시인의시가 갖는 매력 속으로 빠져들 일이다.

 

"읽어도 몰랐다. 그를 몰랐다. 읽고 나서 더 궁금해졌다. 그가 뭘 들었는지. 뭘 느꼈는지. 나는 여전히 백석을 모른다. 시를 읽는 건 알기 위해서가 아니지만. 다만 이것 하나는 알겠다. 그대를 다시 읽을 거라는 것. 다시 '이 골 안으로 올'거라는 것. '캄캄한 밤과 개울물 소리'.

그리고 잊으면 된다. 잊고 기다리면 된다. 읽고 싶어질 때까지. 안 읽은 것처럼. 처음 읽는 것처럼. 이제 그를 읽어야겠다. 이제야 읽고 싶어졌다. 나는 백석을 읽지 않았다."

 

'읽지 않고 쓰는 서문'이라는 제목으로 쓴 김성대의 서문 중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보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소 길게 인용하여 공감하는 바를 밝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날마다 특별한 오늘을 산다

매일 똑같은 날의 반복이라고 푸념한다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는 이들에겐 이 문장이 가지는 의미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단조롭고 무의미하다는 이 이미지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을까.

 

곡절曲折을 겪고 난 후의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일상'에 대해 필경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곁에 머물러 있는 오늘이 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라는 것으로 그 일상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이는 몸이나 마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곡절은 사람마다 다르며 통과하는 시간이나 과정도 다르기 마련이다이런 차이가에고 불구하고 한번 곡절을 겪고 난 후는 분명 달라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살아왔기에 무탈한 오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 문지안의 무탈한 오늘’ 역시 그 곡절이 가져다 준 결과라 여겨진다가구 공방 애프터문을 운영하며여섯 마리의 개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그 무탈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그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는 근거를 찾아본다.

 

이 책에 드러난 문지안이 누리는 무탈한 일상의 한 축에는 여섯 마리의 개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이 생명들과 만나게 된 인연이나 함께하는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지금 현재의 모습까지 자잘한 이야기들이 따스하게 펼쳐진다개와 고양이 그리고 이들을 돌보며 형성된 이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 내는 일상에 누리는 행복이다.

 

무탈한 하루의 다른 한 축은 그런 일상의 의미를 아주 특별하게 의미부여하며 가꾸고 누려가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하루도 어제와 같지 않음을어떤 내일도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을 알기에 무탈한 오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그 안에 있다.

 

무탈한 하루가 담고 있는 구체적인 모습과 내용을 다르지만 무탈한 하루가 전하는 온도는 나의 경험으로도 충분하게 공감할 수 있다자동차로 10여분 달리면 끝나는 지극히 짧은 거리를 왕복하며 느끼고 누리는 그것과 다른지 않다무엇하나 달라질 만한 개연성이 적은 거리와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찾아내고 주목했던 사소한 것들의 무게는 평범한 하루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주목한 것의 중심에 오늘이 있다내가 살아온 어제의 합이며 살아갈 내일의 근거가 될 오늘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 오늘에 충실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과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따라무탈한 오늘이 전해주는 온도는 달라진다오늘에 주목하고 그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무탈한 오늘이 담보한 행복의 열쇠다.

 

따스함이 넘치는 사진과 일상을 다독여주는 문장으로 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에 주목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가 끝이라면 - 조용호의 나마스테!
조용호 지음 / 작가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은 또 다른 시작점이다

한해의 끝과 시작을 함께한 책이다지나온 시간의 중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다형식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라도 시선이 향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늘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준으로 삼는 말이다.

 

특히동시대를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 시선을 제공하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여기에 관심분야의 사람들이라면 그 흥미로움을 배가되기 마련이다.

 

작가이자 신문 기자로 활동했던 조용호 작가가 문학(문화)인 100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5년 동안 세계일보에 연재했던 조용호의 나마스테를 여기가 끝이라면이라는 제목을 붙여 책으로 엮었다.

 

소설가시인평론가화가영화평론가가수요리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다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각으로 백 명을 한자리에 올려놓았으니 이미 보통의 관심사는 넘어선 모양새다.

 

세대와 남녀국적을 구분하지 않은 100 명의 사람이 있다이미 다양한 통로로 익숙한 이름들이 다수이지만 이곳에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많다작품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흥미로움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간다는 설렘이 함께 한다문학인이 대다수이니 당연히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가 중심이겠지만 문학인의 관심 대상이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으니 당연히 오늘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은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여기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긍정성을 먼저 보자는 의미다하여작품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여주는 그 사람의 모습과 연계하여 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긍정하자는 말은 아니다가려볼 것은 가려보아야 한다바라보는 이가 마련한 기준이지만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좋은 것이 시대를 관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좋을 수는 없다대중매체에 사란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인정하더라도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못내 아쉬운 부문이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 한 자리에서 100 명을 만났다그 100 명의 관심사가 반영된 이야기는 개인사를 넘어선 시대의 이야기일 것이다조용호 작가의 조심스러운 물음 여기가 끝이라면’ 인터뷰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각각의 사람들의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독자의 몫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 근원수필 -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근원 김용준 전집 1
김용준 지음 / 열화당 / 200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을 갖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글 '매화梅花'을 읽었다글이 주는 매력에 읽기를 반복한다멀리서 매화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여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글쓴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김용준이라는 사람이다.

 

김용준(金瑢俊, 1904-1967),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로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이다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저서로는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등이 있으며회화작품으로는 수묵채색화 (1957)이 있다.

 

새 근원수필近圓隨筆은 2001년에 발간된 근원 김용준 전집 1권으로 이미 1948년에 발간된 근원수필에 스물세 편을 더해 엮은 김용준 수필 완결판이라고 한다기존에 발간된 형식을 유지하며 화인전과 같은 미술관련 글을 구분하여 엮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이디서 읽었을까읽어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교과서에 수록된 글이었다뿐만 아니라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나오는 문장이다감나무 예찬으로 이보다 더 감성적인 글이 또 있을까 싶다.

 

김용준의 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주 익숙한 것들이 중심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친근하여 거부감이 없고 세심하여 새로움을 전해준다또한 활동하던 시기의 문화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후대 사람이 글을 통해 시대상을 엿보기에도 충분하다또한, 2부에서 접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 역시도 수필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운 사유의 영역을 확인하게 된다.

 

남에게 해만은 끼치지 않을 테니 나를 자유스럽게 해달라.”

 

근원수필의 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심경으로 살고자 했던 김용준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힘을 가진 글이 주는 혜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