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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겁게 키만 큰 접시꽃

寂莫荒田畔 繁花壓柔枝 적막황전반 번화압유지

香經梅雨歇 影帶麥風欹 향경매우개 영대맥풍의

車馬唯見賞 蜂蝶徒相窺 차마유견상 봉접도상규

自慚生賤地 敢恨人棄遺 자참생천지 감한인기유

거칠은 밭두덩은 쓸쓸도 한대

연한 가지 누를 듯 꽃은 무성타.

궂은비를 지내어 향기 그치나

보리바람 띠워서 그림자 수긋.

수레타고 말 타고 찾는 이 뉠꼬

나비랑 벌이랑 엿볼 이 그뿐.

더러운 땅 생장해 내 탓 내 하지.

남더러 저 버린다 어찌 한하리.

*신라의 선인(仙人) 최치원(崔致遠)의 〈촉규화(蜀葵花)〉라는 시다. “이 시는 접시꽃을 아주 잘 그려 보였다. 특히 그 끝구에 “더러운 땅 생장해 내 탓 내 하지, 남더러 저버린다 어찌 한하리”운운한 것은 최치원이 촉규화를 빌어 자신에 빗댄 것이니, 신라 당시에 벌열을 숭상함이 고루(古陋)하다 할만하다. 꽃의 아름다움을 그린 이 시가 뜻밖에 이상야릇한 역사적 사실을 전해주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촉규화(蜀葵花)는 경기말로 어승어, 황해도말로는 둑두화, 남도말로는 접시꽃이라 한다. 그 꽃은 무궁화와 같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더 크다. 이 꽃은 한 번 심으면 그 뿌리에서 줄기가 항상 돋아나는, 식물학상으로 이른바 숙근초(宿根草)이다. 싱겁고도 밋밋한 그 키가 7, 8척이나 된다. 〈화편(花編)〉에는 이 꽃을 무당에 비하였다. 혹 키가 크고 아리따워서 무당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원에 재배하는 풀꽃 치고는 키가 크기로 유명해서 일장홍(日丈紅)이란 별명을 얻었다. 꽃빛은 붉은 것과 자줏빛과 하얀 것이 있어 제각기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그중에서도 분홍 꽃이 가장 산뜻하게 곱다.”

요사이 한창인 꽃이다. 길을 가다 기어이 차를 세우고 눈맞춤 한다. 담장 밑에서 키를 키우고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모양새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유명했던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보는 이의 처지에 따라 고향을 떠올리거나 그리움 또는 애틋함 등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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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실익을 두루 갖춘 양귀비楊貴妃꽃

馬頭初見米囊花 마두초견미낭화

말머리서 처음으로 미낭화를 보았네

독특한 모양에 화려한 색이다. “일년생 풀꽃 중에 가장 요염한 것이 양귀비꽃이다. 식물학에서는 이것을 앵속화(罌粟花)라고 부른다. 무릇 십여 종이 되며, 그 빛깔도 녹색과 황색, 홍색과 남색 외에 연분홍 등 별별 잡색이 다 있다.” 양귀비의 다른 이름으로 미낭화(米囊花)가 있다.

양귀비꽃의 “한 종류로 꽃과 잎의 자태가 모두 아름다운 이른 바 우미인초(虞美人草)란 별명을 가진 것이 있다. 일찍이 송나라의 문인 남풍(南豊) 증공(曾鞏)이 장편의 시를 노래한 것이 있다. 양귀비꽃이 우리나라로 수입된 지도 오래일 텐데, 오늘날까지 시 한 수 노래 한 마디 전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완상용으로 널리 재배하게 된 것은 이 근래의 일인 듯 하다.”

“양귀비는 꽃으로 감상할 뿐 아니라, 잎사귀도 어렸을 때는 따서 채소로 먹을 수 있다. 열매는 과자와 기타 요리에도 쓸 수 있으며, 씨앗의 껍질은 약재로 쓰여, 꽃과 잎과 열매와 씨와 씨의 껍데기까지도 하나 버리는 것이 없다. 참으로 재미와 실익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꽃이라 하겠다.”

“다만 사람을 마취시키는 마약인 아편이 양귀비 열매에서 나온 액체임을 생각하면 그 해독 또한 매우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양귀비의 잘못이겠는가, 아니면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잘못이겠는가?”

오늘날에는 양귀비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화려하고 요염한 모양과 색에 주목한다. 꽃양귀비나 개양귀비라는 원예종이 보급되고 많은 곳에서 가꾸어 큰 꽃밭을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진은 내 뜰에 핀 개양귀비꽃들이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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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위의 붉은 비단, 해당화海棠花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말며

잎 핀다고 설워 마라.

동삼(冬三) 석 달 꼭 죽었다

명년 삼월 다시 오리.

*해당화를 떠올릴 때 동시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명사십리다. "북한의 원산 남동쪽에 있는 명사십리는 바닷가 약 8킬로미터가 넘게 펼쳐진 흰 모래밭으로 전국에 알려진 해수욕장이다. 여기에는 해당화가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붉게 피어 있고, 뒤이어 긴 띠를 이루어 곰솔 숲이 이어지며, 흰모래와 어우러진 옥빛 바다는 명사십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명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나오는 해당화다. “일명 해홍(海紅)으로, 조선의 해당은 중국 것과는 다르니 홍장미(紅薔薇)의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강원도와 황해도 지역에 나는 금사해당(金沙海棠)은 뿌리도 없고 잎도 없이 바닷가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짙은 붉은 색의 꽃이다. 바라보면 진 꽃잎이 땅위에 점을 찍은 것 같아서 아주 화려하지만, 이것은 해당의 별종이다.”

해당화로 이름난 곳은 관동에도 있다. 강원도 간성(杆城) 죽도(竹島)의 명사(明沙)와 울진(蔚珍) 망양정(望洋亭)의 십리명사(十里明沙)는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해당화가 만발할 때는 비단으로 수를 놓았다 할는지 한 폭의 그림이라 할는지, 아무튼 관동의 승경(勝景)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한다.

明沙十里 海棠花는 望洋亭의 勝槪로다

名花一枝 꺾어들고 平海風光 희롱하니

白石靑松 練層軒에 月松亭이 상쾌하다

명사십리 해당화는 망양정의 승개로다

명화일지 꺾어들고 평해풍광 희롱하니

백석청송 연층헌에 월송정이 상쾌하다

경기민요 ‘노랫가락’에 등장하는 가사다. 매년 몇 차례 꽃을 보고자 경북 울진에 간다. 숙소 앞 망양 바닷가의 해당화를 보았다. 해당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다가 발견한 노래다. 반가움이 앞서 노랫말을 읽다보니 그 바닷가에 서서 바라보던 때가 저절로 떠오른다.

내 뜰에도 해당화가 핀다. 이곳으로 이사 온 해에 사다 심은 것으로 매면 꽃을 피워 반가움을 더해준다. 붉게 피는 해당화가 대부분이나 간혹 흰색으로 피는 꽃도 볼 수 있는데 오래 전 완도 어느 섬에서 본 후로 눈맟춤하지 못하고 있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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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염한 아름다움, 모란꽃

雪後寒梅雨後蘭 설후한매우후란

看時容易畵時難 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조지불입시인안

寧把臙指寫牡丹 녕파연지사목단

눈 온 뒤 찬 매화와 비 온 뒤 난초는

볼 때는 하찮아도 그릴 때는 어렵다네.

세상 눈에 안 찰 줄을 내 미리 알았던들

차라리 연지로 모란을 그릴 것을.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시다. "한강 가의 제천정濟川亭 벽 위에 써 붙였던 것이다. 시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세속을 풍자한 뜻이 깊어 오늘날까지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매화와 난초는 너무 고아하므로 힘들여 그려 봤자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모란은 그 자태가 농염濃艶하여 그리기만 하면 어린 아이부터 미천한 병졸까지 모두 좋아 한다. 이것이 김종직이 자탄한 까닭이다."

모란에 대한 시로 고려사람 이규보를 따를자가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것은 '절화행折花行이란 작품이다.

牧丹含露眞珠顆 목단함로진주과

美人折得牕前過 미인절득창전과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强道花妓好 강도화기호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妄 화약승어망

今宵花與宿 금소화여숙

진주알 맺힌 듯이 이슬 먹은 모란 송이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웃음 담뿍 머금고 님에게 묻는 말이,

“꽃이 예뻐요, 아님 제가 예뻐요?”

서방님은 일부러 장난 치느라

꽃가지 더 예쁘다고 짐짓 말을 하누나.

아가씨는 꽃에 진 것 질투를 내어

꽃가지 짓뭉개며 한다는 말이

“이 꽃이 이 몸보다 진정 낫거든

오늘 밤은 꽃하고 주무시구려.“

*부귀롭고 화려한 꽃의 대명사 모란은 화왕花王이라 한다. 옛사람들이 아껴 뜰에 들여 애지중지하며 가꾸었으며 시로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모두 모란의 농염한 꽃의 자태와 농욱한 그 향기에 주목한 까닭이리라.

내 뜰에도 가장 많은 개체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 모란이다. 흰색이 주를 이루고 붉은색의 모란도 있다. 붉은색의 농염함 보다 흰색의 단아함 속 깊은 아름다움에 반하여 들여와 가꾸고 있다.

"천향天香과 국색國色을 아울러 갖춘 아름답고 농염한 모란"은 겨우 닷새를 보자고 삼백예순 날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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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절세미인, 작약화 芍藥花

好箇嬌饒百媚姿 호개교요백미자

人言此是醉西施 인언차시취서시

露葩攲倒風擡擧 노파기도풍대거

恰似吳官起舞時 흡사오공궁기무시

아양 떠는 고운 자태 너무도 아리따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취서시(醉西施)라 한다네.

이슬 젖은 꽃 기울면 바람이 들어주니

오나라 궁궐에서 춤추던 때 비슷해라.

*중국에서는 모란을 '꽃의 왕'이라 부르며 꽃 중 제일로 꼽았고,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 해 모란 다음으로 여겼다. “작약이 꽃나라의 재상이라고는 하나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작약의 품종 가운데 예전 중국 오나라의 절세미인 서시(西施)가 술에 취한 모습 같다 해서 붙인 취서시(醉西施)란 것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취서시작약시(醉西施芍藥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작약은 꽃의 모습이 작약(綽約), 가냘프고 맵씨가 있다 해서 작약(芍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니, 나원(羅願)이 지은 《이아익(爾雅翼)》에는, “음식의 독을 푸는 데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약(藥)’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誰道花無主 수도화무주

龍顔日賜親 용안일사친

宮娥莫相妬 궁아막상투

雖似竟非眞 수사경비진

꽃은 주인 없다고 누가 말했나

임금께서 날마다 친애하시네.

궁궐의 아가씨들 질투 말게나

비슷해도 마침내 진짜 아니니.

“작약이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는 것은 지금부터 770년 전인 고려 의종(毅宗) 때 일이다. 의종은 정치보다 놀이를 좋아하여, 하루는 대궐 정원에서 꽃구경을 할 때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작약시를 지어 바치게 했다. 이때 지어 바친 시 가운데 현량(賢良) 황보탁(皇甫倬)의 〈작약〉시가 제일이었다.”

재배하는 작약의 종류는 우선 색깔로만 봐도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이 있으며 많게는 4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작약이라는 이름 붙은 것으로는 주로 깊은 산골에 서식하는 산작약, 백작약, 참작약 등이 있다. 접하기 귀한 꽃으로 겨우 흰색으로 피는 백작약만 보았을 뿐이다.

옛 어른들은 함박꽃으로도 불렀다는 작약을 고향 집에서 얻어와 뜰에도 작약을 심었다. 다양한 색으로 크고 화려하게 피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아서다. 모란이 지고나면 작약이 핀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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