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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품은 선비 - 사계절 나무에 담긴 조선 지식인의 삶
강판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나무를 가꾸듯 본성을 다스렸던 조선의 선비들
손바닥 만 한 뜰이 생기자 틈나는 대로 나무를 골라 심었다. 어떤 나무는 꽃을 보고자 함이요, 어떤 나무는 열매를 또 어떤 나무는 수피가 마음에 들어서 또 다른 나무는 그 나무에 담아둔 옛사람들의 마음을 나누고자 심은 나무도 있다. 그렇게 심은 나무가 시간이 지니며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몸을 불러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나무가 자라듯 그 나무를 정성들여 가꾸는 동안 나 스스로도 나무를 닮아가며 자라고 있는 듯하다.
‘나무와 선비’언 듯 생각하면 이 조합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어색함이 있다. 성리학으로 무장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일상을 절제했던 조선의 선비를 떠올리는 것에서 가무악歌舞樂이나 나무와 같은 식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선비의 학문하는 내용에 분명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자기수양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양화소록'의 저자인 조선 초기의 문신 강희안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무를 찾아보는 인문학자 강판권의 새 책 ‘나무를 품은 선비’는 바로 조선의 선비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나무와 선비의 함수관계를 따라가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삶이 서린 공간 속에 남아 있는 나무를 찾아 그 공간을 공유했던 선비정신을 밝혀 조선 선비들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보인다.
“조식과 매화나무, 장유와 산수유, 이건창과 목련, 이상적과 살구나무, 장승업과 해당화, 조임도와 배롱나무, 이계호와 포도나무, 조성환과 회화나무, 조팽년과 구기자나무, 신흠과 박태기나무, 곽종석과 버드나무, 서해와 은행나무, 서유구와 단풍나무, 조덕린과 오동나무, 강희안과 석류나무, 박인로와 감나무,지엄스님과 소나무, 이광진과 백송, 윤선도와 대나무, 김종직과 차나무, 김득신과 잣나무”
특정한 사람과 나무를 연관시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1명의 조선의 지식인과 나무의 조합이 무척이나 흥미를 불러온다. 이처럼 저자는 조선 선비들이 살았던 성리학 관련 공간을 직접 찾고, 그 내용을 사계절로 구분하여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심은 이건창 생가 앞 탱자나무, 조임도가 자신의 보금자리 주변에 심은 소나무, 국화, 매화, 대나무 풍경을 보며 그만의 무릉도원을 상상해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선비와 나무’이 낯선 조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선비’에 있다. 한 사람의 일생에 특별한 의미를 가질만한 나무를 연결하여 그 사람의 일생을 조망하는 과정이 나무를 품은 선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런 시각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가꾸고 드러내는” 공부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나무를 심고 가꾸며 그 나무와 함께 일상을 꾸려간 선비들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보인다.
내 뜰에도 우연히 얻은 회화나무 한그루가 나와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회화나무를 심은 이유를 본받아 나무를 돌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