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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산수기행
유몽인.최익현 외 지음, 전송열.허경진 옮김 / 돌베개 / 2016년 7월
평점 :
사랑채에 누워 유명 산을 유람한다
처서가 지나며 더위도 한풀 꺾였다. 이제 가을 산에 단풍이 들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 단풍을 즐길 것이다. 굳이 가을 단풍까지 가지 않더라도 휴일이나 주말이면 유명한 산엔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분비고 도시 인근 산엔 아침저녁으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넘친다. 모두 몸으로 직접 자연을 체험하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산을 찾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건강이라는 태마가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산을 포함한 자연 속에 있지만 정작 그들은 자연보다 자신의 몸에 주목하고 있어 보인다.
이와는 다른 의미로 산을 찾았던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대부들이 그들이다. 일상의 거의의 모든 일은 하인들에게 맡겼던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때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산을 올랐고,오르지 못했던 사람들은 산을 올랐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라도 보면서 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조선 시대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또 사회적, 신분적 제약 등으로 마음먹은 대로 산을 유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도 그들은 왜 그토록 산을 포함한 자연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지자요수인자요산 智者樂水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등태산이소천하 登泰山而小天下" 태산에 올라가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는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마음을 얻고자 산수를 가까이 하고자 했다.
이를 근거로 '산수유람의 결과를 글로 남겨 스스로 즐기고, 다양한 이유로 산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산수유람을 권하고자 산수유람기를 기록'했다. 이 책‘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은 정원림의 '동국산수기'를 바탕으로 하여 전송열, 허경진이 새롭게 엮은 책이다.
유몽인-두류산, 최익현-한라산, 김효원-두타산, 정상-월출산, 안석경-치악산, 채제공-관악산, 조호익-묘향산, 주세붕-청량산, 고경명-무등산, 이황-소백산, 심광세-변산, 서명응-백두산, 김창협-금강산,임훈-덕유산, 김창흡-오대산, 이복-금오산, 정구-가야산, 이정구-삼각산, 이동항-속리산, 이인상-태백산 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오른 산이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유명인에서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대저 산수기는 반드시 그 땅을 밟고 그 모습을 보아서 마음으로 실체를 터득한 다음에야 붓을 잡고 쓸 수 있다. 높은 것은 높게, 낮은 것은 낮게, 깊은 것은 깊게, 얕은 것은 얕게, 그 변화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는다.”
산을 올랐던 이들이 유산록을 기록하며 삼았던 기준으로 보인다. 각 편마다 말미에 작가 소개와 작품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본문에 첨부된 지도는 조선 영조 때 제작된 ‘해동지도’를 도판으로 사용하고 있어 보다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자연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조선 선비들의 유산기에는 선비들의 감정과 의지가 세심하게 담겼다. 유산기를 기록하는 선비의 마음과 다양한 이유로 산을 찾는 현대인의 마음이 만나는 접점에 자연이 있다. 유명한 산, 사는 곳 주변에 있는 산 등을 오르며 이렇게 기록된 유산록을 통해 세월이 흐른 뒤 오늘날의 산과 비교해 보면서 산을 올라보는 남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